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비평
Vol.112 (2024.12.15.) 발행
글_ 송준호(춤평론가)
사전제공_ 서울시무용단
‘사계(四季)’는 한국춤 작품에서 흔히 활용되는 제재 중 하나다. 자연의 변화무쌍한 순환 과정을 인간의 생애에 빗대어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연출가나 안무가의 미적 감각에 따라 시각적인 해석 차이가 있을 뿐, ‘사계’를 다룬 작품은 대체로 큰 틀에서 비슷한 전개를 답습하는 경향이 있다. 〈국수호·김재덕의 사계〉(이하 〈사계〉, 10.31.-11.3,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역시 그 전형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춤의 대가인 국수호와 현대춤의 젊은 기수인 김재덕의 협업 방식은 미묘한 시너지를 일으켰고, 결과적으로 ‘색다른 사계’를 선보일 수 있게 됐다.
그 낯선 정서는 계절이라는 제재를 해석하는 두 안무가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봄은 탄생과 생동감, 여름은 성장을 위한 투쟁과 저항, 가을은 풍요와 완숙미, 겨울은 쇠퇴와 소멸의 정서나 서사로 표현된다. 인간의 삶은 죽음에 이르러 끝을 맺게 되고 그로부터 희로애락의 드라마가 발생하지만, 한국춤의 정신적 토대인 동양철학에서는 이를 새로운 탄생을 위한 전 단계로 승화하여 묵직한 사유로 이끈다. 소멸의 잔혹함과 장엄함이 비극으로 마무리되지 않고 새로운 생명의 불씨가 되는 순환적 세계관은 정중동의 미학을 통해 뭉클한 희망을 선사한다. 이는 그동안 많은 한국춤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사계를 반복적으로 다뤄왔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도 그 익숙한 인식은 어김없이 발견되지만, 두 안무가는 각자의 개성과 강점을 적절히 접목하여 참신한 해석의 정서를 도출하는 데 성공한다.
물론 젊은 안무가가 봄과 여름, 노년의 대가가 가을과 겨울을 책임지는 분배 방식은 이런 형태의 협업에서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예측 가능한 역할 분담이다. 이는 추상적 구성과 움직임에 강한 김재덕의 파트와 구상적 표현과 정서 연출에 능한 국수호의 파트로 확연히 구별된다. 이를테면 봄의 낭만적 뉘앙스를 소거하고 어둡고 삭막한 풍광에서 진행되는 프롤로그와 이어지는 봄의 묘사는 김재덕의 강점이 그대로 드러난 부분이다. 생명 태동의 만만치 않은 여건을 현악기와 일렉트로닉 비트의 생경한 앙상블로 표현하는 이 대목에선 희미한 조명 아래 기운의 꿈틀거림을 추상적인 군무로 그려낸다. 반면 국수호가 연출한 가을의 강강술래 원무와 철새의 춤은 계절의 전형적 이미지를 다루고 있다. 계절의 이미지에 따라 미니멀한 색감 변화만 보여주는 산등성이 그림 배경은 가을에서 만월을 띄우면서 구상(具象)화의 극단을 보여준다. 이는 추상으로 점철된 전반부의 무대에 비춰 다소 이질감을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만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컨템퍼러리 지향의 공통 목표를 잊지 않은 듯, 〈사계〉의 전체적인 외연이 결국 추상성이 강한 구성으로 정리됐다는 점이다. 가을 대목의 원무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는 김재덕의 모던한 감각이 전체 흐름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김재덕이 전반적으로 장악한 듯한 무대에서도 여전히 돋보이는 국수호의 존재감이다. 신구 세대 안무가의 협업은 대개 원로 안무가가 주도하여 젊은 안무가는 이를 보조하는 형태로 진행되기 일쑤다. 그런데 여기서는 시각적, 청각적으로 김재덕의 개성이 전면에 나서는 형태로 의외성을 보여주고, 컨템퍼러리 지향의 무대가 놓치기 쉬운 세계관의 깊이를 국수호가 장면 구성과 악기 배치 등으로 보완하며 무대 운영의 연륜을 과시한다. 이러한 역할 분담은 분명 김재덕이 아닌 국수호가 자처한 것일 터, 메인과 서브로 양단하기보다 거시(巨視)와 미시(微視)로 재구성한 공동 안무의 형태는 차후 신구 세대의 협업에 좋은 영향을 미칠 듯하다.
