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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몸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다: 타오댄스시어터 <16&17>

공연비평

Vol. 122-2 (2025.10.20.) 발행


글_ 염혜규(춤평론가)

사진제공_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사무국



지난 10월 16일과 17일 양일에 걸쳐 타오댄스시어터(TAO Dance Theater)의 <16&17>이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참가작으로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었다. 2008년 타오 예, 두안 니, 왕 하오에 의해 설립된 타오댄스시어터는 현재 국제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중국 현대무용 단체 중 하나다. 타오댄스시어터는 동양사상을 근간으로 한 몸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를 통해 그들만의 예술세계를 펼쳐 보여주고 있다.



타오 예와 두안 니에 의해 개발된 ‘원형 움직임 시스템(Circular Movement System/圆运动体系理念)’은 이러한 타오댄스시어터의 철학을 반영하는 중요한 운동 법이다. "모든 동작이 나가 물 한 방울처럼 호수 위에서 떨어지면 잔물결이 퍼져나간다"(‘타오댄스시어터의 12년 인터뷰’에서), 타오 예에 의하면 ‘원’은 모양으로서의 원이 아닌 '흐르는 선'을 뜻한다. ‘원’은 몸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몸으로부터 발생하는 동작이 몸 밖으로 내보내어지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몸을 감싸며 신체의 순환이자 선을 만들어낸다. '원(圆)'은 시작과 끝이 없고 끊임없는 순환을 의미한다. 타오 예는 이러한 ‘원’의 개념을 반복, 제한, 관절의 운용의 원리를 통해 춤의 언어로서 구체적으로 적용시키고 있다.


원형 움직임 시스템은 단순성, 중립적인 신체, 외적인 형태보다 내면에의 집중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기본으로 구성된다. ‘단순성’은 복잡한 신체를 단순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무용수는 머리 뒤쪽과 척추의 공간 인식을 강화하기 위해 머리를 짧게 자른다. ‘신체의 중립성’을 통해서는 몸이 갖는 본질적인 평등함을 바탕으로 성별 구분이 만들어내는 한계를 없앰으로 몸의 순수성과 움직임 자체에의 집중을 끌어낸다. 또한 시각적 대상으로서의 몸이 아닌, 몸 자체에 대한 집중을 위해 연습실에 거울을 두지 않는다. 무용수들은 서로의 몸을 하나의 거울로 삼아 서로 간에 관찰하며 공명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원형 움직임 시스템은 일종의 움직임을 통한 명상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자신의 몸에 집중하는 과정을 통해 몸과 움직임의 본질로 돌아가고자 한다. 또한 이를 통해 몸의 무한한 가능성을 무대 언어로서 보여주고자 한다.



이번 공연에서 더블빌 형식으로 무대에 올려진 <16>과 <17>은 타오댄스시어터의 ‘숫자 시리즈(Numerical Series)’의 일환으로 발표된 작품이다. 작품 <2>부터 시작된 ‘숫자 시리즈’는  각 작품마다 공연명과 동일한 수의 무용수가 등장하지만, 해당 숫자 자체가 작품에서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숫자 시리즈’는 신체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숫자가 올라감에 따라 움직임의 논리를 축적하고, 작품의 구조적 형식적 실험을 확장해 나가는 프로젝트다. 

 

