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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단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 - 국립무용단 <완월>



 해체주의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이론 중에 차연(差延, differance)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 용어는 ‘다르다’(differ)와 ‘지연시키다’(difer)의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며 텍스트의 의미는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의 여러 요소들에 의해 변별되고, 재현하려는 것을 지연시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냄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질서를 해체하여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데 그 근본과 전통으로부터의 탈피 속에서 구현된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국립무용단의 <완월>(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015.10.9.~11)은 강강술래의 해체에 충실한 작품이다. 단순하지만 간결한 율동이나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부여한 구성, 안무 등은 모두 이러한 요소를 잘 보여준다. 또한 무용수가 누가누구인지 알 수 없게 규격화된 모습이나 중성적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의상과 오브제 등도 그러한 의미 구조에 적합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새로운 질서에 치중하여 강강술래가 지니는 다성성(Polyphony)이나 여러 의미 구조를 제대로 살리지는 못하였다. 이는 강강술래의 제의적, 놀이적 요소는 제거되었고, 달과 강강술래에서 파생되는 환상성과 완만함은 점과 선을 통해 기하학적으로 풀어내는데 치중하여 관객과 제대로 된 소통을 이루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강강술래를 어떻게 무대에서 새롭게 해석했을까하고 단순한 생각을 하고 온 관객에게는 어지럽게 뇌를 굴리며 제4의 벽을 통한 무대와 객석의 분리를 여지없이 가져온 것이다.


 “<완월>은 ‘과정이 곧 형식이 되는’강강술래의 미학과 철학을 작업방식과 사유방식 속에서 이어나가며 변화시키는 작업이다. 전통 춤사위의 계승이나 민속학적 해석의 재현과는 무관하며 새롭게 보이게 하거나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고안된’형식보다는 과정을 통해 발생하고‘형식되는’형식들에 주목한다.”


 프로그램에 쓰인 <완월> 창작에 대한 기본적인 골격이다. 말 그대로 재현보다는 과정 속에서 나온 ‘형식되는’ 형식들이 지향하는 바였다. 이는 최고의 무용수와 최상의 스텝들의 준비 과정에서 해체하고 조합하는 과정에서 무대공연예술로 합을 이루며 구현되었다. 이는 기승전결의 구성보다는 구조적 완성도에 치우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다보니 <완월>은 강강술래가 가지는 끝의 시작보다는 시작도 끝도 없는 맴돌이이다. 무한반복이지만 그 안에 생산성을 보이며 느림과 빠름의 조화를 이루는 원형과 달리 끝의 의미를 반복재생산의 순환으로 해석한 점도 그러하다. 또한 ‘완월(玩月)’, 말 그대로 달을 바라보며 즐기며 소원을 비는 의미는 차치하고 이 공연에서 관객들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며 강강술래와 달의 상징성은 찾기 어려웠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는 함께 참여하지 않지만 대동(大同)의 의미를 공유하는 전통의 집단성은 ‘낯설게 하기’를 통한 소외효과의 무대로 치환된데 기인할 것이다.




 사족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을 보며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국립무용단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였다. 국립무용단은 최근 새로운 색깔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다가가고 있다. 이는 국립무용단 소개에서 말하는 ‘전통과 민속춤을 계승하는 한편, 그것을 기반으로 동시대의 관객이 감동할 수 있는 현대적인 작품개발을 위한 창작활동을 펼쳐왔다’에 충실하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최근의 국립무용단의 연속성은 전통의 재해석이나 문화원형의 변용을 통한 감성보다는 해체를 통한 새로운 질서 그리고 현대성에 치중하는 감이 없지 않다. 물론 구태의연하게 전통에 매몰되라는 것은 아니지만 잦은 융복합을 통한 현대성의 추구가 국립무용단이 추구할 방향인가에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완월>도 작품 완성도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는지 모르지만 국립무용단의 레퍼토리로 의미에서는 무어라 명쾌하게 이야기하기 힘든 부분이 놓이는 것이다.



글_ 김호연(문화평론가, 단국대교수) 
사진_ 국립무용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