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비평
Vol.111-2 (2024.11.20.) 발행
글_ 송준호(춤평론가)
사진_ 국립현대무용단 목진우
장르를 불문하고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포스트휴머니즘은 ‘우리’와 ‘인간’이 하나라는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시작하는 담론이다. 이것은 ‘우리’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의 요소도 더해 있다는 뜻과 연결된다. 즉 인간이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다양한 외부 요건에 따라 영향을 받는 가변적인 존재라는 의미다. ‘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 거창한 용어는 당연해 보이는 이 개념에서 출발한다.
〈내가 물에서 본 것〉은 몸에 대한 탐구를 통해 ‘우리’를 이루고 있는 인간과 비인간의 문제를 도발적으로 파헤친다. 그 시작점은 난임 상태를 치료하기 위해 시행한 김보라 안무가의 보조생식기술 체험이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프로그램북을 통해 소개된 안무가의 경험은 작품의 이해를 위한 효과적인 길라잡이가 된다. 차갑고 이질적인 기계음과 불협화음을 이루는 몸짓들은 진찰대 위에 놓인 인간 개체를 떠오르게 한다. 이후 공연의 진행 방식은 이러한 무력한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시청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철저하게 기술의 실행 대상이 된 몸들은 영혼을 담은 숭고한 존재가 아니라 생식의 매개체에 불과한 고깃덩어리(corpus)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시종일관 이런 몸들로 채워지는 무대는 주로 추(醜)와 불쾌(不快)의 정서로 점철된다.
이는 포스트휴머니즘을 키워드로 몸의 탐구를 실행한 기존의 작품들과 다른 위상을 보여준다. 그런 작품들은 대개 기술이 발달하면서 흔들리는 인간 정체성의 위기를 원시적인 신체성에서 찾아왔다. 근 미래라는 가상의 설정에서 오히려 퇴행한 듯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창작물에서는 인간 본래의 정의가 분열되고 해체되는 데 대한 불안과 공포를 발견할 수 있다. 즉 거기에는 인간 기술에 종속되지 않은 정신과 육체의 주체성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통념이 내재된 것이다. 더구나 신체와 기술의 관계를 적대적이거나 이원론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이미 지나간 시대의 것이다.
반면 〈내가 물에서 본 것〉은 몸이 기술이 실행되는 매개로 전락하며 혼란에 빠진 안무가의 체험이 작품의 동력이자 안무의 키워드가 된다는 점에서 동종의 작품들과 차이가 있다. 그것은 철저히 동시대적이고 현실적인 상황을 마주한 우리에게 인간 보편의 문제를 구상화해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라는 존재가 숭고한 관념의 담지체인 몸을 통해서만 입증되는 것도 아니고, 몸 바깥의 존재와 관계되어 완성되며, 몸 자체가 물질이기도 하다는 낯선 사유가 전달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제목인 ‘What I sense in the Matter’의 Matter는 이 작품에서 다분히 중의적인 의미로 활용된다. 몸은 물질(matter)이면서 중요한 것(matter)이고, 그것이 다양한 영역과 연결되어 문제시되는(mattering) 것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작품은 단독자로서 존재하지 않고(못하고) 지속적으로 엉켜 있는 몸짓 표현을 통해 동일자가 아닌 존재들이 공존하는 현실을 표현한다. 이는 물질을 객체나 타자로 보고 있는 전통적 유물론과 달리, 주체적으로 외부에 영향을 주는 행위자로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신유물론과 연결된다. 이러한 신유물론의 관점에서는 몸도 물질의 일부이고, 생물학적 존재에 그치지 않고 주체적으로 다른 물질과 영향을 주고 받는다. 〈내가 물에서 본 것〉의 안무 방식은 이러한 신유물론의 속성에서 대부분 차용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또한 신유물론적 관점은 이 작품에 내재된 페미니즘적 뉘앙스와도 자연스레 연결된다. 페미니즘은 결국 성별에 따라 몸의 해석 방식이 달라지고 이로부터 어떤 불평등과 제약이 작용하는지 묻는 학문이다. 안무가의 개인적 체험은 말할 것도 없고, 의료 기기 소리의 활용과 주체성이 박탈된 채 방치된 몸의 전시는 여성 신체에 물리적, 사회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를 인상적인 방식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다만 그렇다고 〈내가 물에서 본 것〉의 포스트휴머니즘이 사회적으로 배제된 타자로서 여성의 지위 회복을 추구하는 기존의 페미니즘적 태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 몸은 생물학적 한계를 말하는 것이나 특정한 사회적 구성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기서 몸은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정의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의도적으로 일그러지고 변질된 (것처럼 보이는) 몸(물질)들은 이를 재현하기 위한 매개체다. 이들이 표현하는 ‘이상한’ 몸이란, 기존의 휴머니즘 헤게모니에서 소외되어 정당한 ‘우리’로 인정받지 못한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공연 내내 생명 반응을 보인 주체로서 객석이라는 외부 세계에 존재감을 입증했던 ‘물질’들은 자기만의 낯선 생명 활동으로 ‘우리’라는 존재의 영역을 되묻는다. 〈내가 물에서 본 것〉은 이러한 방식을 통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담론에 머무르지 않고 실존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포스트휴먼의 실체를 체감시키고 있다.
