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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위트 속에 담긴 평범한 어른들의 진실: 모므로살롱 <성인물>

공연비평

Vol.128-1 (2026.4.5.) 발행

           

글_ 장지원(춤평론가)

사진제공_ 18th ARKO SELECTION/©Sang Hoon Ok



모므로살롱은 정체성이 강한 단체이다. 그들은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 집중하고 이를 발견하여 몸짓언어와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공연예술로 구현하는 창작집단임을 스스로 밝히고 구현해 왔다. 이번 2026년 창작산실 무용 부문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작품인 모므로살롱의 신작 <성인물>은 이가영 안무로, 이가영과 안겸이 연출을 맡았다. 3월 27~29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50여 분의 짧은 러닝 타임으로 공연되었는데, 그들 특유의 독특한 시각적 이미지, 위트에 얹힌 비틀기, 독창적인 신체언어가 5명의 무용수들(안겸, 이가영, 이학, 장경민, 박진호)을 통해 자유롭게 표현되었다. 움직임의 구체적 질감은 이전 모므로살롱과 크게 상이하지 않지만 특수한 감정에 주목해 자신들의 스타일로 풀어간 점은 성공적이었다. 


<성인물>이라는 야릇한 제목이 도발적이고 묘한 뉘앙스를 풍기며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실상은 팝업 무대와 라이브 시네마를 활용해 ‘어른’들이 느끼는 일상의 감정들’을 단편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하며 집요하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모므로살롱의 작품들 중에서도 흥미로운 하나였다. 주제면에서 ‘어른’으로 대표된 현대인들은 감정을 숨긴 채 자신들이 처한 다양한 상황 하에서 묵묵히 역할을 수행하는데 부제인 ‘Unspoken Duties’는 솔직, 담백하게 주제를 돕고 있었다. 시놉에는 '하루를 살아가고 견뎌낸 이들의 모습'을 크게 틀에 구애받지 않고 구현해 낸 무용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스토리텔링이나 텍스트 없이 움직임만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했고, 대중적 요소도 적절하게 담겨 무겁지 않게 즐길 수 있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에는 컨테이너 박스를 연상시키는 투명한 세트 안에 긴머리 가발을 쓰고 있는 게 인상적인, 연구원 가운을 입은 네 명의 인물이 마네킹처럼 전시된 상태로 관객을 마주한다. 그들은 ‘어른’으로 대표된 인물들이다. 이때 무대 위에 위치한 스크린에서는 ‘스팸’ 통조림 광고가 보인다. 마치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처럼 해석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몸에 해롭지만 끊을 수 없는 가공식품 스팸처럼 우리의 일상은 권태롭지만 도피처는 없이 사각 박스 안에 갇혀 반복되고 있음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무기력한 표정의 4명의 무용수들은 초반부에는 단순하고 반복되는 모티브 동작을 펼친다. 이처럼 다소 의미 없는 동작의 반복이 이어지는 와중에 의상을 변화시켜 공간을 변화시키고 이후 휘몰아치는 움직임들로 몰입도를 높였다. 절제된 듯하면서도 잘 맞는 호흡 속에서 그들의 열정과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특히 심플하게 구성된 동선 속에서 


투명한 세트와 그곳 여기저기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우리는 그들을 여과 없이 바라볼 수 있기에 관객은 ‘관찰자’ 혹은 ‘감시자’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관객은 그들이 마련한 다양한 상징물들과 행동을 보면서 이면에 감춰진 위선을 보게 되고 의상을 바탕으로 연구원에서 직장인, 슈퍼맨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그들의 긴 빨간 넥타이가 슈퍼맨의 망토로 변하는 모습은 DV8 무용단의 작품을 연상시키면서도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유머 코드였다. 작품 중 이들이 갇혀있는 세트 밖에서 당근을 심고 유리창을 닦는 무용수의 등장은 이중적 암시이다. 그는 무대 안의 인물들과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데 투명한 벽을 사이에 두고 연구원, 직장인이 슈퍼맨처럼 일인다역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며 경제적 풍요함을 추구할 때 그에 따르는 자유의 포기를 그렸다면 배달원 복장을 하고 배달 혹은 유리창을 닦는 누군가는 경제적 풍요함보다는 당근을 심으며 마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희망찬 의지처럼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한다. 


암전 이후 새롭게 등장한 빨간 박스는 4명이 함께 하던 공적인 공간과 대조되는 사적 공간으로, 이곳에서는 안겸의 솔로로 식사와 배설, 샤워 같은 일상적인 행위들이 이루어지지만 그 순간에도 자유롭지 못하며 누군가를 의식하는 모습이 비쳐진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남을 의식하며 ‘책임과 도리’라는 무거운 짐을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투영했다. 이 밖에도 반복되는 음악은 매너리즘에 빠진 일상, 반대로 무대 위를 가득 채운 다채로운 오브제들은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대변했다. 이들의 재치 있는 연출은 식사를 누군가가 전해줄 때 영화 올드보이처럼 조그만 배식 창구로 건넨다든지, 전화부스를 샤워 박스로 치환하기도 하고 이 밖에도 팝업 카드처럼 펼쳐지는 시각적 장치들에서 드러났다. 작은 소극장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큰 공간처럼 확장시켰고 실감 증폭되는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주관적이고 초현실적인 내면을 무대 위 스크린을 통해 송출하는 영상이다. 이러한 방식이 온전히 새롭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전작 속 군무 씬에서도 사용되었고, 모므로살롱이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시점이 아닌가 싶다. 스크린을 통한 내면의 표현은 단순한 영상 삽입이 아니라 신체의 확장된 무대로 기능한다. 무대 위의 몸은 외면, 스크린 속 이미지는 내면으로 구분되며 이 구조는 신체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심리적 진동과 초현실적 감각을 보완한다고 하겠다. <성인물>은 그간 때때로 모므로살롱이 보여왔던 B급 감성을 통해 기존의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재치와 어설픔, 촌스러움 등의 유머 코드를 내세워 상상력, 도전, 창의력을 발산했던 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출구 없이 꽉 막힌 세트 안에서 작은 자유를 추구하는 무용수들의 모습은 무표정한 얼굴로 오래 참는 마음에 주목했다. 비록 현실성 없는 꿈으로 채워진 삶일지라도 오늘을 견뎌내는 것 자체를 유의미하게 그려낸 작품은 묵묵히 오늘을 살아내는 모든 보통의 ‘성인'에게 건네는 위로이며 과하게 메시지를 주입하지 않기에 오히려 부담 없이 그들을 관찰하게 된다. ​


어찌 보면 우리는 모두 ‘성인’이라는 명목 아래 겉모습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을 요구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피로와 스트레스에 직면하지만, 이들의 <성인물>은 말하지 않아도 뒤따르는 암묵적인 책임감을 부각하며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당연시되는 역할과 숨겨진 의무감을 사실적이나 살짝 비틀어 그려냈다. 지척인 소극장 무대에서 다채로운 이미지를 바탕으로 강렬하게 다가온 모므로살롱의 공연은 다시금 ‘성인’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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