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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방 김경란류 권번춤 예맥: 반월 半月


‘민주화운동 이후의 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 

사승(師承)적 형(形)의 고착에서 벗어나, 도반(道伴)적 태(態)의 공존을 향하다


서울교방, 그 곡진한 춤꾼들


곡진(曲盡)하다. 매우 정성스럽다. 서울교방의 반월(半月)을 보면서, 함께 한 모든 이의 곡진(曲盡)함에 감동했다(2024.9.13.-14. 서울남산국악당).


중용 23장 其次致曲(기차치곡)이 떠올랐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함을 일깨워주는 장(章)이다. 영화 〈역린〉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말이다. ‘곡진(曲盡)해야 변화(變化)한다’는 것인데, 서울교방의 춤역사가 그러하다. 중용 23장은 요약하면 일곱 글자이다. 성-형-저-명-동-변-화 (誠→形→著→明→動→變→化) 이 일곱 글자를 그대로 서울교방의 역사에 적용할 수 있다. 지난 2010년부터 김경란 사범을 중심으로 도반(道伴) 형태로 성장한 ‘서울교방’이 딱 이러했다. 


1. 誠. 서울교방의 춤사위는 유독 정성스럽다. [誠] 

2. 形. 그것은 서울교방 특유의 형태[形]를 만들어냈다. 

3. 著. 여러 해를 지나면서, 그런 춤형태가 점차 뚜렸해졌다.[著] 

4. 明. 개인에 머물지 않고, 도반이 서로 뭉치니 매우 밝아졌다. [明] 

5. 動. 전국적으로 그걸 보면서 함께 하고픈 움직임[動]이 일어났다. 

6. 變. 그것은 한국전통춤의 생태계를 바뀌게 했다. [變]

7. 化. 반월(半月)을 통해서 이렇듯 바뀌면서 이룩된 [化] 춤이 확연히 보였다. 


형(形)에서 태(態)까지: 서울교방춤의 생존과 성장


앞의 내용에서 특히 형(形)이란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형태(形態)라는 말을 함께 쓰는데, 이건 실제 분리해서 한다. 특히 ‘춤’이라는 걸 생각할 때 더 그렇다. 춤에는 형(形)이 있고, 태(態)가 있다. 形으로부터 시작해서, 態로 완성된다. 우리말도 모양과 모습으로 엄밀하게 구분한다. 모양 형(形)이요, 모습 태(態)이다. 세모꼴, 네모꼴은 ‘모양’이라고 한다. 그걸 ‘모습’이라고 하지 않는다. 객관적이고, 실체적이다. ‘모습’에는 주관적이고, 감정적이다. 모습 태(態)라는 한자가 마음 심(心)자를 품고 있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모양 형(形)자는 어떤가. 원래 평평하다는 뜻과 열리다는 뜻을 담은 开(열 개, 평평할 견)에 터럭 삼(彡)이 붙은 것이다. 터럭은 털이나 머리털 등을 뜻한다. 태(態)와 다르게 형(形)은 구조적이며, 비(非) 감정적이다. 우리 춤에 화전태(花前態)와 화류태(花柳態)란 말이 전해오는 걸 보면 딱 이해된다. 결코 화전형, 화류형이란 말은 없지 않은가. 


‘반월’을 통해 더 분명해지는 건, 서울교방은 ‘김경란 사범의 형(形)’에서 시작해서 ‘도반들의 태(態)’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것이 ‘한국 전통춤의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한국춤의 생태계가 김경란으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범위를 넓혔는가, 곧 이는 기본적인 형(形)에서 저마다의 태(態)로 가는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그렇다면 이번에 ‘재구성’한 인물에 한정해서 살피는 것은 의미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번에 재구성으로 이름을 올린 김부경, 차명희, 서진주, 진현실, 김지영 5인만을 다룰 순 없다. 이들보다 앞서서 김미선, 서정숙, 장인숙을 다루거나, 혹은 위의 8인을 동시에 조명해야 한다. 


