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정적인 공간이었던 전시장이 시끌벅적 해진 지 오래다. 전시장에서의 공연은 이제 일반 관객들에게도 낯선 볼거리가 아니다. 극장이 아닌 공간에서 공연을 보는 색다른 경험에 관객들은 매료된다. 대형 미술관들은 학생들의 체험학습을 위해, 가족들의 연휴 나들이를 위해 전시장에서의 소규모 퍼포먼스를 개발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쯤 되면 예술이 관객과 소통한다기보다는 예술성의 일정 부분이 문화교육에 헌납되고 있음이다.
그러나 반면 예술 실험의 동시대성을 가장 또렷이 확인할 수 있는 곳도 전시장이다. 단순히 공연이 전시장으로 이동하는 차원이 아닌 공연물을 전시작품화하고 전시물을 공연화하는 실험들이 부쩍 늘었고, 전시 행위의 전 과정(설치부터 철거까지)을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곧 퍼포먼스가 되는 전시퍼포먼스의 실험도 주목받은 바 있다. 이처럼 전시장의 퍼포먼스는 지금 극단적 양상이 병행하는 중이다.
신애기획의 ‘빅히어로’s 청춘포차’는 이 같은 양극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 관객들의 심미적 체험을 중시하는 동시에 훈훈한 소통의 길도 모색했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붙잡고 싶은 의지가 강렬해 보인다. 전시품이나 영상, 퍼포머들의 움직임은 이 공간에 예술작품으로 남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지만 관객에 대한 배려 역시 과하다 싶을 정도다. “공감이 가세요?”라는 질문으로 자신들의 행동과 대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확인하기도 한다. 현대인의 지친 삶을 한 잔 술로 풀어보자며 관객에게 최근 인기 폭발인 과일 소주를 돌린다. 어떤 사람에겐 생수가 어떤 사람에겐 소주가 부어진 잔을 들고 관객들은 건배를 하며 퍼포밍에 동참한다.
공간을 4등분 했는데, 커튼을 활용하여 관객의 관람 위치를 조종했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이동을 하면서 퍼포머들과 함께 호흡하는 공연을 만들어 냈다. 세 개의 에피소드는 내러티브가 있는 무언극에 가깝다. 무용수들의 유연한 신체는 장면 장면을 마치 스케이팅을 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끌고 간다. 여기저기 이동하며 이곳저곳에서 뭔가 벌어지고 있는 것을 기웃거리는 모습 또한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 관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연의 참여자가 되어 작품 하나를 함께 만들게 된다. 한 시간의 스탠딩 공연이 결코 피로하지 않다.
놀이에 가까운 몇몇 장면들이 다소 유치해 보일 수 있다. 보다 자극적이면서 진한 감동을 원했다면 다소 심심할 수 있다. 그들이 나눠준 과일 소주가 진짜 소주인 좀 더 강한 느낌을 갖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소주잔이 형형색색 빛을 담았고, 쌓여진 술병들이 작품이 되어 빛나고, 텔레비전 드라마의 한 장면이 스크래치 되어 상영되는 등, 공연장 이곳저곳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미술품들이 눅눅한 일상을 환기시키는 재료가 된다. 소소한 아이디어들이 모여 만들어진 작은 파티다. 관객들의 반응은 좋았다. 남녀노소가 다 모인 연령층이 다양한 조합이었다.
묵직한 이론의 무게를 걸머져야만 예술인양 거들먹거리는 정체불명의 시행착오적 행위들이 많다. 이 시대에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예술을 활용하여 뭔가 으스대고 싶은 진정성 없는 푸닥거리들이 난무한다. 이러한 때에 사회 공헌이라는 목적의 프로젝트는 용기 있는 도전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장소특정적 공연’이라는 취지가 피상적인 단계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젊음의 거리 홍대 근처와 가깝기는 하지만 이 장소의 특성이 무엇인지 이 공간이 가지는 기억이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장소의 역사성까지 드러내지 못하더라도 그 장소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의미는 작품 전체에 노출시켰어야 했다. 그 시간 도시의 한복판에서 발생하는 일상 속의 장소로만 취급하기엔 그 범위가 너무 넓다. 내러티브의 보완이 필요하고 보다 철저한 장소 탐방이 필요하다. 그 시간 그 곳은 외부로부터 어떤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을까?
전시장은 이제 전시품의 고정된 배치와 해석을 넘어서 사건이 발생하고 순간의 의미가 생성되는 공간으로, 물리적 공간이 아닌 시차적 공간으로서 재발견되고 있다.
글_ 서지영(공연평론가, 드라마투르기)
사진_ 신애예술기획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