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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의 부조리를 고민하는 능동의 춤: 김미란의 <위로 WE-路>


지난 12월 8일, 9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부산시립무용단 안무가 육성프로젝트 ‘디딤 & STEP’ 무대가 열렸다. 이 프로젝트는 부산시립무용단 단원 개인의 예술적 역량 향상을 위한 창작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한 무대인데, 2023년은 부수석 단원 김미란의 작품 <위로 WE-路>를 올렸다. 김미란은 2023년 제29회 창무국제공연예술제에서 <중中독-독 안의 여자>로 창무프라이즈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위로 WE-路>는 1부에서 <중中독-독 안의 여자>를, 2부에서 <꽃을 꺾어 본 적이 있습니까?>, <벙어리 춘앵>, <선물>, <넋전> 등 네 작품을 순환적으로 엮어 내었다. 2부 네 작품의 주인공을 비상임 단원들이 대신해 김미란이 자기 작품을 관조하는 형식으로 구성하였다. 1, 2부 5개 작품은 여러 무용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의미도 있지만, 김미란이 지금까지 천착한 주제가 무엇인지 알려 준다.



1부 <중中독-독 안의 여자>는 독(소래기) 안의 여자(김미란), 독 밖의 남자(최의옥) 그리고 악사(박지영)가 이끌어 간다. 보통 독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만, 용기로써 독은 안이 중요하다. 안에 무엇을 담는가에 따라 용도가 정해지고 이름을 붙인다. 작품에서 독은 ‘소래기’라고 부르는 것으로 많은 양의 채소를 씻거나 절일 때 쓰고, 목욕통이나 큰 항아리의 뚜껑으로 사용하는 다용도 옹기이다. 소래기를 선택한 이유가 높이가 낮고 아가리가 밑동보다 넓어 안정적이면서 움직이기 좋고, 안에 있는 무용수가 적당히 숨거나 보이기 수월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정도 의도했을 수도 있는데, 소래기의 형태와 용도가 삶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한계에 갇힌 인간의 실존적 부조리를 상징하는 것 같다. 이 작품은 실존의 부조리에 대한 고뇌를 예술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작품에서 김미란은 능동과 수동이라는 두 가지 실존적 갈등 상황에서 결국 능동적 선택을 하는 존재이다. 독 바깥의 남자가 조정하는 독 안은 안락하게 보이지만, 능동이 부재한 수동의 세계이다. 독이 기울어지고 심하게 흔들리면서 수동의 세계는 언젠가 자기가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맞닥트리게 된다. 키르케고르는 인간 실존의 조건이 신으로부터 소외된 결과라고 보았다. 이것 때문에 인간 삶은 불안으로 가득하고, 결국 신앙을 택해야만 불안을 극복하고 자아의 회복이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반면 사르트르는 인간의 제조자는 신이 아닌 인간 자신이라고 단언한다. 어떤 결정론도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은 자유롭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 늘 자신을 만들어내는 존재라는 것이다. <중中독-독 안의 여자>에서 김미란이 악사와 독 밖의 남자 사이의 갈등 상황에서 하는 선택은 일견 키르케고르의 실존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고, 반어적이며 현실적으로도 볼 수 있다. 언제나 능동은 쉽지 않은 선택이며, 자유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얻을 수 있다. 직장인, 아내, 엄마이면서 독립적인 예술가로 인정받고 싶은 현실에서는 수동 안에 능동이 꿈틀대고 능동은 수동이 주는 위안을 자양분으로 삼는 모순적 균형과 혼돈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의 선택이 어떻게 보이든지 그것에 관해 누구도 옳고 그름을 평가할 수 없다.