<16>은 중국의 전통 놀이인 용춤과 뱀춤 놀이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용춤은 여러 명의 무용수가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진 긴 용의 몸체에 맞춰 각자 막대기를 사용해 용의 움직임을 조정해 나가는 춤이다. 감각적인 사운드의 전자음악과 함께 시작하는 <16>은 짧은 머리에 검은색의 동일한 의상을 입은 16명의 남녀무용수가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선형적인 행렬을 이루며 움직인다. 무용수들은 팔은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머리를 원을 그리듯 돌리거나, 앞뒤로 흔들며 상체를 크게 움직이는 방식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이동해간다. 팔의 움직임이 제한된 반면 다리는 다양한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때로는 상체가 90도로 꺾일 듯한 아슬아슬한 움직임에 균형을 잃을 듯도 보이지만, 바로 이 다리의 움직임으로 균형이 맞춰진다. 각기 따로 노는 듯도 보이는 상체와 하체 간에 유기적인 흐름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이런 유기적인 흐름은 각 개인의 몸에서뿐 아니라, 16명이 만들어내는 대열을 통해서도 관찰된다. 16명의 무용수는 비슷한 동작을 보여주지만, 기계처럼 동시적으로 움직인다고는 할 수 없다. 각각의 몸의 움직임 사이에 존재하는 미세한 시간 차이로 인해 선두에서 후미에 이르기까지 도미노 게임 같은 반복의 흐름이 대열에서 형성되는데, 이는 상체의 큰 움직임과 합해지며 용의 움직임 같은 웨이브를 만들어낸다. 때로는 갑자기 몸의 방향을 바꾸는 무용수가 반복의 흐름을 깨며 긴장감을 부여하는데, 이는 움직임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점차 선형의 대열은 움직임의 방향에 다양한 변화를 주며 무대 위를 더욱더 역동적인 공간으로 바꾼다.



<17>은 소리에 반응하는 신체를 통해 소리와 몸의 긴밀한 관계에 주목한 작품이다. <17> 또한 <16>과 마찬가지로 백색의 텅빈 무대 위에서 짧은 머리와 검은색 의상을 동일하게 입은 17명의 무용수가 공연을 펼친다. 무대 위에 모든 무용수가 엎드려 있는 채로 시작하는 공연은 무대 위로 울려 퍼지는 다양한 소리와 동기화된 무용수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초반에는 몸을 뒤집는다거나 하는 식의 몸 자체의 움직임에서 발생하는 소리에서 시작하여 점차 무용수가 스스로 발성하는 말소리 등으로 다양한 울림을 들려준다. 소리의 변화에 따라 반응하는 신체의 움직임 또한 그 변화의 폭을 확대해 나가는데, 점차 하나의 패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소리에 따라 무용수들 간에 몸이 겹쳐지거나 이어지면서 몸의 움직임은 유기적인 흐름을 형성하는데,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몸과 몸이 연결되어 통일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무용수는 중국어로 말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말의 내용이 아닌, 발화되는 언어의 울림과 진동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여러 명이 동시에 합창하듯 말하는 방식은 음향적 요소로서의 소리의 다양한 울림을 발생시키는 데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또한 중국어를 모르는 경우 발성되는 언어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울림의 차이를 구별하기 쉽지 않다.


흥미로운 점은 마치 바닥에 밀착된 몸을 억지로 떼어내기라도 하듯 시종일관 누운 채로 움직이거나 몸의 상반신이나 하반신 둘 중 한쪽은 종종 무대 바닥에 밀착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족보행을 하는 사람의 춤은 서 있는 자세를 기본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7>에서 무용수가 서서 움직이는 상황은 찾아보기 힘들다. 때로는 소리의 울림에 따라 엉덩이를 높이 치켜든다던가, 물구나무서기를 하듯 움직여 짧은 순간이지만 몸이 공중으로 뜨는 순간이 발생하는데, 하지만 바로 낙하하듯 몸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와 같은 움직임을 통해 몸의 능동성이 아닌 소리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몸의 움직임이 강조된다. 마치 몸과 소리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오는 연출이다.



타오 댄스 시어터의 <16>과 <17>은 각기 다른 구성을 갖고 있지만, 두 작품 모두 원형 움직임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몸에 대한 탐구를 통해 몸의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공연예술에서 보여지는 대상으로서 몸의 움직임은 이들 작품에서 더 이상 의미를 갖지 않는다. 타오 댄스 시어터의 두 작품은 무용공연을 ‘본다’기보다, 몸을 ‘읽는다’라는 체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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