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엽의 뒤를 이어 안애순이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후 국립현대무용단이 활발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파울로 코엘류의 동명소설인 ‘11분’을 여섯 명 젊은 무용가들의 해석으로 무대에 올리고 현대춤아카데미를 개원하여 현대무용 꿈나무를 모집하는 등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2013년 송년기획공연으로 마련된 <춤이 말하다-Cross Cut, (12월 8일~15일, 자유소극장)> 역시 그러한 시도의 일환이었다.
<춤이 말하다>에는 7명이 출연한다. 현대무용의 이나현(이용인), 발레의 김지영과 김주원, 전통춤의 김운태 등 장르를 대표하는 현역 춤꾼들을 포함하여 신예무용가인 이선태와 비보이 퍼포머인 디퍼(김기헌), 스트리트댄서 안지석 등이다. 이들이 차례로 등장하여 자신의 춤을 보여주면서 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김지영이 하얀 클래식 튀튀를 입고 등장한다. 연습실에서 짐을 풀듯 가방을 내려놓고 물병을 꺼내어 물을 마시고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한다.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연습실에서 벌어지는 발레리나의 일상이 담담한 톤으로 소개된다. 그가 출연했던 지젤에서의 독무장면, 최근 공연했던 롤랑프티 작품에서의 카르멘 역을 실연하며 발레리나의 삶과 애환을 이야기하다가 이선태를 무대로 불러내어 현대무용동작을 즉흥으로 실험해보기도 한다. 큰 무대에서보다 소극장무대에서 보는 김지영은 친근하고 정감이 넘친다. 열 살부터 시작된 20여년의 고달픈 연습생활과 몸에 대한 자부심이 차분한 목소리로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곧이어 등장한 이선태는 먼저 콩쿨춤과 자기춤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콩쿨에서 입상한 춤을 보여준다. 김기헌과 안지석이 연이어 등장한다. 리듬이며 음악이며 현대무용이며 교과서에 있음직한 일반론을 풀어놓는 피상적 언어들이 공연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관객에 대한 메시지 없이 상대방과 몸의 기량을 겨루는 비보이 배틀(B boy battle)이 과연 춤일까 하는 의문이 머리를 든다.
사물놀이패와 함께 김운태가 등장한다. 채상소고춤으로 유명한 전통무용가인 김운태(金雲泰)는 1963년 전북 완주생이다. 채상소고춤은 머리에 기다란 흰 끈이 달린 상모를 쓰고 왼 손엔 작은 북, 바른 손엔 북채를 흔들면서 온 몸을 돌리는 춤이다. 머리에 뒤집어 쓴 상모위에선 채상이 돌고 손에선 소고가 놀며 바닥을 차올리며 높이 솟은 발끝 위에선 몸이 뒤집힌다. 이 셋의 움직임이 각각 독립적이라는 데에 김운태 춤의 매력이 있다. 일곱 살 어린나이에 여성농악단에서 시작된 그의 춤 연륜이 이제 44년이라고 한다. 한마디 말도 없이 무대를 내려가는 그를 사회자가 다시 불러낸다. “이러한 전통 춤을 어떻게 현대화할 수 있을까요?” 대답은 간명했다. 그리고 옳았다. “먹히면 나오고 안 먹히면 들어가야지요.”
이나현의 무대가 마지막 순서다. ‘천부적 춤성을 지닌 현대무용계의 신데렐라’라고 평가했던 무용가다. 자신만의 무브먼트를 갖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녀는 인간의 신체라는 껍데기에서 벗어나고자하는 노력이 춤이고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몸을 낯설게 만드는 것이 자기 춤의 시작이라고 설명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춤생활을 통해 배운 것은 몸을 최대한으로 확장하여 스텝 폭을 넓히고 뼈와 관절을 가능한 한 크게 사용하는 것이라고 부연한다. 관절꺾기, 장애인 같은 움직임, 불편한 자세 등을 흔히 보여주던 안무의 특징은 이러한 산물인 모양이다. 이선태와 함께 즉흥을 선보이면서 듀엣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 그를 믿고 몸을 맡기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녀의 솔직함에 귀 기울이면서 ‘순간(The Momentum)'을 마지막으로 큰 무대에서 사라졌던 그녀의 춤이 아쉬워졌다.
다양한 장르가 한 무대에서 만나 춤을 섞으면서 무용가가 직접 관객에게 말 걸기를 시도한 기획은 신선했다. 95분의 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현대무용의 난해성에 투덜대면서 무대에서 멀어져간 관객들을 공연장으로 불러들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획자는 이러한 형식을 ‘렉처 퍼포먼스(lecture performance)’라고 명명한다. 관객에 대한 겸손한 표현은 아니다. ‘렉처’란 권위적인 말보다는 ‘관객만나기’나 ‘관객과의 대화’, 혹은 ‘솔직한 무용가’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았을까. 김운태가 무대에서 대답한대로 무용가의 몸은 관객과 함께하는 몸이고 관객의 눈치를 보는 것이 춤이다. 원론적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깊이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출연자를 가려내는 것은 다음을 위한 안애순의 숙제일 것이다.
글_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회계학과 명예교수)
사진_ 국립현대무용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