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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발레의 현주소 - 2011 발레블랑 정기공연


 1980년 古 홍정희 선생에 의해 창단된 발레블랑(Ballet Blanc)이 30주년 공연에 이어 젊은 안무가들의 정기공연 무대를 마련했다. 홍정희 선생이 1980년대에 대학동문 무용단 발레블랑과 한국발레연구회를 창립해 불모지에 가까웠던 국내 발레계에 정통 발레의 터전을 굳건히 하고자 노력했다면, 발레블랑의 역사는 달리 말하면 한국에 있어서 대학발레단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겠다. 9월 1일 마포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이뤄진 공연에서 1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는 이지연, 2부 <슬픔의 노래>는 정은선이 안무를 하였는데, 서로 다른 특색이 엿보인 공연으로 시선을 끌었다. 이지연의 안무가 다양한 발레어휘를 사용하며 움직임에 중점을 두었다면, 정은선의 안무는 극적 이미지를 강조하며 연극성을 띠었다고 할 수 있다.

 

 이지연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는 반복되는 사계절과 그 이후 또 다시 맞이하게 되는 새해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끝은 시작이고 시작은 끝이 되는 순환의 고리이며 일상에서 피하고자 하지만 또 찾아오며 거부할 수 없는 일들의 시작이기도 하다. 사계절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색색의 칸막이 조명과 그림자만을 가지고 움직임의 특질을 달리한 신체의 그림자는 세련된 연출은 아니었지만 관객의 이해를 도왔고, 이후 등장한 6명의 군무진들의 테크닉이나 구성은 안정적이었다. 3인무, 4인무, 듀엣 등이 이어지며 각 계절에 맞는 분위기를 이어나갔지만 비슷한 유형의 움직임들의 나열과 감정표현의 부재는 감동을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엔딩신도 첫 부분과 같은 장면으로 처리했는데, 결말이 예상되는 부분이어서 전체적으로 연륜이 부족한 느낌을 주었다. 주제와 구성에 대한 세심한 이해가 수반되었다면 전체적으로 무용수들의 기량도 돋보이도록 하면서 개성 있는 무대를 완성할 수 있을 듯 했다.


 정은선의 <슬픔의 노래>는 예고 없이 닥친 재난에 의해 고립된 공간 안에서의 에피소드들을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대본을 갖춘 까닭에 스토리텔링이 명확했고, 긴장감이 감도는 음악에 하수 쪽 문(門) 세트에서 뛰쳐나온 일련의 사람들의 갑작스러움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9명의 남녀 무용수들은 각자의 성격을 드러내는 의상과 현대적 움직임, 액센트 강한 동작으로 분위기를 이끌어나갔는데, 현대무용 전공의 정수동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문선하의 솔로와 밝은 이미지들의 듀엣 이후 개성이 강한 음악에 직각을 이루는 팔이 강조된 군무, 집시풍 음악에 역동적 인상을 남긴 주술사 최정인의 춤, 그 밖의 많은 움직임들이 발레어휘와는 다른 컨템퍼러리성을 수반했다. 곳곳에 배치된 미장센들과 극적표현들이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무대를 통해 색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일부 장면들에서 정수동의 안무인지, 안무자 정은선의 안무인지를 의심케 하는 부분들이 엿보여 아쉬웠다.

 

 두 안무자의 안무는 전체적으로 무난했지만 발레블랑의 젊은 안무가들인 탓인지 감동을 주기에는 부족한 무대였고, 달리 말해 좀 더 대학에 기반을 둔 발레단인 만큼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했다. 이는 발레블랑만이 아니라 현존하는 대학발레단이 갖춰야할 기본소양이라 생각되며 특히 우리나라 발레계를 이끌어나갈 인재들을 충분히 갖춘 발레블랑이 앞으로 깊이 자각해야할 점이라 생각된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발레블랑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