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비평
Vol.112 (2024.12.15.) 발행
글_ 윤중강(공연평론가)
사진제공_ 서울시무용단
‘국수호 김재덕의 사계’는 ‘사계(四季)를 통해서 사계(四界)를 구축한 작품’이다. ‘국수호 김재덕의 사계’(이하 ‘사계’)는 계절감을 색으로 드러내는 20세기 방식과 결별했다. 사계의 도입부는 ‘움틈’이다. 땅속에 뿌려진 씨앗에서 땅을 뚫고 싹을 돋는 걸 군무로 표현한다. 사계는 무채색이자 어두운 색조를 기반으로 시작하면서 관객에게 철학적 메시지를 던져준다. 그러면서 유채색 혹은 밝은 색조를 행해 가면서 미학적 이미지를 채워간다.
박동의 김재덕 vs. 호흡의 국수호
작품의 성과를 정확히 짚기 위해, 두 안무가의 이전 모습을 살펴보자. 달리기에 비유한다면, 김재덕은 단거리 주자(sprinter)요, 국수호는 장거리 주자(marathoner)다. 안무가 각각의 기본적인 단위가 다르다. 김재덕은 박동(搏動)이요, 국수호는 호흡(呼吸)이다. 박동이 빨라지면 부담스럽고, 호흡에 충실하면 느슨해진다.
전자의 무용수는 소모적 양감(量感)을 느끼고, 후자의 무용수는 미학적 질감(質感)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것이 온전히 온전히 관객에게 전달된다는 보장이 없다. 때론 그들에게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느껴지기도 했다. 제어(制御)라는 단어를 써도 좋을까. 그래야 각각의 작품이 더욱 빛날 수 있다. 사계가 딱 그랬다. 두 안무가가 서로 작품을 만들면서, 각각 본인 또는 상대를 제어했다는 게 느껴졌다.
사계는 더블빌이 아니다
두 안무가가 참여한 이 작품은 매우 성공적이다. 김재덕에게선 ‘질주(疾走)의 버거움’이 없었고, 국수호에게선 ‘완주(完走)의 헐거움’이 없었다. 두 안무가가 양보(讓步)했는지 모르겠으나, 이렇듯 상보(相補)가 있음은 분명했다. 따라서 이 작품을 ‘더블빌’로 보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상쟁(相爭)이 있었는지 모르나, 최종적 결과물에선 상생(相生)의 성과가 분명했다. 두 안무가 모두 win-win했고, 서울시무용단에 그 수혜가 돌아갔다. 누가 어떻게 안무하느냐에 따라서, 단원들의 몰입도가 달라진다는 게 확연히 보였다. 이 단체에 역량을 갖춘 무용수가 많다는 걸 확인했고, 서울시무용단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안무방식은 어땠을까. 내 주관적 판단은 이렇다. “OB 국수호의 특장(特長)을 YB 김재덕의 춤에서 잘 녹아있다” 국수호는 아낌없이 주었고, 김재덕은 과감하게 받았다. 봄과 여름 부분은 김재덕 안무였지만, 그 안에 가을 겨울은 많이 보듬고 있다. 김재덕이 안무한 부분에선, 그 특유의 등 퇴장, 움직임은 그대로 살아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피면 무용수의 몸 형태 혹은 그 만들어내는 움직임은 다르다.
크게 보면 분명 김재덕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 안에 국수호의 움직임과 형태가 들어와 있다. 국수호 혹은 이전 세대의 한국춤을 자기화(自己化)해서 안무로 잘 활용하는 김재덕은 영리한 또는 현명한 안무가였다. 국수호의 동작소(動作素, element of movement)를 김재덕의 의미소(意味素, element of meaning)로 전이(轉移)해내는 안무적 역량이 확연히 보였다. 국수호 춤 혹은 한국무용의 음악임을 4배속으로 빠르게 연결했다고나 할까. 국수호의 호흡을 김재덕의 맥박으로 잘 바꾸었다는 말도 가능하겠다.