서울교방 특유의 춤이 형(形)을 바탕으로 어떻게 태(態)로서 변모 내지 승화되고 있는가를 모두 총괄해서 살필 필요가 있다. 나를 포함해서 서울교방의 춤에 관심이 깊은 이들이 이에 대해서 좀 더 깊이 파고들길 바라는 마음이 절실하다. 그것이 바로 국가나 시도 무형유산에 지정된 춤이 아닌, ‘한국전통춤의 자생적 생존과 성장의 역사’이기에 그렇다. 


대무! 서로 다른 다섯 가지의 태(態)가 살아있었다


이 글에선 서울교방의 춤꾼이 ‘재구성’한 다섯 춤을 풀어내려 한다. 김경란이 혼자 춘 ‘교방굿거리춤’은 제외하였다. 다섯 춤의 ‘대’는 모두 한자가 다르다.

 


첫 번째 순서는 ‘초무’였다. 최근 춤계에서 초무(初舞)란 말은 종종 듣는다. 이 말은 오래전 사용했던 말이다. 이왕직아악부 계통이라거나, 1950년대와 1960년대의 고전무용을 가르치는 무용연구소에서도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좋은 예로 조순자 명인(국가무형유산 ‘여창가곡’ 보유자)은 초무라는 말로 지도해왔다. 초무는 춤에 입문하는 이들이 배우는 춤이다. 입춤과는 다르다. 입춤이 춤의 여러 동작을 고루 수용하고 있다면, 초무는 초보자(입문자)가 쉽고도 흥미롭게 따라 할 동작으로 채워져 있다. 


초무의 담백함, 초무의 올곧음 


서울교방의 초무는 무슨 뜻일까. ‘공연의 첫머리에서 문을 여는 형식의 기본춤’이라고 설명했다. 초무(初舞)는 그러니까 초무(招舞)인 셈이다. 초혼(招魂)이 혼을 부르는 것이라면, 초무((招舞)을 춤을 부르는 것이겠다. 영계(靈界)와의 접점(接點)이 초혼이라면, 무계(舞界)와의 접점이 초무랄까. 나는 지난해 국립국악원의 일이관지 중 ‘조선춤방’을 통해, 서울교방의 초무를 처음 봤다. 담백함과 올곧음이란 두 단어로 그 춤을 요약할 수 있었다. ‘감정적인’ 감정을 빼고, ‘기교적인’ 기교를 빼고 추는 춤의 그 담백함,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서울교방이 지향하고 있는 춤세계의 올곧음이 전달되었다. 


이번엔 김부경이 재구성한 초무였다. 김은희 김희진 박연주 유영란 이용희 장인숙 정향숙가 출연했다. 내가 전에 본 것에 비해, 이번의 ‘초무’는 다소 번잡했다. ‘올곧음’은 같았으나, ‘담백함’은 다소 희석되었다고나 할까. 재구성한 안무자의 ‘여무(女舞)의 단아함을 사계절로 구성하며 마치 한 폭의 화조도(花鳥圖)를 연상하게 만드는 춤’이라고 했다. 분명 그렇게 만들었고, 그렇게 느낀 관객도 다수일 거다. 그러나 나는 이런 초무야말로, ‘처음 모습 그대로’ 올곧게 이어지길 바라는 한 사람이다. 


초무는 대무(臺舞): 모두가 돈대에 올랐다


‘초무’는 내겐 대무(臺舞)였다. 대(臺)는 ‘흙이나 돌 따위로 높이 쌓아 올려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 곳’이다. 한자 臺는 ‘돈대 대’이다. 돈대 대(臺)란 무엇인가. 돈대(墩臺)는 평지(平地)보다 약간 높직하게 두드러진 평평(平平)한 땅이다. 성곽에서는 가장 높은 평지에 높게 쌓은 축을 말한다. 


궁중무용의 춘앵전이 화문석 위에서 춤추고, 무산향이 대모반 위에서 춤을 춘다면, 서울교방의 ‘초무’는 둔대에서 추기에 딱 어울리는 춤이었다. 숭고하게 전달되는 의미가 마치 조선의 어느 성곽 위에서 추는 춤처럼 보였다. 물론 무대에 둔대가 있는 건 아니다. 서울교방의 초무가 숭고(崇高)하기에 그리 상상한 거다. 


