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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은 몽룡을 기다리지 않았다: 황지영 <자네는 왜 그리 굉장히 기다란 담뱃대로 담배를 피이나>

공연비평

Vol.128-1 (2026.4.5.) 발행


글_ 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두산아트센터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들이 수 세기 동안 남성의 모습을 실제 크기의 두 배로 확대하여 보여주는, ‘유쾌한 마력을 지닌 거울’ 노릇을 해왔다고 썼다. 여성이라는 ‘거울’을 통해 남성이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인 여성을 보며 자신감을 북돋우고, 스스로를 실제보다 더 위대하다고 느끼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울프의 이 같은 진술이 너무 편파적이라는 생각이 드는가? 여기 그림 같은 예시가 있다.



유수연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는 여성국극제작소의 2023년 작 <레전드 춘향전>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을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공연은 세대가 다른 배우들이 다인 일역으로 같은 배역을 소화하며 여성국극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데, 공연을 앞두고 원로 국극배우 김성예 명인이 나란히 춘향 역을 맡은 까마득한 후배 황지영에게 하는 말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렇게 살이 쪄서 춘향이를 어떻게 할 거냐는 잔소리로 시작되는 김 명인의 이야기는 곧 여성국극의 핵심을 찔러 들어간다. 여성국극의 본질적 특징은 여성이 남역을 연기한다는 데 있기 때문에 남역을 연기하는 여성을 ‘남성’으로 보이게 하려면 상대역인 여역의 여성 배우가 ‘여성적’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역이 여성적이지 않다면 남역 또한 남성적으로 보이지 않아 배역의 성별 구분이 흐려진다는 의미다.


무대 위 93년생 황지영의 목소리


국극배우 황지영이 두산아트랩 선정작으로 지난 3월 19일부터 21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선보인 <자네는 왜 그리 굉장히 기다란 담뱃대로 담배를 피이나>는 김 명인이 요구하는 여역 수행, 곧 국극의 ‘여성성 규범’에 대한 의미 있는 대답이다. 과연 여역은 남역을 비추어 확대시켜주는 ‘거울’로만 존재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여정에 배우 한지구가 함께했다.




공연은 무대 한가운데 놓인 침대에서 황지영과 한지구가 긴 담뱃대로 담배를 나눠 피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침대에 화려한 원앙금침이 깔린 것으로 보아 부부로 짐작되는 이들은 바로 이별을 앞둔 춘향과 몽룡이다. 공연이 끝나고 진행된 아티스트 토크에서 황지영은 지금은 불리지 않는 <춘향가> 이본(異本) 가운데 춘향과 몽룡이 담배를 나눠 피우고 이별하는 장면에서 오프닝 장면의 영감을 얻었다고 귀띔했다.


공연은 그동안 황지영이 국극 무대에서 연기해온 숱한 여성 캐릭터들과 한 번쯤 해보고 싶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던 캐릭터들, 그리고 무대 아래의 자연인 황지영의 이야기를 끌어들이며 ‘수행’으로서 완성되는 여성과 여성됨의 이야기를 촘촘히 엮어 나간다. 춘향의 이야기가 날줄을 이루어 단단히 중심을 잡고 있는 동안 그 위에서 선화, 평강, 낙랑, 바우덕이, 바리데기, 뮬란, 잔다르크 등 역사와 고전 혹은 대중미디어 속 여성들의 이름이 씨줄로 교차된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사랑하고 또 안타까워했던 그 이름들 사이에는 ‘군밤타령’을 배우던 어린 소리꾼 황지영과 남역 배우를 비추는 거울 역할에 의구심을 갖고 질문하는 국극배우 황지영, 그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의 규범을 수행하며 상처 입고 분노하는 한국여성 황지영이 있다. 무대 위에서 전개되는 황지영의 여역 수행과 무대 아래에서 이어지는 황지영의 여성으로서의 삶은 독립적으로, 개별적으로, 병렬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교차하고, 간섭하며, 또한 중첩된다. 


공연에서 불리는 노래 가운데 “임춘앵 같은 남역 한 사람만 / 조금앵 같은 남역 한 사람만 / 여성국극은 다시 살아난다 / 전성기가 돌아온다 / 네가 남역을 살려야지 / 역할이 성에 안 차도 / 남역을 위해 희생해야지 / 남역을 빛내줘야지 / 물심양면 도와줘야지”라는 ‘여성국극’의 가사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K장녀’의 애환을 국극 버전으로 옮긴 듯하다. 



특히 후배 남역 배우(한지구)가 자신의 조력을 통해 무대를 인정받고 기뻐하며 환하게 짓는 웃음과 그를 바라보는 황지영의 아연하고도 씁쓸한 표정이 대비되는 장면은 여성국극의 과거-현재는 물론이거니와 대한민국의 과거-현재와도 조응하며 현실을 고발한다. 문학에 ‘82년생 김지영’이 있다면 무대에는 ‘93년생 황지영’이 있는 것이다.


기다리는 자가 아니라 불러들이는 자


그렇다면 여역 배우들은 무대에서 여성성의 수행자로서만 존재해왔을까. 여역의 수행성에 대해 내내 질문하는 공연은 주체성의 힌트를 두 개의 장면으로 제시한다. 공연 전반부에서는 여성국극의 전성기 대표작 중 하나인 <선화공주>의 한 장면이 발췌된다. 선화가 서동을 찾아가 속적삼을 내어주고 나아가 자신의 침실에서 하룻밤 쉬어가라고 온정을 베푸는 장면이다.

