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비평
Vol.113-1 (2025.1.5.) 발행
글_ 이상헌(춤평론가)
사진제공_ 박광호
웃고 있는 소와 돼지가 그려진 식당 간판을 보면 늘 그 표현의 잔인함에 섬뜩한 기분이 든다. 동족이 죽어 구워지는 상황에서 소, 돼지가 뭐가 좋아 웃는단 말인지. 이런 표현을 거리낌 없이 하는 인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 공연에서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던 박광호가 이번 무대에서 시선을 공동체의 문제로 돌렸다. 지난 11월 17일 울산 아트홀 마당 무대에 올린 박광호의 두 번째 개인 공연 〈나는 아직도 족발이 맛있다〉에 대해 “이 작품에선 나르시시스트를 돼지로 표현하고 돼지와 함께하는 사회와 인간관계망을 일상적 표현과 춤, 영상과 음악으로 나타낸다.”(팸플릿)라고 설명한다. 이 작품은 우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돼지, 어쩌다 돼지우리에 갇힌 존재 그리고 돼지우리가 주요 상징이다. 돼지우리는 돼지가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밥을 먹고 뒹굴고 대소변을 본다. 그곳에 갑자기 떨어진 존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것을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로 보아도 무방하다. 작품 소개 글에서 묘사한 “어쩌다 떨어진 돼지우리에 갇혀버렸다.”에서 유추할 수 있다. 갑자기 겪게 된 혼돈과 갈등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났다. 첫 장면에서 박광호가 도포를 차려입고 농익은 춤사위로 한량무를 춘다. 자기의 삶을 즐기는 존재를 상징하는 듯한데, 돼지 가면을 쓴 무리가 나와 부채를 빼앗고 도포와 갓까지 벗기고는 뒷덜미를 잡아 밀치기까지 한다. 덜미는 목의 뒤쪽 부분이다. 덜미를 잡으면 상대의 움직임을 조종할 수 있다. 남사당놀이에서 꼭두각시놀음을 덜미라고 부른다. 삶의 주도권을 빼앗긴 것이다. 조금 달리 보면 이곳은 원래 돼지우리가 아니었다. 누구나 노닐 수 있는 삶의 넉넉한 터전이었다. 어쩌다 떨어진 것은 오히려 돼지들이다. 몇 안 되는 돼지가 그곳을 온통 돼지우리로 만들어 버렸다. 두 가지 설정 중에 어떤 쪽을 믿던 결과적으로 상황은 똑같다. 폭압과 혼돈 때문에 뒤엉킨 공동체에서 가장 약한 존재들부터 작의 몫을 빼앗기는 상황 말이다. 여기까지가 작품의 설정이며 시작점이다.
“돼지우리 속 돼지는 권력이 있고 무엇이든 자를 수 있는 칼이 있다. 돼지는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동료를 도구나 물건처럼 거침없이 이용한다. 위협적인 일이 발생하면 돼지는 그 칼로 동료를 썰기 시작한다.”(팸플릿) 돼지우리 속 돼지의 위치와 처세를 묘사한 내용이다. 돼지를 옥죄는 올가미가 끊임없이 다가오자, 불안이 커지고 동료들을 희생시켜 완벽한 우두머리가 되려 한다. 불안의 크기와 광기의 정도가 비례하면서 상황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돼지 가면을 쓴 캐릭터가 가면을 벗고 선글라스를 낀 채 양배추를 칼로 썰고 썰어 놓은 것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웃옷을 벗은 박광호가 칼질하는 돼지 인간 쪽으로 기어간다. 돼지 인간은 과시하듯 칼질을 계속한다. 돼지가 썰고 있는 것은 양배추가 아니라 동료들이다. 칼질이 거칠어질수록 돼지를 향한 올가미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상황에서 매달려 있던 종이 인형이 밑으로 내려와 작은 종이 인형을 매단 사각 틀을 더 매달고 올라간다. 많은 사람이 덜미가 잡힌 상황을 분명히 알리는 상징이다. 이로써 무대는 하나의 형식이 완성되었다. 그 형식은 ‘돼지는 평생을 우리에 갇혀 살았기 때문에 남들도 자기처럼 갇혀 살기를 바란다. 돼지우리 속 돼지는 권력이 있고, 무엇이든 자를 수 있는 칼이 있다.’라는 작품의 주제 형식이다.
