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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장르의 '확장' 이라는 문법을 구현한 브레인 팩토리 국제다원예술프로젝트

 예술의 본질과 예술가의 존재에 대한 성찰에 입각해 볼 때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계속되어 왔다. 하지만 해답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한다. 모든 생명체가 생사소멸의 길을 걷듯 예술의 장르도 유기체이기 때문에 유사한 과정을 겪는다. 장르가 계속해서 바뀌는 또 다른 이유는 예술을 둘러싼 주변 환경이나 예술생태계가 변화하기 때문인데, 그 와중에 예술생태계에서는 어떤 장르에 소속되지 않거나 새로 태어나는 양식이 있다.


 2010년 10월 28일부터 11월 4일에 걸쳐 갤러리 브레인 팩토리에서 열린 국제다원예술프로젝트는특히 현대사회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반영하며 여러 장르에 걸친 실험적 양식으로 정의되는 다원예술의 실연(實演)을 통해 우리에게 앞서 언급한 새로운 양식인 다원예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다원예술은 장르융합의 상호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interdisciplinary arts”로 쓰이며 이는 장르의 중간에 놓인 새로운 형식이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양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 스페인, 네덜란드, 한국 출신의 작가 9명으로 구성된 다원예술프로젝트 Well>은 클래식 음악가로 해외에서 연주활동을 벌이다 기획자로서 변신을 해 온 김경진이 ‘열린 시각과 소통의 중요성 그리고 다양성에 대한 수용’을 주요 담론으로 제안하면서 문학, 현대무용, 설치미술, 뉴미디어, 전자음악, 클래식 음악, 영상, 아티스틱 리서치 등 다양한 작가들의 협업을 통해 작품의 과정 및 결과를 도출하는 프로젝트였다. 프로그램은 예술 간의 공유예술매체를 시 그리고 이 시를 음악적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국적과 장르를 초월하는 예술 간의 긴밀한 연계 및 해석으로 새롭게 접목해 보는 방식이다. 즉, 모티브가 된 시를 4개 악장 -Primo(초기의), Adagio(느리게), Espressivo(표현력 있게), Allargando(점점 넓혀가는)로 재편성된 구도를 기반으로 구성되었다. 나누어진 4개의 파트별 구조 안에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텍스트를 매체로 하는 각 예술장르간의 상이한 해석에 대한 지속적인 확장이 적용된다. 프로젝트의 시작이 되는 심보선의 시 ‘식후에 이별하다’에서 이별이라는 단어는 구성원들의 공용어인 영어 ‘farewell'로 변환되고 이 단어가 다시 Fare와 Well로 분리되면서 새롭게 파생되는 의미들도 주목할 부분이었다.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성, 시 컨텐츠와의 연계 및 아이러니, 이번 프로젝트에 도입된 음악적 형식을 반영하는 음악적 기호(fermata 잠시 멈추다)의 도입 등 다각적인 언어의 유희도 가미되었다.


