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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공연비평

인간 신체가 엮어내는 변화무쌍한 담론 - 스펠바운드 무용단 <나파스(숨)>& <다운시프팅>




 

 가을은 무용의 계절이라 할 만큼 공연들로 넘쳐났다. 수많은 무용공연 속에서 올해로 14회를 맞이한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가 9월 29일부터 10월 16일까지 18일간 공연장 곳곳에서 이뤄졌다. 특히 이탈리아 스펠바운드 무용단은 <다운시프팅>과 <나파스(숨)>를 가지고 10월 7일 호암아트홀에서 그 화려하고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였다. 1994년 마우로 아스톨피가 창단한 스펠바운드 무용단은 이탈리아 최고의 안무력을 과시하는 무용단 중 하나이다. 이 두 작품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스타일리스트 안무가로 알려진 마우로 아스톨피의 안무로 이뤄졌으며 에너지와 힘, 실험과 기교가 어우러진 독특한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다.

 

 첫 번째 순서 <다운시프팅>은 무용단의 지난 작품들 속에서 일종의 재탄생, “자발적인 단순함”을 표현한 전환점 같은 것으로, 다운시프트족들은 갑자기 새로운 방향을 선택하거나 대안적인 미래를 꿈꾸고, 열정을 재발견하며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라 한다. <다운시프팅>에서 어둠 속 사선 일렬로 늘어선 9명의 남녀는 유연하며 유기적인 움직임들로 오감을 자극하고 이어지는 듀엣 역시 훌륭한 장면을 연출했다. 현대무용단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발레기본으로 다져진 여성무용수들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라인과 부드러운 상체 움직임의 조화는 그 명성을 증명했고, 조용한 피아노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끊임없이 이어지는 남녀의 신체 어휘들의 조율과 연속적 에너지가 내적 힘을 배태하고 있었다. 여성 보이스로 전환된 음악에, 플로어에 사각 체크 조명이 깔린 상태에서 군무진들은 몸을 엮기도 하고 서로의 중심을 이동하며 세련된 구성을 이뤘고 이후 바이올린 선율에 펼쳐지는 솔로, 듀엣, 트리오 역시 작위적이지 않은 움직임의 흐름이 물 흐르듯 신체의 이완된 형태를 형상화했다. 무용수들의 상식을 벗어난 유연함과 다양한 움직임 어휘들을 통해 그들의 신체를 향한 탐색을 엿볼 수 있었다. 남녀의 밀착된 움직임에 있어서도 에로틱한 이미지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에너지의 조합이 느껴지고, 접촉즉흥 식의 움직임들은 풍부한 감정표현으로 빛을 발했다.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인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감정, 이미지, 소리 및 움직임을 담는 공연은 9명의 무용수들의 순수한 움직임, 본질의 언어로 충분한 대화를 시도했다.


 <나파스(숨>은 육체적으로 힘든 안무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희열과 고통에 찬 호흡을 내쉬는 무용수들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나파스(nafas)’는 인도어로 호흡을 뜻하지만 세계 각지의 문화에서 그 의미가 변화면서 놀라운 특징을 띠고 있다는데, 안무가는 이를 놓치지 않고 춤으로 구현했다. <다운시프팅>이 신체 자체의 미묘한 엮임이 정교하고 좀 더 정제된 모습이라면 이에 비해 움직임 어휘가 풍부하지는 않지만 오브제를 사용해 인간과 물체간의 긴밀한 교감, 무용수들간의 유머를 이끌어냈다. 공연이 시작되면 3명의 여성이 테이블을 3단으로 놓아 만들어낸 구조물 속에서 꿈틀거리며 움직인다. 이 테이블은 세 개의 요람, 세 개의 작은 침대, 그리고 인간이 최초로 움직이고 최초의 숨을 들이마실 수 있는 외부의 첫 번째 접촉면을 상징한다. 이후 테이블을 이동시켜 옆으로 길게 붙여놓고 그 위에서 코믹한 장면을 만들기도 했다. 희화성을 더하는 음악과 테이블의 효율적 사용이 돋보였고, 강렬한 북소리의 타동에 맞춰 여성군무와 남성 솔로가 더해지는 장면이 이국적 느낌을 더했다. 이 작품 역시 무용수들의 유연한 몸짓과 아크로바틱한 움직임, 계속되는 구성의 변형이 치밀하게 계산된 모습을 드러냈고, 후반부 남성의 그로테스크한 외침과 소리에 빠르게 반응하며 원시적 감성을 더하기도 했다. 더불어 경쾌하고 빠른 음악으로 전환되면 그들의 움직임도 속도감을 더하고 마지막 사각 조명선을 따라 사이사이 중앙 공간을 오가며 이동하는 가운데 ‘나파스’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했다.

 

 전반적으로 이들의 춤은 한참 농당스(Non danse)의 개념이 트렌드를 이룰 시기에도 이렇듯 일관되게 순수한 움직임과 치밀한 안무로 무용미의 본질을 일깨우며 승부를 거는 외국무용단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기에 더 없이 반가웠다. 이번 시댄스의 슬로건은 ‘몸, 춤이 되다’이다. ‘춤은 몸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기본적인 원리에 충실한 문구에 맞게 스펠바운드 무용단의 춤은 다른 매체 어떤 것의 도움 없이도 인체의 미와 수많은 어휘가 이뤄내는 몸의 담론이 더 없이 많은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다만 굳이 아쉬움을 표한다면 훌륭한 기교와 세련된 구성이 연속적으로 연출되다보니 여기에 익숙해진 탓에 감흥이 반감되었다고나 할까? 라는 배부른 투정이었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SIDance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