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프리뷰〉 2024년 12월 16일자와 중복게재하는 글입니다.
공연비평
Vol.113-1 (2025.1.5.) 발행
글_ 염혜규(미술사연구자)
사진_ 옥상훈
“반 정도 단단히 차 있고 앞으로 채워질 그것이 헛된 것이 아닌, 고요하지만 진실의 빛으로 가득 차 있음”. 이는 바로 제27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2024)와 서울남산국악당의 공동사업인 ‘한국의 춤-유파전’으로 무대에 올랐던 서울교방의 〈반월(半月): 김경란류 권번춤 예맥〉(9월 13-14일, 서울남산국악당)의 프로그램에서 밝히고 있는 공연명 “반월”의 뜻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최고를 지향하여 달의 완성이랄 수 있는 만월(滿月)이 공연명이 돼야 할 것 같은데, 반만 차 있는 반월이라니 의아할 법도 하다. 그런데 차 있지 않은 반은 단순히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고요하지만 진실의 빛”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단단히 차 있는 반이 오늘날 권번춤의 사범으로 자리매김한 김경란을 의미한다면, 나머지 반은 바로 그 정신을 이어받아 앞으로 채워질 가능성의 공간일 것이다. 서울교방 사범으로서 김경란의 전통춤 전수에 의해서만이 아닌 춤꾼 도반들과 함께 일궈가는 단체로서, 이번 공연에서도 다섯 작품을 교방 동인들의 재구성으로 올렸으니 반월은 동시대성을 담고자 하는 서울교방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한 이런 성격을 지닌 서울교방의 〈반월〉을 통해 오늘날 전통춤이 한국 컨템퍼러리댄스의 한 지류로의 자리매김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보고자 하였다.
첫 무대는 미디어아트를 이용하여 변화하는 사계절과 멀리 달을 향해 날아가는 기러기의 모습을 보여주며 〈초무〉로 문을 열었다. 공연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반월 공연이 지향하는 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구성이었다. 짙은 청색 치마에 흰색 저고리의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차림으로 등장한 7인의 춤꾼은 의상만큼이나 담백한 춤사위를 보여주었다. 기교스럽지 않지만 투박하거나 과장되지 않았기에 단아한 멋이 자연스레 깃들어있었다. 동선과 그로 인한 대형의 변화 또한 인상적이었다. 춤꾼은 무대 양편으로 5/2, 3/2/2 와 같은 구성으로 나눠지고, 그때마다 몸의 방향은 상수에서는 객석을 하수에서는 무대를 바라본다. 연이어 같은 편의 춤꾼끼리도 등을 지고 서거나, 두 춤꾼이 ㄱ자로 서게끔 몸의 방향을 바꿔 수평과 수직이 교차하는 식의 움직임으로 바뀐다. 이런 구성은 프로그램에 언급된 격자무늬 동선을 떠올리게 했다. 격자무늬라 하면 단순히 가로 세로의 집합을 뜻하지 않는다. 가로세로가 문살처럼 직각으로 교차하며 이어지며 생겨나는 무늬를 뜻한다. 7인의 춤꾼은 바로 이렇게 몸의 방향과 동선을 바꿔가며 계속해서 수평과 수직선의 교차를 이뤄가기에 격자무늬란 표현을 쓴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자로 잰 듯 꽉 짜였다기보다는 느슨한 구성으로 움직이기에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초무〉 전체의 동선을 모두 격자무늬로 표현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때로는 무대의 한쪽 끝에서 다 함께 춤을 추다 한 사람씩 대각선 방향으로 나와 춤을 춘다. 혹은 무대에 평행한 구도로 3/3/1인이 엇갈려 춤을 추다, 3/4인으로 다시 합쳐서 춤을 추는데 이는 북두칠성을 연상케도 하기도 하였다. 춤사위 자체의 단순하지만, 다양한 동선의 구성으로 단조롭기보다는 다채롭다는 인상을 준 무대였다. 또한 격자무늬가 그러했듯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여유있는 동선변화를 보여주었기에 조화로움과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구음검무〉는 2인 대무의 형식으로 구음과 장구장단으로만 춘 춤이었다. 미디어아트로 만든 돗자리 위에서 시작한 한삼춤의 우아함은 맨손춤을 거쳐 검술춤까지 이어지면서 아기자기하면서도 어딘지 모를 익살스러운 춤사위로 변했다. 장구장단보다 더 중심이 되어 전체 춤을 이끌어갔던 구음은 마치 바다에서 파도를 따라 유연하게 파도타기를 하는 서퍼를 보는 듯한 매력적인 구음이었다. “최고의 악기는 사람의 목소리”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삼현육각의 반주를 대신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구음검무〉 또한 춤에 맞춰 공간구성에 세심한 신경을 쓴 흔적이 돋보였다. 미디어아트로 만든 돗자리로 제한됐던 춤의 공간이 후반부에 사라지면서 무대를 넓게 쓰며 춤을 추니, 마치 실내 공간에서 너른 마당으로 순간이동을 한 듯한 착각을 불러왔다.
