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비평
Vol.123-1 (2025.11.5.) 발행
글_ 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댄스시어터 샤하르

댄스시어터 샤하르가 안무가 지우영의 신작 〈안네 프랑크〉를 선보였다. 노원문화재단과의 공동기획으로 올려진 공연은 지난 10월 17일과 18일 양일간 노원문화예술회관 대공연에서 관객들과 만났다.
안네 프랑크의 본명은 아넬리스 마리 프랑크로, 192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193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고, 1944년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에 보내졌다가 이듬해인 1945년 2월 발진티푸스(혹은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안네가 사망한 것은 영국군에 의해 해당 수용소가 해방되기 고작 몇 주 전으로, 사망 당시의 나이는 15살에 불과했다.

안네와 가족들은 네덜란드가 나치에 점령된 이후 아버지 오토가 다니던 회사 건물의 다락방을 은신처 삼아 숨어 지냈다. 안네는 이 기간(1942년 6월부터 1944년 8월까지) 동안 자신과 가족들의 일상을 일기장에 꼼꼼히 기록했는데, 이것이 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일기문학 작품인 『안네의 일기』다. 키티라는 이름의 가상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인 일기는 가족 중 홀로코스트의 유일한 생존자인 아버지 오토 프랑크에게 전달되어 1947년 초판이 출간되었다. ‘안네의 일기’라는 제목은 1959년 작 할리우드 영화 제목에서 유래된 것으로, 원제는 안네가 숨어 지내던 은신처를 가리키는 ‘비밀 별관’이다. 일기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은둔생활의 긴장감 속 아슬아슬한 평화
안무가이기 전에 스토리텔러이자 휴머니스트인 지우영은 그동안 고전을 재해석해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고전이나 실화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인물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작업을 꾸준히 지속해왔다. 지우영은 이번에는 『안네의 일기』 속 사람들 이야기를 무대로 옮기며 그들의 목소리에 마이크를 대어준다.


공연은 나치 독일의 유대인 탄압이 절정을 향하고 있던 1940년대 초반, 안네의 가족이 은신처로 옮겨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오토의 회사가 위치해 있던 건물 별채에 마련된 은신처에서는 안네의 가족을 비롯해 오토의 동업자였던 판단 가족, 치과의사인 뒤셀 등이 함께 거주했다. 해당 건물에는 여러 회사들이 입주해 있었기 때문에 은신처로 들어가는 입구는 눈에 띄지 않도록 책장으로 막혀 있었고 은신처에 사람이 있다는 게 발각되어선 안 되었기에 회사 직원들이 출근하는 평일과 토요일 오전에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정적을 유지하며 생활해야 했다. 공연은 이 긴장감 속 아슬아슬한 평화와 미래에 대한 불안, 그럼에도 찾아온 첫사랑의 설렘, 그리고 피할 수 없는 파국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안네와 판단의 가족들이 은신처로 처음 들어가는 공연의 도입부는 프롤로그에 작품의 핵심 메시지를 배치하는 지우영식 시그니처가 드러난 장면이다. 이들은 창문을 통해 은신처 내부가 안전한지 확인하고 나서 안으로 들어가는데, 이때 가슴높이의 직사각형 프레임 앞에 모여 선 무용수들의 모습은 이들의 불안한 현재인 동시에 은둔생활에 대한 증거로 사용될 미래이다. 또한 이들의 마지막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로 공연을 보는 관객들에게는 결말에 대한 강력한 복선이기도 하다. 지우영은 이들의 비극을 잊지 말아달라는 듯 영정사진 같은 단체 사진의 강렬한 이미지를 각인시킨 뒤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간다.
무대는 안네가 혼자 일기를 쓰는 다락방과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아래층으로 공간이 양분되어 있다. 아래층에서는 가족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즐거운 만찬을 나누기도 하고 팽팽한 긴장감으로 서로에게 날을 세우며 부딪치기도 한다. 안네는 언니 마고트와 우정을 나누고 판단 부부의 아들 페터와는 설렘 가득한 첫사랑에 빠진다.
‘키티’에게 남겨진 일상의 기록, 그리고 증언들
공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안네의 일기장에 인격을 부여해 무용수를 캐스팅했다는 점이다. 안네가 ‘비밀 별관’에서 은신하던 2년여의 기간은 나치 정권이 유대인에 대한 ‘최종 해결책’인 ‘절멸’을 실행하던 시기로, 이 시기 유대인들은 아우슈비츠 등지의 집단수용소로 끌려가 강제노동, 계획된 영양실조, 생체실험, 총살, 가스실, ‘죽음의 행진(death march; 죄수나 포로의 강제 이동을 가리키는 용어로, 식사나 휴식 없이 도보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다수가 사망한다)’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살해당했다.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붉은색 체크무늬 표지의 일기장은 안네에게 불안한 은둔생활을 견디게 해주는 영혼의 친구였다. 안네는 일기장에 ‘키티’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일상과 감정을 진솔하게 기록했다. 일기는 나치 독일 치하에서 유대인이 겪은 탄압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사춘기 소녀가 가족과 친구, 첫사랑과 함께한 성장담이기도 하다.
키티 역을 맡은 샤하르의 주역무용수 스테파니김이 안네와 함께 추는 2인무는 은둔생활을 하는 안네에게 일기장이 어떤 의미였는지 보여주는 매우 슬프고도 아름다운 장면이며, 이때 키티와 안네가 나눈 교감은 훗날 은신처가 발각되어 가족들이 모두 집단수용소로 끌려가게 되었을 때 가장 증폭된 형태로 드러낸다. 키티가 체포를 저지하려는 듯 사람들 사이를 다급하게 뛰어다니며 괴로워하는 모습은 〈지젤〉의 1막 후반부에서 ‘매드씬’을 연기하는 지젤 못지않게 절박하다.
이토록 절박한 키티의 감정은 안네와 나눈 교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키티는 더 이상 안네가 편지 친구로 설정한 가상의 존재가 아니라 안네의 고통과 절망에 공감할 수 있는 인격체로 재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안네의 일기장 ‘키티’는 단순히 한 소녀의 하루를 기록한 일기가 아니라 인간성 말살의 증언록으로서 좀 더 무거운 의미를 얻는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영화적인 기법을 곧잘 활용하는 지우영의 연출은 이 작품에서도 돋보이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안네의 가족들이 보내는 은신처의 일상과 독일군의 공포 통치에 핍박받는 유대인을 교차시켜 보여주는 연출은 안네가 누리고 있는 평화가 얼마나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토대 위에 놓인 것인지 짐작게 하고, 이는 공연 종반부 가스실에서의 비극적인 최후로 이어지며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고발한다.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릴리 마를렌’이나 ‘도나 도나’의 익숙한 선율은 비극의 깊이를 더한다.
안네는 일기장에 “희망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어요. 그 희망은 우리를 새로운 용기로 채우고 다시 강하게 만들어준답니다”라고 썼다. 안네의 희망은 꺾이고 생명은 스러졌지만, 그가 남긴 용기는 일기장과 함께 우리의 기억 속에서 언제까지고 살아 있을 것이다. 샤하르의 〈안네 프랑크〉는 그 기억을 잊지 않고 간직할 수 있는 하나의 양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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