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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안무가들의 스펙트럼 - LDP 무용단 <15TH LDP>



 프리즘을 이용해 빛을 분산하면 무지갯빛으로 펼쳐지듯 다국적 안무가들의 안무를 통해 다채로운 색깔의 스펙트럼을 볼 수 있었던 LDP 무용단(Laboratory Dance Project, 대표: 김동규)의 공연이 9월 4~6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있었다. 창단 15주년을 맞은 LDP무용단은‘RE-Explore LDP’라는 컨셉을 가지고 또 다른 실험과 도전에 나선 것인데, 그 방법론은 해외안무가의 전격 영입이었다. 그 성공여부를 논하기 전에 늘 젊고 패기 있는 이미지를 간직한 연유로 벌써 무용단 창단 후 15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에 놀랐고, 댄싱 9의 출연으로 더욱 이름을 알린 출연진들(안남근,이선태,임샛별,윤나라,류진욱,정혜민)의 나이도 연륜을 언급할 만큼 들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따라서 이제는 무용단 자체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역동성, 빠른 스피드, 테크닉으로 대표되기에는 무리수가 있으므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시기에 다다른 것이다. 해외안무가의 전격 영입과 작품 선택에 대한 무용수의 무한책임주의를 내세운 공연에 귀추가 주목되었다.


 첫 작품은 체코 출신 안무가인 야렉 쎄머렉(Jarek Cemerek)의 <Heaves>였다. 그는 2011년 <보이드(Void)>로 최고 안무가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에 체코 댄스 플랫폼에서 최고 작품상과 댄서상을 수상하며 유럽과 미주에서 활발한 활동 펼치고 있다. 그가 선택한 ‘Heaves’란 제목은 의학용어로, 폐공기증 혹은 호흡곤란을 뜻하며 미뤄 짐작할 수 있듯이 타이트하게 목표에 맞춰 숨막히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담고자 하는 의도를 지녔다. 어둠 속, 숨소리로 시작된 공연은 휘몰아치면서도 강약이 조절된 움직임과 소음 그리고 앰블런스를 연상시키는 소리를 포함한 빠른 음악, 어두운 분위기 속의 진지함 등이 어우러져 주제를 잘 표현했다. 특히 야렉은 한국에 온 첫 날 지하철을 타고 본 한국인들의 첫인상을 이번 작품에 반영했다고 알려졌는데,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그 어떤 대화나 눈을 마주치는 일 없이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며 겉도는 인간관계의 단절을 표상했다. 6명의 무용수들(류진욱·위보라·천종원·김수인·정건·이지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쉴틈없이 움직이고, 한국인의 숨 가쁜 일상을 10분 동안 폭발적인 에너지로 그려냈다. 다만 유럽의 대표 젊은 춤꾼이라는 그 명성에 맞게 폭발적인 힘과 인간의 소통부재에 따른 관계의 단절을 요구한 안무에 폐가 터질 듯이 움직이고 있는 무용수들의 절실함이 와 닿지 않는 것은 이들이 춤을 춘다는 사실에 집중한 탓이 아닐런지.




 두 번째 작품은 한국의 안무가 길서영의 <Social Factory>였다. 그녀는 다수의 수상과 2004년 독일에서 열린 ASEF에서 공연을 선보인 것을 계기로 무용수와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는 차세대 유망주이다. 철학적, 상징적인 메시지를 통해 연극적 연출이라는 방법으로 깊이를 더한 이번 안무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기능적인 가치로만 평가되는 현대인을 몸이라는 오브제로 환기시켰다. 특별히 그녀는 자아가 소유한 물질적인 몸, 자아의 의지에 따라 통제된 몸, 타자에 의한 몸 등 변형되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생물학적인 몸과 대립시키며 주체가 상실되어가는 모습을 그렸는데, 외국 안무가들의 작품에 비해 오히려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다. 10명의 무용수들(정태민·이선태·김성현·강혁·임종경·이민영·김보라·이주미·양지연·이경진)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몽환적이면서도 신비롭다. 대형 재킷 속에 얼굴을 감추고 거인국의 인물들처럼 거대하게 위치한 그들의 느린 움직임은 다소 기괴하면서도 독특했고, 무채색의 어두운 무대는 대형 공장처럼 느껴졌다. 그 공간 속에서 기계적 움직임의 모티브들과 앞뒤가 바뀐 듯한 신체의 사용 등은 자비에르 르 로이의 <미완성의 나>와 개념면에서, 시스템 카스타피오르의 인체 변형과 이미지면에서 유사한 맥락으로 비치기도 했지만 개성이 강했다. 비록 처음의 아이디어에 비해 후반부 밀도가 다소 떨어지기는 했으나 길서영이라는 인물에 대한 또 다른 발견의 순간이었다.




 마지막 작품은 독일 안무가 미샤 푸루커(Micha Purucker)의 <Murmurs and Splotches>로, 그는 독일 탄츠텐덴츠 창립 멤버로 1985년부터 2000년까지 댄스 에너지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무용과 다른 장르를 결합한 융복합 공연을 주로 하는 인물로 손꼽히는 안무가이기도 한 그는 LDP 무용단 창단 당시부터의 인연을 바탕으로 이번에 네 번째 작업을 함께 했다. 가장 추상적이면서도 독일 특유의 개념적이고 표현적인 모습이 공존했던 그의 작품은 관객의 안목을 요구하는 난해한 공연이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예술과 공식적인 연구의 출발점인 ‘불분명’과 ‘출현’에 대해 주목하면서 유럽의 회화운동‘informel'에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소위 추상표현주의 혹은 무정형으로 알려진 이것에 집중해 금속성 느낌의 음악이 멈춘 후 오픈된 무대에는 대형 흰 천이 걸려있고 한 남성의 몸으로 중얼거리는 듯한 분절적인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이후 13명의 무용수들(류진욱·안남근·천종원·윤나라·임샛별·정혜민·장원호·강혁·이정민·정건·김보람·정록)은 희미한 시작에서 명징해지는 과정, 변형과 융화의 모습, 내적인 순간이 동적인 순간으로, 솔로에서 군무로의 변화, 용해, 새로운 형태의 의미, 이미지와 제스처를 신체로 완성해내는 어려운 작업을 수행했다. 관념적 요구에 비해 가장 기존 LDP 스타일에 근접했던 작품으로, 그 친숙함이 안정적인 느낌을 주었다.


<15th LDP> 공연에서 보여준 각 안무가의 개성과 다양성의 표현은 국적을 초월해서 LDP 무용단의 역사가 담겨있는 순간이었다. 비록 외국 안무가들의 안무라 할지라도 그 완전체를 이루는 LDP 무용수들의 땀과 노력이 그 안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많은 스타급 무용수들을 배출하는 저력과 해외공연을 통해 국위선양에 기여하기도 했던 그들의 역량이 더욱 배가되길 바라며, 다만 세월을 거역할 수 없는 무용수들의 신체와 움직임이 감상에 젖도록 했다. 또한 기존의 LDP 무용단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기존의 이미지를 해체하고자 의도했던 바, 이번 공연은 절반의 성공과 실패가 공존했다. 우선 성공적인 부분은 LDP 무용단 단원들의 뛰어난 기량을 재확인할 수 있었고, 남성우위의 느낌이 강했던 무용단에서 길서영이라는 여성 안무가가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실패의 부분은 기존의 이미지를 해체하기 보다는 그 연장선상에 머물렀다고 보여지며 따라서 해외 안무가들의 안무라고 해서 특별히 해체라 표현하기에는 그 수위가 얕았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c)BAKI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