〈논개별곡〉은 제목에서부터 추측할 수 있듯 조선시대 의기였던 논개의 이야기를 다룬 춤으로 서사적인 구성을 예측할 수 있는 춤이었다. 하지만 사건의 진행에 따른 구체적인 이야기 전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논개의 내면 심리를 보여주는 데 주력하였다. 5인의 춤꾼이 모두 논개로 분하여 논개의 복잡한 감정의 변화를 보여주었는데, 두 가지 설정을 끌어온 것으로 보였다. 다섯 춤꾼 모두가 논개의 내면을 표현하는 방식과 논개의 외면과 내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구슬픈 시나위 가락과 함께 처연한 분위기로 시작되는 살풀이춤은 다섯 춤꾼 모두가 슬픔, 애통함, 결연함, 번민 등을 차례로 보여주었다. 다음에는 서진주와 4인의 춤꾼으로 나누어 외면적으로 표현되는 논개의 감정과 내면의 심리를 동시에 보여주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복잡한 감정의 강조와 더불어 서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수건춤 사위는 복잡한 논개의 심리를 표현하는 데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말로 다 할 수 없고, 몸으로도 다 표현하기에 부족한 감정을 드러내듯 움켜쥐었던 수건 자락을 손에서 놓을 때면 체념처럼, 흐르는 눈물처럼 수건 자락이 아래로 떨어졌다. 절정의 순간에 이르러 다섯 춤꾼이 모두 양손으로 수건을 머리 위로 마구 흔들 때는 강으로 뛰어들기 직전의 감정의 요동침으로 보는 것 같았다.
김경란의 〈교방굿거리춤〉은 전체 프로그램 중 다른 춤과는 차별되는 특별함이 있는 춤이었다. 어떤 것이 움직일 때 움직이는 모든 순간은 그 순간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우리는 그 움직임을 시간의 흐름을 배제한 채 하나의 동작으로 인지한다. 그런데 김경란 의 춤은 한 동작으로 인지되는 춤도, 그렇다고 단순히 각 순간 움직임의 이어짐도 아니었다. 시시각각의 움직임이 각각의 순간으로 눈에 들어오는 특별한 경험을 주었다. 몸이 지닌 3차원적 입체성이 생생히 지각되면서도 시간성을 그대로 피부에 와닿게 구현해주는 춤이었다. 김경란의 춤은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한 폭의 그림 같다”라는 문장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춤이었다. 이는 가시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신명’의 춤이었기 때문이다. 몸으로부터 나오는 에너지가 다 발산되는 듯했던 소고춤에 이르러서는 어떤 ‘모습’을 표현한다는 게 더이상 무의미했다.
