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연극의 대표적 예술가 르빠주와 윌슨의 작품이 한 달 사이로 국내 무대에 올랐다. 르빠주의 공연이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첨단 예술이라면 윌슨은 이제 시간적으로나 작품의 성격으로나 고전의 반열에서 논의될법하다. 이 두 공연은 이미지 공연의 흐름을 되짚어 보며 공연에서의 이미지의 기능을 공연사적 맥락에서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미지 연극의 미니멀리즘이 창출하는 효과는 다분히 양가적이다. 감성을 자극하는 서정성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는 반면에 정치적이고 시위적인 전략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번 국제공연예술제의 무대에 소개된 로버트 윌슨의 <셰익스피어 소네트>는 시적이고 회화적인 1부와 동시대적 울림을 반영하며 베를린 앙상블의 전통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방증하는 2부가 대조를 이루면서 이른바 심미적인 정치성이 이미지로 표출되는 무대를 보여주었다. 셰익스피어, 엘리자베스 여왕, 그리고 셰익스피어 작품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여배우가 무대에 설 수 없었던 그 시대에 남자배우가 여장을 했듯이 이번 공연은 남녀배우가 역할을 교체하였다. 막간극은 윌슨이 타 작품에서도 자주 활용하지만 과거의 전통과 더불어 베를린 앙상블의 서사극적 특성을 보여주는 장치라고도 하겠다.
1부에서는 시와 이미지와 음악이 어우러지는 시청각적 아름다움에 관객들이 빠져들지만 그리 오래가진 않는다. 처음 몇 작품의 그림에만 몰두하고 이내 지쳐 기계적인 걸음으로 전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오는 미술관 관람객처럼 관객은 반복되는 시낭송과 막간극의 독일식 유머에 마냥 빠져들지는 못한다. 윌슨의 올드한 이미지와 베를린 앙상블의 어색한 서정성은 역시 셰익스피어만이 영원한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러나 2부의 활력 있는 반전은 브레히트의 후예들이 여전히 그의 정신으로 숨 쉬고 있음을 확인케 한다. 마치 그림책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처럼 1부의 인물들이 새로운 에너지를 뿜어냈다. 현실을 구체적으로 와 닿게 하는 그림과 이에 적절한 시들이 결합하여 도발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이 시대의 불편한 진실을 그대로 찌른다. “권력이 예술의 입을 틀어막는 시대... 정직함이 바보 취급당하고....빛나는 명예가 하찮은 자에게 주어지고...” 반복적으로 부르는 노래는 어느새 노래가 아닌 구호가 되어버린다.
<셰익스피어 소네트>는 로버트 윌슨과 베를린 앙상블이 손을 잡고 이루어낸 쾌거 중에 하나다. 한국의 광주 공연을 마지막으로 폐기되는 <해변의 아인슈타인>과 함께 윌슨의 이미지 작업도 퇴조했을 것이라는 다소 삐뚤어진 추측을 하면서 베를린 앙상블의 저력이 윌슨에게 큰 조력이 되고 있다고 확신해 본다.
로버트 윌슨의 연출 방식은 2000년 국내 배우들과 <바다의 여인>을 작업하면서 어느 정도 소개가 되었다. 회화적이면서도 때론 상징적이고 유머러스하면서 저돌적인 이미지들, 긴 시간을 채울 만큼의 장면을 만들어내는 노익장의 지치지 않는 창조력은 감탄스럽다. 공연이 끝난 후 예술가와의 대화에서 윌슨은 시의 이미지화에 대한 작업의 절차를 묻는 질문에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단호히 정리했다. 해석은 관객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신 수학적인 장면 배치 작업에 대해서는 설명했다. 7이라는 숫자를 양분하여 중심에 4를 두고 양쪽은 똑같이 세 개씩 대치한다. 그리고 1번과 7번, 2번과 6번, 3번과 5번의 장면이 서로 연관성을 갖도록 한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모차르트 음악을 예로 들어 설명하며 반복과 변주에 대해 말했는데 아마도 소나타 형식의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 코다와 같은 형식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가 작업을 할 때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이미지를 무대에 표현하여 공연의 그림을 그리곤 하지만 로버트 윌슨의 이미지의 바탕에는 밑그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설계도가 있다. 르빠주 역시 어떠한가, 다중적이지만 플롯의 짜임이 중요한 바탕이 된다. 윌슨이 자기 작품에 대해 아방가르드가 아닌 “클래식의 재발견”이라고 했듯이 새로운 그 어떤 양식의 공연도 설계 없이는 불가능하다. 새롭다는 것은 그 배치의 방식이 달라질 뿐이다.
공연에서 이미지란 너무 방대하게 적용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이미지 연극이라는 범주에서 이미지는 내용을 축약시킨 연출적 기호로서 취급되며 그 함축성을 해독하려 애쓰게 된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그림을 그려내듯 연출가가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은 그의 미적 영역이고 해석하는 것 역시 관객의 미적 취향에 근거한다. 그럼에도 이 거장들의 이미지 작업에는 미적 영역 안에서 분할되는 사회적 불일치가 예술로서 표출되고 있다.
글_ 서지영(공연평론가, 드라마투르기)
사진_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센터 제공 ⓒ2015SPAF, Sang-hoon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