두 안무가는 자신이 맡은 영역에서 계절 이미지의 관성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의 특색을 수용하는 태도로 임했다. 〈사계〉에서 익숙한 제재를 다르게 융해한 성과가 있다면 바로 이 대목이다. 그 결과 봄과 여름에서도 국수호의 노련한 무대 연출이 느껴지고, 가을과 겨울에서는 김재덕의 현대적 감각이 묻어난다. 상대 안무가의 장면 연출 방식이나 안무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전통적 소재인 사계의 인식을 쇄신하려 한 것이다. 각자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는 두 시각은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한다. 사계를 생명의 탄생과 성장, 소멸의 과정으로 표현하는 것은 기존의 한국적 컨템퍼러리 시도와 대동소이하다. 대신 그 정반합의 과정에서 춤에 대한 두 시각과 태도가 추상과 구상의 불협화음을 빚기보다 어떤 방식으로든 균형을 이뤄내려고 마주하는 그 태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 대목인 겨울 파트는 그런 두 안무가의 차이와 이 작품에 대한 태도가 잘 드러난 부분이다. 쇠퇴하는 듯하면서도 차분하게 정화하는 전통적 인식을 재현하기보다 더 역동적인 몸짓과 빠른 박자감을 활용해 새로운 생명의 태동을 염원하는 겨울/죽음의 철학을 거문고와 아쟁 등의 협연으로 멋지게 구현한다. 이로써 〈사계〉는 국수호의 이름에 익숙한 한국춤 관객에게는 김재덕의 이름을 발견하는 장이 되고, 김재덕의 몸짓에 매료된 현대춤 관객에겐 국수호의 내공을 새삼 깨닫게 하는 무대가 된다.
〈사계〉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차후 전통적 제재로서 ‘사계’의 관습적 해석에 대해서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알다시피 최근 한국은 기후 변화로 인해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에서 이계절로 재편되는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사계를 인간의 생애사에 빗대어 탄생-성장-완성-소멸로 은유하는 전통적 서사도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말이다. 나아가 청년 시기가 마냥 순수하거나 패기 넘친다는 전형성도 사라지고 있고, 중노년 시기가 삶의 정점에 이르거나 죽음을 기다리는 무력한 세대도 아니게 됐다. 이와 같이 현대사회의 급격한 환경 변화와 이에 따른 생애사의 변동을 계절이라는 제재로 필터링할 때 반영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 제재로서 사계를 ‘한국적’ 세계관으로 확장하고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시대에 따른 제재의 성격 변화를 반영하는 창의적인 접근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전세계의 독자들을 위해 '구글 번역'의 영문 번역본을 아래에 함께 게재합니다. 부분적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Please note that the English translation of "Google Translate" is provided below for worldwide readers. Please understand that there may be some errors.
Review
Vol.112 (2024.12.15.) Issue
Written by Song Jun-ho (dance critic)
Photo provided by Seoul Metropolitan Dance Company
A unique synergy created by differences and attitudes: Seoul Metropolitan Dance Company's 〈The Four Seasons of Kook Su-ho and Kim Jae-deok〉
The Four Seasons is one of the materials commonly used in Korean dance works. This is because it can effectively express the ever-changing cycle of nature by comparing it to human life. Therefore, although there may be differences in visual interpretation depending on the aesthetic sense of the director or choreographer, works dealing with the 'Four Seasons' tend to follow a similar development in the big picture. 〈The Four Seasons of Kook Su-ho and Kim Jae-deok〉 (hereafter 〈Four Seasons〉, 10.31.-11.3, Sejong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M Theater) is also not free from this typical pattern. However, the collaboration between Kook Su-ho, a master of Korean dance, and Kim Jae-deok, a young pioneer of modern dance, created a subtle synergy, and as a result, they were able to present ‘A Different Four Seasons.’
That unfamiliar emotion comes from the attitudes of the two choreographers in interpreting the subject of seasons. Spring is generally expressed as birth and vitality, summer as struggle and resistance for growth, fall as abundance and ripeness, and winter as decline and extinction. Human life ends with death, and from that comes a drama of joy and sorrow, but in Oriental philosophy, the spiritual foundation of Korean dance, this is sublimated into a prelude to new birth and leads to profound thought. The cyclical worldview in which the cruelty and grandeur of extinction do not end in tragedy but become the spark of new life presents a poignant hope through Jeong Jung-dong’s aesthetics. This may also be the reason why many Korean dances have repeatedly dealt with the four seasons over the years. In this work, the familiar recognition is found without fail, but the two choreographers succeed in deriving a novel interpretation of emotion by appropriately grafting their individuality and strengths.