이렇듯 돈대에서 추는 춤이야말로, 동양인의 세계관인 천원지방(天圓地方)에 부합되어야 한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란 뜻이다. 땅이 모나다는 것은, 곧 땅의 모양이 사각형이라는 뜻인데, 이걸 ‘격자무늬’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7인의 춤꾼들이 격자무늬를 연상하는 동선을 통해서 이것과 저것의 관계성과 조화로움 속에 화합을 기원합니다’ 김부경의 재구성 의도는 이러했다.


실제 7인이 합심에서 추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으나, 실제 격자무늬란 생각을 들지 못했다. 흔히 바둑판과 같은 규격이 있는 걸 격자(格子)라 하는데, 나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격자(格子)라는 것과 유사한 말로 정간(井間)이 있다. 나는 이 춤을 보면서 정간(井間) 또는 정간보(井間譜)의 시각 또는 개념으로 춤을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했다. 시용무보(時用舞譜)와 같은 것도 정간보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겠다. 어떤 식으로 격자를 해석했는지 내가 파악하지 못한 듯 해서 안타깝지만, 춤을 출 때 감정적인 면을 최대한 절제하면서 움직임이 가지고 있는 형식미를 주면서, 서울교방의 품격을 살려냈다는 점에선 아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여무(女舞), 여성성을 드러내는 춤인가


과거 실제 교방(敎坊)이 있던 시절, 교방춤이 추어진 공간이 여럿이겠다. 서울교방의 초무는 바로 이 ‘돈대’에서 추는 춤에 딱 격이 맞는다. 흔히 교방에서 연상되는 선입견은 여성미이자 교태미이다. 그간 ‘교방’ 또는 ‘기방’을 앞세운 춤 또는 춤집단은 ‘서울교방’만은 아니었다. 그들의 춤도 가치가 있을 게 충분하겠지만, 그런 춤을 출 때의 배경은 궁궐(宮闕)이나 동헌(東軒)일 것이다. 의식성의 조회(朝會)나 유흥성의 연회(宴會)와 연결되지 않는 것이, 나는 서울교방의 특장(特長)이라고 생각하는 일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나는 서울교방의 춤이 여성(女性)의 춤이지만, 그걸 굳이 여성성(女性性)과 연결하는 걸 원치 않는다. 내가 서울교방의 초무의 공간을 ‘돈대’라고 설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에는 지금도 많은 돈대가 남아있다. 누군가에게는 경치 좋은 장소이고, 누군가에는 이 땅의 역사와 연관된 요새와 같은 곳이다. 서울교방의 초무가 대한민국의 여러 ‘돈대’에서 펼쳐지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그것이 내 상상으로 끝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구음검무는 대무(對舞): 상대와 행복을 나누다


구음검무는 프로그램북의 설명대로 “현란한 검술춤, 우아한 한삼춤, 교태스런 맨손춤”이란 표현에 딱 맞는 춤이었다. 그런데 교태(嬌態)라는 단어도 맞지만, 특히 차명희의 검무는 정겨움과 귀여움이 함께 공존하는 듯 하다. 말하자면 과거의 검무가 높은 양반이 주재하는 연회에서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춤이 아니었던가.



정연희 차명희가 함께 추는 ‘구음검무’는 두 사람만이 서로 즐기는 놀이처럼 느껴졌다. 서로가 상대를 희롱하듯이 추는 춤이었다. 구경꾼은 상관없이 오직 두 사람만이 대무로 즐기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지금까지 검무를 대무로 꽤 많이 봐 왔는데, 정연희 차명희의 구음검무를 으뜸이나 버금으로 꼽고 싶다. 차명희 특유의 가벼움이 여기선 아주 큰 미덕으로 작용했다. 춤꾼이 기분 좋게 춤추니, 관객도 덩달아 흥이 났다. 


