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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더 이상의 인간을 만들지 않겠다는 선언: 국립현대무용단 〈닥쳐 자궁〉

공연비평

Vol.112 (2024.12.15.) 발행


글_ 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국립현대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이 10월에 올린 김보라 안무의 〈내가 물에서 본 것〉에 이어 11월에는 시모지마 레이사 안무의 〈닥쳐 자궁〉을 선보였다. 두 여성 안무가가 본인의 신체 경험에서 출발해 각자의 사유를 발전시켜 나가며 새로운 우주를 열어 보인 작업으로, 두 편의 공연을 연이어 감상하며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귀한 경험이 되었다.


〈닥쳐 자궁〉(11.15.-11.17,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은 국립현대무용단과 일본 가나가와예술극장이 공동제작한 공연으로, 2021년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아시아 안무가와의 협업 프로젝트로 올린 기획공연 ‘우리가족 출입금지’의 세 작품 중 하나로 초연되었다가 이번에 단독 공연으로 관객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시모지마 레이사, 배효섭, 이경구 세 명의 무용수가 출연한 초연 무대가 가부장제 내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며 기획공연의 대주제였던 ‘가족’으로 수렴된 것과 달리 60분으로 확대 편성된 이번 공연에서는 여성의 신체로 한 발짝 이동해 인간의 재생산과 그 이후에 대해 질문한다. 제목에도 들어 있는 ‘자궁’에 좀 더 근접한 셈이다. 윤혜진, 이대호, 임소정 이 세 무용수가 초연 무대의 가족을 재현하고, 새로이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아홉 명의 무용수들 박수민, 박진영, 백미순, 이사랑, 이예림, 이유라, 정지현, 한규은, 현림이 군무진으로 함께했다.

 

ⓒ황승택

ⓒ황승택

 

공연은 윤혜진, 이대호, 임소정이 먼저 등장해 술래잡기 놀이의 일종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들이 하는 놀이는 정확히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아니라 이를 변형한 ‘거시기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새로운 놀이다. 규칙은 비슷한 듯하지만 좀 다르다. 술래인 이대호가 등을 지고 눈을 가린 채 ‘거시기꽃이 피었습니다’라고 주문을 외우는 동안 윤혜진과 임소정이 그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술래에게 움직이는 모습을 들켜선 안 되기에 이대호가 뒤를 돌아보면 윤혜진과 임소정은 움직임을 중단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원래의 규칙대로라면 술래가 움직이는 현장을 잡아내어 포로로 삼을 수 있지만 이들의 놀이에서 이 역학관계는 다르게 적용된다. 움직임을 멈추고 마네킹처럼 굳은 자세가 된 두 무용수는 균형감을 잃고 자꾸만 쓰러지고, 이대호는 이들을 원래대로 일으키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한 명을 똑바로 세워놓기 무섭게 다른 한 명이 쓰러지는 식이라 두 무용수 사이에서 움직이는 이대호 혼자 분주하다.


무대에서 아직까지 포로가 되는 페널티를 받는 이는 없지만 원래의 놀이에서 술래에게 접근하는 이들이 페널티를 감수하고 움직이는 것과 달리 무대 위의 놀이는 두 무용수가 쓰러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 이대호가 곧 페널티를 받을 것처럼 절박해 보인다. 이대호의 시선을 피해 두 무용수가 편안하게 움직이거나 자연스러운 웃음을 주고받는 것은 이 새로운 놀이의 또 다른 관전포인트다. 이들은 술래가 모르는 자신들만의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황승택 
ⓒ황승택

 

이대호가 퇴장하고 윤혜진과 임소정 둘만 남은 무대에서 이들은 좀 더 원초적인 세계로 퇴행한다. 이들은 기저귀처럼 보이는 하의(시모지마는 〈기저귀를 찬 원숭이〉에서도 이와 같은 의상을 입은 적이 있다)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입에 넣는다. 껌이다. 이들은 곧 껌을 서로 바꿔 씹기 시작한다. 기저귀를 차고 있는 이들이 머물러 있는 세계는 아기들이 거울을 통해 자아를 인식하는 그 즈음인 듯하다.

 

이윽고 무대 상부에서 흰 천뭉치가 떨어지더니 무대가 곧 전환된다. 관객들의 시선이 새로운 오브제에 쏠린 사이 두 무용수는 퇴장하고 군무진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외양도 심상치 않다. 푸른색 우주복 같은 것을 입은 이들은 부른 배를 내밀고 천천히 무대 앞으로 걸어 나온다. 이들은 허리를 짚고 배를 쓰다듬으며 한껏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다. 아무리 봐도 만삭으로 몸이 무거워진 임부의 모습이다. 그러나 새 생명을 잉태해 기쁨에 찬 모습은 아니다. 이들이 배를 감싸고 있던 천을 걷어내자 북과 그 아래 매달려 있는 두 개의 방울이 드러난다. 이들은 주먹으로 북을 때리고 방울을 빙빙 돌리며 ‘불알’이라고 외치기 시작하고, 무대 뒤편에는 ‘KINTAMA(金玉; 불알)’이라는 자막이 뜬다.


