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무용단(대표: 윤성주)이 변하고 있다. 현대무용가 안성수를 초청하여 안무를 맡긴 ‘단’(2103.4.11~12, 해오름극장)이 현대무용과 한국무용 장르간의 벽 허물기를 시도한 변화의 첫 번 째 조짐이었다면 2013년 신작 ’신들의 만찬‘(2013.9.4~7, 하늘극장)은 전통적으로 내려온 ‘삶과 죽음(이승과 저승)’, ‘신과 인간’에 대한 2분법적 인식을 현대적 시각에서 새롭게 해석하면서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된 국립무용단의 첫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삶과 죽음은 전혀 다른 것이고 이승과 저승간의 거리는 한없이 멀다.”, “저승사자는 무섭고 혐오스러운 존재다.”,“신과 인간은 다르다. 신은 엄격하고 완전한 존재다.”...고정관념화 되된 이러한 인식이 “삶과 죽음은 연속된 것이고 망자의 입술에 물리는 종이 한 장 차이 뿐이다.”, “저승사자는 하나의 직업일 뿐, 그들에게도 감정과 위트가 있다.”,“신도 사람과 같이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춤출 수 있는 존재다”로 새롭게 해석해 본다면 어떨까.
우선 무대공간이 바뀌었다. 객석과 무대로 양분된 전형적 극장형식이 아닌 마당놀이에 적합한 하늘극장이다. 낮은데 위치한 중앙무대를 3면에서 내려다보게 된 구조인데 다른 한 면에 객석과 같은 높이로 열 명 신들의 좌석을 마련하고 좌우에 저승길과 제단을 두어 객석과 연결시켰다. 심판대를 통과한 망자가 하늘로 오르는 계단을 뒤에 배치하고 춤출 수 있는 공간을 앞에 마련한 엄진선의 현대적인 공간디자인이 탁월하다. 민천홍의 의상도 재미있다. 신들에겐 흰 옷과 빨간 속옷의 도드라진 조화를 통해 신선한 미감을 표현했고 까만 모자를 씌워 차별화시켰다. 무당들에겐 오방색의 화려한 의상과 깃발을 통해 인간과 신의 매개자임을 부각시켰다. 망자의 흰 옷과 저승사자의 검은 옷은 전통적인 색채를 따랐다. 역할에 따라 차별성을 갖추면서 전체적으로는 밝고 강렬한 원색을 사용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어두운 이미지를 전환시켜놓은 점을 높이 사고 싶다.
푸리와 바람곶 음악으로 흥겨운 분위기를 이끈 박재록의 음악은 중간 중간에 대사를 삽입하여 연극적 요소를 살려주면서 관객들을 이끌었다. 40명에 가까운 국립무용단원들의 춤은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왕무녀를 춤춘 장현수는 망자의 극락왕생을 확신하는 밝은 표정에 대사를 따라하고 추임새를 넣는 등 넘치는 카리스마를 풍기며 무대를 휘저었다. 망자의 효자아들 혹은 산자를 대표하는 송설은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진오귀굿을 통한 천도를 확인하는 복합적인 감정을 절제 있게 표현했고 박수무당 조재혁도 신칼대신무를 이끌면서 활기찬 춤을 보여주었다. 정관영, 정현숙의 저승사자들은 코믹한 연기를 통해 어두운 이미지를 친근하게 바꾸는데 일조하고 무엇보다 “윤리 도덕 종교 효도...없어!”를 외치는 10신들의 파워풀한 춤과 남자무당, 중무당, 소무당들의 경쾌한 군무가 75분간의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시대는 바뀌어도 죽음은 늘 일어나는 현상이고 신들의 역할도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에 대한 인식만이 변할 뿐이다. 마지막 장면을 통해 윤성주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작품의 완성도를 향한 화룡점정(畵龍點睛)이었다. 국립무용단이 지향하는 한국 춤의 방향을 예시한 <신들의 만찬>을 보며 이들이 보여줄 다음의 변화를 기대한다.
글_ 이근수(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사진_국립무용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