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비평
Vol.111-2 (2024.11.20.) 발행
글_ 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허윤경
〈미드-필ㄷ-ㅓ〉라는 제목으로 연작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허윤경이 세 번째 무대로 돌아왔다. 10월 6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올려진 그의 세 번째 공연은 ‘접촉면에 한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관객들과 만났다.
허윤경은 축구 용어로 우리에게 익숙한 ‘미드필더’를 극장이라는 공간 안으로 끌어온다. 그러나 그의 ‘미드필더’는 한글 자모음 일부가 분리된 ‘미드-필ㄷ-ㅓ’로 표기된다. 마찬가지로 영문 제목 역시 ‘mid-field-er’로 단어를 분리해 표기하고 있다.
축구에서 미드필더가 공격수와 수비수 사이에서 공간을 창출하고 공을 운반하며 플레이하는 것처럼 허윤경과 무용수들은 극장이라는 공간과 움직임을 발현시키는 감각 사이에서 공간을 탐색하고 움직임을 만들어내는데, 이들이 ‘미드필더’가 아니라 ‘미드-필ㄷ-ㅓ’로서 퍼포밍하는 것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만들어진 결과물로서의 움직임이 아니라 움직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축구 경기의 관중들은 선수들의 발끝에서 공이 어디로 움직이는지를 보게 되지만 허윤경의 이 공연에서 관객들은 움직임이 어디서 어떻게 파생되어 공간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보게 된다.
공연이 올려지는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은 기존의 객석이 폐쇄된 채 관객들을 맞이한다. 관객들은 신발을 벗고 무대로 입장한다. 세 조각의 천을 이어 붙인 커튼이 공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구획을 지을 뿐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따로 없는 이 공간에서 관객들은 공간의 일부인 동시에 움직임의 일부이기도 하다.
공연은 허윤경이 무대에 등장하며 시작된다. 그는 핸드폰 두 대를 양쪽 귀에 대고 대화를 나누며 들어온다. 공연 관람이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면 공연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매우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나가던 그는 상대편과의 대화를 관객들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핸드폰 통화 상태를 스피커폰으로 전환한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된 것이다.
대화가 공연으로 전환되면서 핸드폰으로 나누는 대화는 퍼포밍의 일부가 된다. 핸드폰 건너편에서 들리는 목소리들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관객들은 이 대화를 집중해 듣는다. 핸드폰 역시 퍼포머로 공연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핸드폰은 통화를 가능케 하는 모바일 기기가 아니라 목소리를 내고있는 사람의 신체를 대리하는 또 다른 신체다.
허윤경은 대화를 하는 동안 핸드폰을 무대 한가운데 커튼 아래 내려놓기도 하고, 관객 중 누군가의 발 앞에 가져다 놓기도 하고, 누운 채 가슴에 핸드폰을 올려놓기도 한다. 허윤경의 손을 거쳐야 한다는 제약이 있긴 하지만 핸드폰의 이동은 적어도 공연 내에서는 허윤경의 신체 움직임과 동등한 지위에 있다.
잠시 뒤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극장에 도착하고 나자 이번에는 반대의 상황이 펼쳐진다. 핸드폰을 남겨놓은 채 무대에서 퇴장한 허윤경은 이제 핸드폰으로 들리는 목소리로만 존재한다. 허윤경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핸드폰 역시 퍼포머로 참여하게 된 관객의 손에 의해 이동하지만 그 이동은 직전 상황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갖는다.
핸드폰은 신발 안에 담겼다가, 허윤경의 요구에 따라 극장 내의 따뜻한 곳, 또 가려운 곳으로 이동한다. 요구의 주체는 허윤경이지만 그는 자신의 요구가 제대로 실행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이동은 허윤경의 요구를 수행한 또 다른 퍼포머의 감각이나 사고에 따른 것으로, 허윤경의 신체 감각이나 사고가 아닌 수행한 퍼포머의 그것을 통해 완성된다. 분절적이고 제한적이긴 하나 서로 다른 신체가 하나의 감각 또는 사고로 연결된 것이다.
또한 조금 전까지는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던 퍼포머도 핸드폰 속 허윤경과 대화를 나누며 퍼포밍에 참여한다. 목소리의 주인공들, 그러니까 핸드폰 저편에 있는 또 다른 퍼포머들은 목소리로서 이 무대 공간에 존재하며, 이 분리된 신체는 그래서 극장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낳는다.