다만 퍼포먼스의 에너지나 오브제 활용의 방식이 전체적으로 이 같은 관념적인 테마의 무게에 눌려 있는 인상이 있다. 그 때문에 연출이나 안무가 다소 단선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무려 15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해 드넓은 비닐 패널을 뜯어내는 초반부의 연출이 대표적이다. 파란 비닐을 벗겨낼 때의 질척한 촉감과 마찰음, 그 밑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차가운 금속판의 정서는 시술대에 누운 육체의 처지를 연상시킨다. 피부를 한 꺼풀 벗겨낸 듯, 몸의 장기를 묘사한 흉측한 의상은 성별의 구별이 불가하다. 날달걀을 바닥에 던지고 깨트려 그 점액질 위로 문질러지는 육체는 앞서 휴머니즘의 신체 개념에 맞서는 비인간/물질로서의 몸 개념을 구상화한 아이디어다. 정리하면 이는 퍼포먼스의 연출이나 에너지가 담론의 존재감에 종속된 듯한 인상을 준다. 물론 이는 연출의 보완과 오브제들의 재구성과 발전을 통해 충분히 개선될 수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
무대 위의 한없이 연약한 육체와 뒤엉킨 관계성, 분리될 수 없는 구조와 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의상까지, 모든 요소들은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모아지고 있다. 그것은 혐오와 차별로 점철돼 폭력과 갈등을 빚는 이 시대야말로 상호 의존과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반성이다. 이에 대한 당위성은 이미 팬데믹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기존의 휴머니즘으로는 더 이상 살아남기 어려워진 시대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결국 다양한 존재들과 나란히 공존하며 새로운 ‘우리’를 구성하려는 발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작품은 말한다.
전세계의 독자들을 위해 '구글 번역'의 영문 번역본을 아래에 함께 게재합니다. 부분적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Please note that the English translation of "Google Translate" is provided below for worldwide readers. Please understand that there may be some errors.
Review
Vol.111-2 (2024.11.20.) Issued
Written by Song Jun-ho (dance critic)
Photo by Korea National Contemporary Dance Company_ Mok Jin Woo
The definition of ‘us’ questioned through the aesthetics of ugliness: Korea National Contemporary Dance Company‘s 〈What I Saw in the Water〉
Post humanism, which has recently become a trend regardless of genre, is a discourse that begins by questioning the idea that “us” and “humans” are one. This is connected to the idea that “us” includes not only human but also non-human elements. In other words, humans are not complete beings in themselves, but rather variable beings influenced by various external factors. The grand term “pos thumanism” starts from this seemingly obvious concept.
〈What I Saw in the Water〉 provocatively explores the issue of humans and non-humans that make up “us” through an exploration of the body. The starting point is choreographer Kim Bo-ra’s experience with assisted reproductive technology to treat infertility. The choreographer’s experience, introduced in the program book before the performance, serves as an effective guide to understanding the work. The cold, disparate mechanical sounds and dissonant gestures bring to mind human beings on an examination table. The way the performance progresses thereafter focuses on visually and auditorily expressing reflections on these helpless human beings. The bodies that have become the subject of thorough technological execution are not sublime beings with souls, but mere corpus, mere mediators of reproduction. Therefore, the stage, which is consistently filled with such bodies, is mainly filled with emotions of ugliness and discomfort.