김수악의 구음, 김보라의 구음과 같은가 


김보라의 구음은 매우 매력적이다. 프로그램북에는 “김수악 선생의 유작(遺作) 구음(口音)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매혹적인 구음”이라고 했다. 매혹적인 구음에는 동의하나, 김수악 선생의 유작이란 말이 걸린다. 이건 김보라의 구음이라고 하는 게 맞다. 


구음검무가 오래도록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더 이건 김보라류(流)는 색이 짙어졌다. 처음 분명 김수악의 구음을 레퍼런스로 삼았겠으나, 김수악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이 구음을 김수악과 연결에 동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앞으로는 김수악의 구음과 김보라의 구음을 이렇게 쉽게 연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논개별곡은 대무(隊舞): 다섯은 하나로 뭉쳤나 


논개별곡은 대무(隊舞), 곧 무리춤이다. 요즘 ‘떼창(唱)’이란 말이 쓰이니, 이를 떼춤(舞)이라 해도 좋을까. 재구성의 서진주는 “5인의 〈논개별곡〉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각 5명의 감정과 교류를 통해 5가지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말한다.



논개별곡은 보는 시각에 따라서 높이 평가할 수 있겠지만, 나로는 아니었다. 통일성이 부족하다. 5명의 개성을 부여하려면 일단 5명의 통일성으로 관객의 시선을 다잡아야 했다. 그렇게 느낀 관객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안무자의 의도 좋게 말하면 다양(多樣)한 것이고, 다르게 말하면 잡다(雜多)한 것이다. 어느 하나를 포착해서 그걸 밀고 가는 힘이 부족했다. 같은 무대에서 재구성 한 다른 안무자의 이름을 여기에 등장시키는 것이 결례일지는 모르겠지만, 안무자로서 밀고 나가는 힘은 김지영이 출중하다. 


뭔가 많은 걸 보여주고, 많이 움직이는데, 실제 나와 같은 관객에게는 왜 남는 것이 적을까? 이런 의문으로 프로그램북을 뒤적였을 때, 그 이유를 알았다. “새로운 형태의 살풀이춤으로 관객들에게 지루하지 않은 춤을 선사하려고 합니다” 바로 서진주의 안무 의도가 이래서 그러했다. 


여기서 ‘새로운 형태의 살풀이춤’이 김경란에 의해서 재창조된 논개별곡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걸 바탕으로 재구성한 서진주의 춤을 말하는 것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둘 다 ‘새로운 형태의 살풀이춤’이라는 평할 순 없다. 이건 모두 ‘조금 다른 수건춤’이다. 말을 달리하면 ‘새로운 형태의 수건춤’이다. ‘살풀이춤’에 방점을 찍히는 게 아니라, ‘수건춤’에 방점을 찍는 다른 얘기다. 거슬러 올라가면, 김수악의 살풀이춤 또한 그러하다. 그는 색깔이 다른 수건을 사용하면서, 그 수건에 더 의미를 두었던 것 같다. 


‘반월’에서의 논개별곡을 보면서, ‘감정 과잉의 무용극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서사성과 극성을 살려내기 위해 관객에게 뭔가를 느끼게 하려는 안간힘이 느껴졌다면, 내가 너무 냉정한 관중이었을까.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내가 ‘서울교방’을 지지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감정을 낭비하거나,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쉽지만 ‘논개별곡’에서는 이런 절제성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지속성’과 ‘지루함’은 다르다


논개별곡을 나는 이렇듯 대무(隊舞)의 시각으로 보았다. 그런 시각으로 볼 때 아쉬움이 있다. 다섯 사람의 개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다섯 사람은 모두 그렇게 다 움직였어야 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이 ‘남도민요’에 있다. 남도민요는 여러 사람이 부른다. 논개별곡처럼 다섯 사람이 나와서 함께 부른다. 그런데 후렴부만 같이 부른다. 그리고 각자 부르는 부분이 따로 있다. 이런 ‘따로 또 같이’ 혹은 ‘선택과 집중’이 재구성한 ‘논개별곡’에서도 그랬으면 좋지 않았을까.


