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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의 음악적 시각화 - 정영두 <푸가(FUGUE)>



 음악의 시각화란 가능한가? 이 작업을 위해 현대무용 초창기 인물들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많은 안무가들이 유기적 관계를 꿈꾸며 실행해 왔고, 그 덕분에 음악과 무용의 만남은 다양한 형태와 모습의 수작들을 배출했다. 진보적이면서도 동시대적이고, 명확한 메시지 전달과 독특한 안무색, 섬세한 표현력으로 현대무용계에 기대주로 등장한 정영두가 이에 동참했다. 10월 9~11일 엘지아트센터에서 공연된 <푸가>에서 정영두는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 인물인 바흐의 ‘푸가’를 선택해 6명의 무용수들이 표현해내는 신체의 음을 조율하고 변주하는데 주력했고, 현대무용수만이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발레단의 발레리나 김지영, 유니버설 발레단의 엄재용을 통해 클래식에 담긴 정서를 더욱 섬세하게 담아내려는 의도도 피력했다. 그밖에도 '댄싱9'로 유명해진 윤전일, 작품의 조안무를 겸한 김지혜, 그리고 우수한 무용수들인 도황주, 최용승, 하미라 등이 만들어낸 공간은 장르를 넘나들며 새로운 이미지를 선사했다.


 정영두는 바흐의 예술성이 절정에 이른 작품인 <푸가의 기법(the Art of Fugue)>을 사용해 그 푸가 양식에 내재된 대위법을 움직임을 통하여 선명하게 드러냈다. 즉, 시간차를 두고 연주되는 두 개의 선율은 먼저 시작되는 선율이 ‘도망가는’ 반면 나중에 출발하는 선율은 ‘쫓아가는’ 대위법의 이중적 어원에 적용되듯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각자가 시간차를 두고 다른 음역에서 경쟁하듯 혹은 겹치는 부분에서 화음을 이루듯 교묘하게 연결고리를 가졌다. 무용수들은 음악에 집중해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몸의 반응을 무용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김지영은 발레리나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어휘를 구사하는데 뛰어난 감각을 보였다. 특히 그녀가 '바흐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g단조, BWV 1001 중 2악장 푸가'에 맞춰 춘 솔로에서, 팔짱을 끼고 흥얼거리듯 움직이는 모습을 필두로 무심한 듯 절제된 춤을 보여준 부분들은 인상적이었다.






 바흐의 푸가 중 11곡을 활용해 11개 단락으로 구성된 70분짜리 대작은 3분 정도의 솔로와 15분 길이의 7인무까지 다채로웠고, 서정적이며 부드러운 느린 움직임에서부터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빠른 움직임까지 음폭처럼 움직임의 폭도 컸다. 따라서 청각적인 재미와 시각적인 재미가 교차되며 솔로는 솔로대로, 여성 듀엣, 남성 듀엣, 남녀 트리오, 콰르텟, 퀸텟, 전체 군무에 이르기까지 신체라는 매체와 음악의 매체가 자연스럽게 부합되었다. 움직임의 특질들이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았지만 유동적이고 분절적이기보다는 각 무용수들의 선이나 개성, 곳곳에 위트를 드러내는데 주력한 듯 보였다. 특히나 스타 무용수에 대한 집중 없이 동등한 지위, 중앙 집중의 초점을 없앤 점 등은 머스 커님험의 기법을 연상케 했고, 더불어 인혜란의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무대 디자인도 작품에 긍정적으로 기여했는데, 기하학적인 장방형 장식의 백드롭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집중하도록 다른 부수적 부분들을 최소화했다.


 이러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바흐 음악이 주는 영감을 신체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이 용이하지만은 않은 것이, 그가 언급했듯 기존 틀에 대한 파괴라든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욕심이 배재된 가운데 수많은 움직임으로 구성되다보니 지금까지의 작품에서 보여줬던 익숙한 움직임이 도처에서 감지되었다. 또한 훌륭한 무용수들의 춤들임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최대역량을 보여주지 못한 듯 자연스럽게 음악을 표현하고 움직임을 다루는데 일부 한계가 엿보였고 바흐의 음악을 다뤘다는 점에서 나초 두아토의 안무와 비견된다면 완성도 면에서 많은 노력이 뒤따라야 했다.


 안무가 정영두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부족한 부분이 확대되어 비춰진 점도 없지 않다. 스승인 안성수 안무가에 비견될 정도로 성장한 그에게 있어서 클래식 음악의 영감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은 과감한 도전이었고, 시대성과 사회성을 담은 주제를 극적 표현으로 완성하는데 뛰어난 감각을 지닌 그의 능력이 여실히 드러나지 못한 아쉬움도 남았다. 그러나 늘 도전하는 자세로 자신을 완성해내는 그에게 이러한 도전은 하나의 나이테를 더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LG아트센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