사계는 소나타 형식의 역전(逆轉)이다
작품이 이러하니, 나는 묘한 즐거움을 경험했다. 이번 작품은 어쩌면 음악 형식 ‘소나타’의 재밌는 변형일지 모른다.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은 제시부(Exposition), 전개부(Development), 재현부(Recapitulation)이다. 그런데 다소 거친 이분법이지만, 이번 작품에선 전개부가 앞에 나온 느낌이다.
김재덕의 춘하(春夏)가 전개부이지만 앞에 나와 있고, 국수호의 추동(秋冬)가 제시부이지만 뒤에 나와 있다. 이건 마치 드라마에서 어떤 사건이 이미 벌어져서 흥미를 느꼈으나 그 사건의 맥락을 몰랐는데, 그 사전을 역순으로 추정하면서 그 사건의 배후를 알게 되는 즐거움과 비교된다.
재현부(Recapitulation)는 어디에 따로 설정하지 않았으나, 재현부적인 특징은 곳곳에 살아있었다. 이를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산발(散發)이라고 하면 어떨까. 산발(散發)은 ‘때때로 일어남’으로 풀이할 수 있겠는데, 작품이 전체적인 맥락을 향해 흘러 가면서 관객을 사로잡는 부분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서는 ‘어김없이’ 국악기가 중심이 된 라이브연주가 있었다.
국수호는 국악기의 기능과 효과를 참 잘 안다. 때론 일반적인 국악인 이상의 능력에 도달해 있음에 때론 놀란다. 김재덕은 ‘음악’을 알고 있으나, ‘국악’을 안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선 달랐다. 둘이 안무를 조율하면서, 김재덕은 자신의 ‘음악’ 안에 ‘국악’을 효과적으로 잘 배치했다고 생각한다. 이건 이번 작품의 중요한 성공요인이다. 김재덕 스타일의 음악으로 진행되다가 적당할 때 국악이 나오게 되면, 관객은 몸의 움직임’에서 ‘마음의 움직임’으로 바뀌는 듯한 감흥을 받게 되었다.
박동우의 무대야말로 미니멀리즘
‘사계’는 최근 내가 들었던 무용음악 중에서는 가장 매력적이었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국악기의 쓰임이 좋았고, 연주력도 우수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무대(박동우) 효과도 더했다. M씨어터는 군무를 펼치기엔 다소 협소한 무대이다. 거기에 적지 않은 생음악 연주가가 여럿 자리를 잡았음에도 이 모든 것이 원활할 수 있었다는 건, 박동우 특유의 경제적(?) 무대미술 덕분이란 건 꼭 밝혀야 한다.
박동우는 그간 산울림소극장 등에서 ‘최소화한 무대미술로 최대화된 극적 장치’를 만들어낸 경험이 충분하기에 그렇다. 대한민국 공연계에선 오래전부터 미니멀리즘이란 용어가 남발되고 있고, 그 미니멀리즘으로 다른 사람을 꼽지만, 실제적 미니멀리즘 무대미술 하면 첫손에 꼽을 사람이 박동우이다.
작품을 위한 춤꾼 vs. 춤꾼을 위한 작품
김재덕은 훌륭한 안무가이다. 그러나 그가 춤판에서 춤꾼의 개성을 잘 살려낸다고는 말할 수 없다. 비유컨대, 대한민국 연극연출가와 비교하면 서재형과 같다. 서재형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때 작품을 살리는 연출이다. 서재형의 작품에선 서재형이 돋보이지만, 정작 배우는 그렇지 않다. 결코 연출이 배우의 상위개념은 아닐 것이다. 김재덕의 작품에서도 그러하다.
국수호는 훌륭한 안무가이다. 인문학적 사고를 기반에 깔고 만들어낸 춤의 구성력만을 말하지 않는다. 국수호의 춤판에서는 춤꾼이 보인다는 점이다. 다소 거친 이분법이지만, 김재덕이 ‘사람보다 춤’이라면, 국수호는 ‘춤보다 사람’이다.
