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리을무용단이 오랜 시간의 족적을 다시금 되돌아보는 공연을 가졌다. ‘SIDance 2014’ 우리춤 빛깔 찾기의 일환으로 무대에 올려진 ‘리을 30주년 그 깊은 호흡의 춤’은 10월 6일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에서 있었다. 리을무용단은 한국의 전통춤을 재해석하고 확장시킨 춤으로 1980년대 창무회와 더불어 한국 무용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한국춤의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그 가치가 빛나는 유서 깊은 무용단인 것이다. 특히나 창단 당시부터 깊은 호흡을 바탕으로 표현주의적 성향이 강한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외형적 아름다움에만 치중하기보다는 인간 심연을 탐구하며 실험성을 담고 있었다. 이번 공연의 전체 구성은 1부에서는 솔로 버전으로 개작된 <유리도시>, <이 땅에 들꽃으로 살아>를, 2부에서는 개작된 <구부야 구부야 Ⅱ>가 이어졌다.
첫 무대 <유리도시>는 배정혜 선생이 1987년 안무한 초창기 작품으로, 한국무용의 기본 틀을 벗어나 전통적 색채보다는 모던하고 감각적인 양상이 돋보였다. 미니멀한 춤사위와 직선적 선의 날카로움이 공존하며 메탈릭한 느낌의 의상에서 <유리도시>라는 깨어질 듯 불안한 도시 속에서 인간의 불안정한 내면이 표출되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인간성이 상실될 삶을 거부하려는 한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려 했던 주제는 비록 짧게 압축되었음에도 깊게 각인되었고, 세련된 조명이 작품에 의미를 더했다. 이희자의 솔로로 구성된 <유리도시>는 건조한 듯, 무심한 듯 인간성이 상실된 물질문명과 산업사회의 도시 속 인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더불어 응축된 에너지를 서서히 낮은 자세에서 위로 끌어올린다든지 꽹과리와 현대음악이 뒤섞인 가운데 회전이 많은 춤사위, 팔을 위아래로 휘저으며 다리를 앞뒤로 찍는 동작 등 움직임의 측면에서 개성이 두드러졌다.
<이땅에 들꽃으로 살아>는 1985년 초연 당시 황희연을 주목받는 무용가로 만들어준 작품이다. 하종오 시인의 시를 작품화한 가운데 여성스러운 외모 속에 감춰진 강인한 여성상은 한국의 여성상을 대변하며 눈에 띄는 화려한 꽃은 아니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생을 되풀이하는 들꽃의 이미지를 무용수와 춤에 적절하고 훌륭하게 담아냈다. 꽹과리와 적의 토속적 음악, 흰 저고리와 푸른 치마에 담긴 평범한 여인의 은유, 여성성을 상징하는 긴 댕기머리는 함축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느리지만 전통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춤사위로 춤추다가 푸른 치마와 긴 댕기머리를 끊어 짧은 머리로 얽매인 자신의 삶과 단절해 주체적 존재로 거듭나는 모습에는 반전이 있었다. 이계영이 춤춘 이번 솔로에서 치맛자락 흩날리며 댕기머리를 들고 춤추는 장면들의 연속은 이사도라 던컨의 자유를 연상시켰다.
2부는 오은희 안무의 <구부야 구부야 Ⅱ>였다. 이 작품은 2013년 제34회 서울무용제 참가작을 개작한 것으로, 정선 아리랑을 춤으로 변주한 것이다. 아리랑 속에 내재되어 있는 한국적인 정서, 삶의 애환과 비애를 객관화된 아름다움과 이미지 중심으로 창작한 작품으로 한국여인의 강건한 마음을 잘 다뤘다. 초반부 14명의 무용수들이 툭 떨어뜨린 손목과 호흡을 사용해 글씨를 변형시킨 듯한 백드롭 영상과 아리랑 가사에 맞춘 전통 춤사위의 변형을 선보였다. 응축된 움직임의 전체 군무가 끝나고 변화된 아리랑 음악에 <이땅에 들꽃으로 살아>와 동일하게 긴 댕기머리를 사용해 전통적 여인을 은유적으로 되살려냈다. 이때 백드롭에 효과적으로 사용된 다양한 영상들은 무대 위 공기를 환기시켰고, 무용수들이 길게 댕기머리를 늘려가며 신비하고 영묘한 분위기에서 여성적이면서도 여백의 미를 보이는 춤이 신선했다.
남녀 2인무는 두 무용수의 기량을 아낌없이 과시했고 이후 피아노로 빠르게 변주된 음악에 샤막이 걷히고 감각적인 무대가 등장했다. 하수에는 나뭇가지가, 상수에는 무용수들이 소도구와 의상 곳곳에 각 인물마다 붉은 색의 포인트를 주며 가사처럼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장면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녀들은 나뭇가지 앞에서 물로 자신을 정화시키며 한국적 정서와 이미지를 최대치로 끌어올렸고 특히 붉은 연 타래를 감는 남녀의 잔상은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후반부에는 춤의 특질이 음악처럼 변형되었다. 아리랑 음악을 빠르게 변주시킨 상태에서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하며 빠른 춤사위로 현대적 느낌을 더했는데, 간혹 군무의 일치를 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정형화되지 않으면서도 다른 창작무용 단체들과는 또 다른 팔사위를 사용한 움직임으로 작품을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후반부 토속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담은 흥에 겨운 몸짓, 내재된 호흡, 마지막 흩날리는 눈가루 속에서 원을 그리며 도는 여성들의 춤사위는 제의적이었고 마지막 오은희 자신이 아리랑 고개를 상징하는 계단을 걸어 올라갈 때 일렬로 여성들이 뒤를 따르는 모습은 주제를 강하게 부각시켰다. <구부야 구부야 Ⅱ>는 시각적인 서정성과 음악의 다양한 변주, 개성 있는 춤사위의 조화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결론적으로 리을무용단은 “물이 흐르는 원천, 원과 근본사상이 통하는 기호”라는 무용단의 이름과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출 수 있으며, 춤을 춤으로만 승부한다”는 정신을 오늘날까지 계승해왔다. 배정혜 선생의 바 기본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춤어휘의 개발과 내면의 표출이 강조되는 작품색을 통해 한국창작무용의 형성에 크게 기여했으며, 이는 그녀를 주축으로 이곳에서 배출된 많은 중견무용가들의 노력이 근간을 이룬다. 30년이라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비록 춤추는 이는 바뀌었지만 그 춤의 잔상은 변화되지 않으며 그들이 갖고 있는 깊은 호흡이란 진정 외형으로 꾸며내는 것이 아닌 ‘숨’ 그 자체인 것이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리을무용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