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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결핍을 거름 삼아, 고립감을 느끼는 모든 이에게 건네는 진솔한 위로의 춤: Dance Project EGERO 여덟 번째 정기 공연 고립 환상

공연비평

Vol.129-1 (2026.5.5.) 발행


글_ 이상헌(춤평론가)

사진_ 박병민



관객이 입장하는 시간에 무대는 이미 나직한 숨을 내뱉고 있었다. 희미한 조명 아래 놓인 네 개의 흰 직육면체 오브제와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들. 그 위로 내리는 비 영상은 방영미의 <장마>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관객은 언제 그칠지 모를 장맛비의 습기 속으로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지난 4월 25일, 26일 부산민주공원 소극장에서 열린 Dance Project EGERO의 여덟 번째 정기 공연 <고립 환상>(연출·안무·기획 이용진)은 시작부터 정교한 연출로 막을 열었다. 이번 공연은 방영미의 <장마>, 이민선의 <미아>, 정두순의 <묻다>, 이용진의 <귀로>로 이어지는 옴니버스 구성으로, 이용진과 강건이라는 두 매개자를 통해 유기적인 생명력을 얻는다.


공연을 관통하는 주제는 고립(또는 고독)이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3부 「귀향」에서 오랜 방랑 끝에 자신의 고독으로 돌아와 이를 ‘나의 고향’이라 부르며, 타인에 의해 오염된 자아를 씻어내고 자아의 정화를 꿈꿨듯, 이번 공연은 타자에 의해 소외된 고립을 스스로 선택한 '충만한 고립'으로 승화시키는 치유의 과정을 보여주었다. 특히 한동안 무대를 떠나있던, 이른바 ‘중고 신인’들을 호명하여 그들의 삶의 궤적을 무대로 불러낸 것이다.


방영미의 <장마>, 켜켜이 둘러싼 고립을 거름 삼아 추는 춤




처마에 웅크린 방영미가 언제 그칠지 모를 비를 피해 옷을 껴입기 시작한다. 웃옷을 입고 나서 처마를 나서서 바닥에 놓인 더 두터운 외투와 치마들을 입고 또 입는다. 겹겹이 몸을 감싸는 옷은 현실의 무게이자, 아픈 자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자기합리화의 층위다. 비대해진 몸은 역설적으로 그 안의 존재를 지워버리지만, 이는 환경에 적응하며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무용수의 ‘몸 틀(schéma corporel)’이 현실의 무게를 어떻게 감내하고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움직임은 고립, 억압, 고통, 저항 상실 등 현실 무게를 상징하는 듯 느린 처절함으로 이어진다. 치마를 한 움큼 모아 쥐고 마치 돌덩이를 안고 가듯 비틀거리다가 격렬한 동작에 이어 긴 멈춤을 보여준다. 비가 그친 영상은 묘한 색 번짐으로 변하고, 방영미는 빗방울과 눅눅한 습기를 털어내는 것처럼 망사 치마로 몸을 툭툭 치며 다시 처마 밑으로 다가간다. 비는 다시 내리고 웃옷 몇 벌을 벗어 정리하면 오브제의 변화가 생기면서 다음 작품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장맛비는 자기가 어찌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현실 상황이다. 그의 표현대로 현실이 주는 아픈 자극을 감당하려고 자기합리화와 살아 내려는 노력이라는 옷을 껴입었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무감각해졌다. 마지막까지 옷을 다 벗지 않은 것은, 현실이 나아지거나 해소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보인다. 이 작품에서 ‘고립’은 그것이 고립이라는 인식을 할 여유조차 없이 밀려온 현실이었다. 방영미는 이 작품에서 고립을 자양분 삼아 다시 춤을 추는 단단한 생의 의지를 확인시킨다.


이민선 <미아>, 미로 속에서 길을 찾는 능동적 존재의 춤



앞 작품의 오브제가 해체되어 미로처럼 무대를 점유하면, 이민선은 변하는 벽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사방이 막힌 공간에 갇힌다. 다시 벽은 흩어져 무대 뒤에 옮겨 세워지고, 그녀는 무대 중앙에 비치는 작은 사각 조명 안에 선다. 시선은 멀리 두지 않고, 몸 주변을 벗어나지 않는다. 움직임도 확산하지 않는다. 무엇인가에 의해 갇힌 느낌이다. 뒤편 오브제에 천천히 미로 문양이 생기기 시작한다. 움직임은 격렬해지다가 약해지기도 하면서도 좁은 조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민선은 미로를 두려움, 막막함, 규격화한 안정으로 느낀다. 미로에서 지도는 소용없다. 미로를 벗어나는 길은 지나온 길을 되짚어 가는 방법뿐이다. 그녀는 ‘지도를 따라 걷는 사람이 아닌, 지도를 그려 나가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에 가서야 갇혀있던 조명 밖으로 조심스레 한 발을 내디디면, 오브제 표면에 그려진 미로가 산산이 흩어진다. 여기서 ‘미아’는 길을 잃고 헤매는 존재에 그치지 않고, 출구를 찾아 기어이 경계 밖으로 나아가는 능동적 존재다. 미로에는 풍경이 없고, 바람이 없지만, 내면의 노래에 따라 향기에 이끌려 자기만의 지도를 그리며 출구로 나아간다. 이 작품에서 ‘고립’은 단절과 체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나아가게 만드는 동력이다.


