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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 대중화의 길라잡이로 정재연구회의 발걸음- ‘풍류사랑방 수요춤전’ 中 김영숙



 정재(呈才)는 어렵다. 대중에게 정재라는 단어는 익숙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용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도 쉬운 영역은 아니다. 게다가 무언가 즉각적으로 끌어당기는 재미도 없고, 찾아보기도 쉽지 않아 그저 특별한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하긴 정재가 궁중에서 행해지던 무용이니 과한 재미는 고사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며 즐긴다는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정재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 예술인가? 한 나라의 전통문화는 기층문화의 수평적 체계인 민속이 토대를 이루지만 국가의 상징체계를 집약적으로 결집한 역대 왕조문화의 중요성도 지나칠 수 없다. 이는 누대에 걸친 민족문화상징의 형이상학적 철학 그대로를 투영하는 상징체계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재는 가(歌), 무(舞), 악(樂)의 깊은 의미들의 합(合)을 통해 균정미를 보이며 궁중 문화의 정수를 표현하기에 한민족의 국가적 표상으로 자리한다. 그런 가운데 왕조를 거듭하며 내려오던 정재는 조선왕조의 붕괴와 함께 대중에게도 관람의 기회가 주어졌고, 전승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정재가 연구와 실제에 앞장서는 김영숙과 정재연구회를 통해 ‘풍류사랑방 수요춤전’ 무대(2015년 9월 16일,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 올려졌다. 그동안 정재의 전승은 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그들을 통해 무대공연예술로 대중과 호흡하여왔다. 상업적 무대공연예술이 아닌 왕조문화의 전승이기에 국립단체가 맡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재를 민간단체인 정재연구회에서 20여 년을 꾸준하게 공연과 연구를 함께 하였다는 점은 대단한 일이며 이들의 행보는 의미 있는 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날 공연은 ‘헌선도’, ‘아박무’, ‘무산향’, ‘검무’, ‘무고’, ‘춘앵전’, ‘처용무’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공연 내용은 여러 생각에서 나온 결과일 것이다. 그동안 정재연구회가 꾸준히 익혀 완성도에서 가장 안정적인 부분을 생각했을 것이고, 풍류사랑방이란 무대에 적합한 공연 내용을 선별하는 등 여러 문제를 고려하였을 것이다. 여기서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정재, 대중, 무대공연예술, 극장이라는 키워드를 조합하여 생각할 때 정재의 공연예술로 의미는 무엇인지, 정재의 대중화 아니 대중화가 필요한 것인가라는 점이다.


 궁중에서 행하던 정재가 제한된 관람자에서 대상이 대중으로 바뀌었을 때 생각한 부분은 100여 년 전에도 그대로 고민한 문제였을 것이다. 조선왕조가 몰락하는 과정에서 정재는 궁중에서 드문드문 이루어졌고, 예인들은 극장이라는 공간 속으로 편입되어 변용되어 나아갔다. 그런 가운데 이들도 극장에 맞는 종목을 어떻게 펼칠지 고민하였을 텐데 이를 100여 년 전 똑같은 날짜의 공연을 비교하여 설명해보아도 재미있을 것 같다. 1915년 9월 일제는 시정오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라는 행사를 경복궁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이때 연예관에서는 광교조합과 다동조합에서 연일 공연을 펼쳤는데, 9월 16일은 다동조합에서 ‘가인전목단’, ‘사자무’, ‘춘앵무’를 보여주었다. 또한 그 즈음 가장 많이 공연된 것이 ‘검무’, ‘무산향’, ‘춘앵무’ 등이었음 볼 때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면모이다. 이는 정재이니 변하지 않는 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들이 행한 50여 일의 기간 동안 연일 종목을 바꾸어 가며 40여 개에 가까운 정재를 선보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습은 그들이 익히고 전승한 것을 대중에게 보이며 나름의 미학을 찾는 과정이었고 대중의 취향에 맞추기 보다는 무대공연예술로 방법론을 고민한 흔적이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정재연구회에서도 이러한 고민은 다양한 시각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제한된 종목이지만 원형을 간직하고 공연예술로 변용하는 작업 속에서 다양한 종목을 통한 대중과 만남, 이는 예나 지금이나 정재에 대해 무지한 대중에게 정재의 멋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바탕이 될 것이다. 결국 다양한 종목의 무대화는 앞으로 정재연구회의 과제일 것이다.


 이제 정재는 옛 것의 재현이 아닌 표현이란 측면에서 전형성 확보의 시기가 도래하였다. 지금 전통춤이라 일컫는 춤들이 ‘만들어진 전통’임에 비해 정재는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내려오는 춤이다. 이는 구전심수의 전승도 있었지만 훈고학적 연구도 함께 진행되었기에 가능하였다. 이는 민족상징이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바탕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재만을 연구하고 공연하는 정재연구회는 그동안의 토대를 바탕으로 대중화를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공연이나 연구라는 관점에서 진일보하여 대중강좌나 스토리텔링을 통한 재생산의 창작 과정 등의 작업도 병행하면 어떨지 생각해본다. 이는 정재보다도 훨씬 지루하지만 강한 일본의 문화상징으로 자리한 일본의 노(能)가 지금에 이른 것은 여러 지원을 통한 끝없는 연구 그리고 대중화 함께 이루어졌기에 가능한 면모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정재의 길라잡이가 결국 정재연구회의 몫이다. 전통을 전승하고 전형성을 확보하여 재생산하는 작업 그리고 대중화의 선도적 작업이 함께 이루어진다면 왜 우리가 정재를 보는지 혹은 왜 정재를 전승해야하는지 당위성이 성립될 것이다.


 그래서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관성이야말로 다양한 경험을 포용할 수 있는 실존의 형식”이란 원형비평의 권위자 노드롭 프라이(Northrop Frye)의 이야기는 정재연구회의 앞으로의 화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글_ 김호연(문화평론가, 단국대교수)
사진_ 국립국악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