Of course, the distribution method in which the young choreographer is responsible for spring and summer and the old master for fall and winter is not outside the expected range of this type of collaboration. It is the so-called predictable division of roles. This is clearly distinguished by Kim Jae-duk's part, which is strong in abstract composition and movement, and Kook Su-ho's part, which is skilled in concrete expression and emotional production. For example, the prologue, which eliminates the romantic nuance of spring and proceeds in a dark and bleak landscape, and the subsequent description of spring are parts where Kim Jae-duk's strengths are fully revealed. In this part, where the difficult conditions of the birth of life are expressed with an unfamiliar ensemble of string instruments and electronic beats, the wriggling of energy under dim lighting is depicted as an abstract group dance. On the other hand, the autumn Ganggangsullae circle dance and migratory bird dance directed by Kook Su-ho deal with typical images of the season. The background of the mountain ridge painting, which shows only minimal color changes according to the seasonal image, shows the extreme of figurative painting as it shows the full moon in autumn. This is also a part that feels somewhat out of place in the first half of the stage, which is filled with abstraction.
However, what is noteworthy here is that the overall outline of <Four Seasons> is organized into a composition with strong abstraction, as if they did not forget the common goal of contemporary orientation. Except for the circle dance in the autumn part,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Kim Jae-duk's modern sensibility led the overall flow. However, what is interesting is that even on a stage where Kim Jae-duk seems to have taken control, Kook Su-ho's presence still stands out. Collaborations between new and old choreographers are usually led by the senior choreographer, with the young choreographer assisting. However, here, Kim Jae-deok’s individuality is brought to the forefront visually and aurally, showing unexpectedness, and Kook Su-ho supplements the depth of the worldview that contemporary stages tend to miss with scene composition and instrument placement, showing off his experience in stage management. This division of roles was clearly something that Kook Su-ho, not Kim Jae-deok, took upon himself, and the form of joint choreography that was reconstructed into macro and micro perspectives rather than being divided into main and sub, is likely to have a positive effect on future collaborations between the new and old generations.
The two choreographers approached the area they were in charge of with an attitude of accepting each other’s characteristics in order to overcome the inertia of seasonal images. If there is an achievement in reconciling familiar materials in <Four Seasons>, it is this part. As a result, Kook Su-ho’s experienced stage direction is felt in spring and summer, and Kim Jae-deok’s modern sensibility is evident in fall and winter. It is an attempt to actively accept the scene direction method and choreography style of the other choreographer and to renew the perception of the traditional material, the Four Seasons. The two perspectives, which share a single goal while maintaining their own individuality, accompany each other from beginning to end. Expressing the Four Seasons as the process of birth, growth, and extinction of life is very similar to existing Korean contemporary attempts. Instead, it is necessary to pay attention to the attitude in which the two perspectives and attitudes toward dance, rather than creating dissonance between abstraction and concreteness, confront each other and try to achieve balance in some way in the process of the antithesis.
The last part, the winter part, is a part that clearly shows the differences between the two choreographers and their attitudes toward this work. Rather than reproducing the traditional perception of seeming decline but calmly purifying, they wonderfully implement the philosophy of winter/death, which wishes for the birth of new life, through collaboration with the geomungo and ajaeng using more dynamic gestures and a fast tempo. In this way, “Four Seasons” becomes a place for Korean dance audiences familiar with the name of Guk Su-ho to discover the name of Kim Jae-deok, and a stage for modern dance audiences fascinated by Kim Jae-deok’s gestures to realize Guk Su-ho’s inner strength.
Separately from the evaluation of 〈Four Seasons〉 it is necessary to reconsider the conventional interpretation of 〈Four Seasons〉 as a traditional material in the future. As you know, due to climate change, Korea has recently been changing from a region with distinct four seasons to a region with two seasons. This means that the traditional narrative that compares the four seasons to the human life cycle as birth-growth-completion-death is no longer valid. Furthermore, the stereotype that youth is pure and full of energy is disappearing, and middle age is no longer a powerless generation that reaches the peak of life or awaits death. In this way, it is necessary to reflect the rapid environmental changes in modern society and the resulting changes in life cycles when filtering them as a material called seasons. In order to expand the Four Seasons as a traditional material into a ‘Korean’ worldview and communicate with contemporary audiences, a creative approach that reflects the changing nature of the material over time is also requ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