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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풍경 속의 그리움을 이원화하다: 김설진의 <풍경>


김설진이 이끄는 무용단 무버(MOVER)가 신작 <풍경>을 12월 16~1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가졌다. 피핑톰 무용단에서 활동했고, 댄싱9의 MVP상 수상으로 무용계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이름을 널리 알린 김설진은 2014년 창단한 무버와 함께 현대무용 외에도 특정 장르에 한계를 두지 않고 드라마, 영화, 예능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최근엔 영화 <풍경>을 제작했고 이를 무용작품으로 연계했다. 동명의 무용공연 <풍경>은 요양원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희미해지는 시간 속에서 어떤 풍경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움직임으로 풀어 드라마틱하게 담았다. <풍경> 속의 사람 사는 이야기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고 영화와는 다른 매력을 발산하며 김설진의 춤과 극에 대한 연출력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 결과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풍경>은 영화를 해체한 무대로 꾸며졌다. 영화 속 영상을 다양한 형태로 활용하기도 했고 이동과 변형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무대세트는 다각도로 공간을 분할했다. 영상은 벽에 걸린 그림으로 때로는 세트의 일부가 되기도 했고, 후반부 실제 카메라가 무용공간을 비추며 화면에 투영되는 이미지는 낯설기도 했다. 영화와 다른 감성의 낯설게하기는 김설진이 의도한 바일 것이다. 7명의 무용수들(강해로, 김기수, 김봉수, 배소미, 서일영, 오형은, 윤명인)은 공연 내내 의사, 간호사, 환자, 보호자 등 병원 혹은 요양원과 관련된 캐릭터에 몰입했다. 또한 무용수들은 현대무용과 하드코어에 가까운 움직임들로 관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로테스크하거나 정상적인 관절 범위를 넘어서는 유연성을 요구하는 움직임들이 그것인데, 기존 무버 구성원들 외에도 객원으로 참여한 배소미, 오형은 등이 색다른 어휘로 무버에 윤활류 역할을 했다. 

 

   무용수들이 직접 대사를 하기도 하고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하면서 관객들에게는 현대무용은 어렵다는 편견을 버리고 작품에 몰입하게 하는 효과를 노렸다. 그 가운데 각 장면들은 사실적이면서도 이를 넘어 인생의 내면적인 진리를 파악하려고 하는 네오리얼리즘의 성향을 띠었다. 그동안 김설진과 무버는 움직임의 측면에 주력해 그들만의 춤세계를 보여왔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신체와 신체, 신체와 사물, 신체와 영상이 혼재했다. 특히 초반부 병상에서의 남녀 듀엣은 비록 두 사람의 호흡이 완벽하진 않았지만 신체와 신체의 엮임와 풀림이 이목을 집중시켰고,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요가 수업을 하는 부분에서는 일반적인 신체가동 범위를 벗어난 움직임에 적응하지 못하는 환자들의 이탈 장면이 코믹하게 다뤄지기도 했다.  

 

  결국 <풍경>은 실험적인 무대로 영상매체와 라이브 공연이 실제 현장과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는 공연,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통해 김설진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무대였다. 리서치와 아카이브, 영상매체와 아날로그적인 무용 공연 등 일련의 작업을 매칭해 춤으로서 뿐만 아니라 총체적인 과정을 보여준 그의 노력은 <풍경>의 예술성과 완성도를 언급하기 이전에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 하겠다. 더불어 영화 속의 쓸쓸하고 공허한 풍경의 이미지가 신체의 움직임을 통한 역동성과 에너지가 더해지면서 살아 숨쉬고 생동감 있는 풍경으로 전환된 것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 있었다. 기다림과 풍경이라는 주제가 멜랑콜리한 측면을 담고 있지만 김설진의 <풍경>은 삶의 희망을, 강렬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제공_ 무버(MO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