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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마르코스 모라우, 〈아파나도르〉를 중심으로

공연비평

Vol.122-1 (2025.10.5.) 발행


글_ 염혜규 (춤평론가)

사진제공_ GS아트센터



현재 유럽 무용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안무가인 마르코스 모라우를 소개할 때면 늘 함께 언급되는 것 중 하나는 그가 무용수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스페인 출신인 모라우는 바르셀로나와 뉴욕에서 사진과 움직임, 연극을 공부하였고, 바로셀로나 극예술학교에서 안무를 전공하였다. 그의 이러한 이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 연극, 영화, 사진, 미술, 문학 등 다양한 장르가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5월 GS아트센터의 개관 페스티벌을 통해 선보였던 마르코스 모라우의 의 세 작품 〈아파나도르〉,  〈파시오나리아〉, 〈죽음의 무도〉는 이러한 그의 작품세계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무대였다. 모라우의 작품은 그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라 베로날 컴퍼니와의 작업과 외부 무용단과의 작업에 있어 작품 스타일이 차이를 갖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다양한 장르의 융합을 통해 다층적인 구성을 보여주는 연출의 특성상 라 베로날과 작업한 두 작품인 〈파시오나리아〉 와 〈죽음의 무도〉가 스페인 국립 플라멩코 발레단과의 작업인 〈아파나도르〉와 구분될 만큼의 유사성을 갖는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또 한 그 차이 너머의 공통 요소를 세 작품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아파나도르〉가 전통과 현대라는 두 대척점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며 스페인의 현대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라면, 〈파시오나리아〉는 디스토피아로 설정한 미래 사회를 통해 현대인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죽음의 무도〉는 전쟁과 사회 문제 등이 끊이지 않는 혼란스러운 전세계적 상황에서 죽음이 인간에게 가지는 의미를 중세로부터 가져온 죽음의 알레고리로 풀어보고자 한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아파나도르〉를 중심으로 〈파시오나리아〉 와 〈죽음의 무도〉를 간략히 짚어보며 모라우의 작품세계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아파나도르


스페인 국립 플라멩코 발레단과 함께한 〈아파나도르〉(4.30.-5.01.)는 콜롬비아의 사진작가 루벤 아파나도르(Ruvén Afanador)가 플라멩코 무용수들의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집인 〈집시 엔젤(Ángel Gitano)〉, 〈천 번의 키스(Mil Besos: 1000 Kisses)〉 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플라멩코와 연결고리를 갖는 작품이지만 단순히 춤 동작에 변화를 가미하여 현대화시킨 플라멩코도, 플라멩코 자체의 재해석에 초점을 맞춘 작품도 아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를 중심으로 발달한 플라멩코는 춤, 노래, 기타 반주가 융합된 민족 예술로서 오늘날 스페인을 상징하는 문화로 계승되었다. 모라우는 플라멩코가 과거의 전통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삶의 모습과 연결되어 있음에 주목하여 스페인의 정체성을 다각도에서 그려내었다. 


〈아파나도르〉는 이번에 선보인 세 작품 중에서도 특히나 시각적 연출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무용극 형식을 띄고 있지만, 서사적 흐름을 따라 전개되지 않는다. 여러 개로 나눠진 부분들은 다양한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시종일관 일종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는 아파나도르 사진집의 독특한 플라멩코 이미지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단지 이미지의 재현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모라우는 이 이미지들을 의상이나 조명, 소품, 영상 등의 활용과 안무를 통해서 보다 감각적이고 살아 있는 무대 언어로 전환 시킨다. 

 

모라우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직관적이면서도 절제되어 있다. 특히나 손과 팔을 이용한 움직임이 강조되는데, 이는 춤으로 보여주는 수화와도 흡사하다. 움직임 자체는 추상적이고 구체성을 지니지 않는다. 하지만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식의 단순한 동작들은 일종의 표정을 만들어 낸다. 또한 종종 군무의 형식과 결합되며 시각적 전달력을 높인다. 어둠 속에 남녀무용수가 일렬로 교차하여 앉아 일정한 동작을 반복하는데, 이는 빛의 효과를 통해 마치 두 열로 나눠서 움직이는 듯한 착시효과를 보여준다.