안무가 시모지마는 열여덟 살에 병원에서 신체 내부에 자궁이 없으며, 대신 고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는다. 병원의 최종 진단은 그에게 고환도 없다는 것이었는데, 시모지마는 이를 “제 DNA는 더 이상 이어지는 일 없이 ‘아무것도 없는’ 이 육체가 저의 최종 형태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의 본능이라고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도록 세뇌되어 온 ‘번식’이 불가한 몸이라는 것이다. 안무 작업을 하기 위해 한국에 온 시모지마는 태어나자마자 한 살을 먹는 한국식 나이 셈법(현재는 한국도 만 나이 체제로 바뀌었지만)에 영감을 받아 자신의 이 같은 타고난 신체성을 비출산에 대한 선언으로 바꾼다.

 

그는 프로그램북에 실린 안무가의 글에서 “세상의 모든 부조리는 인간이 인간인 까닭이며, 이러한 부조리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을 낳지 않는 것”이라고 쓰고 있는데, 이처럼 자신의 결연한 의지로 자궁을 엄마 뱃속에 두고 나온 것이기에 그의 비출산은 신체성이 아니라 의지에 따른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무대 위의 이 퍼포먼스, 임부의 배를 때리거나 불알을 저글링 하듯 굴리며 노는 모습은 번식에 대한 유쾌한 저항으로 재의미화된다. 또한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곳이 한 세대 전 성감별 낙태를 통한 대규모 페미사이드(Femicide)를 자행해 온 한국이라는 점에서 안무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남아 출산으로 남성 과잉 사회에 도달한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을 수 있다.

 

ⓒ황승택 
ⓒ황승택

 

‘거시기꽃이 피었습니다’로 시작한 공연은 ‘거시기꽃이 떨어집니다’로 끝나며 이것이 놀이가 아니라 현실의 폭력과 닿아 있음을 웅변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언제까지 기저귀를 차고 거울 속에 비친 자아상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각각의 장면과 메시지의 퀄리티에 비해 여성의 재생산과 신체성이라는 문제와 가부장제 내 가족의 문제를 연결한다거나 가족 내 폭력을 국가주의 폭력과 연결하는 작품의 이음매가 썩 매끄럽지는 않다. 


이는 믹스드빌 공연이 단독 공연으로 확대될 때 작품의 밀도가 떨어지는 고질적인 문제와 닿아 있는 동시에 작품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일본색과 폭력에 대한 감각이 연결되는 순간 역사에 대한 트라우마 반응을 일으키는 예술 외부의 문제를 건드린다. 일본인 여성 안무가가 자신의 신체 경험에 기반해 내놓은 솔직한 질문에 한국인으로, 여성 혹은 비여성으로, 또 안무가가 아닌 관객으로 어떤 응답을 할 수 있을까. 그 응답이야말로 공연을 완성 시켜주는 마지막 퍼즐이 될 것이다.


전세계의 독자들을 위해 '구글 번역'의 영문 번역본을 아래에 함께 게재합니다. 부분적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Please note that the English translation of "Google Translate" is provided below for worldwide readers. Please understand that there may be some errors.

Review

Vol.112 (2024.12.15.) Issue


Written by Yoon Dan-woo (Performing Arts Columnist)

Photo provided by Korea National Contemporary Dance Company



A declaration to not create any more humans: Korea National Contemporary Dance Company's 〈Shut Up Womb〉



Following Kim Bora's 〈What I Sense in the Water〉 choreographed in October, the National Dance Company of Korea presented Shimojima Reisa's 〈Shut Up Womb〉 choreographed in November. The two female choreographers began with their own physical experiences and developed their own thoughts, opening up a new universe. Watching the two performances back-to-back was a valuable experience that allowed us to reflect on women's reproductive rights.


〈Shut Up Womb〉(November 15-17, Arts Center Jayu Small Theater) is a performance co-produced by the National Dance Company of Korea and the Kanagawa Arts Theater of Japan. It was premiered as one of three works of the planned performance “Our Family is Prohibited” in 2021 as a collaborative project with Asian choreographers by the National Dance Company of Korea, and is meeting the audience again as a solo performance this time. Unlike the premiere performance featuring three dancers, Reisa Shimojima, Hyo-seop Bae, and Kyung-gu Lee, which showed the appearance of a family within a patriarchal system and converged on the main theme of the planned performance, “family,” this performance, expanded to 60 minutes, takes a step forward to the female body and asks questions about human reproduction and its aftermath. It gets a little closer to the “womb” which is also included in the title. The three dancers, Yoon Hye-jin, Lee Dae-ho, and Im So-jung, recreate the family from the premiere stage, and nine dancers newly selected through auditions, Park Soo-min, Park Jin-young, Baek Mi-soon, Lee Sa-rang, Lee Ye-rim, Lee Yu-ra, Jeong Ji-hyeon, Han Gyu-eun, and Hyun Lim, join the corps.