한국춤이나 국악을 하는 사람들이 관객이 ‘지루하다’고 느끼는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것일수록 좋다. ‘지루하다’는 매우 상대적이다. 한 가지의 감정이나 정서를 추진력 있게 밀고 가면서, 거기서 농밀(濃密)한 정서를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고전이다. 논개별곡은 아쉽게도 지루함을 주지 않으려는 안무자의 태도로 인해서, 지속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따라서 깊이 파고들면서 느껴지는 진한 감동과는 거리가 있었다. 

 

동서양의 모든 고전은 어떤 면에서 지루하다. 그러나 그렇게 뭔가를 끈질기게 밀고 가면서, 거기서 사람의 감정을 사로잡는 것이 힘이 나오는 것이다! ‘서울교방’의 춤을 지지하고 보러오는 관객들은 일반인들이 보통 말하는 지루함 속에서 발견되는 ’지속되는 춤적인 에너지‘를 훨씬 원할 것이다. 

 

춤 49재는 대무(代舞): 시대의 서사가 읽힌다 


진현실 재구성의 ’춤 49재: 잠들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서울교방의 다섯 명의 도반 작품 중에서 가장 감동받은 작품이다. 진현실은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승무의 경우, ‘원형’이 강조되면서 “새로운 서사를 부여하거나 사회적 공감대를 향한 접근이 어렵다”고 했다. 공감한다.



이번 공연의 제작감독 최해리는 ‘민주화 운동 이후의 춤’을 초점을 맞추었고, 그런 시각에서 ‘서울교방’을 주목했다. 민주화운동 이후의 춤이 꼭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는 규정은 없겠다. 그간 대(對)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춤도 많았던 현실에서, 일단 ‘춤 49재’는 ‘승무’를 가져왔다는 점을 높이 산다. 재구성자가 밝혔듯이, 승무를 통해서 새로운 메시지를 담아낸다는 건 어쩌면 지금까지 특별히 선호된 방식은 아니었다. 그는 왜 승무를 기반으로 이런 춤을 만들어냈을까. 


‘객관적 거리감’에서 ‘대자적 몰입감’으로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줄지어 일어나는 사고와 사건들로 예기치 못한 죽음이 일상이 되어 버린 시대입니다. 이 춤은 잠들지 못하는 영혼을 항해 춤으로 올리는 진혼의 공양입니다. 부디 평안하소서.” 


이 춤이 끌렸던 이유는 참 많다. 우선 슬픔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하기에 끌렸다. 관객의 감정은 움직이지 않았는데, 무대가 먼저 감정을 드러내서 관객과의 거리감을 일으키는 우(愚)를 범하지 않았다. 관객은 이 승무라는 춤을 감상하면서, 이런 ‘객관적 거리감’을 전제로 해서 우리의 현실을 투영해 볼 수 있는 ‘대자(對自)적 몰입감’이 가능했다. 


대신해서 추고, 춤으로 잇다 


나는 이 춤을 대무(代舞)라 부르겠다. 대신할 대(代)라는 뜻에서 대무(代舞)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영혼을 대신해서, 우리에게 추는 춤이기에 대무다. 또한 대무(代舞)란 ‘이어지는 춤’이란 의미다.



이번 공연의 ‘반월’의 제작감독 최해리는 “한국 민주화운동에 어떤 춤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으로서 서울교방을 연결시켰다. 김경란은 1970년대 이후 문화운동가의 한 사람이다. 그 시절을 치열하게 살았다는 건 의미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김경란을 주목하게 되진 않는다. 1980년대에 사회참여 의식으로 한국의 만주화 운동에서 열렬한 문화투사로 활약한 김경란 또는 김금화 만신의 신딸로서 황해도 굿판에서의 김경란은 과거로서 의미가 있고, 이미 과거형으로 완료되었다.  


우리가 김경란을 존중하며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990년대부터의 좀 다른 행보다. 명상과 수련을 통해서 개인적 치유를 경험하면서 이런 개인적 치유를 사회적 치유의 영역으로 넓히려는 태도와 더불어서 그 중요한 방법으로 ’춤‘, 특히 당시로서는 소외된 변방의 춤, 지방의 춤을 가지고 새로운 춤판을 개척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최해리의 표현을 옮기면 ’춤을 통한 레질리언스(resilience)라 하겠다. 


