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명의 남녀 무용수가 무대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두 팔을 머리 위로 크게 들어 올리고 발끝으로 서서 몸을 지탱한 채 어기적거리고 걷는 기괴한 동작이다. 무대를 몇 바퀴씩 돌고난 후 바닥에 몸을 부착시킨 채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는 동작이 뒤따른다. 움직임이 크고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려는 듯 팔다리를 최대한 직선으로 뻗어 올리는 동작이 계속된다. 이나현(이용인)이 보여주던 평소의 춤사위와 다른 모습들이 낯설지만 이 작품을 위해 새롭게 창조된 춤사위들이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기자불립 과자불행’(企者不立 跨者不行; 발돋움한 자세로는 오래 서있을 수 없고 가랑이를 벌리고 걷는 자는 제대로 걸을 수 없다는 뜻)이라고 표현했던 불안정한 모습들이지만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동작이야말로 오늘날 대한민국 무용계의 현실에서 이나현이 발견한 불편한 진실을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불편한 현실
뒷면 스크린에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무용수들의 동작이 투영된다. 몸에 센서가 붙어있어 모션을 감지하는 듯한 느낌도 들지만 실제로는 무대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가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잡아 리얼타임으로 쏘아주는 것이다. 영사속도에 따라 실공간과 가상공간에서 두 개의 춤이 겹치기도 하고 무대 위의 무용수와 화면 속의 무용수가 손가락 끝을 마주 댄 듯 듀엣을 연출하기도 한다. 미리 찍어놓은 영상이 화면에 뜨고 무대 위에선 현재의 춤이 보여지기도 한다. 어제 추었던 춤이 영상으로 떠오르면 무용수들은 그 이미지를 따라 다시 춤추기 시작한다. 영사의 속도는 fast mode와 리얼모드, slow mode로 변화를 주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춤을 계속 보여준다. 속도에 따라 한 무대 위에 현재와 과거의 시간이 공존하기도 하고 무대에서 사라진 춤은 영상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현재는 과거의 미래임이 분명하지만 디지털미디어의 세계에선 과거가 현재에 앞서 나타날 수도 있다. 현실의 무용수들은 무대 위에서 날아오를 수도 없고 물속으로 뛰어들 수도 없지만 공간적 제약에서 해방된 디지털세계에서 그들의 몸은 한 없이 자유롭다. 우주공간을 유영하듯, 인어처럼 물속을 탐색하던 무용수들은 시간을 거스르고 공간을 초월한다. 장자가 묘사했던 ‘나비의 꿈’이 디지털테크놀로지를 타고 이나현 판으로 환생한 느낌이다.
순간의 영원을 꿈꾸는 디지털매체
작품에서 시종일관 음악은 낮게 깔리고 때로는 침묵만이 가득한 무대 위에서 신들린 듯 무용수들은 무의식 속에 즉흥 춤을 보여준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쓰고, 썼다가는 다시 지우는 동작들도 반복된다. 살아온 흔적을 남기고 싶은 바램과 흔적으로 남아 있는 추억들을 지우고 싶은 삶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자신의 춤을 남기고 싶은 무용가의 바람과 그러한 바람과는 달리 공연종료와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춤의 속성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할 것이다. 이나현의 <순간(momentum); 2011,11,27~29,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은 안무가 자신이 표현한대로 “순간의 예술인 무용이 순간의 영원을 꿈꾸는 사진과 영상이라는 매체를 만나는 시간성을 그려본 작품”이다. 그가 부연한대로 이 작품은 “지금 이 순간이 과거가 되어 흔적으로 남아 다시 현재를 구성하는 시간성에 대한 이야기”를 이나현 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춤 언어를 통해 최고의 춤 미학으로 승화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춤 공연의 한계로 인식되고 있는 시간성과 공간성을 뛰어넘기 위한 수단으로 디지털테크놀로지를 이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이 작품 외에도 이번 시즌에 두 개가 더 있었다. 재불 안무가인 남영호가 한국과 프랑스의 과학예술융합프로젝트로 추진하여 두 나라 무대에 올린
두 개의 다른 작품, S.U.N 과 The Last Wall
독일거주 컨템퍼러리무용가인 김윤정이 안무와 연출을 맡고 김호정과 제프리 아머(캐나다) 등 연극배우와 함께 김종기를 비롯한 여섯 무용수가 무대에 오른
디지털댄스는 무대의 물리적 한계, 객석과 관객의 제약성, 커뮤니케이션의 일방성 등 전통적으로 무용예술의 한계로 인식되어 온 문제들을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해소해 보고자 하는데서 출발했다. 단순히 영상을 보여주는 초기 단계(image performance)에서 원격관람과 관객들의 직접적 반응이 가능한 화상전송시스템(on line real time transmission)을 거쳐 무대의 무용가와 영상 속 무용가의 디지털 이미지를 연결하는 비디오 퍼포먼스(live video performance), 그리고 앞에서 본 동작포착(motion capturing) 등 여러 가지 유형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기술 들을 부분적으로 차용하고 실험한 이번 가을의 두 작품을 보고 느낀 공통점은 디지털미디어 테크놀로지는 춤의 한계성을 확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채용되어야할 뿐이지 공연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우선되어야한다는 사실이다. 첨단적 디지털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예술작품이 추구하는 본래의 목적인 관객감동을 더해줄 수 없거나 더 나아가 이러한 기술로서 무용의 언어인 춤사위를 축소, 혹은 대체하고자 한다면 무용에서의 디지털기법은 결코 바람직한 해답이 아닐 것이다.
영원은 사라짐을 간직하는 것
아름다운 춤은 기억될 필요가 있지만 잊힌다는 것 또한 아름다운 것이다. 모로코 태생의 불란서 철학자인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1937~)가 춤에 대해 언급한 다음과 같은 말을 거듭 음미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극히 일시적인 예술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생겨나자마자 사라지는 것인 까닭에, 춤은 가장 큰 영원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영원은 그대로 있음이나 지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영원은 바로 사라짐을 간직하는 것이다.”
글_ 이근수 경희대 명예교수, 무용평론가
(이 글은 <뷰즈> 2012년 1월호에 실렸던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