 

산나물이나 캐던 미천한 신분의 서동이 공주 선화를 얻기 위해 참요(讖謠)를 지어 퍼트렸다는 설화의 전승은 이 장면을 통해 완전히 전복되는데, 선화가 참요의 피해자가 아니라 실행자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현대 여성의 시각으로는 이 또한 불편할 수 있는 재해석이지만 <선화공주>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한 1950년대에는 매우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해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공연 종반부에 이르러 한지구가 <춘향가> 중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雁隨海, 蝶隨花, 蟹隨穴)이라 / 기러기 바다를 찾고 나비는 꽃을 찾고 / 바다의 게는 구멍을 찾듯이 / 어서 내게 오시오”라며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두 번의 전복이 일어난다. 공연 내내 황지영의 상대역으로 남역 배우를 연기해온 한지구가 춘향이 되어 일종의 극중극으로 젠더 벤딩을 보여주는 것이 하나, 또한 공연 내내 몽룡을 기다리기 싫다며 춘향에게 주어진 역할 수행을 거부해온 황지영이 춘향을 ‘기다리는 자’에서 ‘불러들이는 자’로 재규정하는 것이 다른 하나다.



원전에서는 극 초반 단옷날의 만남에서 춘향이 몽룡의 부름을 반박하며 부르는 노래지만 황지영의 재해석 무대에서는 공연의 마지막 노래로 순서를 재배치하며 춘향의 정체성을 새롭게 부여한다. 물론 이 해석 역시 더욱 빠른 걸음으로 전진하고자 하는 어떤 관객들로부터 ‘몽룡을 버리고 혼자 나아가면 안 되겠느냐’ 같은 새로운 요구와 맞닥뜨리게 되는 불완전한 결말이지만, 그럼에도 춘향에게 다른 선택지를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한 걸음이다.


아직 오지 않은 여성들을 기다리며


마지막 날인 21일 공연이 끝나고 진행된 아티스트 토크는 대화에 참여한 관객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또 다른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공연은 물론 영화 등에서 진행되는, 통칭 ‘관객과의 대화’는 이상하리만큼 관객 성비와 상관없이 남성 관객들에게 발언의 비중이 쏠리는 특징을 갖는다. 남성 관객들의 적극성을 보여주는 단면이지만 또 한편 맨스플레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주는 산증인을 만날 수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공연의 아티스트 토크가 이례적으로 여성의 목소리로만 채워진 것은 황지영이 던진 질문을 여성 관객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렸는지, 또 얼마나 뜨겁게 응답했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다(마이크를 든 여성 관객들의 떨리는 목소리는 그 간절함과 뜨거움의 깊이와 온도를 짐작케 한다).


여러 의미 있는 의견이 오가는 가운데 기억에 오래 남은 것은 ‘떠나지 않고 남아 그 자리를 지키는 자’로서 국극배우 황지영에 대해 경의를 표하던 목소리다. 어떤 세계에서 ‘무슨 영광을 보려고 거기 남아 있느냐’ 같은 걱정 혹은 비난의 목소리는 쉽게 들을 수 있지만 이렇듯 영광은커녕 내일도 기약할 수 없는 무대를 묵묵히 지키는 예술인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목소리는 듣기 어렵다. 특히 전통예술의 세계, 그것도 낡고 쇠락하고 지나간 것으로 여겨지는 여성국극의 세계라면 더욱 그렇다.


웹툰 <정년이>가 동명의 창극과 드라마로 인기를 끌면서 여성국극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일어나고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 여성국극의 위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공연예술계에서 젠더 프리 캐스팅이 활발해지면서 여성 배우가 남성 캐릭터를 연기하거나 기존의 남성 캐릭터를 여성 캐릭터로 재해석한 무대를 선보이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었다.



여성국극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일성인 ‘모든 배역을 여성 배우가 맡아 연기한다’라는 특장점이 더는 여성국극만의 고유성이 아니게 된 것이다. 물론 젠더 프리 캐스팅을 시도하는 공연이 일시적으로 전원 여성극의 형태를 띨 뿐 장르적으로 특성화된 것은 아니기에 여성국극의 고유성을 침범할 정도는 아니지만, 앞서 서술한 여성국극의 엄격한 성역할 규범이 이러한 동시대 여성극과의 비교선상에서 퇴행적인 인상을 주는 것은 분명하며, 이는 여성국극이라는 장르의 본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이제 ‘모든 배역을 여성 배우가 맡아 연기한다’라는 장르 정체성을 넘어 ‘어떤 여성인가(혹은 어떤 남성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때가 된 것이다. 여성국극제작소가 지난해 선보인 신작 <벼개가 된 사나히>가 ‘어떤 남성인가’에 대한 대답이었다면, 황지영의 이번 공연은 ‘어떤 여성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공연이 대답의 전부는 아닐 것이며, 그렇기에 황지영이 앞으로 보여줄 무대 위 여성들, 아직 오지 않은 여성들을 더욱 애타게 기다려볼 일이다. 어쩌면, 여성국극의 미래는 황지영의 두 어깨에 달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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