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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이냐 진보냐의 문턱에서 – ‘제8회 2015 K-Ballet World: 창작발레 신인 안무가전’



 한국 발레는 대중적인가? 이런 질문은 ‘한국에서 행해지는 무용이 대중적인가’라는 질문과 바꾸어도 그리 어색한 말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질문은 어찌 보면 어리석은 질문일지도 모른다. 대중적이란 말이 순수예술, 고급문화와 대칭되어 이분법적으로 나눈 대중문화의 개념 뿐만 아니라 보편성, 일상성이라는 의미에서도 논의할 수 있는데, 이러한 범주에서 무용은 이 땅에서 그리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남을녀(甲男乙女)에게 그래도 친숙한 장르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발레가 아닐까. 이는 현대무용이 지니는 난해성, 한국무용이 지니는 고답성이라는 고정관념과 달리 발레는 경험적 일상성에서 조금 더 근접한데 원인을 둘 수 있다. 이는 대중이 기억하는 춤꾼 혹은 무용수로 번뜩 강수진, 김주원 같은 발레리나를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에서도 발레의 상징적 기호를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대중이 그들의 무용을 본 기억이 드묾에도 불구하고) 또한 통과의례처럼 유소녀기 아이들이 발레를 배우는 모습에서도 발레는 대중에게 조금 더 친근하게 놓여있다.


 그렇다면 한국 발레는 어떠한 대중적 접근성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 대중적 이해도를 높이는 공연을 펼칠 것인가 아니면 선지적 엘리트를 키워 발레문화를 이끌어가야 할 것인가? 케이 발레 월드(K Ballet world)는 이러한 발레의 여러 고민을 결집하고, 소통의 축제 마당을 마련하며 올해 8번째 행사(2015.08.15.-28)를 가졌다. 이번 행사에서는 개막공연, 갈라공연, 청소년 발레 페스티벌, 야외무대에서 펼쳐진 발레공연까지 다채로운 레퍼토리로 대중과 함께 하였다. 특히 ‘창작발레 신인 안무가전’(2015.8.25,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은 한국 발레의 현주소이며 미래를 함께 생각하는 마당이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는 이날 공연을 펼친 다섯 명의 안무가가 ‘창작발레 신인 안무가전’이었지만 ‘신인’이라고 하기에는 경험이 풍부하고 어느 정도 자기 색깔을 갖춘 ‘젊은 안무가’였다는 점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신현지의 <이방인>은 제목에서 풍기듯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그 모티프를 차용하였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기승전결의 서사구조를 찾기보다는 추상적 편린을 통해 인간 존재와 자아의 갈등을 표현하고 있다. 바르토크(Bartók Béla) 음악에 잔존하는 현의 팽팽한 날카로움은 빨간 카펫 위에서 아(我)와 비아(非我)의 갈등을 통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표현주의 색채가 강한 이 작품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보여준 실험적 작품이었다.


 원주연의 <모던타임즈>도 찰리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에 모티브를 두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작업하는 인간들이 결국 시간의 노예가 되고, 시간에 옥죄여 살아감을 묘사한 이 작품은 작품 의도에 비해서는 뚜렷한 메시지가 전달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는 도시적 전형성의 표현을 통한 주제의 전달이라기보다는 미시적 접근을 통한 일상성에 머물렀기 때문일 것이다.


 정혜은의 <코드 오브 호프>는 신인, 창작, 발레라는 이 무대가 지니는 키워드에 대한 고민이 드러난 무대였다. 이 작품은 기본에 충실한 무대를 구성하였다. 공간 활용이나 구성의 짜임새 그리고 기본적인 기법에서 그러하다. 그럼에도 관객과 호흡하는 기대지평이 그리 뚜렷하지 못한 점은 실험적 도전이 작품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음에 기인할 것이다.


 이원철의 <클립>은 안무의도에서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 등의 일상적 관계를 표현한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이는 이면적인 주제로 내포되어 있고 오히려 관객에게는 한 편의 로맨틱 발레의 현대적 해석으로 다가왔다. 이는 의미 있는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새롭게 구성하여도 될 만하게 안무의 안정성이나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과 탄탄함이 돋보인 무대였다.




 전은선의 <컬러스>는 알비노니(Tomaso Albinoni)의 바로크 선율을 발레로 표현한 작품이다. 말 그대로 음악에 몸을 실은 ‘느낌 그대로의 표현’이지만 ‘평균율’을 연상시키며 조금씩 조금씩 이야기의 무게를 더해 나간다. 게다가 이 무대에서는 흰색이 그렇게 강렬한 색인지를 음악과 몸짓을 통해 인상 깊게 보여주고 있다.


 이상 다섯 작품의 순차적 구성은 모티프와 스토리 라인이 뚜렷한 작품에서 이미지와 의식의 흐름이 이어진 작품들로, 현대음악에서 바로크음악까지 다양성을 띠며 무난한 발레 창작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흐름은 창작 신인 안무가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이번 축제에 전반적인 경향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남은 숙제가 있다. 이 행사가 무난한 축제로 지속할 것인가, 대중에 더욱 가까이 다가설 것인가 아니면 심층적이며 다양한 주제를 통한 실험을 할 것인가?


 한국 발레의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운 한동인은 1948년 ‘발레란 어떠한 예술인가’라는 글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일반이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래야 작품의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항상 일러주신 은사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 이 말이 정답이란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 말을 비판적으로 수용을 하면서 창의적인 시각에서 어떠한 변화를 주어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 발레가 고민할 화두로 그대로 남아있다. 한국 발레의 세계화나 세계 발레의 한국적 수용 모두 누대에 걸쳐 탁마한 안정적 토대에 바탕을 두지만 이와 함께 창의적 생산 담론의 양산 또한 중요함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글_ 김호연(문화평론가, 단국대교수)
사진_ 발레협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