가을과 겨울에 중점을 둔 국수호의 장점은 ‘기억과 추억의 소환’이었다. 달, 기러기, 귀신 놀이와 같은 나례(儺禮)를 통해서였다. 앞의 김재덕의 작품에는 많은 장점이 있었으나, 춤꾼(배우)이 보이지 않았다. 바꾸어 말한다면, 그의 안무는 극적 지향이 아니거나, 말을 바꾸면 연극을 모르기에 그렇다.
국수호는 확실히 연극을 안다. 작품의 흐름 속에서 어디서 배우를 살려야 할지가 정확하다. 대한민국 연극연출가 중에서 손진책과 비교할 수 있다. 손진책은 배우를 살리는 연출이다. 국수호의 이번 작품에서도 많은 춤꾼이 돋보였다. 서울시무용단에 박수정, 최태헌, 유재성과 같은 인재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 박수정은 등장해서 10초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관객은 무대에 몰입될 수밖에 없었다. 흡입력이란 이런 것이다. 서울시무용단에는 훌륭한 안무가를 만나면 보석처럼 빛날 춤꾼들이 참 많다는 생각에 미친다.
탈(脫) 김재덕 & 범(汎) 국수호
김재덕의 앞에 부칠 수 있는 접두어는 탈(脫)이다. 원심력(遠心力)의 김재덕은 무엇에서 벗어나려 한다. 또한 그것을 전제로 관객에게 너무 호소하려는 느낌이다. 그가 직접 노래까지 하는 무대가 딱 그렇다. 음악으로 치면 락(rock) 적이라고나 할까.
국수호의 앞에 부칠 수 있는 접두어는 범(汎)이다. 구심력(求心力)의 국수호이다. 그는 작품 속에 많은 걸 담으려고 한다. 원심력인 그의 작품은 중심에 두는 것이 참 많다. 따라서 인문학적 기반이 없다면 그것의 의미와 가치를 모른다. 말을 바꾸면 그것들을 불필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국수호를 음악으로 치면 ’발라드‘이다. 여기서 발라드란 한국가요의 서정성 있는 노래의 발라드가 아니다. 서구 클래식의 한 장르로서의 발라드(Ballad)이다. 중세의 음유시인이 노래한 시와 그 형식을 말한다. 그 내용은 영웅적 서사에서 애정적 서정을 다루고 있다.
국수호가 지향하는 시극(詩劇) 또는 춤극(舞劇)은 이 바로 서양적인 발라드의 기본적 정서의 한국적 토착화가 아닌가, 나는 이런 시각으로 국수호의 춤극을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또 주목할 게 있다. Ballad라는 단어가 라틴어의 동사 Ballare(춤추다)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김재덕은 궁극적으로 몸으로 춤을 추지만 거기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강하다. 국수호는 민속적인 것에서 인류학적인 것으로, 이야기적인 것에서 인문학적인 것으로 확대하면서 ‘모든 것은 춤으로 통한다’, 모든 것(사상, 관습)은 다 춤이 될 수 있다는 ‘춤지상주의’ 시각이다.
김재덕의 안무는 Post-Korea dance이고, 국수호의 안무는 Pan-Korea dance
사계를 보고 누구는 김재덕은 ‘한국적 현대무용’, 국수호는 ’현대적 한국무용‘이라 할 것 같다.그 런데 이런 표현은 이젠 너무 식상하고, 또 모호하다. 사계의 성과는 김재덕의 원심력과 국수호의 구심력, 이 둘의 팽팽한 조화였다. 김재덕의 ‘벗어나려는’ 움직임과 국수호의 ‘담아내려는’ 움직임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아주 적절하게 어울렸다.
탈(脫) 김재덕은 포스트 코리아댄스 (Post-Korea dance)를 지향한다. 과거에서 벗어나면서 ‘동시대성’을 중시하는 그의 춤은 앞으로 얼마간 한국춤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견된다. 범(汎) 국수호은 팬 코리안 댄스(Pan-Korea dance) 지향한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만들어진 춤이다. 그의 춤은 시류(時流)와는 별개의 미학적 가치가 있다. 그의 춤을 아주 긍정적 시각으로 본다면, ‘과거가 곧 미래’라는 논리도 가능하다.