그렇다면 제작감독 최해리가 말하는 ‘춤을 통한 레질리언스’에 가장 이념적으로 부합하는 작품은 무엇일까. 나는, ‘춤 49재’라고 생각한다. 작품의 주제 또는 소재만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런 주제와 소재를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흐름이 참 좋다. 감정의 변화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감정을 쭉 춤으로 이어갈 줄 안다. 


무엇보다 춤적인 움직임 안에 메시지를 어떻게 담아야 효과적인지 잘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무용적 움직임 이후에 일상적 움직임을 어떻게 겹치게 하면서 중요한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할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춤 49재는 깔끔하고 진지하고 깊이가 있었고, 그래서 관객에게 여운을 주었다. 다소 상투적인 말이긴 하나, ‘전통춤의 동시대성’을 잘 드러내는 작품 또한 ‘춤 49재’였다. 


동편제 & 서편제 민살풀이, 언젠가 대무(大舞)가 되기를 


프로그램북에 실린 반월(半月)의 뜻은 이렇다. “반 정도 단단히 차 있고 앞으로 채워질 그것이 헛된 것이 아닌, 고요하지만 진실의 빛으로 가득 차 있음”으로 풀이했다. 


마지막 김지영 재구성의 민살풀이는 ‘반월’과 ‘반월’의 만남처럼도 보였다. 동편의 반월은 도반이었고, 서편이 반월은 김경란이었다. 민살풀이로 만났다. 이 두 살풀이춤을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했다. 민살풀이는 수건을 들지 않는 권번의 고제(古制) 살풀이춤이리 했다. 남원권번의 조갑녀제를 동편으로, 군산 소화권번의 장금도제를 서편으로 설정했다. 동편제를 ‘기개담연’으로, 서편제를 ‘애잔처연’으로 구분했다.




김지영의 재구성은 좋았다. 마무리를 재안무할 사람은 단연 김지영이란 생각에 동의했지만, 이 작품이 김지영이 과거에 만든 작품보다는 빼어나지는 못했다. 서울교방의 춤꾼들이 합심해서 참여하고 김지영의 안무가 돋보였던 ‘율’이나 ‘결’에는 이르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의 민살풀이를 대무(大舞)라고 하기엔 조심스럽다. 


창무회 출신의 중견 안무가 김지영은 확실히 ‘신명’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춤으로 실재화되는가를 잘 알고 있다. 또한 그의 춤 속에서는 ‘시나위’의 원리가 살아있다. ‘부분은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부분을 위하여’, 이렇게 총체(總體)와 객체(客體)를 모두 다 잘 살린다. 이건 시나위 음악에서 합주도 듣기 좋지만, 이런 합주가 좋기 위해서는 개별 악기들의 역량이 잘 살아나야 하는 이치와 같다. 


김지영의 ‘율’과 같은 작품은 확실히 명실상부한 대무(大舞)이다. 그 춤 안에는 ‘시나위’의 정신과 구조가 있다. 나는 이런 ‘시나위식 안무법’이 크게 인정한다. 같은 말을 좀 달리한다면, 김지영은 전통음악의 특성을 잘 아는 안무가이자 춤꾼이다. ‘시나위’의 구조를 알고, ‘신명’이라는 미학을 ‘양날의 검’으로 사용할 줄 아는 영특함에 탄복한다. 그러나 그런 특성을 이번 공연에는 십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함에도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번 ‘반월’과 ‘반월’의 만남을 통해서, ‘태극무늬’를 지향한 것은 아닐까 그런 추측도 하게 된다. 


전북제: 조갑녀의 응축 vs. 장금도의 발산


이제 조금 다른 얘기를 하자. 이 내용에 대해선 이견(異見)이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 확신이 서는 의견은 아니다. 그러함에도 조갑녀와 장금도라는 인물과 춤을 깊이 또는 다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기에 과감하게 내 의견을 피력해 보겠다. 