핸드폰을 사용한 움직임 실험이 끝나면 허윤경을 비롯해 고권금과 임영이 함께하는 움직임이 이어진다. 셋은 같은 공간에 함께 있지만 서로 대화하지 않으며, 이들의 움직임은 서로 연결되거나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고권금은 감각과 감각 사이에 존재하는 무언가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고, 임영은 두더지 등과 같은 ‘다른 존재’로 세계를 감각해내는 우화적인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 ‘다른 존재’는 앞서 허윤경이 다른 퍼포머들과 대화 속에서 이미 한 번 등장한 적 있다. 허윤경은 극장은 다른 존재가 되거나 다른 세계로 가는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임영의 목소리를 통해 실현되어 관객들에게 다른 세계로 가는 경험을 제공한다. 다만 이 경험은 임영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은 관객들만 얻을 수 있다.
왜냐면 세 무용수의 이야기는 각각의 독백으로 허공에 흩어지기 때문에 관객들은 세 명 모두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없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더 귀 기울여 들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관객의 선택이 개입되는 것으로 공연의 퍼포먼스는 더욱 개인화되고 개별화된다.
세 무용수는 관객들 사이사이로 파고들어 좀 더 긴밀한 스킨십을 시도한다. 관객을 무작위로 선택해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머리를 쓰다듬거나 아니면 무릎을 베고 눕기도 한다. 극장의 일부로 존재해 있던 관객들은 그 순간 의도치 않게 퍼포밍에 참여해 퍼포머의 한 사람이 된다.
2022년 신촌극장 공연에서 허윤경은 “그들은 극장과 관객 사이 간격을 좁히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 시도는 어떤 사정에 의해 끝까지 가진 못했다고 한다”라는 글귀를 바닥에 써놓았다. 사실 공연을 ‘관람’하고자 극장에 가는 관객들에게 ‘감각’의 주체가 되는 것은 낯설거나 당혹스러운 경험이다. 감각은 신체마다 다른 고유함으로 존재하며, 그 고유함은 이해하거나 공유할 수 없다. 그러니 이 시도가 끝까지 가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며, 앞으로도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로부터 2년 뒤, 허윤경은 ‘접촉면’을 넓히는 세 번째 시도로 다시 돌아왔다. 이 시도를 통해 극장과 관객 사이의 간격은 얼마나 좁아졌을까. 각각의 고유한 감각을 지닌 관객들의 개별적인 신체는 이 좁아진 간격을 어떻게 인지했을까. 퍼포밍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극장을 ‘감각’함으로써 퍼포밍의 일부가 되어본 경험이 관객들의 다음 ‘관람’에는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이 질문들에 대해 답을 얻으려면 허윤경의 네 번째 시도를 기다려봐야 할 것이지만, 그에 앞서 관객들 각자가 극장에 대한 감각과 사고를 좀 더 예민하게 벼려놓는다면 극장과 신체 사이의 간격은 한층 좁혀질 것이다.
전세계의 독자들을 위해 '구글 번역'의 영문 번역본을 아래에 함께 게재합니다. 부분적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Please note that the English translation of "Google Translate" is provided below for worldwide readers. Please understand that there may be some errors.
Performance Review
Vol.111-2 (2024.11.20.) Issue
Written by Yoon Dan-woo (Performing Arts Columnist)
Photo courtesy of Heo Yoon-kyung
When becoming part of the theater or part of the performance: Heo Yoon-kyung's 〈Mid-field-er: Only on the Contact Surface〉
Heo Yoon-kyung, who has been continuing her series of performances under the title 〈Mid-field-er〉 has returned to the third stage. Her third performance, held on October 6 at the Arko Arts Theater Small Theater, met the audience with the subtitle “Only on the Contact Surface.”
Heo Yoon-kyung brings the “midfielder,” a familiar soccer term, into the space of the theater. However, his “미드필더” is written as “미드-필ㄷ-ㅓ” with some of the Korean consonants and vowels separated. Likewise, the English title is also written as “mid-field-er” with the words separated.
Just as a midfielder in soccer creates space between the attackers and defenders and carries the ball to play, Heo Yun-kyung and the dancers explore space and create movement between the space of the theater and the sense of expressing movement. The reason they perform as ‘mid-fielders’ rather than ‘mid-fielders’ is because what they want to show is not the movement as a result of creation, but the process of creating movement.
That is why the audience at a soccer game sees where the ball moves from the players’ feet, but in Heo Yun-kyung’s performance, the audience sees where and how the movement is derived and what kind of relationship it has with space.