‘사계’는 기획 단계부터 이런 두 개의 질문으로 출발하지 않았을까. 첫째, “20세기적 한국춤의 자산을 어떻게 21세기 춤 속에 담아내야 하는가?” 국수호가 그 한 방법을 제시했다. 둘째, “한국춤은, 어떻게 과거의 춤에서 벗어난 또 다른 한국춤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김재덕이 그 한 방법을 제시했다.
지금까지 이런 질문은 이미 있었을지 모르나, 이런 질문이 실제적인 춤이라는 결과물로서 조화를 낸 경우가 있었을까? 21세기 우리가 창조적 한국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팽팽히 맞서야 할 두 개의 인력(引力)이 있다. 원심력과 구심력의 팽팽한 맞섬이다. 중심에서 벗어나려는 원심력의 김재덕과 중심을 지키려는 구심력의 국수호! 이들은 이렇게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국수호 김재덕의 사계’라는 훌륭한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를지라도, 이 작품의 가치는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까.
전세계의 독자들을 위해 '구글 번역'의 영문 번역본을 아래에 함께 게재합니다. 부분적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Please note that the English translation of "Google Translate" is provided below for worldwide readers. Please understand that there may be some errors.
Review
Vol.112 (2024.12.15.) Issue
Written by Yoon Joong-gang (Performing Art Critic)
Photo provided by Seoul Metropolitan Dance Company
Post-Korea dance and Pan-Korea dance, the aesthetics of their coexistence: Seoul Metropolitan Dance Company's 'Kook Su-ho Kim Jae-deok's Four Seasons'
'Kook Su-ho Kim Jae-deok's Four Seasons' is a 'work that builds the four worlds through the four seasons'. 'Kook Su-ho Kim Jae-deok's Four Seasons' (hereafter referred to as 'Four Seasons') broke away from the 20th century method of expressing the sense of season through color. The introduction of Four Seasons is 'Gap'. It expresses the sprouting of seeds sown in the ground through the ground through a group dance. Four Seasons starts with achromatic and dark tones and delivers a philosophical message to the audience. Then, it fills in the aesthetic image by performing chromatic or bright tones.
Kim Jae-duk of Pulsat vs. Kook Su-ho of Breathing
To accurately assess the performance of the work, let’s look at the previous appearances of the two choreographers. If we compare it to running, Kim Jae-duk is a sprinter, and Kook Su-ho is a marathoner. The basic unit of each choreographer is different. Kim Jae-duk is pulsation (搏動), and Kook Su-ho is breathing (呼吸). When the pulsation gets faster, it becomes burdensome, and when the breathing is faithful, it becomes loose.
The former dancer feels a sense of wasteful quantity (量感), and the latter dancer experiences an aesthetic texture (質感). However, there is no guarantee that this is completely conveyed to the audience. Sometimes, they felt that too much is as bad as too little (過猶不及). Should I use the word control (制御)? Only then can each work shine more. The Four Seasons was exactly like that. As the two choreographers created the piece, it felt like they each controlled themselves or the other.
Four Seasons is not a double bill
This piece, in which the two choreographers participated, is very successful. For Kim Jae-deok, there was no ‘burden of running’, and for Kook Su-ho, there was no ‘laxity of completing’. I don’t know if the two choreographers made concessions, but it was clear that there was such complementarity. Therefore, I don’t agree with the view that this piece is a ‘double bill.’
I don’t know if there was a conflict during the process of creating the piece, but the final result was clearly a win-win. Both choreographers won, and the Seoul Metropolitan Dance Company benefited from it. It was clear that the members’ level of immersion changed depending on who choreographed and how. I confirmed that there are many capable dancers in this group, and I got to see the Seoul Metropolitan Dance Company in a new light.
What was the choreography like? My subjective judgment is this. “OB Kook Su-ho’s special talents are well incorporated in YB Kim Jae-duk’s dance.” Kook Su-ho gave generously, and Kim Jae-duk received boldly. The spring and summer parts were choreographed by Kim Jae-duk, but he embraced fall and winter a lot within them. In the parts choreographed by Kim Jae-duk, his unique back and forth and movements are still alive. However, if you look closely, the dancer’s body shape or the movements he creates are different.