〈춤49재: 잠들지 못하는 영혼들에게〉는 6인이 추는 〈승무〉로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를 비롯한 여러 사건 사고로 인해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이한 동시대인들에게 바치는 춤이었다. 여섯 작품 중 사회 참여적인 성격이 강조된 춤으로 논개와 더불어 서사적인 구성이 있는 춤이었다. 하지만 주제와는 대조적으로 표현에 있어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이며 절제된 방식을 보여주었다. 무대 중앙에서 한 춤꾼이 대고를 치고 있고, 마치 사후세계로 들어오는 듯 무대 뒤에서 춤꾼들이 차례로 천천히 걸어 나온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한 춤꾼이 주저앉았다가 일어선다. 순간 북소리가 멈추고, 다른 춤꾼들도 다 같이 주저앉는다. 다시 북 연주가 시작되면 춤꾼들이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처음 주저앉았던 춤꾼을 중심으로 춤꾼들이 모여들어 어깨에 둘렀던 띠를 하나씩 걸어주면 다시 북소리가 잦아든다. 북소리는 그 속도와 강약의 조절을 통해 서사의 진행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2인무로 보여준 〈승무〉는 장삼을 이용한 안무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서 있는 춤꾼이 앉아있는 춤꾼의 장삼 위로 자신의 장삼을 포개 놓는 모습은 이제 막 세상과 작별한 이의 영혼을 위로해주는 듯 보였다. 한 춤꾼의 장삼을 다른 춤꾼이 붙잡아 장삼이 얽혔다 풀리며 서로 만났다 헤어질 때면 마치 한 맺힘과 풀림, 혹은 놓기 힘든 이생에 대한 미련이나 억울함을 보는 듯했다. 마치 수화를 보는 듯 장삼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어느덧 공연이 절정에 이르러 6인의 춤꾼이 일렬로 서서 보여주는 대고 연주는 진혼곡과도 같았다. 점점 속도를 더해가며 쉼 없이 무대 위로 울려 퍼지는 북소리로 잠들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보내는 안식과 위로의 소리였다. 이때 무대배경과 북 위로 중요한 역사의 순간들 혹은 참사의 현장을 담은 듯한 사진들로 편집된 영상이 비쳤다. 북소리에 맞춰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영상은 그 정확한 내용을 알기 힘들었는데,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주는 추상성은 개개의 사건을 떠올리게 하기보다 이 시대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듦으로 49재의 의미를 보다 살려주었다는 생각이다. 춤의 마지막에 북소리 잦아들며 한 소녀가 앞서 춤꾼의 어깨에 걸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띠들을 들고 등장한다. 소녀의 등장은 가장 최근의 참사였던 지난해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애도를 암시한 설정으로도 보였다. (물론 특정 사건이 아닌 희생자 일반에 대한 상징일 수도 있다) 감동적인 순간일 수도 있겠으나 필자로서는 작품 전반에 걸쳐 추상적인 표현으로 에둘러가며 깊은 울림을 보내주었던 〈49재〉의 마무리로는 조금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동편제&서편제 민살풀이〉는 서울교방 동인들의 군무와 김경란의 홀춤으로 나누어졌다가 다시 합쳐지는 구성을 취했다. 프로그램에서 “기개 담연함의 동편제”와 “애잔 처연한 서편제”라고 표현했는데, 이보다도 김경란이 구술 인터뷰에서 밝힌 그의 춤스승 김수악, 조갑녀, 장금도를 통해 깨닫게 된 허허로움과 무심, 허공을 떠올리게 했던 춤이었다. 이 ‘깨달음’이라는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하나로 통하는 깨달음이다. 외부가 아닌 나 자기 몸과 내면에 집중할 때 자연스레 춤으로 나올 수 있다. 김경란은 마치 춤이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듯 종종 등을 돌린 모습을 보여주었다. 적어도 김경란의 춤에서라면 춤은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것을 이야기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무심(無心)’. 말 그대로 아무 감정이나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춤에 있어 그런 ‘무심’, 적어도 ‘무심의 정신’이 깃들을 수 있다면 내면으로부터 깨달음, 그리고 그것이 삶으로 이어짐이 있기에 가능하다. 물론 〈반월〉은 무대 위의 공연으로서 제작됐고,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에 의한 재구성 되었다. 그런데도 각기 다른 여섯 작품을 관통하는 일관됨이 있었다면 바로 이 ‘무심’이었다. 교방춤이나 권번춤이라고 하면 기교나 교태미를 먼저 떠올리기도 하지만, 공연의 어느 춤에서도 그런 인상을 받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교나 교태는 아름답지만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다. 〈반월〉은 무심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격조 있는 아름다움이었다.
