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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가능성만 내비친 남사당놀이의 매력: 국립정동극장 <암덕: 류(流)의 기원>


전통 연희를 콘텐츠로 하는 창작 공연에서 ‘현대적 재해석’은 작품과 한몸처럼 등장하는 표현이다. 전통 보전의 노력 못지않게 동시대에서의 창조적 계승 또한 중요함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작품들은 스스로 주장하는 그 현대적 재해석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혹은 안 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이유를 들 수 있지만, 결론은 그동안 지속해온 창작 관행의 답습으로 모아진다. 거기에는 예술성에 대한 보수적인 인식이나 전문가 집단의 시선을 의식한 자기 검열의 태도도 포함될 것이다. 이런저런 관행을 다 반영한 창작이란 결국 구태의 반복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국립정동극장의 정기공연 <암덕: 류(流)의 기원> 역시 이러한 ‘현대적 재해석’의 과업에서 평가가 엇갈릴 수 있는 작품이다. 남사당패 최초의 여성 꼭두쇠 ‘바우덕이’의 삶을 모티프로 하는 이 공연은 남사당놀이 여섯 종목을 무대화해 시대 간의 교감을 추구한다. 바우덕이의 본명 ‘김암덕’에서 따온 제목은 남사당패의 기예로 채워지는 익숙한 연희 형식을 넘어 여성 예인으로서 당대의 고충을 극복한 서사의 힘을 기대하게 한다. 많은 영웅 서사가 그렇듯 23살에 요절했음에도 많은 성과를 남긴 천재의 이야기는 창작물로서 충분히 매력적인 동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전국적인 인지도와 민중의 사랑을 받은 점도 오늘날의 대중문화계 저명인사 같은 현대적 접점을 모색할 수 있는 좋은 기반이 된다. 



실제로 작품의 뼈대를 이루는 아이디어는 흥미롭다. 어린 시절의 암덕이 남사당패의 예인으로 성장하면서 겪는 과정을 다루는 서사는 각각의 기예를 지닌 네 명의 퍼포머가 나눠 맡아 캐릭터의 특징을 부각한다. 어린 암덕은 아역배우가, 노래하는 장면엔 국악인이, 줄 타는 장면에서는 안성시립바우덕이풍물단의 줄꾼이, 춤추는 장면에서는 국립정동극장 예술단 단원이 출연해 암덕의 존재감을 다진다. 다만 이런 설정에는 한계가 있다. 생김새도 특색도 전혀 다른 존재가 등장할 때마다 한 인물의 일관성은 옅어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암덕이라는 인물은 점차 분열하며 깊이 있는 해석의 동력을 잃는다. 더구나 시적으로 연출된 장면 탓에 파편화된 인물과 서사에 대한 해석은 온전히 관객의 몫으로 맡겨지게 된다. 


조각난 서사의 빈 곳을 채우는 것은 농악, 줄타기, 탈놀이, 땅재주 등 예의 남사당놀이 여섯 종목이다. 이때부터 연출 방향은 특정한 누군가의 이야기보다 전통 연희의 미학으로 돌아서기 시작한다. 즉 암덕의 극적인 삶을 구상화하기보다 모두에게 해당하는 보편적인 삶을 추상화하는 노선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암덕: 류(流)의 기원>의 정체성은 앞의 제목보다 뒤에 무게를 두고 있다. 즉 ‘류(流)의 기원’은 암덕이 아니라 유랑예인집단의 원류(源流)인 남사당패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런 형상화를 통해 작품은 춤과 연희, 음악과 영상미술 등이 어우러지며 전통 연희의 자유로움과 역동성을 알리는 총체극 형태로 거듭난다.




전통 연희 전문단체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겠다는 국립정동극장의 선언을 돌아보면 이런 시도는 어느 정도 납득이 가기도 한다. 한국 전통예술을 거론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연희의 미학과 정신을 한 무대에 대체로 잘 끌어모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지점에서 바로 보완할 점이 맞물려 있다. 전통 연희의 정수를 망라하려는 강한 의지는 처음부터 공연의 재료가 정해지는 한계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즉 연희 퍼포먼스가 먼저 자리를 잡고, 나머지 공간을 극작과 연출이 채우는 방식으로 고착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콘셉트는 창작의 동력을 제한할 수밖에 없어서 상투적인 전개와 부자연스러운 구성을 초래하게 된다. 암덕은 이 작품에서 분명히 흥미로운 캐릭터임에도 이런 구도에서는 더 이상 구체화되지 못한 채 흐릿한 인상만 남기고 만다. 전통 연희의 미감은 언제 접해도 감탄을 자아내지만, 결국은 ‘아는 맛’이다. 그래서 암덕의 설정이 등장하는 창작 장면과 전통 연희 장면이 교차하며 등장할 때마다 섞이지 않고 분리된 것처럼 느껴진다. 이 작품이 원점에서 화학적 융합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옛것과 새것이 얽힌 물리적 결합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전통 기반의 창작 공연에서 흔히 목격된 모습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다시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레토릭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단지 영상매체와 기법을 활용해 현대적 느낌을 한 스푼 가미하는 것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상상력과 전통문화의 정신이 하나로 모이지 못한 채 각개전투를 벌이는 형태 역시 이와 무관하다 할 것이다. ‘현대적’이라는 무대 감각의 영역과 ‘재해석’이라는 해체와 재구성의 과정에서 그 대상이 되는 원형의 변신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원형의 변환 작업이 미온적이면 ‘현대적 재해석’은 공허한 마케팅 문구에 그치고 만다. 


실제로 ‘불꽃처럼 살다 간 천재적 예인의 삶과 예술혼’을 내세운 홍보 문구는 결국 실체 없는 존재로 남은 바우덕이와 익숙한 연희의 재현으로 인해 무색해진 면이 있다. 아는 맛을 곱씹는 대신 새로운 맛을 음미하려면 전통 예술의 재해석에도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글_ 송준호(춤평론가)

                                                            사진제공_ 국립정동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