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하면 먼저 연상되는 것들이 있다. 수평으로 펼쳐진 하얀색 클래식 튀튀와 그 아래 뻗어내린 늘씬한 각선미, 온 몸을 공중으로 한껏 들어올리기 위해 수직으로 곧추선 포인트 슈즈 등이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지젤 등의 작품이름이 그 다음에 따라온다. 그러나 최혜식이 떠난 자리에 신임발레교수로 들어온 조주현의 첫 작품에서 이러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무용수들은 우선 클래식 튀튀와 로맨틱 튀튀를 벗어던졌다. 발레슈즈 역시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평균대에 올라선 체조선수처럼, 100m 자유형경기에 나선 수영선수처럼 몸에 밀착된 의상은 날렵했고 긴장된 표정 속엔 거추장스러운 형식을 벗어던진 자유로움이 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조주현 표 발레작품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공연 팸플릿에는 무용수들의 전신사진과 함께 여러 장에 걸쳐 의미 있는 메시지들이 인쇄되어 있다. 조주현은 자신의 작품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이러한 인용문을 통해 그의 의도가 전달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우리 모두를 합친 것만큼 현명하지 않다.”는 캠 블린차드의 말을 인용하면서 아마도 그는 그의 작품이 군무 위주로 짜여 졌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의도를 내 비치는 것인지 모르겠다.
두 번째 메시지는 “인류는 분별력 있고 책임감 있고 신중했기 때문이 아니라 놀기 좋아하고 반항적이며 미성숙했기 때문에 진보한 것이다.”란 톰 로빈스의 말이다. 그를 인용하면서 조주현은 신중하게 완성된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미완성이라 하더라도 재미있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계속 시도하겠다고 다짐하는 듯하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할 때 사람들이 비웃지 않는다면 그 아이디어는 좋은 것이 아닐 확률이 높다.”(테드 터너)란 메시지는 누가 무어라 하고 내 작품을 비웃는다 하더라도, 아니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욱 자신 있는 목소리로 내 작품을 하겠다는 오기의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나의 목소리를 잠재우게 하지 마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를 가지고 나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것입니다.”란 스티브 잡스의 말 역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으며, 전통에도 억매이지 않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가 선택한 방법대로 해나가겠다는 조주현의 야심찬 각오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르코 대극장 무대에 오른 그의 첫 작품 “Shaking the Mold”(2012.6.15~16, 아르코대극장)는 이러한 그의 다짐 들을 그대로 들어낸 작품이었다. 작품은 군무만으로 짜였고 스텝은 빠르고 가벼웠다. 스무 명의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이 펼치는 춤사위는 다양했고 밝은 무대는 발랄한 에너지로 넘쳤다. 전통발레가 갖지 못한 컨템퍼러리발레의 자유로움을 느낄 줄 아는 관객들에겐 재미난 발레체험이었지만 무용수들은 관객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의 무대를 마음껏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미국 워싱턴발레단의 주역무용수로 활동하다가 돌아온 조주현이 2008년 서울무용제에서 선보인 ‘Re-evolution'을 보고난 후 이렇게 리뷰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들의 춤은 곡선보다 직선을 표현하고 움츠림보다는 뻗침을, 부드러움보다 힘을 강조한다. 무대 전부를 누비는 춤사위는 시원하게 크고 거침이 없다.....조주현의 언어는 무용수의 튼튼한 몸 자체이다. 이 몸의 그들의 의지를 체화(體化)한 것이고 움직임과 방향은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작품은 추상이라기보다 극히 추상적인 문자로 쓰인 산문이다. 이를 주지적인 시(詩)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용수들은 고난도의 동작을 잘 소화해내고 균형잡힌 몸은 산뜻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예술세계, 2008년 12월)
4년 만에 다시 만난 그의 작품에서도 조주현의 캐릭터는 변하지 않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대가 더욱 확장되고 무용수들이 풍부해졌으며 춤사위들이 더욱 대담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예원학교,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해외활동을 거쳐 모교 강단에 서게 된 조주현이 앞으로 펼쳐갈 행보들을 기대해본다. 김혜식과 김선희 시대를 이어 김용걸과 함께 펼쳐갈 조주현의 발레에서 한국발레의 내일을 기대해본다면 이는 섣부른 예단일까.
글_ 이근수(경희대 명예교수, 무용평론가)
(이 글은 <뷰즈> 2012년 겨울호에 게재하였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