정두순 <묻다>,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춤



무대 정면 객석 바로 앞을 비추는 핀 조명 아래 정두순의 눈빛이 갈망으로 번뜩인다. 생상스의 음악이 나온다. ‘빈사의 백조’다. 춤은 마치 낡은 필름을 보는 듯 애틋하게 이어진다. 두 남자(강건, 이용진)가 그녀를 들고 무대 뒤쪽으로 데려가면, ‘백조의 호수’ 음악이 나오고, 그녀가 춤춘다. 두 남자가 오브제 한 단을 들고 와 계단처럼 쌓는다. 그녀는 밀려나 발판 끝에 위태롭게 서 있다가 어쩔 수 없이 한 칸 올라선다. 이런 식으로 계단은 네 칸이 되고, 밀리다시피 꼭대기에 선 그녀는 불안하다. 이 장면은 정두순이 젊은 시절 프로 발레단에서 겪은, 무용단의 냉정한 시스템에 저항할 수 없었던 상황을 표현한 것 같다. 올라서지 않으면 물러나야 하는 시스템 때문에 끝없는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주저앉아 슈즈를 벗고 기다시피 계단을 내려온다. 다시 처음의 핀 조명이 비추고 그녀가 조명 안으로 들어가면 ‘빈사의 백조’ 음악이 나오고 춤을 춘다. ‘빈사의 백조’는 죽어가는 백조의 모습을 아름답고 장엄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발레리나라면 누구나 무대에서 추고 싶어 하는 솔로 작품이다. 두 번의 ‘빈사의 백조’는 각각 아련한 추억과 덤덤하게 받아들인 현재다. 그 아름답던 시절의 백조가 지금도 죽지 않고 나름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고립’은 시스템 안에서는 무기력했던 기억과 무대에서 내려온 후 자기를 다독이며 지낸 시간이라는 이중적 의미다. <묻다>는 결국 사라지고 남은 것들에 대해 스스로에게 던지는 정직한 질문이다.


이용진 <귀로>


이용진은 앞선 서사들을 묵묵히 정리하며 무대에 오른다. 강한 빛과 구름 같은 문양이 흘러가고 세밀하고 강렬한 움직임이 이어진다. 아래로 내린 조명기에서 쏟아지는 강렬한 빛과 고보 문양이 어우러져 무대는 폐쇄와 변화가 공존하는 유동적 공간으로 변모한다. 움직임은 미묘한 반복과 규칙 없는 변화로 가득 찬 일상을 표현하는 것 같다. 한동안 공간감과 움직임의 다이내믹한 조화가 이어지다가 뒤편에 세워 둔 오브제에 영상이 하나씩 비춘다. 파도치는 밤 해변, 아침의 해변, 낮의 바닷가 건물들, 섬이 보이는 바다 풍경 앞에 출연한 세 명의 무용수와 이용진, 강건이 자리 잡으면서 커튼콜로 이어진다. 이용진의 작품은 앞선 세 작품을 갈무리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용진은 자기 작품에서 욕심내지 않았다. 사실 '중고 신인 발굴'이라는 이 공연 콘셉트로 보면 이용진이 굳이 무대에 나설 필요가 없었는데도 무대에 선 것은 공연의 연출적 완결성 때문으로 보이고,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 공연은 기획과 연출이 반 이상 했다. 방영미, 이민선, 정두순의 춤은 진솔하게 춤을 춘다는 것이 이런 것임을 보여주었는데, 그들에게서 진솔한 춤을 끌어낸 건 기획자 이용진이었을 것이다. 또한 옴니버스 형식을 갖추기 위해 이용한 직육면체 오브제는 무대에 입체감을 더한 것은 물론이고, 각 작품의 주제를 공간화하면서 소극장 무대의 물리적 한계를 효과적으로 극복했다. 이런 점들과 함께 이 공연의 중요한 가치는 부산에서 춤꾼들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한탄만 하지 않고 결핍 자체를 콘텐츠로 삼아 공연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라는 허수경 시인의 시구가 떠오르는, 에게로의 이번 작업은 우리 시대 고립감을 느끼는 모든 이에게 건네는 진솔한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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