박광호가 노랑 저고리를 입고 여성의 사위로 춤추는 장면이 있다. 저고리 고름을 여미지 않은 채로 춤추다가 붉은 치마를 펼쳐서 두른다. 돼지 인간은 북을 들고 북춤을 추면서 여성이며 남성이기도 한 박광호와 대무를 한다. 북은 춤추는 사람에게 장단을 주는 것으로 권력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노랑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은 박광호는 첫 장면에서 등장한 도포에 갓을 쓰고 춤추던 그와 대조되는 동시에 북이라는 권력의 장단에 휘둘리는 수동성, 소극성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박광호가 바닥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장면을 보면 단순하게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재생 가능성을 품은 여성성으로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일 수도 있겠다.
작품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드로잉 퍼포먼스가 중요한 전환의 계기로 작동하는데, 드로잉은 앞서 펼쳐진 이야기를 요약하면서 작품을 종반으로 이끈다. 상수에서 큰 부채를 든 검은 돼지가 면을 쓴 사람이 나와 앉아서 패드에 무엇인가 그리기 시작한다. 그림은 그대로 영상으로 연동된다. 먼저 돼지를 그리고, 그 주변에 글씨를 적는다. 글씨는 알 듯 모를 듯 암호처럼 모호하다. 글은 돼지 형상 주변 빈틈을 메꾸다가 돼지 몸통에까지 글을 새긴다. “너 내 도 네 인형이니까 물건이니까” 이런 문구 위에, 문장에 사용했던 단어를 겹쳐 쓰면서 문장의 의미가 희미해진다. 문자가 마치 무늬처럼 보이기도 하면서, 선명했던 돼지의 형상마저 약해지고 돼지의 권위와 폭력성도 힘을 잃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때 영상과 박광호의 실루엣이 겹치면서 글씨와 그림이 지워지고, 실타래처럼 얽힌 선들이 박광호의 몸에 오버랩되기도 하고 다시 지워졌다가 다른 이미지로 나타난다. 이차원인 선이 삼차원의 몸과 뒤섞여 차원의 차이가 상쇄된다. 평면과 입체의 생성과 소멸, 숨김과 드러남이 차이 없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춤은 선이 만든 이미지와 상통하면서 각자의 의미를 증강한다. 한 가지로는 이룰 수 없는 의미의 증강과 확산이 차원이 다른 선과 춤 이미지가 교차하면서 가능해졌다. 마무리는 여태껏 펼쳐 놓은 의미와 이미지를 갈무리하는 방식이다. 천을 내리고 그것을 뒤집어쓴 상태로 북청사자춤을 추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돼지를 쫓아내어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사자와 길게 내린 천위에 바닥에서 떼어 낸 포스트잇을 가지런히 붙이는 장면은 다소 복잡했던 작품의 진행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박광호가 비닐봉지를 놓고 퇴장하는데, 봉지에는 돼지 캐릭터가 맛있게 요리된 동족의 족발을 들고 웃고 있다. 짧은 암전이 지나가고 박광호가 문을 열고 나가는 영상으로 작품이 끝난다.