춤 자체 이외에도 제작진이 밝힌 전통춤의 컨템퍼러리 댄스로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 미디어아트를 이용해 꾸민 무대는 한정된 공간에 색다른 공간감을 부여하되 과하지 않아 춤과 자연스레 어우러졌다. 또한 〈구음검무〉의 다채로우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주는 낮은 채도의 의상이라던가 〈논개별곡〉의 현대화시킨 한복의 우아함 등은 전통춤에서 흔히 보는 의상과 차별되는 세련된 멋이 있으면서도 작품의 분위기를 잘 살려주었다. 구술 인터뷰를 〈춤49재〉 앞과 마지막 〈동편제&서편제 민살풀이춤〉 앞에 각각 배치한 것 또한 김경란 춤의 역사성과 정체성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세심함이 느껴지는 구성이었다. 다만 두 번째 소리로만 들려줬던 구술 인터뷰에서 자막을 제공해줬다면 인터뷰 내용 전달에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반월〉이다. 이미 공연을 통해 충분히 많은 것이 채워졌고 앞으로 채워질 가능성의 공간, 다가올 반월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전세계의 독자들을 위해 '구글 번역'의 영문 번역본을 아래에 함께 게재합니다. 부분적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Please note that the English translation of "Google Translate" is provided below for worldwide readers. Please understand that there may be some errors.
Review
Vol.113-1 (2025.1.5.) Issue
Written by Yum Hye-gyu (Art History Researcher)
Photo by Ok Sang-Hoon
Traditional dance as a branch of Korean contemporary dance: The 27th Seoul World Dance Festival Closing Work, 〈Banwol〉
“It is not empty, but quiet but filled with the light of truth, which is half-full and will be filled in the future.” This is the meaning of the performance title “Banwol” revealed in the program of Seoul Kyobang’s 〈Banwol (半月): Kim Kyung-ran-style Kwonbeon Dance Yemaek〉 (September 13-14, Seoul Namsan Gugakdang), which was staged as a joint project of the 27th Seoul World Dance Festival (SIDance2024) and Seoul Namsan Gugakdang, ‘Korean Dance-Fajeon’. At first glance, it seems like the title of the performance should be Manwol (滿月), which means the completion of the moon, aiming for the best, but it is surprising that it is called Banwol, which is only half full. However, it is said that the half that is not full is not simply an empty space, but is filled with “quiet but true light.” If the half that is completely full signifies Kim Kyung-ran, who has established herself as a master of Kwonbeon dance today, then the other half is a space of possibility that will be filled in the future by inheriting that spirit. As a Seoul Gyobang master, it is not only through Kim Kyung-ran’s traditional dance transmission but also as a group that works together with fellow dancers. In this performance, Banwol well shows the nature of Seoul Gyobang, which seeks to contain contemporaneity, as it reconstructed five works by members of the Gyobang. In addition, through Seoul Gyobang’s 〈Banwol〉, which has such a nature, we tried to open up the possibility of traditional dance today establishing itself as a branch of Korean contemporary dance.
The first stage opened with “Chomu” using media art to show the changing four seasons and the image of geese flying toward the moon. It was a composition that symbolically showed the direction of the Banwol performance while announcing the start of the performance. The seven dancers, who appeared in simple yet elegant outfits of dark blue skirts and white tops, showed dance moves that were as simple as their costumes. They were not elaborate, but they were neither crude nor exaggerated, so they naturally had an elegant charm. The movement line and the resulting changes in formation were also impressive. The dancers were divided into groups of 5/2 and 3/2/2 on both sides of the stage, and each time, the direction of their bodies was toward the audience on the upper side and toward the stage on the lower side. Then, dancers on the same side stood with their backs to each other, or two dancers changed their body direction to stand in an “ㄱ” shape, changing the movement to a horizontal and vertical intersection. This composition reminded me of the grid pattern mentioned in the program. A grid pattern does not simply mean a collection of horizontal and vertical lines. It refers to a pattern created by vertical and horizontal lines crossing each other at right angles like a lattice. The seven dancers changed their body direction and movement lines like this, continuously crossing horizontal and vertical lines, so it seemed that the expression “lattice pattern” was used. However, it was natural because they moved in a loose structure rather than tightly packed as if measured by a ruler. However, it is regrettable that the movement lines of the entire “Chomu” were expressed as a grid pattern. Sometimes, they all dance together at one end of the stage and then one by one come out diagonally to dance. Or, they dance in a parallel structure with 3/3/1 people crossing each other and then dance again as 3/4 people, which is reminiscent of the Big Dipper. Although the dance movements themselves are simple, the stage gave the impression of being colorful rather than monotonous due to the various movement lines. Also, just like the grid pattern, it showed natural and leisurely changes in movement lines like flowing water, so it was a work that made people feel harmony and comfort.