The small theater of Arko Arts Theater where the performance is held welcomes the audience with the existing seats closed. The audience takes off their shoes and enters the stage. In this space where there is no separate boundary between the audience and the stage, with only a curtain made of three pieces of cloth hanging across the center of the space to create a partition, the audience is both a part of the space and a part of the movement.
The performance begins with Heo Yun-kyung appearing on stage. He enters the room holding two cell phones to his ears and talking. If you are not used to watching performances, you might think that the performance has not started yet. He continues the conversation very naturally, oblivious to the gaze of the audience looking at him, and then switches the phone call to speakerphone so that the entire audience can hear the conversation. The full-fledged performance has begun.
As the conversation changes into a performance, the conversation on the phone becomes part of the performance. Although the audience cannot tell whose voices are coming from the other end of the phone, they listen intently to this conversation. This is because the phone is also participating in the performance as a performer. In this case, the phone is not a mobile device that enables the conversation, but another body that represents the body of the person making the voice.
While talking, Heo Yun-kyung sometimes puts the phone down under the curtain in the middle of the stage, sometimes puts it in front of someone in the audience’s feet, and sometimes puts the phone on her chest while lying down. Although there is a limitation that it has to pass through Heo Yun-kyung’s hands, the movement of the phone is at least on par with Heo Yun-kyung’s body movements within the performance.
A moment later, when the voice protagonists arrive at the theater, the opposite situation unfolds. Heo Yun-kyung, who left the stage behind her cell phone, now exists only as a voice heard through her cell phone. The cell phone that plays Heo Yun-kyung’s voice is also moved by the hands of the audience who participated as a performer, but the movement has a slightly different character than the previous situation.
The cell phone is put in a shoe and moves to a warm or itchy place in the theater according to Heo Yun-kyung’s request. Although Heo Yun-kyung is the subject of the request, she cannot confirm whether her request was properly carried out. The movement is based on the senses or thoughts of another performer who performed Heo Yun-kyung’s request, and is completed through the senses or thoughts of the performer who performed it, not Heo Yun-kyung’s physical senses or thoughts. Although segmented and limited, different bodies are connected as one sense or thought.
In addition, the performer who was the voice protagonist until a moment ago also participates in the performance by conversing with Heo Yun-kyung in the cell phone. The protagonists of the voice, that is, the other performers on the other side of the cell phone, exist in this stage space as voices, and this separate body thus raises a new question of where the theater begins and ends.
After the movement experiment using the cell phone, the movement of Heo Yun-gyeong, Ko Kwon-geum, and Im Yeong continues. The three are in the same space, but they do not talk to each other, and their movements do not connect or interact with each other. Ko Kwon-geum mainly talks about something that exists between senses, and Im Yeong tells an allegorical story about sensing the world as a ‘different being’ such as a mole.
This ‘different being’ has already appeared once before in Heo Yun-gyeong’s conversation with other performers. Heo Yun-gyeong said that the theater is a place that provides the experience of becoming a different being or going to a different world, and this is realized through Im Yeong’s voice, providing the audience with the experience of going to a different world. However, this experience can only be obtained by the audience who listened to Im Yeong’s story.
Because the stories of the three dancers are scattered into the air as individual monologues, the audience cannot focus on all three voices and must choose whether to listen more attentively to someone's story. The performance of the performance becomes more personalized and individualized as the audience’s choice is involved.
The three dancers try to penetrate the audience and try to have closer skinship. They randomly select an audience member and put their hand on their shoulder, stroke their hair, or lie down on their lap. The audience members who were part of the theater unintentionally participate in the performance and become one of the performers.
In the 2022 Shinchon Theater performance, Heo Yun-gyeong wrote on the floor, “They wanted to narrow the gap between the theater and the audience. However, they say that they could not continue that attempt due to certain circumstances.” In fact, for the audience who go to the theater to 'watch' the performance, becoming the subject of ‘sensation’ is an unfamiliar or embarrassing experience. Senses exist as unique characteristics for each body, and that uniqueness cannot be understood or shared. So it is perhaps natural that this attempt did not go all the way, and it may be impossible in the future.
Two years later, Heo Yun-kyung returned with a third attempt to expand the ‘contact surface’. How narrowed was the gap between the theater and the audience through this attempt? How did the individual bodies of the audience, each with their own unique senses, perceive this narrowed gap? What changes will the experience of becoming a part of the performance by ‘sensing’ the theater rather than ‘watching’ the performance bring to the audience’s next ‘watching’?
We will have to wait for Heo Yun-kyung’s fourth attempt to find answers to these questions, but if each audience member sharpens their senses and thoughts about the theater a little more before that, the gap between the theater and their body will be narrowed even fur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