돼지는 누구일까? 지금 상황에 빗대면 위정자와 그를 추종하는 무리라고 볼 수 있다. 이 무리는 “동료의 희생에 슬퍼하지도 않고 본인의 뛰어남을 자랑하듯 웃고 있는 표정이 자기연민을 중시하고 남들을 착취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그저 자기 행복만을 추구하는 탐욕적인 돼지”(팸플릿)이다. 놓치지 않아야 할 의미는 그 무리 속에 우리가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돼지로 상징한 삿된 무리를 단죄하는 사필귀정, 권선징악에 그치지 않는다. 이타적 인간관계를 고민하면서 탐욕적인 돼지가 되지 않기 위해 각자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도 담고 있다. 이런 느낌이 든 것은 제목에 사용한 ‘아직도’라는 말 때문이다. 비닐봉지에 그려진 동족의 신체 부위를 들고 웃는 모습에서 탐욕적인 돼지가 결코 남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아직도’라는 말을 사용해 탐욕의 돼지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처럼 다면적 의미를 지닌 〈나는 아직도 족발이 맛있다〉는 우리 시대의 우화로 불릴 자격이 충분하다.
전세계의 독자들을 위해 '구글 번역'의 영문 번역본을 아래에 함께 게재합니다. 부분적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Please note that the English translation of "Google Translate" is provided below for worldwide readers. Please understand that there may be some errors.
Review
Vol.113-1 (2025.1.5.) Issue
Written by Lee Sang-heon (dance critic)
Photo provided by Park Gwang-ho
A fable of our times with multifaceted meanings: Park Gwang-ho's second solo performance, 〈I Still Love Pig's Feet〉
When I see restaurant signs with smiling cows and pigs, I always feel creeped out by the cruelty of the expressions. What could cows and pigs be laughing about when their own kind are being killed and roasted? I thought that humans who use such expressions without hesitation are the most cruel beings in the world.
Park Gwang-ho, who told a story about himself in his first performance, turned his attention to the issue of the community in this performance. Regarding Park Gwang-ho's second solo performance, 〈I Still Love Pig's Feet〉 which was performed on the stage of the Ulsan Art Hall on November 17, he explains, “In this work, narcissists are expressed as pigs, and society and human relationships with pigs are expressed through everyday expressions, dance, video, and music.” (Pamphlet) This work unfolds its story in the form of a fable. The main symbols are pigs, a being who was accidentally trapped in a pigsty, and a pigsty. A pigsty is a space where pigs can run around freely. They eat, roll around, and urinate and defecate there. There is nothing a being who suddenly falls into that place can do. It is not wrong to see this as the reality of our society today. We can infer from the description in the introduction of the work, “I was trapped in a pigsty that I fell into.” The chaos and conflict that I suddenly experienced occurred regardless of my will. In the first scene, Park Gwang-ho is dressed in a robe and dances a hanryangmu with mature dance moves. It seems to symbolize a being who enjoys his life, but a group wearing pig masks appears, snatches his fan, takes off his robe and hat, and even grabs his nape and pushes him. The nape is the back of the neck. If you grab the nape, you can control the other person’s movements. In Namsadang play, the puppet show is called “deulmi.” It means that the initiative in life has been taken away. Looking at it a little differently, this place was not originally a pigsty. It was a place where anyone could play and live. What happened was that pigs fell in. A few pigs turned the place into a pigsty. Whichever of the two settings you believe, the result is the same. In a community entangled in tyranny and chaos, the weakest beings are the first to lose their share of the story. This is the setting and starting point of the work.