다양한 구성의 군무는 〈아파나도르〉가 보여주는 시각적 연출에서 중요한 요소다. 때로는 무용수가 종종 한 무리로서 움직이는데, 집단적 움직임 자체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이는 마치 움직이는 거대한 생명체와도 같다. 모라우가 만들어 내는 독특한 시각 언어의 조합은 음향효과 내지는 음악을 통해 그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시키며, 동시에 하나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아파나도르〉를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점이라면 플라멩코를 작품 속에서 풀어내는 방식이다. 플라멩코의 기본 요소인 춤(Baile), 기타연주(Toque), 노래(Cante) 등 이 모두 작품 속에 들어 있지만, 그 자체로 작품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보다는 하나의 구성 요소로서 자리하고 있다. 플라멩코 춤 또한 하나의 완전한 춤의 형태가 아닌 다양한 발동작과 팔, 손동작, 박수 등으로 해체되어 작품 곳곳에 새겨진다. 

 

흔히 스페인을 얘기할 때면 그들 문화와의 연관 속에 정열의 뜨거움, 붉은색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플라멩코 또한 집시의 자유로움과 정열이 반영된 춤으로서 바로 스페인의 문화 정체성을 보여주는 춤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파나도르〉를 지배하는 것은 어둠이다. 이 어둠은 차가운 침묵, 힘을 잃은 죽음의 상징이 아니다. 생동하는 에너지와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는 어둠이다. 흑백으로 단순화시킨 의상과 무대는 조도를 낮춘 조명 아래 어둠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성별의 구분이 모호한 퀴어한 디자인의 의상이나 무용수의 과감한 자세가 드러내는 섹슈얼함, 과장되게 변형시킨 플라멩코의 특징적인 팔동작 등은 ‘기괴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며 시각적 효과를 높인다. 감출 수 없는 열정과 에너지로 끊임없이 일렁이는 어둠은 음향효과가 더해지며 긴장감과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아파나도르〉는 일련의 스페인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루이스 부뉴엘의 초현실주의부터 기괴한 상황 설정으로 알려진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빛과 어둠으로 공포를 조성하는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은유와 통한 프랑스 독재정권을 비판하고 플라멩코를 비롯한 스페인의 문화유산을 보여준 까를로스 사우라의 작품세계에 이르기까지 다각도에서 〈아파나도르〉와 중첩된다. 이들 영화는 종종 화려한 색채 속에서도 어둠을 품고 있고,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며, 섬세함과는 상반된 방식의 강렬함이 있다. 


모라우의 시각적 연출은 더욱 깊은 층위까지 파고 들어간다. 사진집을 모티브로 한 작품임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듯 〈아파나도르〉의 무대는 사진 촬영을 하는 스튜디오로 설정되어 있다. 공연이 진행되는 간간이 공연 내용과 무관하게 사진을 찍는 무용수가 등장한다던가, 무대의 무용수가 사진을 찍으며, 작품과 작품 밖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또 한 무대를 가로지르는 긴 거울에 비친 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모습은 실제 무용수들의 모습과 구분하기 어렵다. 실재와 비실재의 모호한 경계는 다시 한번 〈아파나도르〉가 무대 위에서 구현해 내는 이미지가 사진에 그 근원을 두고 있음을 상기하게 한다. 


한편, 카메라나 거울 모두 제3의 시선을 만들어 내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무대를 찍는 카메라는 무대 위의 현실이 진짜 현실이 아님을 환기시킨다. 무대 위의 거울 또한 관객을 엿보기에 동참시키는 역할을 한다. 카메라나 거울이 만들어 내는 소격효과는 〈아파나도르〉의 어둠을 관통하는 긴장감과 불안에 맞닿아 있다. 스페인은 가톨릭 교회와 협력한 프랑코 독재 정권하에 36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냈다. 억압의 역사는 스페인 국민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다. 모라우는 〈아파나도르〉를 통해 민족 예술로서의 플라멩코뿐 아니라 스페인의 현대사가 스페인 문화에 남긴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공연의 말미에 이르면 남녀무용수가 제의식을 거행하듯 태양을 연상시키는 둥근 형태의 조명 아래 역시 둥근 대형으로 춤을 춘다. 어느 순간 무대 가운데 높게 쌓인 의자 사이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플라멩코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무용수들은 삼지창을 든 채 격정적인 춤을 추며 무대는 축제 분위기로 바뀐다. 마침내 촬영장의 조명이 여기저기서 쉴 새 없이 켜지고 무용수들은 의자를 향해 몰려들며 격정적인 공연은 막을 내린다. 마치 어둠의 축제를 통해 어두운 현대사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듯한 연출이다.