〈Gu-eum-geom-mu〉 was a dance performed only with Gu-eum and Janggu rhythm in the form of a two-person dance. The elegance of Hansam dance, which started on a mat made of media art, changed into a cute yet somewhat humorous dance movement as it continued with bare-handed dance and swordsmanship dance. Gu-eum, which led the entire dance more than the Janggu rhythm, was an attractive Gu-eum that was like watching a surfer flexibly surfing the waves in the ocean. It was more than enough to replace the accompaniment of Samhyeon Yukgak, as if to prove the saying, “The best instrument is the human voice.” 〈Gu-eum-geom-mu〉 also showed meticulous attention to the spatial composition to match the dance. As the dance space limited to the mat made of media art disappeared in the latter half, the dance was performed on a wide stage, creating the illusion of teleportation from an indoor space to a wide yard.
As can be guessed from the title, 〈Nongaebyeolgok〉 is a dance that tells the story of Nongae, a hero of the Joseon Dynasty, and it is a dance that can be predicted to have a narrative structure. However, rather than focusing on the specific storytelling according to the progress of the incident, it focused on showing Nongae’s inner psychology. All five dancers played Nongae and showed Nongae’s complex emotional changes, which seemed to have drawn on two settings. One was the way all five dancers expressed Nongae’s inner self, and the other was the way Nongae’s outer and inner self were simultaneously shown. The Salpuri dance, which begins with a mournful melody and a mournful atmosphere, shows sadness, sorrow, determination, and distress in turn by all five dancers. Next, the dance was divided into four dancers including Seo Jin-ju, and showed Nongae’s emotions expressed externally and his inner psychology simultaneously, which allowed the flow of the narrative to be read while emphasizing the complex emotions. The movements of the towel dance played a particularly important role in expressing Nongae’s complex psychology. When I let go of the towel I had been holding tightly, as if expressing emotions that I couldn’t express in words or with my body, the towel hem fell down like resignation or flowing tears. When the climax came, when all five dancers shook the towels with both hands over their heads, it seemed like the emotional upheaval just before jumping into the river.
Kim Kyung-ran’s “Gyobang Gutgeori Dance” was a special dance that was different from the other dances in the entire program. When something moves, every moment of movement disappears in that moment. However, we who perceive it visually perceive the movement as one movement, excluding the flow of time. However, Kim Kyung-ran’s dance was neither a dance that was perceived as one movement nor a simple continuation of each moment’s movement. It gave me a special experience where each moment’s movement was visible to me as a separate moment. It was a dance that vividly perceived the three-dimensionality of the body while also embodying temporality as it was. Kim Kyung-ran’s dance was a dance that could not be fully expressed in the phrase “like a painting” that expresses pictorial beauty. This was because it was a dance of ‘spirit’ that could not be explained visually. When it came to sogochum, where all the energy from the body seemed to be released, expressing a certain ‘appearance’ was no longer meaningful.
