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프랑스 현대무용의 새로운 미학이었던 누벨 당스(Nouvelle Danse)의 거장 마기 마랭이 6월 5~7일 LG아트센터에서 2010년 화제작 <총성>을 가지고 내한공연을 가졌다. 비교적 한국의 무용가들에게 그 명성으로 인해 친숙한 그녀이지만 한국에의 방문은 많지 않았기에 기대감이 컸다. 마기 마랭은 춤과 연극, 음악을 결합한 독특한 작품으로 독일의 거장 피나 바우쉬와 함께 컨템포러리댄스의 선두주자로서 당당히 위치한다. 그녀는 무용 속에 기상천외한 동작과 다양한 분장 및 소품 등을 무용 언어로 차용함으로써 현대 무용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단의 평가를 얻고 있다.
50여 편의 작품을 통해 꾸준히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온 예술가의 눈에 비친 현실 속의 유럽은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혼란 등으로 복합적 난국에 처해있다. 이를 과감하게 그린 <총성> 작품은 따라서 시∙공간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시각화 작업, 연극성의 결합이 냉철한 지성과 만나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렇듯 <총성>은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암울한 유럽의 현실을 소재로 했다. 가느다란 실을 들고 있는 남성은 관객석에 있는 무용수들을 무대로 불러올리고 올라온 무용수들은 실로 엮인 관계 속에서 얽혀가기 시작했다. 아주 새로운 방식은 아니었지만 복잡한 관계의 설정은 읽을 수 있었다.
실제 공연이 시작되면 캄캄한 무대에 섬광처럼 빛이 비치고 무용수들이 바삐 움직이며 스틸컷처럼 등장했다 사라진다. 식별이 어려운 상황 속에 관객들은 더욱 무대에 집중했고, 이는 연막 속의 불투명한 현재를 대변하는 듯 했다. 따라서 전쟁 중 지하 벙커의 레지스탕스들 같기도 하고 혹은 어느 도시의 가정집 같은 분위기 속에서 7명의 남녀무용수들은 한 공간을 다양한 공간으로 변형시키며 식탁을 차리기도 하고, 탈출을 시도하려는 듯 또는 마치 다른 세계를 동경하듯 반복적 몸짓을 통해 이미지를 강화했다. 그들이 빠르면서도 강도 높게 움직이는 가운데 밀도감을 더하고 다양한 미장센이 무대를 가득 채울 때 무대에 걸린 그림들이 갑자기 떨어지는 순간, 깨진 그릇을 붙이는 행위, 소형 십자가상을 모형 비행기가 실고 날아다니는 행동 등으로 메시지를 표면화했다. 이것들은 기존의 것들에 대한 저항과 재건, 구원의 상징이다.
움직임 어휘에 있어서도 손으로 눈을 가리거나 입을 막는 행위는 은폐의 행위이며 허다하게 영상이 사용되는 현재의 춤 경향에서 영화나 영상에 나름의 감각을 지닌 그녀가 순수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전체를 풀어나가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특히 후반부 성찬이 차려진 식탁 위에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식기와 음식들, 이를 차지하려는 무용수들의 우스꽝스러운 쟁탈전은 전반부 어두운 분위기와 대조를 이루며 그 밝음 속에 가려진 추악한 진실을 반어법으로 연출하고 있다. 이것이 마기 마랭식의 유머이며,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비관주의를 다룸에 있어서도 재치와 위트를 잃지 않는 그녀만의 방식인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대표작 <메이비>에서 보여주었던 실존적 표명이나 극적 강렬함보다는 정치적 색채 혹은 비관적 시각을 집요하게 다루고 있기에 70분의 시간이 다소 길게 느껴졌다. 그것은 테크닉과 시각적 충격, 표면화된 메시지 전달에 익숙한 우리에게 <총성>공연은 이질감을 주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프랑스 현대무용의 특성인 시성, 즉 은유와 상징의 사용은 기표로서의 춤이 아니라 기의로서의 춤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대중의 이해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총성>공연 역시 프랑스 자체의 정서와 감성을 소유하지 못한 우리에게 이질감을 가지고 다가설 수밖에 없다. 또한 행위의 비연속적 구성은 예상을 벗어난 긴장감을 동시에 제공했다. 그녀가 전하는 총성은 소리 없는 무서운 현실 속의 총성일수도 있고 인간 개개인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오욕(五慾)에 대한 무대 위의 저항일수도 있었다. 다만 한국 관객들에게 실제적으로 와 닿지 않았을 뿐.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LG 아트센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