This shows a different phase from existing works that explore the body with post humanism as a keyword. Such works usually find the crisis of human identity that is shaken by the development of technology in primitive physicality. In the fictional setting of the near future, which is depicted as rather regressive, we can find anxiety and fear about the fragmentation and disintegration of the original definition of humanity. In other words, the common sense of seeking human identity in the subjectivity of the mind and body that is not dependent on human technology is inherent there. Moreover, the perspective that view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body and technology as hostile or dualistic is already a thing of the past.
On the other hand, 〈What I Saw in the Water〉 differs from similar works in that the choreographer’s experience of being confused as the body is reduced to a medium through which technology is implemented becomes the driving force of the work and the keyword of the choreography. It visualizes the universal problems of humanity for us who are faced with a thoroughly contemporary and realistic situation. Through this, the unfamiliar idea that the existence of “us” is not only proven through the body as a carrier of sublime ideas, but is completed in relation to existence outside the body, and that the body itself is also material is conveyed.
In this respect, the word “Matter” in the title “What I Sense in the Matter” is used in a rather ambiguous sense in this work. This is because the body is matter and important, and the content is about how it is connected to various areas and becomes a problem. Reflecting this, the work expresses the reality of coexistence of non-identical entities through gestures that do not (cannot) exist as independent entities and are continuously entangled. This is connected to new materialism in that it views matter as an agent that subjectively influences the outside, unlike traditional materialism that views matter as an object or other. From this new materialist perspective, the body is also a part of matter, and it does not stop at being a biological entity but subjectively influences and is influenced by other substances. It seems clear that the choreography of “What I Saw in the Water” is largely borrowed from this new materialist attribute.
In addition, the new materialist perspective is naturally connected to the feminist nuance inherent in this work. Feminism is ultimately an academic discipline that asks how the way the body is interpreted differs depending on gender, and what kind of inequality and restrictions are imposed from this. Not to mention the choreographer’s personal experience, the use of medical device sounds and the display of bodies that have been neglected and deprived of their subjectivity provide an impressive look into the physical and socially entangled issues of the female body. However, this does not mean that the post humanism of “What I Saw in the Water” is limited to the existing feminist attitude that seeks to restore the status of women as socially excluded others. In this work, the body does not speak of biological limitations or remain in a specific social construct. Rather, the body here ultimately poses an ontological question about the definition of humanity. The bodies (substances) that are (seemingly) intentionally distorted and deformed are the medium for representing this. The “strange” bodies they express are those who have been alienated from the existing humanistic hegemony and have not been recognized as legitimate “us.” Nevertheless, the “substances” that have proven their presence in the external world of the audience as subjects who have shown life responses throughout the performance question the realm of existence called “us” with their own unfamiliar life activities. 〈What I Saw in the Water〉, through this method, does not remain in abstract and conceptual discourse, but rather allows us to experience the reality of the post human in an existential and concrete manner.
However, the energy of the performance and the way in which the objects are used seem to be weighed down by the weight of this conceptual theme. Because of this, the direction and choreography feel somewhat linear. The first part of the performance, which takes about 15 minutes to tear off a large vinyl panel, is representative. The sticky texture and friction sound of peeling off the blue vinyl, and the emotion of the cold metal plate that appears underneath, remind us of the situation of a body lying on a surgical table. The hideous costumes depicting the organs of the body, as if a layer of skin had been peeled off, make it impossible to distinguish between genders. The body, which throws a raw egg on the floor, breaks it, and rubs it over the mucus, is an idea that conceptualizes the concept of the body as an inhuman/material that confronts the concept of the body in humanism. In summary, this gives the impression that the direction and energy of the performance are subordinate to the presence of the discourse. Of course, this seems to be an area that can be sufficiently improved through the supplementation of the production and the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of the objects.
All elements, from the infinitely fragile bodies on stage and the entangled relationships, to the inseparable structures and costumes that make us reconsider the meaning of life, are ultimately gathered into one message. It is a reflection that this era, which is marked by hatred and discrimination and causes violence and conflict, requires interdependence and self-reflection. The legitimacy of this has already been proven through the pandemic. The work says that in order to survive in an era where it is no longer possible to survive with existing humanism, we ultimately need to discover and make efforts to coexist with various beings and form a new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