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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AI로 구현불가능한 인간의 피지컬한 움직임으로 감각을 일깨우다: <딥스타리아>

공연비평

Vol.129-1 (2026.5.5.) 발행


글_ 장지원(춤평론가)

사진제공_ GS아트센터



세계적 안무가 웨인 맥그리거(Wayne McGregor)가 GS아트센터에서 3월 27-28일 내한 무대를 가졌다. 웨인 맥그리거 무용단의 최신작 <딥스타리아(Deepstaria)>로 방문했는데, 작품은 영국 로열발레단 첫 상주 안무가인 그가 2024년 프랑스 몽펠리에 댄스 페스티벌에서 초연했다. 같은 해 뉴욕타임스 선정 '최고의 공연' 리스트에 올랐다. <딥스트리아>에서 그는 컨셉, 연출, 안무 및 디자인을 맡았다. 여기서 알 수 있듯 다방면의 능력과 현대무용가로서 뛰어난 재능을 가졌기에 로열발레단에서 발레에 현대적 감성과 움직임을 수용하기 위해 상주 안무가로 그를 선택한 것이다. 맥그리거는 1990년대부터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VR·홀로그램·AI를 안무에 접목해왔고 구글과 공동 개발한 AI 안무 툴 <AISOMA>, 자신의 DNA 데이터를 활용한 <오토바이오그래피>(2017) 등으로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지속적으로 넘나들었다. 사실상 테크놀러지에 약한 것이 예술가들이라고 인식되던 과거와 달리 웨인과 같은 뛰어난 인물들은 예술에 이를 적용해 자신들의 예술적 역량을 확대하고 한계를 극복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안무가인 웨인 맥그리거는 1970년에 잉글랜드 스톡포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존 트라볼타의 영화를 보며 춤의 매력에 빠졌고, 춤에 재능을 보인 그를 부모님은 지역 댄스 클럽에 보냈다. 그곳에서 라틴 아메리카 댄스 같은 사교댄스로 시작했으나 이후 리즈대 브레튼홀칼리지, 뉴욕 호세리몽스쿨 등에서 정규 교육을 받으며 무용가로서의 기본기를 갖췄다. 1992년에는 무용단 랜덤댄스(현 웨인맥그리거컴퍼니)를 창단해 안무가로서 활동을 시작했고, 무용단은 런던 새들러스웰스 극장의 첫 상주 단체로 초청돼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맥그리거는 전통 발레와 현대무용의 경계 없이 독창적인 안무로 인정받으며 앞서 언급했듯이 2006년 현대무용 출신 안무가로는 역사상 처음으로 영국 로열발레단 상임안무가로 임명됐다. 그의 작품은 발레와의 융합을 통해 파리오페라발레, 볼쇼이발레, 뉴욕시티발레, 네덜란드댄스시어터 등 세계 유수 발레단과 함께했다. 2024년 영국 국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고, 이후 로렌스 올리비에상 무용부문 공로상을 수상한 이 시대의 거장이 되었다. 




이번 공연 <딥스타리아>는 심해에서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는 희귀 해파리 종에서 제목을 빌려왔다. 이 해파리는 뼈대 없이 얇은 막으로 이뤄져 다양하게 변형이 가능하고 심연의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빛이라는 표현처럼 무용수들의 분절적이고 액티브한 움직임은 짙은 블랙 속에서 발광하듯 빛났다. 특이한 점은 우리에게는 생소하게 빛을 99.965% 흡수하는 '밴타블랙' 기술로 무대를 미지의 우주처럼 그려낸 것이다. 어둠이란 무한한 가능성의 색상으로 다른 것을 돋보이게 했다. 그가 극한의 어둠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가 일상에서 수많은 시각 정보에 압도당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시각이 사라진 극한의 상황에서 발현되는 원초적인 생물학적 감각에 질문을 던지고자 의도했다. 어둠 속에서 자발적인 감각의 사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여기에 머신러닝 기반 오디오 엔진 '브론즈 AI'가 매 공연마다 다른 사운드를 생성하며, 무용수들은 그 변화에 즉각 반응해 예측 불가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는 점 역시 획기적인데 사실상 확인이 불가능한 점이 아쉬웠다. 


초반부 무대는 다소 기대에 못 미쳤다. 추상적이고 장대한 개념은 미니멀한 공간과 반복적인 음악, 발레와 현대무용의 그 중간 어디에 있는 움직임 어휘로 현대의 감각에 뒤떨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가며 맥그리거의 역량은 기술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신체에서 살아 숨 쉬었다. 무용수들은 개개의 신체가 그려내는 다채로운 이미지로 어둠 속 희미한 불빛에서 해파리가 미세하게 움직이듯 스스로 반응하며 AI의 분석보다는 맥그리거가 강조하는 ‘신체지능’을 마음껏 과시했다. 반복적인 음악은 규칙적이나 그들의 움직임은 예상을 벗어나고 모던했던 움직임도 파워풀한 에너지가 충만하게 공간 전체를 감싸며 동시대성을 반영했다. 여기서 언급하는 동시대성은 해체와 분열, 미세한 조합과 다양성이다. 스펙터클하고 화려한 이미지 없이도 인간 신체가 완성하는 이미지가 감각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중후반 구성과 정교한 연출이었다. 맥그리거는 AI를 단지 기계적 도구가 아닌, 함께 작품을 만들어 가는 ‘11번째 무용수’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그의 전위성을 드러냈다.  




우리는 미래에 기술이 인간을 잠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맥그리거는 AI가 일반 대중의 인식에 자리 잡기 이전부터 인간 본성을 AI를 통해 표현하고 작품을 제작하면서 오히려 패러다임을 확장해왔다. 또한 줄리언 오피, 올라퍼 엘리아슨 같은 시각예술가, 막스 리히터와 톰 요크에 이르는 음악가와 협업해 완성도를 높였다. 이번 <딥스타리아> 역시 밴타블랙과 AI 사운드 같은 최첨단의 요소들을 사용했지만 궁극적으로 끝을 알 수 없는 심해와 우주를 배경으로 인간의 삶과 소멸, 존재의 본질을 그려내고자 했던 주제 면에서 온전히 인간적이었다. 특별히 무용수나 관객 스스로가 AI로 구현 불가능한 인간의 피지컬한 움직임으로 감각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딥스타리아>는 미래의 불안을 극복하는 대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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