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비평
Vol.123-1 (2025.11.5.) 발행
글_ 장지원(춤평론가)
사진제공_ HK ADC 홍콩예술발전국

인간에게 있어서 삶과 죽음이란 시작과 끝이며 특히 죽음이란 피해갈 수 없는 결말이다. 죽음을 대하는 자세는 다양한데 여기서 출발해 종교와 의례가 발생한다. 이처럼 ‘삶과 죽음’이라는 근본적 질문을 담아 독특하면서도 보편적인 예술 언어로 확장한 공연 <파지옥 한국편(Travel of the Soul: Echoes after Time)>이 10월 17~19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2025 홍콩위크 @서울’의 일환으로 열렸다. 안무자인 증룩산(Tsang King-fai, Terry)는 최근 홍콩에서 주목받는 현대 무용 안무가이자 Labora Terry Arts의 예술감독이다. 그는 제 18회 홍콩 예술발전상 ‘예술 신예상(무용)’ 부문 수상자이기도 한데 이번 공연은 증룩산이 주축이 된 그의 제작팀과 함께했다. 공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와는 다른 이국적 인상과 홍콩 현대무용의 일면, 죽음을 대하는 색다른 자세, 개성 있는 신체 움직임 어휘 등이었다. 특히 전통과 현대적인 감각을 겸비하고 타국 안무가의 안무를 잘 소화해 낸 무용수들(이지혜, 이소진, 문용혁, 박영성에게 칭찬을 마지않는다. 1시간 여의 공연에서 의례와 예술, 생과 사의 경계를 묵도하며 우리는 삶의 이면에 내재 된 ‘죽음’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파지옥>은 중국 전통 도교의 장례 의식 ‘파지옥’을 모티브로 죽은 자가 저승의 지옥 같은 고통과 속박에서 벗어나 극락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그려냈다. 그러나 상징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 공연에서 공연 공간 전체를 채운 향냄새는 후각을 자극하면서 실제 제사 의식에 참여하는 경험을 관객들에게 제공했다. 통과의례에 참여한 관객들은 자극적인 향, 이국적인 무대장치와 미장센, 때로는 그로테스크하고 때로는 장난기 어린 표정을 대하며 이국적 정서에 빠져드는 순간을 경험했다. 공연은 장례 의식의 형식을 보여주지만 단순한 재현은 아니다. 살아 있는 우리가 죽은 자의 여정에 참여하는 과정은 '지옥문 깨기'(Breaking the Hell's Gate)로 시작된다. ‘지옥문 깨기’는 중국 도교의 장례 의식 ‘타제(打醮, Da Zhai)’에서 파생된 절차이다. 전체 순서는 개단(開壇, 제단 열기)을 시작으로 영혼 소환, 경문 독송, 지옥문 깨기, 십전(十殿) 심판, 영혼 목욕, 금은교 건너기, 망자 해탈, 영혼 안치 등으로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의식의 목적이다. 망자가 영혼의 고통이나 미련,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인 극락 혹은 천상으로 향하는 영혼의 통과이며 기원이다.


무대에는 다양한 오브제가 마련되어 있고 독특한 미장센으로 눈길을 끈다. 무대가 열리며 쩡징후이가 등장해 향을 피우고 움직이며 소리를 내기도 한다. 현실과 환영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들며 안무가와 4명의 무용수들은 한국의 굿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위로의 순간보다는 망자들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듯한 인상이다. 특히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인간적이기보다는 인간과 영혼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강시 같기도 하고 좀비 같기도 한 표정과 움직임에서 관객들은 한국의 현대무용에서는 볼 수 없는 강렬한 극성을 보게 된다. 소극장을 가득 채운 세트 탓인지 더욱 좁아진 공간에서 무용수들은 전체 군무보다는 솔로나 듀엣의 특성을 살리며 시선을 끌었다. 절제된 공간과 움직임에서 조명과 음향, 무용수들의 몸은 조화를 이뤄 몽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홍콩 의례의 장엄함이 돋보였으며 네 명의 한국 무용수들의 교차되는 호흡이 국적을 넘어섰다. 원초적이고 강렬하며 통제를 벗어난 시공간은 인간 존재의 근원을 묻고 있으며 때로는 공연에서 춤이 아니라 기도를, 현생이 아니라 죽음과 사후세계를 다시금 생각게 된다.
안무가가 의도했듯 <파지옥>은 단순히 죽음을 다루는 작업이 아니며 그가 5년간의 리서치를 거치는 동안 성찰과 애도의 시간을 갖는 것은 자기 발견과 변모의 과정이었다. 최근 우리의 현대무용에서도 종교의례의 모습은 가끔 관찰되었는데 이는 곧 정체성과 뿌리에 대한 접근이다. 또한 우리는 <신과 함께>라는 만화, 영화, 공연을 통해 지옥이 낯설지 않은데 죄의 심판은 무섭지만 공통적으로 죽음이란 공포가 아니며 지옥 역시 온전히 공포의 장소가 아니다. 이들은 통과의례의 하나이며 우리는 공연에서 의례가 일상적 감각으로, 죽음이 생의 움직임으로 전환되는 모습을 관찰했고 장례 문화의 이해를 넘어, 우리가 죽음을 마주하고 대하는 방식을 되물었다.



<파지옥>은 독창적인 신체 표현의 매력과 광둥 지방 전통 의식인 ‘파지옥’의 기묘하고도 강렬한 신체 의식에 담긴 고유한 무용 미학이 도드라졌다. 공연은 전체적으로 의식 무용과 ‘삶과 죽음’이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그 사유를 독특한 예술 언어로 확장시켰다. 무용의 기원 중 하나인 종교설의 일면을 보는 듯한 순간, 단순한 관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안무와 무용수의 움직임에 담긴 스토리텔링을 함께 느끼고 교감할 수 있는 전 과정은 예술적 측면은 차치하고라도 색다른 의례를 관람하는 경험 제공에 의의가 컸다. 더불어 망자의 영혼 정화, 참회로의 이끔, 지옥의 고통에서 해방, 영혼이 천상에 올라가 불멸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홍콩의 문화에 대해 고민하며 홍콩 문화의 색을 찾아가려는 증룩산의 고군분투(孤軍奮鬪)가 흥미로웠고 다소 엿보기 힘든 홍콩 현대무용을 접할 수 있었던 기회가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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