2부의 네 작품은 매듭이 없다. 한 작품에서 다른 작품으로 넘어가는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모두 김미란의 세계관이 투영된 작품이라 그럴 것이다. 창작한 시간은 각기 다르지만, 김미란의 의식 흐름은 앞의 것을 타고 넘다가 다시 돌아가기도 하는 넘실대는 파도 같은 것이었다. 작품은 그렇게 옴니버스 같아 보이면서 일관된 하나의 작품으로도 보인다. <꽃을 꺾어 본 적이 있습니까?>(출연 최윤정, 김지윤, 손상진, 박정원, 김하림, 음악 이세호)는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지키려는 일이 혹시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지를 묻는다. 이 작품은 2003년 제13회 신인 안무가전 작품상을 받아 김미란 활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벙어리 춘앵>(김지윤)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던 30대에 차라리 혀를 뽑아 버리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말 못 하는 춘앵(봄의 꾀꼬리)에 대입한 작품이다. <벙어리 춘앵>의 모티브는 ‘춘앵전’이다. 춘앵전은 효명세자가 어머니 순원왕후 40세 탄신을 축하하기 위해 창제한 것으로 봄날 버들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꾀꼬리의 자태를 무용화했다. 춘앵전에서 창사를 할 때 오색한삼을 낀 양손으로 입을 가린다. 노래하지만, 입을 가리는 행위는 혀를 뽑아도 할 말이 여전히 남아있어 마음으로 읊조리는 상황에 대입할 수 있다. 또한 혀가 뽑힌 것이 아니라 혀를 스스로 뽑는다는 생각은 지독한 자기 억제이다. <꽃을 꺾어 본 적이 있습니까?>와 <벙어리 춘앵>은 타자와의 관계와 소통을 다룬다는 면에서 일맥상통한다. 30대로 넘어가던 때, 폭발적으로 늘어난 관계와 끝없이 확장하는 자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내 할 말을 모두 내뱉다 보면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라는 미안함과 두려움이 생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내 혀를 뽑겠다는 자의식의 과잉이자 자기 학대에 가까운 선택은 1부에서 보여 준 <중中독-독 안의 여자>의 반어적 선택과도 닮아있었다. ‘어느 날 죽음이 내게 배달된다면’이라는 당혹스러운 전제를 풀어내는 <선물>(김하림)과 언젠가 오지만, 그것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죽음이라면 죽음과 나란히 걸어 보는 건 어떨까? 라는 죽음을 긍정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태도를 다룬 <넋전>(박정원)은 죽음을 중심 모티브로 다룬다. 일견 다른 두 작품과 결이 달라 보이지만, 죽음이 실존의 확실한 전제이기 때문에 실존의 문제를 다룬다는 면에서 <중中독-독 안의 여자>, <꽃을 꺾어 본 적이 있습니까?>, <벙어리 춘앵>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2부의 네 작품을 자연스레 연결할 수 있었고, 1, 2부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작품마다 김미란이 등장해 주연을 맡거나 관조하는 장면은 5개 단편에 일관성을 부여한 연출 효과를 보여주었고, 다르지만 같은 그의 작품 세계를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중복된 메시지와 뒤섞인 플롯이 혼란을 가져온 면이 있었는데, 어차피 하나의 흐름에 놓을 것이라면 더 과감하게 압축했어도 좋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공연 제목은 <위로 WE-路>다. ‘위로(慰勞, consolation)’이면서 ‘우리 모두의 길(WE-路)’, 즉 누구나 가는 길이기도 하다. ‘위로’는 ‘받는 것’이 아닌 ‘하는 것’이다. ‘위로’는 능동일 수밖에 없다.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얼마나 아픈지, 고통이 그를 얼마나 파괴하는지 진정으로 아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자를 위로할 수 없다. 김미란은 자기 위로 상황을 관객에게 드러내어 관객 각자가 능동적 자기 위로를 생각하게 했다. 2부 작품에서 김미란의 역할을 대신한 비상임단원들은 이 공연을 끝으로 무용단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있었다. 어쩌면 이 공연을 통해 가장 먼저 스스로 위로한 존재는 그들이지 싶다. 끝나지 않는 불안 속에서 타자의 실존적 갈등에 몸을 던져 공감한 그들이기에 위로를 가장 먼저 가져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출연자와 관객 모두가 보편적 존재만이 아닌 실존적 자아라는 사실을 보여 준 <위로 WE-路>는 능동적 자기 위로로 통하는 춤이 되었다.   



                                                                  글_ 이상헌(춤평론가)

사진제공_ 김미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