〈Dance 49th Day: To the Souls Who Cannot Sleep〉 was a 〈Seungmu〉 performed by six people, and was dedicated to the people of the same generation who had unexpected deaths due to various incidents and accidents, including the Sewol Ferry and Itaewon disasters. Among the six works, it was a dance that emphasized social participation and had a narrative structure along with a thesis. However, in contrast to the theme, it showed an indirect and restrained method of expression rather than direct. In the center of the stage, a dancer is beating a daego, and dancers slowly walk out from behind the stage one by one as if entering the afterlife. Then, suddenly, one dancer collapses and then stands up. The drum sound stops for a moment, and the other dancers collapse as well. When the drumming starts again, the dancers stand up and start walking. The dancers gathered around the dancer who had first fallen down, and one by one, they put on the belts that were wrapped around their shoulders, and the drum sound subsided again. The drum sound played a role in guiding the narrative by controlling its speed and intensity. The choreography of the duet “Seungmu” was particularly impressive because of the use of long robes. The scene where a standing dancer covers his long robe over that of a sitting dancer seemed to comfort the soul of someone who had just said goodbye to the world. When one dancer grabbed the long robe of another dancer and the long robes tangled and untangled, meeting and parting, it seemed as if they were seeing the entanglement and release of resentment, or the regret or injustice of this life that was difficult to let go of. It was as if they were talking through long robes as if they were seeing sign language. Before we knew it, the performance reached its climax, and the six dancers lined up and played the drums, which were like a requiem. The drum sound that resonated ceaselessly across the stage, with increasing speed, was a sound of comfort and rest for souls who could not sleep. At this time, a video edited with photos that seemed to contain important historical moments or scenes of disasters was projected on the stage background and drums. The video, which passed quickly to the beat of the drums, made it difficult to know the exact content, but the abstractness of the fragmented images made us look back on the reality of this era rather than recalling individual events, which I think made the meaning of the 49th memorial more vivid. At the end of the dance, as the drums died down, a girl appeared holding a belt that was thought to have been worn on the shoulders of the dancers before. The girl’s appearance also seemed to suggest a more direct mourning for the victims of the Itaewon disaster last year, the most recent disaster. (Of course, it could be a symbol for the victims in general, not a specific incident.) It could have been a touching moment, but as the author, it was a bit disappointing as the ending of 〈49th Memorial〉, which had been surrounded by abstract expressions throughout the work and had a deep resonance.
Lastly, 〈Dongpyeonje & Seopyeonje Minsalpuri〉 was composed of a group dance by the Seoul Gyobang members and a solo dance by Kim Kyung-ran, and then reunited. The program expressed it as “a spirited and calm East Side” and “a sad and sorrowful West Side,” but more than that, it was a dance that reminded me of the emptiness, indifference, and emptiness that Kim Kyung-ran realized through her dance teachers Kim Soo-ak, Jo Gap-nyeo, and Jang Geum-do, as revealed in her oral interview. The expression “enlightenment” is slightly different, but in the big picture, it is an enlightenment that is connected. When you focus on your own body and inner self, not the outside, it can naturally come out as dance. Kim Kyung-ran often showed herself turning her back as if dance is not all that is visible. At least in Kim Kyung-ran’s dance, it is clear that dance is talking about something beyond what is visible.
‘No mind’. It literally means that there is no emotion or thought. If such ‘no mind’, or at least the ‘spirit of no mind’, can be instilled in dance, it is possible because there is enlightenment from within and it continues into life. Of course, 〈Banwol〉 was produced as a performance on stage and was reconstructed by many people in the process. However, if there was a consistency that ran through the six different works, it was this ‘no mind’. When we think of Gyobangchum or Gwonbeonchum, we first think of technique or coquetry, but it was difficult to get that impression from any of the dances in the performance. That is understandable, because technique and coquetry are beautiful, but they are far from natural. 〈Banwol〉 was a refined beauty that naturally came from no mind.
In addition to the dance itself, it was a performance that allowed us to glimpse the potential of traditional dance as contemporary dance, as revealed by the production team. The stage decorated with media art gave a unique sense of space to the limited space, but it was not excessive, so it blended naturally with the dance. Also, the colorful yet sophisticated low-saturation costumes of 〈Gu-eum-geom-mu〉 and the elegance of the modernized hanbok of 〈Nongae-byeolgok〉 have a sophisticated style that sets them apart from the costumes commonly seen in traditional dances, while also capturing the mood of the piece well. The placement of the oral interviews before 〈Chum 49-jae〉 and before the final 〈Dongpyeonje & Seopyeonje Minsalpuri Dance〉 was also a composition that felt meticulous in helping to understand the historical significance and identity of Kim Gyeong-ran’s dance. However, I think that it would have been more effective to deliver the interview content if subtitles had been provided for the oral interviews that were only heard in the second voice. However, this is 〈Banwol〉. We must not forget that much has already been filled through the performance, and that there is still room for possibility to be filled in the future, for the coming Banw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