The performance begins with Yoon Hye-jin, Lee Dae-ho, and Im So-jung appearing first and playing a type of tag game called ‘Mugunghwa Flower Blossoms’. The game they play is not exactly ‘Mugunghwa Flower Blossoms’ but a new game called ‘Geosigi Flower Blossoms’, which is a variation of the game. The rules seem similar, but they are a bit different. While Lee Dae-ho, the tagger, is chanting ‘Geosigi Flower Blossoms’ with his back turned and his eyes covered, Yoon Hye-jin and Im So-jung gradually approach him. They must not be caught moving by the tagger, so when Lee Dae-ho looks back, Yoon Hye-jin and Im So-jung stop moving and stand still.


According to the original rules, the scene where the sullae moves can be captured and taken as a prisoner, but in their play, this dynamic is applied differently. The two dancers who stop moving and become stiff like mannequins lose their balance and keep falling down, and Lee Dae-ho is busy raising them back to their original position. As soon as one is straightened up, the other falls down, so Lee Dae-ho, who moves between the two dancers, is busy alone.


No one has been penalized for being a prisoner on stage yet, but unlike the original play where those who approach the sullae take the penalty and move, the play on stage seems desperate as if Lee Dae-ho, who has to prevent the two dancers from falling, will soon be penalized. Another point of interest in this new play is that the two dancers move comfortably or exchange natural laughter while avoiding Lee Dae-ho’s gaze. They are playing their own game that the sullae does not know about.


When Lee Dae-ho leaves the stage and only Yoon Hye-jin and Im So-jeong remain, they regress to a more primitive world. They take something out of their diaper-like bottoms (Shimozima also wore a similar costume in 〈The Monkey in Diapers〉) and put it in their mouths. It’s gum. They soon start chewing the gum, exchanging it with each other. The world in which these diaper-wearing people reside seems to be the time when babies recognize themselves through mirrors.


Soon, a white cloth falls from the upper part of the stage, and the stage changes. While the audience’s eyes are focused on the new object, the two dancers exit and a corps appears. Their appearances are also unusual. They are wearing something like blue space suits, and they slowly walk to the front of the stage with their swollen bellies sticking out. They are holding their waists, caressing their bellies, and smiling with great satisfaction. No matter how you look at them, they look like pregnant women whose bodies are heavy due to their pregnancy. However, they are not joyful because they have conceived a new life. When they remove the cloth covering their bellies, a drum and two bells hanging below it are revealed. They start hitting drums with their fists, spinning bells, and shouting “Balls,” and the subtitle “KINTAMA (金玉; Balls)” appears behind the stage.


At the age of eighteen, choreographer Shimojima was diagnosed at a hospital that he had no uterus inside his body and that he might have testicles instead. The hospital’s final diagnosis was that he had no testicles, and Shimojima explains this as “my final form, a body with ‘nothing’ and no more DNA.” It is a body that cannot “reproduce,” which has been brainwashed as long as the history of mankind as a human instinct. Shimojima, who came to Korea to work on choreography, was inspired by the Korean age system (now Korea has also changed to the Korean age system) where one gets one year older as soon as one is born, and he turns this innate physicality into a declaration of not giving birth.


In the choreographer’s note in the program book, he writes, “All the absurdities of the world are because humans are humans, and the only way to stop this absurdity is to not give birth to humans.” Since he left his uterus in his mother’s womb with his own firm will, his non-birth is not a physicality but a result of will.


Therefore, this performance on stage that bewilders the audience, the sight of him hitting the pregnant woman’s belly or juggling his testicles, is re-signified as a cheerful resistance to reproduction. In addition, since the performance takes place in Korea, which committed large-scale femicide through sex-selective abortion a generation ago, it can be read as a criticism of Korean society that has reached a male-dominated society through male childbirth, regardless of the choreographer’s intention.


The performance, which began with “Geosigikkot-ee-bun-da” (flowers blooming in the vineyard), ends with “Geosigikkot-ee-deul-neun-da” (flowers falling in the vineyard), eloquently stating that this is not a play but rather a connection to the violence of reality. It is impossible to stay in diapers and reflect only on one’s self in the mirror forever. However, compared to the quality of each scene and message, the work’s connection between the issues of women’s reproduction and physicality and the issues of the family within the patriarchal system, or between violence within the family and violence of statecraft, is not very smooth.


This touches on the chronic problem of the work’s density decreasing when a mixed-ville performance expands into a solo performance, and at the same time, it touches on the issue outside of art that causes a traumatic reaction to history the moment the sense of Japaneseness and violence that cannot be revealed in the work are connected. What kind of response can one give as a Korean, as a woman or non-woman, or as an audience member rather than a choreographer, to the honest question posed by a Japanese female choreographer based on her own physical experience? That response will be the final puzzle piece that completes the perform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