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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누수에 대한 고찰: 금배섭 안무의 <누수>

※ 서울문화재단 비평활성화지원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작성된 리뷰임.

공연비평

Vol.125-2 (2026.1.20.) 발행


글_ 염혜규(춤평론가)

사진_ ⓒShin-joong Kim



‘누수‘는 불완전한 상태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다. 누수는 흔히 오래된 건물의 부식된 배관이나 부실 공사로 생긴 배관의 구멍에서 발생한다. 누수는 물이 나오지 말아야 할 곳에서 새어나오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는 의도치 않게 발생하는 현상으로 부정적이다. 하지만 누수가 ’나‘에게 일어난다면 이라는 발상에서 출발하는 춤판야무의 <누수>(2025.9.4.-9.5,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는 누수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나에게서 새어 나오는 것은 무엇이고, 이것은 어디로 흘러 무엇과 만나지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누수>는 누수라는 현상을 통해 삶의 궤적과 파편을 찾고자 한다(프로그램 참조). 안무가 금배섭은 누수를 '의지'의 표출로 보았다. 나에게서 무언가가 새어 나온다면 그것은 일종의 의지의 발현인 셈이다. 의지란 무언가를 향한 적극적인 뜻이기에 나의 좌표가 될 것이고, 그에 따라 나의 삶도 변화해 갈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누수를 단순히 긍정적인 현상으로만 보는 건 아니다. 좌표로서의 의지는 나의 진화를 추동하지만, 진화는 동시에 퇴화를 뜻한다고 역설한다. <누수>는 긍정과 부정을 넘어선 나의 삶을 이끄는 능동성에 대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누수>에서 무용수의 춤 혹은 몸의 움직임은 작품의 중심이 아니다. 작품의 실질적인 중심은 공연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물이라고 할 수 있다. 컵, 테이프, 종이, 비닐, 두루마리 휴지, 숟가락, 부채 등은 무용수의 퍼포먼스를 통해 의미를 갖게 된다. <누수>는 사물과 무용수의 합주가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무대에는 수십 개의 투명테이프가 천장에서부터 길게 펼쳐진 채 내려와 있다. 펼쳐진 테이프는 어둠 속에서 세로 형태의 수많은 구조물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조명이 비치면 반짝이는 테이프는 마치 천장에서 떨어지는 수많은 물방울을 보는 듯하다. 각기 다른 길이로 펼쳐진 테이프는 SF영화의 정지된 시간 속 낙하를 멈춘 물줄기처럼도 보인다. 이 정지의 순간을 살아있는 시공간으로 바꾸는 것은 무용수들이다. 


본격적으로 공연이 시작되면 종이컵을 든 무용수들이 천장과 컵을 번갈아 보며 똑똑 물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는 무대 위를 걸어 다닌다. 물 떨어지는 소리는 바로 무용수들이 컵을 쳐서 내는 소리다. 때로는 물 떨어지는 소리의 속도에 조정을 가해 물이 넘치는 듯한 현장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양동이를 이용해 넘치는 물을 받기도 한다. 정말로 누수가 의지의 소산인 듯 무용수들은 누수의 현장을 만들어내고 제어한다.


무용수들은 다시 무대를 돌아다니며 플라스틱 숟가락과 땀 닦은 휴지를 테이프 여기저기에 붙인다.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흔적을 공간 속에 새겨넣으려는 것처럼도 보인다. 정지된 누수의 상태 혹은 누수를 막고자 노력했던 시간이 무대 위로 박제된다. 공연 후반부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빨라지면 무용수가 통을 뒤집어 놓는데, 이때 통속의 종이가 마치 물처럼 쏟아진다. 하지만 물이 어디론가 흘러가 버리는 것과 달리 쏟아진 종이는 그 자리에 쌓인다. “누수는 상실이다” 라고 말하는 금배섭의 반어법이 반증되는 순간이다. 물 또한 지금 내 눈앞에서 사라질 뿐 그 대상 자체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딘가 다른 곳에 있거나, 수증기나 얼음 같은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두 남녀 무용수가 두루마리를 갖고 펼치는 퍼포먼스는 누수를 감정의 층위에서 바라보게 한다. 마주 선 두 사람은 두루마리 양 끝을 잡고 흔들며 서로 간에 균형을 맞추며 조화를 이루는가 하면, 두루마리를 펼쳤다 접었다 하며 서로를 향해 다가오고 다시 또 서로에게서 멀어진다. 마치 의지에 따라 변하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거리와 그 변화를 보는 듯하다. 어느 순간 스포이트로 두루마리 한가운데 물방울을 떨어뜨리고, 두 무용수가 양 끝에서 잡아당기면서 두루마리가 찢어진다. 서로 다른 의지의 방향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때로는 누수의 물줄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듯, 우리의 삶 또한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비닐은 공연에서 다양한 역할을 한다. 플라스틱의 일종인 비닐은 투명하다는 점에서 물과 유사하다. 하지만 동시에 물의 성질과 불화하는 소재로 공연에서 누수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기도 하다. 종이처럼 물이 스며들 수도 없고, 또한 물에 찢기지도 않는다. 무용수들이 바닥에 넓게 깔린 비닐에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면, 비닐이 이리저리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비닐이 보여주는 중력에의 저항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물방울에 대비된다. 


공연의 말미에 이르면 무용수들이 비닐과 투명테이프를 모아 누수의 종착지를 보여준다. 부채로 일으킨 바람에 휴지장 같은 종이들이 허공으로 날리며 테이프들에 달라붙는다. 무용수는 테이프들의 끝을 하나로 연결한다. 다시 비닐을 뒤집어쓴 무용수들이 물이 흘러가듯 움직여 테이프 둘레로 모인다. 연결된 테이프를 비닐로 감아 꽃나무처럼 보이는 멋진 조형물을 탄생시킨다. 조명에 비친 조형물은 얼어붙은 물방울 들처럼 보이는가 하면, 동시에 타오르는 장작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물이 불로 변한 듯한 환상적인 장면이 연출되는 순간이다. 무용수가 무대를 가로질러 조형물 앞으로 비닐을 친다. 누수가 상실이 아님을 공고히 하는 결말이다.



<누수>는 물리적 현상인 누수를 여러 사물을 통해 다각도에서 고찰한 작품이다. 사물들은 그 본래적 물성을 바탕으로 무용수들에 의해 의미가 부여되고 또 만들어진다. 무용수들은 단순한 동작만으로 사물과의 관계 속에 누수의 상황을 만들어낸다. 이들 관계에서 생성되는 여러 가지 소리 또한 단순하지만 그 자체로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런 요소들은 하나의 장면을 연출해 낼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형성해 낸다. 이는 독립된 부분들로 이뤄진 <누수>가 뚜렷한 서사적 구성이 없음에도 하나의 극으로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누수>는 연극과 무용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작품이다. 단지 대사의 유무가 단지 연극이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요소는 아니다. <누수>에서 무용수의 몸은 주체라기보다는 도구에 가깝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기보다는 음성언어를 대신하거나, 사물들에 대한 보조적 역할을 하고 있다. 


<누수>는 분명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감각을 일깨우는 재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동시에 개념의 과잉이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누수를 통한 진화와 퇴화의 역설을 작품에서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누수에 대한 다양한 의미 부여는 다소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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