무용은 예술이다. 예술은 놀이다. “사람은 놀이를 할 때 비로소 참사람이다.”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말처럼 놀이는 삶에 대한 순수한 욕구를 반영한다. 결핍된 것이나 반드시 얻어야할 어떤 것에 대한 필수적인 욕망이 아니라 지금 여기, 현재 그대로의 삶에 대한 순수한 욕구가 놀이로 표현되는 것이다. 2013 창작산실지원사업 한국무용우수작품으로 선정된 안덕기의 <포구ROCK(2014.1.19, 아르코대극장)>은 놀이에 대한 욕망을 궁중정재춤인 ‘포구락(抛毬樂)’에서 찾는다. 포구락은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춤이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기생들이 춤을 추면서 나무를 깎아 만들어 채색한 정구공만한 공, 즉 채구(彩毬)를 나무로 만들어 세워놓은 포구틀에 뚫린 구멍(풍류안;風流眼) 속에 던져 넣는 놀이다. 안덕기는 1991년 경남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진주지방에 전승되고 있는 이 춤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다.
한진국과 김경희가 만든 무대는 몽환적이다. 청색을 주조로 입체적으로 설계된 원형의 통로를 빠져나온 사람들이 무대 중앙을 통과해서 객석에 자리 잡으며 놀이가 시작된다. 여인들이 하나씩 등장해서 무대 한가운데에 그려진 원 주위를 천천히 맴돌기 시작한다. 감각적인 의상이 흰 나비처럼 가볍고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준다. 천체의 별자리가 회전하는 듯한 초현실적인 영상과 조명, 부드러우나 역동적인 춤사위가 양악과 국악이 적절히 조화된 음악과 어우러지면서 흥겹되 저급하지 않은 무대분위기를 연출한다. 환상적인 분위기에 매료된 관객들의 박수가 중간 중간에 터져 나온다. 현대무용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원 주위에 둘러선 무희들이 서로의 꿈 이야길 나눈다. '나의 꿈은~'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소리에 걸맞은 동작의 묘사를 수반하면서 야구장에서 본 연예인들의 시구 폼을 연상케 하는 코믹함도 보여준다. 소리와 동작들이 뒤섞이며 때로 혼란스러운 불협화음도 연출하지만 이들이 던지는 공은 곧 그들의 꿈이고 타깃이 된 동그라미는 그들이 좇는 삶의 목표임을 은유해준다.
목탁과 꽹과리, 장구와 북, 징과 심벌즈까지 무용수들이 사용하는 음향도구는 다양하다. 양철 쓰레기통도 뒤집어 두드리면 악기가 된다. 객석에서 무대로 불러올려진 관객들이 공놀이에 가세한다. 성공하면 상으로 꽃이 주어지고 실패하면 얼굴에 먹줄이 그어지던 전통 포구락을 재현한 것이다. 판소리가 현대춤사위와 어울리고 무대가 객석과 교류하며 빛과 춤과 소리가 융합된 무대를 보면서 눈과 귀와 마음이 함께 즐거웠던 70분이었다.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지만 50분 이후 소란한 록음악에 맞춘 현대춤부분은 사족처럼 느껴졌다. 팸플릿에 표기된 조악했던 문장들은 옥의 티였다. 관객들은 공연을 보기 전에 팸플릿을 먼저 읽는다는 사실을 알아주기 바란다.
지난 해 늦가을, 한국춤협회가 주최한 한국무용제전 소극장춤페스티벌에서 안덕기의 <하쿠나마타나(11월 20일, 강동아트센터 소극장)> 공연을 본 기억이 난다. 제롬 벨 식 대화 춤 형식을 통해 강강술래가 상징하고 있는 집단적 기원을 현대화한 작품인데 창의적인 안무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놀이무용에 대한 그의 일관된 철학과 춤에 대한 상상력을 <포구ROCK>에서 다시 확인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작품에 대한 창조력이 소진된 채 실적 늘리기에 급급한 그렇고 그런 교수들 작품을 주로 지원 대상으로 선정해온 무용계의 잘못된 관행이 탈피되고 끈도 없고 자리도 없지만 창조력으로 무장된 이러한 안무가들이 계속 발견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이 말도 많았던 창작산실지원사업이 그 정당성을 입증 받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일 것이다.
글_ 이근수(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사진_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제공
*이 글은 몸지 2014년 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