If you look at it broadly, it is clearly Kim Jae-duk, but if you look closely, you can see Kook Su-ho’s movements and forms within it. Kim Jae-duk, who internalized Kook Su-ho or the Korean dance of the previous generation and utilized it well as choreography, was a clever or wise choreographer. The choreographic ability to transfer Kook Su-ho’s movement elements to Kim Jae-deok’s meaning elements was clearly evident. It could be said that Kook Su-ho’s dance or Korean dance music was connected at 4x speed. It could also be said that Kook Su-ho’s breathing was well changed to Kim Jae-deok’s pulse.
The Four Seasons is a reversal of the sonata form
Since the work is like this, I experienced a strange pleasure. This work may be an interesting variation of the musical form ‘sonata’. The typical sonata form is exposition, development, and recapitulation. However, although it is a somewhat rough dichotomy, in this work, the development part seems to come first.
Kim Jae-deok’s Chun-ha (春夏) is the development part but comes first, and Guk Su-ho’s Chu-dong (秋冬) is the exposition part but comes after. This is comparable to the pleasure of finding out the background of an event that has already happened in a drama and being interested in it but not knowing the context of the event, and then guessing the context in reverse order.
The recapitulation part was not set up anywhere, but the recapitulation-like characteristics were alive everywhere. How about calling this a scattering in a positive sense? Scattering can be interpreted as ‘occasionally occurring’, and as the work flows toward the overall context, parts that captivate the audience appear. However, in these parts, there was a live performance centered on traditional Korean instruments ‘without fail’.
Guk Su-ho knows the functions and effects of traditional Korean instruments very well. Sometimes, I am surprised that he has reached abilities beyond those of ordinary traditional Korean musicians. Kim Jae-duk knows ‘music’, but it is difficult to say that he knows ‘Korean traditional music’. However, this work was different. I think that while the two coordinated the choreography, Kim Jae-duk effectively placed ‘Korean traditional music’ within his ‘music’. This is an important factor in the success of this work. When the music progresses in Kim Jae-duk’s style and Korean traditional music comes in at the right time, the audience feels as if the ‘movement of the body’ has changed to the ‘movement of the mind’.
Park Dong-woo’s stage is truly minimalism
‘Four Seasons’ is the most attractive dance music I have heard recently, and I can say for sure. The use of Korean traditional instruments was good, and the performance skills were excellent. And to add to that, the stage (Park Dong-woo) effect was added. M Theater is a rather narrow stage for a corps de ballet. Even though there were quite a few live musicians, it was all possible thanks to Park Dong-woo’s unique economical(?) stage design.
Park Dong-woo has ample experience creating ‘dramatic devices maximized with minimal stage design’ at Sanullim Small Theater and other venues. The term minimalism has been overused in the Korean performing arts world for a long time, and while others are cited as minimalists, Park Dong-woo is the first person to be considered when it comes to actual minimalist stage design.
Dancer for the work vs. Work for the dancer
Kim Jae-duk is a great choreographer. However, it cannot be said that he brings out the individuality of the dancer well on the dance floor. To put it bluntly, he is like Seo Jae-hyung when compared to Korean theater directors. Seo Jae-hyung is a director who brings the work to life when evaluated positively. Seo Jae-hyung stands out in Seo Jae-hyung’s work, but the actor himself is not like that. The director is by no means a superior concept to the actor. The same is true of Kim Jae-duk’s work.
Kook Su-ho is a great choreographer. This does not only refer to the composition of the dance created based on humanistic thinking. In Kook Su-ho’s dance floor, the dancer is visible. It’s a bit of a rough dichotomy, but if Kim Jae-deok is ‘dance over people,’ Kook Su-ho is ‘people over dance.’
Kook Su-ho’s strength, which focused on fall and winter, was ‘recalling memories and recollections.’ It was through rituals such as the moon, geese, and ghost play. Kim Jae-deok’s previous work had many strengths, but the dancers (actors) were not visible. In other words, his choreography is not dramatic, or in other words, it is because he does not know theater.
