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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치열한 삶의 현장을 숭고하게 그려낸: 99아트컴퍼니 <제ver 3. 타오르는 삶>


99아트컴퍼니는 한국춤의 동시대적 특성과 움직임을 잘 담고 있는 단체로 2014년에 장혜림 안무가를 주축으로 결성되었다. 지금까지 <숨그네>, <심연>, <침묵>, <장미의 땅>, <제ver 2. 타오르는 삶> 외에 많은 작품을 발표했고 하며 근래에는 극장 공연과 미술가 전시작업의 퍼포먼스, 국제 교류 등 그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단체는 컨템포러리 예술을 지향하며 ‘영혼에 울림을 주는 춤’을 신조로 하는 만큼 이번 공연에서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타오르는 삶’의 세 번째 버전인 <제ver 3. 타오르는 삶>은 10월 19-20일 양일간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있었다. 버전 1, 2에서의 호평에 더불어 새로운 변화를 도모하고 양은혜 작가가 작품에 대한 설명을 담은 음성해설을 통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접근성 공연’으로 배리어 프리까지 실현한 의미 있는 무대였다.


<타오르는 삶>은 앞선 버전을 통해 이미 많은 관객에게 알려졌지만 이번 공연은 한국 전통 악기를 통해 공감의 음악을 만드는 가야금 아티스트 주보라, 거문고 아티스트 황진아가 함께 했다. 또한 한국 춤에 기반을 두고 오랜 수련을 거쳐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춤어휘로 표현하는 99아트컴퍼니의 장서이, 이고운, 이승아, 유럽에서 활동 중인 안무가 겸 무용수 Anna Borras가 협력 참여했다. 전통 악기와 춤사위를 기반으로 하지만 현대적인 감각이 오롯이 담긴 무대는 때로는 날것의 원시적인 혹은 제의적인 느낌과 몽환적인 이미지가 공존했다.



공연이 시작되면 흰 보드 바닥 위에는 두 여성무용수(장서이, Anna Borras)가, 하수에는 두 여성 연주가(주보라, 황진아)가 위치한다. 둘은 손을 마주잡고 앉아 목탄을 손에 쥐고 반복적으로 반원을 그린다. 알 수 없는 텍스트를 읊조리며 반복되는 행위는 연속적인 곡선을 만들어내며 한국적인 이미지를 물씬 풍겼다. 서로의 힘을 이용해 중심을 유지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마주한 호흡으로, 거친 숨소리로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목탄으로, 손으로, 자신들의 몸을 매개체로 그림을 완성해갔고, 독백하는 연주자와 또 다른 연주자의 등장으로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이어서 장서이가 등장해 유동적 춤을 추기 시작했고 이후 Anna Borras가 분절적 춤으로 대응한다. 또한 이고운과 이승아의 합류를 통해 구조적인 구성을 진행하며 에너지를 극대화했다.


무용수들은 랜턴으로 관객을 비추기도 하고(마치 광부들의 삶을 반영하듯) 연주자들은 거문고와 가야금을 타악기처럼 두드리기, 싱잉볼 연주와 향 피우기 등 다양한 모습을 연출했다. 여기에는 무용수들의 노동이 향이 되어 올라간다는 해설도 덧붙여졌다. Anna Borras는 기도를 읊조리며 두 무용수의 말과 움직임으로 무대를 채웠다. 전체적으로 움직임의 특질이 한국적이면서도 밀도가 높았으며 Anna Borras와 한국의 무용수, 거문고와 가야금이 어우러져 유기적인 구조를 보였다. 더불어 한국무용의 응축된 내면의 에너지가 외적으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1시간의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무용수들의 강인한 피지컬이었고, 특히 Anna Borras는 외국인이지만 크지 않은 체격에서 뿜어내는 힘이 대단하면서도 한국춤의 호흡과 내공이 엿보이는 듯해서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바닥에 그려지는 목탄의 그림은 예술성을 차치하고라도 움직임 모티브의 반복을 통해 그려내는 시각적 이미지가 한국화를 연상시키면서 상징적이었다. 이들이 완성한 그림은 노동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신체와 정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산화한 타오르는 삶의 결과물이었다. 우리의 삶은 노동의 연속이지만 그로인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존재하는 것이다. 마지막 잿빛으로 그을린 무용수들의 모습에서 재가 된 노동자의 삶을 숭고하게 마주하게 되었고 이는 추상적인 주제를 구체적 이미지로 살려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부분이었다. 소소하지만 인생철학을 담은 뭉클한 무대인 이유이다.


영혼에 울림을 주기 위해서는 감성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도, 뛰어난 테크닉만으로도 이뤄지지 않는다. 이 둘을 갖추고 진정성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제ver 3. 타오르는 삶>은 이 세 가지 요소를 갖추고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점에서 추후 또 다른 버전을 기대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더불어 컨템포러리 한국춤이 가질 수 있는 성공적인 모델로서 동서양의 조화가 적절하게 이뤄져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예상된다.




                                                        

                                                     글_ 장지원(춤평론가)

                                                     사진_ 오성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