“The pig in the pigsty has power and a knife that can cut anything. The pig loves itself so much that it uses its fellows like tools or objects for its own purposes. When something threatening happens, the pig starts cutting its fellows with the knife.” (Pamphlet) This describes the position and behavior of the pig in the pigsty. As the noose that is squeezing the pigs constantly approaches, their anxiety grows and they try to become the perfect leader by sacrificing their fellows. The situation reaches its extreme as the size of their anxiety and the degree of their madness are proportional. The character wearing the pig mask takes off his mask, puts on sunglasses, and shows the audience a cabbage being cut with a knife. Park Gwang-ho, who has taken off his top, crawls toward the pig-man who is cutting. The pig-man continues to cut as if showing off. What the pig is cutting is not cabbage, but his colleagues. The rougher the cutting becomes, the closer the noose is coming toward the pig. In this situation, the hanging paper doll comes down and the square frame with the small paper doll hanging on it is hung up and raised. It is a symbol that clearly shows the situation where many people are caught. With this, the stage has completed a form. The form is the theme of the work, ‘Pigs have lived their whole lives in cages, so they want others to live in cages like them. Pigs in pig pens have power and have a knife that can cut anything.’ There is a scene where Park Gwang-ho wears a yellow jacket and dances as a woman’s son-in-law. He dances without fastening the jacket’s strings and then opens his red skirt and wraps it around him. The pig-man holds a drum and dances with Park Gwang-ho, who is both a woman and a man. The drum gives the dancer a rhythm, so it can be interpreted as power.
Park Gwang-ho, wearing a yellow jacket and a red skirt, can be seen as a contrast to the man who appeared in the first scene wearing a hat and a robe and dancing, and as an expression of passivity and inaction swayed by the rhythm of power called the drum. However, if you look at the scene where Park Gwang-ho sticks a post-it note on the floor, it could be a signal of change from a simple passive attitude to a femininity with potential for renewal.
As the work passes the middle, the drawing performance acts as an important turning point, and the drawing summarizes the story that unfolded earlier and leads the work to the end. In the sangsu, a black pig holding a large fan sits down with a person wearing a cotton mask and begins to draw something on a pad. The drawing is directly linked to the video. First, a pig is drawn, and then letters are written around it. The letters are ambiguous, like a code, as if they are both known and unknown. The letters fill in the gaps around the pig’s shape and are engraved on the pig’s body. “You are my doll, so you are an object.” The meaning of the sentence becomes blurred as the words used in the sentence are written over the phrase. The letters appear as if they are patterns, and even the clear shape of the pig seems to weaken, and the authority and violence of the pig seem to lose their power. At this time, the image and Park Gwang-ho’s silhouette overlap, erasing the letters and pictures, and the tangled lines overlap Park Gwang-ho’s body, then erase again and appear as different images. The two-dimensional lines are mixed with the three-dimensional body, canceling out the difference in dimensions. The creation and disappearance, hiding and revealing of planes and three-dimensional bodies occur without difference. For this reason, the dance communicates with the images created by the lines and reinforces their own meanings. The reinforcement and expansion of meanings that cannot be achieved by one thing are made possible by the intersection of lines and dance images of different dimensions. The ending is a way to wrap up the meanings and images that have been unfolded so far. The scene where the Bukcheong lion dance is performed while lowering the cloth and covering it up is impressive. The scene where the lion chases away the pig and repel evil spirits and the scene where Post-it notes taken from the floor are neatly attached to the long cloth neatly organizes the somewhat complicated progression of the work. Park Gwang-ho leaves the plastic bag, and in the bag, a pig character is holding a deliciously cooked pig’s trotter and smiling. A short blackout passes, and the piece ends with a video of Park Gwang-ho opening the door and leaving.
Who are the pigs? In terms of the current situation, they can be seen as the ruler and his followers. This group is “a greedy pig that values self-pity, exploits others, and exercises power, with a smiling expression as if boasting about its own excellence without being sad about the sacrifice of its comrades” (pamphlet). The important point that must not be missed is that we may be among that group. The message that this work conveys is not limited to the principle of punishing evil and promoting good, which condemns the evil group symbolized by the pigs. It also contains a lesson that each of us must be careful not to become a greedy pig while contemplating altruistic human relationships. The reason why this feeling came about is because of the word “still” used in the title. The greedy pigs depicted on the plastic bag holding the body parts of their own people and smiling are by no means others. So, by using the word ‘still’, it sends a message that the greedy pig has not disappeared. With such multifaceted meanings, 〈I Still Love Pig’s Feet〉 is worthy of being called a fable of our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