Kook Su-ho definitely knows theater. He is precise about where to bring out the actors in the flow of the work. Among Korean theater directors, he can be compared to Son Jin-chaek. Son Jin-chaek is a director who brings out the actors. Many dancers stood out in Kook Su-ho’s latest work. I confirmed that the Seoul Metropolitan Dance Company has talented people like Park Su-jeong, Choi Tae-heon, and Yoo Jae-seong. Park Su-jeong appeared for less than 10 seconds, but the audience could not help but be immersed in the stage. This is what immersion is. The Seoul Metropolitan Dance Company has so many dancers who shine like jewels when they meet a great choreographer.
탈(脫) Kim Jae-duk &범(汎) Kook Su-ho
The prefix that can be added to Kim Jae-duk is 탈(脫). Kim Jae-duk, who has centrifugal force, tries to escape from something. Also, it feels like he is trying to appeal to the audience too much based on that premise. The stage where he sings himself is exactly like that. In terms of music, it could be called rock.
The prefix that can be added to Kook Su-ho is범(汎). Kook Su-ho, who has centripetal force, is trying to include many things in his work. His work, which is centrifugal force, puts a lot of things in the center. Therefore, if you don’t have a foundation in the humanities, you don’t know the meaning and value of it. In other words, you might think of them as unnecessary.
If you think of Kook Su-ho in terms of music, it’s ‘ballad.’ Here, the ballad is not a lyrical ballad of Korean pop music. It is a ballad as a genre of Western classical music. It refers to the poem and its form sung by medieval bards. Its content deals with affectionate lyricism in a heroic narrative.
The poetic drama or dance drama that Kook Su-ho pursues is not the Korean localization of the basic sentiment of Western ballads. I am looking at Kook Su-ho’s dance drama from this perspective. There is another thing to note here. The word ballad originated from the Latin verb ballare (to dance).
Kim Jae-deok ultimately dances with his body, but he has a strong will to escape from that. Kook Su-ho expands from folklore to anthropology and from storytelling to humanities, and his perspective is ‘dance supremacy’ that ‘everything leads to dance’ and that everything (ideology, customs) can become dance.
Kim Jae-duk's choreography is Post-Korea dance, and Kook Su-ho's choreography is Pan-Korea dance
Some people might say that Kim Jae-duk is 'Korean modern dance' and Kook Su-ho is 'modern Korean dance' after watching Four Seasons. However, these expressions are now too cliche and ambiguous. The achievement of Four Seasons was the tight harmony of Kim Jae-duk's centrifugal force and Kook Su-ho's centripetal force. Kim Jae-duk's movement of 'escaping' and Kook Su-ho's movement of 'containing' were tightly opposed and matched very appropriately.
Kim Jae-deok, who escaped from the past, aims for post-Korea dance. His dance, which emphasizes ‘contemporaneity’ while breaking away from the past, is expected to have a great influence on Korean dance in the future. Kook Su-ho, who is in general, aims for pan-Korea dance. It is a dance created in a historical context. His dance has aesthetic value separate from the trend of the times. If we look at his dance in a very positive light, the logic that ‘the past is the future’ is also possible.
Didn’t ‘Four Seasons’ start with these two questions from the planning stage? First, “How can we incorporate the assets of 20th-century Korean dance into 21st-century dance?” Kook Su-ho suggested one way. Second, “How can Korean dance create another Korean dance that breaks away from the dance of the past?” Kim Jae-deok suggested one way.
There may have been questions like this before, but has there ever been a case where such questions were harmonized as a result of actual dance? In the 21st century, there are two forces that we must confront in order to create creative Korean dance. They are the tense confrontation of centrifugal force and centripetal force. Kim Jae-duk, who tries to get away from the center, and Kook Su-ho, who tries to keep the center, with centripetal force! They maintained this tense tension and presented the world with the excellent result of ‘Kook Su-ho Kim Jae-duk’s Four Seasons.’ Although each person’s taste may be different, wouldn’t everyone recognize the value of this 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