 프로젝트의 제목 <Fare-Well>은 다양한 장르 간 소통을 통해 다양성을 모색하려는 프로젝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도록 새롭게 조합된 기호다. 구성원간의 다양한 관계성과 다이나믹을 표방하는 ‘잘 지내다’, ‘가다’, ‘성공하다’, ‘여행하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의 공유매체인 시 컨텐츠와 연계되는 ‘먹다’의 사전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 ‘fare’가, 음악 기호(fermata 잠시 멈추다)를 매개로 ‘well’이라는 단어와 연결되었다. 이는 매체로 사용될 다양한 형식들의 영역과 영역 사이의 교류, 프로젝트의 음악적 형식 그리고 그 안에서 발생할 아이러니를 즐기며 확장해 나가게 될 이번 프로젝트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오프닝과 엔딩 공연에서 현대무용단 LDP의 무용수 조지영은 뉴미디어 작업과 함께 전시장 밖으로 무대를 옮겨 주요 모티브인 ‘확장’의 어법을 재해석했고, 시에 있어서 연과 연 사이의 경계 지점에 침입하여 이별을 예감하는 두 남녀의 심리상태를 춤으로 표현했다. 이때 신체 움직임과 설치, 영상, 사운드, 뉴미디어 작업들은 상호반응을 통해 전시공간을 무대로 확장시켰다. 영화를 맡은 김한상은 ‘식후에 이별’할 예정인 한 여자의 이야기를 보여주며 시작하는데, 공연 중 사전제작 필름과 전시과정 중의 공연을 담은 필름이 합쳐져 비디오 설치 형태로 전시된다. 동일한 전시공간 안에서 쟈스미나 로베와 루이스 페르난데스 폰스는 분리되고 변형되어 더 이상 기능할 수 없는 테이블의 부분들을 형상화 한 미니멀한 느낌의 나무조각을 설치해 마치 헤어진 연인들 사이의 관계를 본 듯한 느낌을 제공한다. 관람객이 1층 전시장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2층으로 연결된 끈이 움직여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 소리를 내고 2층의 한쪽 공간에서는 시각예술과 아티스틱 리서치를 맡은 사스키아 얀센이 약물 중독자들을 위한 센터를 방문해 느꼈던 이미지들을 환각상태에 빠진 창녀들이 벽면에 쏟아낸 노트를 촬영한 다큐멘터리와 창 끝에 위태롭지만 느슨하게 부착돼 있어 모순되게도 결국 접시는 계속 회전하고 있음을 재현하고 있는 조각 작업을 설치해 놓았다. 이때 프로젝트의 주제음악인 모리스 라벨의 가 전자음악과 라이브 피아노 음악으로 재구성되어 연주된다. 이처럼 음악가 남상원은 클래식 곡을 해체하고, 일부는 차용해 재배열하는 과정을 거쳐 두 번 공연하고 뉴미디어를 맡은 제임스 파우더리의 작업은 프로젝트의 시작과 결말을 보여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서막에서 죽이 놓여있는 테이블 위, 무용수가 직접 죽을 젓는 퍼포먼스에 한국 시 텍스트를 스크리닝하는 방식으로 개입하고, 마지막 날 공유 텍스트에서 가져온 시각적 이미지를 총체적으로 건물에 투사함으로서 개념을 보여주고자 했다. 시의 영상이 흐르는 가운데 조지영을 포함한 남녀 4명이 벌이는 야외공연은 장소적 특성, 관객들의 반응, 장르적 관습과 충돌하고 교류함으로써 즉흥극의 묘미를 완성했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의 협업작업이 최근의 이슈는 아니지만(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에 이미 등장했기에) 새로운 예술의 형태로 주목받으며 등장한 이유는 분명하다. 다원예술의 원리는 경계의 해체이며 고정된 경계를 가진 사고로는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장르를 파괴하고 장르를 넘어서자는 탈장르의 문예운동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다층적이고 다양하며 다매체적인 것을 특징으로 한다. 브레인 팩토리라는 공간 내·외부를 사용하여 각 예술장르 간 개별적 해석의 병렬식 조합이 아니라 ‘확장’이라는 뚜렷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이뤄진 본 프로젝트는, 준비와 진행기간 동안 그들 간의 소통을 통하여 다양성의 수용이라는 관점을 사유하며 새로운 관계 정체성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에 다원예술의 개념을 충분히 표현했다. 예술가들 각자의 기량을 파악하기에는 미흡함이 없진 않았으나 기존 장르에 대한 의미를 재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고, 또 시대에 맞는 창의적 예술 활동의 전망을 예측할 수 있었다. 한편 사회의 변화를 현장에서 포착하기 때문에 생활을 중요시하며 삶의 연속성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그 삶이 사회와 연속되어 있음을 표현하려는 정신은 살아 숨 쉬는 예술로서 먼 세계가 아니라 우리에게 가까이 존재함을 생각게 하는 총체적 해석이었다.



글, 사진_ 장지원(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