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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공연비평

안신희/이윤경/차진엽, Three Lips




 한국현대무용협회(한선숙)가 주최하는 국제현대무용제(International Modern Dance Festival; MODAFE)가 32회를 맞았다. 5월 17일부터 26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과 아르코극장을 중심으로 열흘간 펼쳐진 올해의 페스티벌은 'Dance, Life'란 주제를 달았다. 춤을 통해 삶의 본질에 다가가겠다는 바람을 담은 기획일 것이다. 벨기에 EASTMAN 무용단의 예술감독인 시디 라르비 세르카위 와 데미안 잘렛의 (5.17~18, 아르코대극장)을 개막작으로, 안신희 ․ 이윤경 ․ 차진엽 3인의 공동안무작인 (5.26,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가 폐막작으로 공연되었다.

 

 안신희 ․ 이윤경 ․ 차진엽은 각각 50대 40대 30대다. 당대를 대표한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안신희는 불타는 정념의 춤으로 90년대를 풍미했고, 이윤경은 기교에 바탕을 둔 진지한 춤으로 한 때 최고의 춤꾼으로 평가되면서 부지런히 무대를 누볐다. 이들에 비하면 차진엽은 신예그룹에 속한다. 한예종 출신으로 구성된 LDP멤버로 활동하다가 영국(Hofesh Shechter)과 네델란드(Galili) 무용단을 거쳐 최근에 국내무대로 복귀한 차세대 무용가라 할 수 있다. 이들 셋이 한 무대에 서서 그리스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것으로 꼽히는 트로이 여인들의 이야기를 3인3색으로 춤춘다는 기획은 흥미로웠다.





 무대 중앙에 두 여인이 나란히 앉아 머리를 빗겨주고 한 여인이 그 주위를 맴돌며 춤추는 평화로운 정경으로 공연은 시작된다. 정사각형으로 잘려진 몇 개의 바위돌이 기하학적으로 배치된 배경은 트로이의 성곽을 암시한다. 한 쪽 문이 열리고 탯줄처럼 붉은 띠를 가슴에 연결한 안신희가 먼저 등장한다. 트로이성의 함락과 비극의 전조를 예감하는 여인의 본능을 표현한다. 이윤경의 솔로와 차진엽의 솔로가 차례로 이어지고 둘의 듀엣이 뒤따른다. 이윤경 의상이 현대적이라면 차진엽은 고전적이다. 이윤경의 춤이 기교적이라면 차진엽은 힘에 바탕을 둔 춤을 춘다. 이윤경이 <기우는 달(the Waning Moon)>(2001)에서 보여주었던 느린 춤사위 속에 감춰진 터질듯 한 긴장감은 그녀의 독특한 캐릭터일 것이다. 차진엽의 춤을 처음 본 것은 LDP 무용단의 초창기 정기공연에서였다. 2002년 작품인 와 정지윤이 안무한 에서 8명이 함께 춤추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 때의 진지함에 자신감이 붙었다. 장신에서 뿜어 나오는 시원하고 큰 동작이 자유로움을 느끼게 하지만 한편으로 그 자신감을 들어내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도 느껴진다. 안신희가 춤을 마무리한다. 가슴에서 끊이지 않고 뽑혀 나오는 붉은 실타래는 <달빛 I>(2000)에서 보았던 낯익은 모습이다. 그녀의 춤에는 여백의 아름다움이 있다. 무대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한가운데 정좌하고 땅에 입을 맞추는 동작에는 비극적인 땅 트로이성에서 모든 것을 체념한 여인의 슬픔이 있고 그 고요함 속에 객석을 향한 정밀한 에너지가 발산된다. 세 사람의 춤을 비교해보면서 각각의 특징을 한(恨)과 기(技)와 힘(力)의 세 글자로 표현해보면 어떨까.

 

 폐막작으로 3인의 이질적인 현대 무용가를 선택한 모다페의 기획의도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특정한 음악을 사용하지 않고 코러스만으로 60분을 끌고 가는 심심함과 트로이전쟁을 연상할 수 있는 (목마와 같은) 상징물들이 배제된 무감각한 무대장치는 무용수들이 춤으로 창조해낸 감동이 관객들에게 전달되는데 한계를 느끼게 했다. 미완성된 작품을 보고나온 듯한 아쉬움이 남는 모다페의 피날레였다.

 

 

글_ 이근수(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사진_ 모다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