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비평
Vol.129-1 (2026.5.5.) 발행
글_ 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국립극장

젊은 소리꾼들의 참신한 소리판을 내세운 국립창극단의 ‘절창’ 시리즈가 어느덧 여섯 번째 무대를 맞이했다. 그동안 김준수-유태평양, 민은경-이소연, 이광복-안이호, 조유아-김수인, 왕윤정-김율희 등이 무대에 오르며 창극단원뿐만 아니라 민간에서 활발하게 소리 무대를 펼쳐가고 있는 젊은 소리꾼들이 자신들의 시각으로 전통판소리를 다시 부르며 현재의 관객들과 만났다.
여섯 번째 ‘절창’ 무대의 주인공은 최호성과 김우정으로, 조유아-김수인에 이은 두 번째 혼성 듀오다. 공연은 4월 24일과 25일 양일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올려졌다.
여섯 번째 ‘절창’으로 돌아온 또 다른 심청 이야기
최호성은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변강쇠, <귀토>의 용왕, <베니스의 상인들>의 튜발, <이날치傳>의 정춘풍, 작은창극 시리즈 <옹처>의 진옹 등 개성 있는 인물을 소화하며 인상적인 무대를 만들어 왔다. 지난해에는 전주대사습놀이 명창부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우정은 지난해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국립극장이 공동제작한 <심청>에서 심청 역으로 호연을 선보였고, <정년이>의 권부용, <만신: 페이퍼 샤먼>의 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옹녀, 작은창극 시리즈 <덴동어미 화전가>의 청춘과부 등 다양한 배역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국립정동극장에서 소리극으로 올린 <서편제>에서도 무르익은 연기와 소리로 주목받았다.
남인우 연출은 김준수-유태평양의 <수궁가>, 민은경-이소연의 <춘향가>와 <적벽가>에 이어 이번에는 <심청가>에 도전했다. 여섯 번의 ‘절창’ 무대에서 세 번의 공연이 그의 연출로 올려진 것만 봐도 이 시리즈에 대한 그의 애정과 창극단이 그에게 보이는 신뢰를 짐작할 수 있다.
남 연출은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린 ‘연출의 글’에서 끝내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심청의 서사와 화해하게 된 과정을 서술하고, 고수 이향하 또한 ‘판소리터그의 글’에서 전통판소리에서 현재의 감각과 불화할 수밖에 없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연을 이끌어가는 최호성과 김우정 역시 장면과 장면이 전환되는 사이 이야기 속 심청의 선택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답답함을 토로한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발화되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전통과 현대가 주고받는 대화나 다름없다.
귀한 아기 심청은 어쩌다 인당수 제물이 되었나
공연은 원작 <심청가>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주요 눈대목의 배치를 바꾸어 새로운 이야기로 재편한다. 무대에서 두 소리꾼이 가장 먼저 부르는 대목은 연꽃을 타고 환생한 심청이 왕을 만나기 전, 왕이 궁궐의 화초를 구경하는 ‘화초타령’이다. 두 소리꾼이 기교를 다해 각양각색의 꽃들이 피어난 아름다운 풍광을 묘사하고 나면 이야기는 심청이 왕과 혼인해 왕비가 되고 아버지 심봉사와 재회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고 처음으로 돌아가 심청의 탄생과 어머니 곽씨 부인의 죽음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여섯 번째 ‘절창’ 무대의 <심청가>는 사계절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풍광 속에 태어난 귀한 아기 심청이 어머니를 잃으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곽씨 부인이 죽고 나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탄다. 개울에 빠진 심봉사가 화주승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뒤 눈을 뜰 수 있는 방법을 듣게 되는데, 그러자면 공양미 삼백석이 필요하단다. 그리고 없는 형편에 지킬 수도 없는 약속을 하고 한껏 근심에 잠겨 있는 심봉사 앞에 인당수에 바칠 제물용 처녀를 사러 온 남경장사 선인(船人)들이 나타난다. 화주승과 남경장사 대목을 부르고 난 김우정은 이 새로운 이야기에서 느낀 소리꾼으로서의 소회를 털어놓는다. 원작에서 심봉사에게 눈을 뜰 방법을 알려주고 공양미 삼백석을 조달할 방법을 제시하는 화주승과 남경장사의 존재가 마치 해결사나 구원자처럼 느껴졌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그동안 제대로 보지 못했던 그들의 탐욕에 대해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후에 신이 되는 존재
공연은 심봉사의 무능을 직격하며 이 이야기가 심청의 효심에 대한 찬가가 아니라 심청을 포함해 구조적 폭력에 희생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도의 노래임을 분명히 한다. 심청이 떠난 뒤 심봉사가 뺑덕에게 이용당하고 버림받는 모습이나 맹인잔치 가는 길에 만난 마을 여인네들과 시시덕거리며 수작을 부리는 장면 등은 원작에서 해학성을 끌어올리는 장치들이지만 재편된 이야기에서는 모두 그의 무능과 무책임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기능한다.
여기에 최호성이 일부 판본에 등장하는 세 번째 부인 안씨 부인의 존재를 언급하자 안 그래도 마뜩찮은 눈으로 심봉사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던 관객들의 마음은 더욱 차게 식는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이렇듯 차가워진 관객들의 마음을 어떻게 녹이며 결말을 짓게 될까. 원작에서 심청은 왕비가 되어 아비의 눈을 뜨이게 하는 기적을 베풀고, 지난해 오페라 연출가 요나 김이 판소리시어터로 선보인 공연에서는 심청이 이야기에서 퇴장하는 파격적인 결말을 선보였다. 여섯 번째 ‘절창’ 무대는 남경장사 선인들을 따라간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기까지의 행로를 보여주며 이를 거대한 제사로 마무리한다.


‘연출의 글’에서 남 연출은 “한국 신화의 신들은 처음부터 신이었던 존재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사후에 신이 되어 인간을 보살피는 존재”라고 썼다. 공연 종반부에서 부르는 ‘행선길’에는 이 공연을 위해 새롭게 창작된 더늠이 들어가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 나이 열아홉 살, 현장 실습 나온 후에 홀로 배관 점검 나갔다 밀려오는 역한 냄새 정신 잃고 쓰러진 채 세상을 떠났으니 어찌 아니 서러우랴. 가족 봉양 셀프 자립, 최선을 다했는디 은폐 기만이 웬 말이냐.” 이렇듯 서러운 여러 혼백들이 눈에 와 보이니 내가 죽을 징조로구나.
짧은 더늠에는 그동안 언론지상에 보도된 여러 산재사고 현장에서 일어난 죽음들이 무수히 스쳐 지나간다. 남 연출은 심청을 ‘자신의 생을 던져 부모를 살리고 오구신이 된 바리데기’처럼 희생을 통해 신이 되어 모든 인간을 굽어 살피는 존재로 재해석한다. 현대의 심청에게는 더 이상 자신을 왕비로 간택해줄 왕이 필요하지 않으며, 그의 희생은 왕비가 되는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인간의 눈과 손이 닿지 않는 곳을 바라보고 어루만지는 신화적 부활로 돌아온다.
공연은 판소리터그 이향하의 다짐처럼 ‘익숙한 이야기를 다시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둘러싼 시선을 다시 세우려는 시도’를 성공적으로 보여주며 전통과 현대의 대화를 또 한 뼘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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