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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떠나 다시 몸으로 돌아가기: 유지영 <다시 어떤 것의 몸이 되기도 한다>

 

ⓒ곽소진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에 설치된 여러 지원사업 가운데 차세대예술인력육성사업(AYAF), 오페라창작아카데미, 무대예술아카데미를 이어받아 2016년부터 통합적인 차세대 예술가 지원사업으로 진행되어 왔다. 차세대 예술가의 창작 및 기획 역량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현장 전문가들의 멘토링, 참여자들 간의 상호 리뷰, 워크숍, 네트워킹 등의 과정을 거친 다음 ‘차세대 열전’ 무대에서 최종 발표를 갖는다. 

문학, 시각예술, 다원예술을 포함한 공연예술, 기획 및 무대예술 관련 플랫폼 실현지원의 4개 분야로 운영되며 만 39세 이하의 개인만 지원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개막해 올해 2월까지 이어지는 ‘차세대 열전 2021’에서는 총 39인의 예술가들이 작품을 발표했거나 발표를 앞두고 있으며, 공연예술은 다원예술, 연극, 음악, 무용, 전통예술 5개 부문에서 총 20인의 예술가가 선정되었고 이 가운데 무용에서는 김소월, 김환희, 유지영, 임정하 4인의 무대를 만날 수 있다.

 

 

ⓒ곽소진

 

유지영은 지난 1월 7일과 8일 양일간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솔로작 <다시 어떤 것의 몸이 되기도 한다>를 선보였다. 최근 몇 년 동안 여성 신체의 사회적 맥락과 신체 움직임의 무용적 의미에 대해 탐구하는 작업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던 그는 출발점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듯 다시 몸으로 돌아갔다. 지난 작업들과의 결별을 선언함인지 이 작업에서는 영상이나 기물 등 매체를 이용해 텍스트를 전달하던 기존의 시도를 일체 배제하고 육성을 통한 발화 또한 전혀 없이 오직 움직임만으로만 무대를 채우고 있다. 

 

 

몸을 벗어난 죽음 혹은 죽음과 분리된 몸

 

공연장에 입장한 관객들이 가장 먼저 발견하는 것은 무대 한가운데 누워 있는 유지영이다. 일명 ‘송장 자세’라 불리는 요가의 사바아사나 자세다. 

유지영은 메리홀 대극장의 400여 객석을 포기하고 무대 위에 의자와 방석을 놓아 무대와 객석 간 경계를 없앴다. 관객들은 객석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무대를 올려다보거나 앞뒤 좌석 간 시야각을 고려해 계단식으로 설계된 객석에서 무대를 내려다보는 것이 아닌, 방석이나 의자에 앉았을 때 시야에 정면으로 잡히는 움직임을 그대로 감상하게 된다. 공연 내내 펼쳐지는 움직임 대부분이 눕거나 앉아서 이루어지는 만큼 관객들과의 눈높이가 거의 수평이 맞춰진 셈이다. 

 

관객들이 입장해 자리를 잡고 앉아 공연을 감상할 준비를 마친 듯 보이자 유지영은 몸을 일으켜 무대 뒤쪽으로 향한다. 흰 종이 위에 흰색 자리가 깔려 있는 모습은 마치 죽음을 의미하는 듯한데, 한 장 한 장 종이를 접어 자리를 감싸는 행위를 하는 유지영의 모습이 이를 뒷받침한다. 관객들은 공연장이 아닌 유지영의 장례식장에 들어온 참이며, 그는 몸뚱이만 남은 죽은 자기 자신을 내려다보며 염을 하고 있는 중이다.

 

 

ⓒ곽소진

 

염을 마친 유지영은 자리를 돌돌 말아 무대 한쪽으로 치우고 다시 가운데로 돌아와 앉는다. 반들반들하게 잘 닦인 둥근 황동 함에 담겨 있는 것은 화장장에서 막 나온 유골이다. 유지영은 막대로 함을 정성스럽게 저어 분골을 만들고 있다. 그가 방금 떠나온 몸이 그의 손에서 가루가 되고 있는 현장이다. 이로써 죽음은 몸으로부터 벗어난다. 혹은 몸은 죽음과 분리된다. 유지영의 몸은 사라지고 몸이 아닌 그가 무대 위에 남는다. 

 

몸을 떠나 더 이상 몸이 아니게 된 유지영은 이제 앉은 채로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한다. 요가에서는 아사나라고 부르는 움직임들이다. 몸이 아닌 상태로 움직이고 있지만 그의 움직임은 몸을 가졌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저 조금 전 목격한 의식을 통해 몸이 아니게 된, 몸으로부터 벗어난 그를 그 자신과 지켜보는 관객들이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앉아서 느리게 움직이며 몸이 아닌 것에 삶을 불어넣은 유지영은 마침내 일어나 몸이 아닌 상태에서 다시 몸으로 돌아가는데, 일어난 뒤 몸으로 돌아가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은 공연 전체로는 찰나라고 해도 될 정도의 매우 짧은 동안이다. 그가 일어나 삶을 불어넣은 다른 몸으로 움직이는 것을 기다리고 있던 관객들은 그러한 ‘다음’을 목격하기 전에 공연이 끝났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앞부분에서 진중하게 다뤄진 몸을 떠나는 과정에 비해 제목의 ‘다시 어떤 것의 몸’이 되어가는 과정은 지나치게 급히 마무리된다. 

 

 

ⓒ곽소진

 

‘차세대 열전’은 제목 그대로 차세대 예술가들을 육성·지원하는 사업이기에 창작자들의 작업 역시 완결성보다는 가능성에 더 방점이 찍혀 있고, 이러한 맥락에서 유지영이 보여준 사유는 충분히 흥미롭다. 그러나 그가 팸플릿을 통해 제시한 ‘멜팅휴먼(Melting Human)’이라는 콘셉트는 아직 너무 관념적이고, 무대 위의 움직임은 멜팅휴먼으로서의 정체성을 이해시킬 만큼 설득력이 있지는 않다. 기승전결이 있는 서사로서의 완결성이 필요한 것은 아니나 ‘다시 어떤 것의 몸이 된’ 이후의 사유를 관객들과도 나눈다면 무대와 객석의 좁혀진 거리만큼 공연 관람 또한 한층 더 가까운 대화가 될 것이다.

 

글_ 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유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