파시오나리아


라 베로날 컴퍼니와 함께 한 작품인 〈파시오나리아〉(5.16.-5.18.)는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파시오나리아(Pasionaria)는 스페인어로 '열정의 꽃'을 뜻하는데, 이 단어는 '열정'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 'passion'에서 유래하고 있다, 한편 'Passion'은 고통이나 수난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라우의 〈파시오나리아〉에서는 열정도 수난도 찾아보기 힘들다. 무채색에 가까운 흐릿한 색으로 채워진 로비 공간으로 설정된 무대, 사람인지 로봇인지 구분하기 힘들게 분장을 한 무용수들과 그들이 수행하는 모라우가 개발한 독특한 안무언어인 '코바'Kova', 이 모든 것은 기이한 분위기만을 연출할 뿐이다. 


핀란드어로 '단단한'이라는 뜻을 가진 코바는 몸의 움직임을 작은 단위로 세밀하게 분절하여 움직이는 방식이다. 감정을 억제한 물리적 존재로서의 몸이 보여주는 움직임으로 〈파시오나리아〉가 보여주는 감정이 결여된 세계를 보여주기에 적합하다. 무용수의 움직임은 꼭두각시 인형이나 종이 인형의 움직임을 보는 듯하다. 다양한 모습의 무용수가 계속해서 무위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무언가를 하지만, 서로 간에 어떤 상호작용도 찾아보기 힘들다. 무대 위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 또한 원인을 알 수 없고, 사건 간에 어떤 맥락적 연결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설정은 많은 일이 일어났음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도 보이게 만든다. 조명의 변화와 음악만이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할 뿐이다.



〈파시오나리아〉가 보여주는 세상은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팽배해지고, 각자 개인의 삶에 몰두한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 그리 멀리 떨어져 보이지 않는다. 열정은 무언가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하는 마음이다. 감점의 부재는 사랑도 분노도 낳지 않는다. 서로 간에 소통 없이 로봇처럼 각자의 역할만을 수행하는 사회라면 갈등이 존재할 수 없기에 고통 역시 따르지 않는다. 


죽음의 무도: 내일은 물음이다


'죽음의 무도'를 뜻하는 독일어 단어 토텐탄츠(Totentanz)는 중세말 유럽 전역에 퍼져 문화예술 전반에 흔적을 남겼던 알레고리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은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만든다. 또한 죽음 앞에서 물질적 풍요나 명예, 신분 같은 세속적 가치는 무의미하다. 모라우는 〈죽음의 무도: 내일은 물음이다〉(5.17.-5.18.)를 통해 오늘날 디지털 혁명과 전쟁과 난민과 같은 소용돌이의 현장 공존하는 현실에서 토텐탄츠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하였다. 


〈죽음의 무도〉는 무대와 객석이 구분되지 않는 극장 로비에서 진행되는 작품이다. 공연 시작에 앞서 죽음을 상징하는 무용수는 예고도 없이 등장하여 관객들 옆으로 지나칠 때면 죽음이 현실의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또 한 실제 노파의 시신을 연상시키는 비닐 덮인 흰머리의 인형과 분장한 무용수와 병원 영안실로 설정된 무대까지 삶 속에 죽음이 함께 함을 강조한다.



모라우는 향로와 같은 오브제로 토텐탄츠가 기원한 중세를 상징함과 동시에 현대의 산물인 스크린과 조명, 형광등, 전자음악 등의 사용으로 동시대성을 반영한다. 전통적인 주제를 현대의 무대 언어로 구현하는 방식은 〈아파나도르〉를 떠올리게 한다. 조명과 음향효과. 무용수들의 상황에 따른 리듬감 넘치는 유기적인 움직임 등은 하나로 조화를 이루며 작품으로의 몰입도를 높인다.


후반부에 이르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회적 역사적 사건 등을 비교적 장시간에 걸쳐 영상으로 보여준다. 뒤이어 퀴어한 복장의 무용수가 클럽에 온 듯 빠른 비트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열정적으로 춤을 춘다. 삶의 춤보다 더 열정적이고 생동감이 넘치는 죽음의 춤을 보는 순간이다. 이는 마치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두려워하기보다 춤을 추듯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마치 한판의 현대판 굿과도 같았던 시간은 지금 이 시각 우리가 삶의 현장 속에 있다는 사실을 보다 분명히 자각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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