 

나는 조갑녀의 춤을 ‘동편’이라고 보는 시각에 크게 동의하지 않는다. 조갑녀의 춤은 판소리의 동편제와는 참 다르다. 동편제는 ‘강’을 내세우지만, 조갑녀는 ‘유’가 살아있다. 유능제강(柔能制剛)의 춤이라고나 할까.


서울교방춤을 형성한 예인에 비교하자면, 조갑녀는 흐름의 춤이요, 장금도는 동작(사위)의 춤이다. 여기에 또 한 사람을 덧붙인다면 김수악은 느낌의 춤이다. 조갑녀는 거시적 시각, 장금도는 미시적 시각으로 춤을 춘다는 얘기도 가능하겠다. 


두 분은 동편과 서편으로 구분할 것이 아니라, 같은 ‘전북제’ 속에서 남원지역과 군산지역의 정서적 차이와 기본으로 해서, 두 분의 삶과 연관해서 두 분의 춤의 미학성을 깊게 파고들 필요가 있다.


김지영을 여기서 다시 논하겠다. 같은 김지영이라고 해도, 창무회에서 추는 김지영과 서울교방에서 추는 김지영은 달라 보인다. 내 눈엔 다르다. 창무회에서의 춤은 발산(發散)이 더 강하고, 서울교방에서의 춤에선 응축(凝縮)이 더 강하다. 어느 게 더 좋다고 쉽게 말할 순 없다. 춤이란 것이 이렇게 소속된 그룹에 따라서 가변적이라 의도다. 


이제 다시 서울교방의 춤맥을 형성하는 기틀이 된 두 분을 다시 호출해보자.


조갑녀는 ‘응축의 춤’, 장금도는 ‘발산의 춤’이다. 내재율 혹은 외형률이라는 말도 가능하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흔히 ‘응축’은 안으로 향하고, ‘발산’은 밖을 향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 분의 춤을 보면서 다른 점이 발견된다. 두 분의 삶과 춤과 연관해서 이건 내게 ‘행복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하건대, 이건 내 주관적 판단이다. 서울교방의 도반들은 내 생각과 다르거나, 또한 전혀 반대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민주화 운동 이후, ‘사승(師承)적 고착’에서 ‘도반(道伴)적 확산‘으로 


서울교방의 사범 김경란은 형(形) 지향한다. 다시 말하면 형을 제시했다. 김경란의 형(形)을 바탕으로 태(態)로 진화시키는 건 도반 각자의 몫이다. 국가무형유산이나 시도무형유산으로 전승되는 춤도 모두 각자 방식의 전승 체계가 있을 것이고, 그를 그것 자체로 인정한다. 그러나 염려되는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전(前) 세대가 후(後) 세대에게 춤의 형태(形態)를 모두 똑같이 따르길 강요해서 걱정스럽다. 사람마다 몸이 좀 다르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다름과 틀림은 다르다. 


’반월‘은 ‘민주화운동 이후 한국 전통춤’을 화두로 삼고 있다. 민주화운동 이전의 춤과 이후의 춤의 변별은 무엇인가. 거기에 김경란은 어떻게 등장하는 것일까. 김경란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민주화운동 이전 사승(師承)적 춤판이라면, 민주화운동 이후는 도반(道伴)적 춤판이다.” 서울교방을 통해서 우리는 김경란의 역할론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민주화 운동 이전의 춤이 ‘형(形)의 불변성’이 강조되었다. 무형유산(무형문화재)를 지켜내야 한다는 신념에서, 개인의 개성보다는 집단의 통일성이 강조되었다. 저마다의 태(態)를 간과했다. 민주화운동 이후의 춤판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고, 돌이켜보니 그 역할을 김경란이 해냈다. 그는 무형문화유산의 지정된 종목을 벗어나서, 특히 지역이라는 변방에 있는 춤에 특히 애정을 쏟았고, 이를 널리 퍼지게 했다.


글을 마치면서 다시 영화 〈역린〉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 시절에 상책(정재영)과 같은 인물이 있었다면, 우리 시대에는 김경란이 있다. 어디선가 두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지극히 정성을 다해야,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



글_ 윤중강(공연평론가)

사진_ 옥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