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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이영선 솔로 무용 공연



 몸 움직임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 어휘가, 어절이, 언어가 젖은 몸을 말리며 꿈틀꿈틀 날개를 펼치고 첫 비상을 준비하는 나비처럼…. 긴 시간 번데기 속에 움츠렸던 몸이 무한대로 펼쳐낼 자유와 상상을 양식 삼아 인고했다는 듯이…. 그의 몸 움직임에서 신성한 아우라를 구하고자 함은 세상에 처음으로, 유일하게 내놓은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유연한 몸은 새로운 움직임 어휘를 장전하고 시를 지어 들려준다. 쉼 없이 풀어내는 ‘몸 움직임 어휘의 조탁’이라는 작가적 결과 촉을 드러낸다.

 

 이영선의 에는 이야기가 없다. 객석의 상상을 자극하는 음악도 없다. 앞에 선 그가 누구인지 유추할 단서도 없다. 그저 몸 움직임을 위한, 또는 보여주기 위한 효율적인 기능복, 짧은 팬츠 레오타드 차림의 그가 있다. 웅크려 엎드린 몸을 펼치며 공연은 시작되었다. 귓가에 속살대는 아이의 숨결 같기도 하고, 은밀하게 다가오는 관능의 짓거리 같기도 하고, 내내 무표정한 얼굴과는 달리 몸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빛깔은 다채롭다. 가볍거나 무겁지 않고, 빠르거나 느리지 않고, 관객에 직접적인 대거리를 하거나 홀로 빠진 심연에 허우적이지도 않는다. 춤을 구성한 움직임 요소의 극이 놓인 지점을 이어 만든 공간의 범위는 넓지 않은데 그의 몸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어휘는 풍부하다. 흔히 맛보던 것과 다르다. 이 맛은 그가 받아온 ‘자신이 하고 있는 게 뭔지 정확히 알고 있는 무용수’라는 상찬의 이유와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영선은 이력이 남다른 예술가이다. 여느 무용수와는 다른 수련과정을 거쳤다. 대학 졸업 후 통번역사로 일하던 중, 늦게 춤을 시작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전문사 과정을 통해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했다. 국내 무용계로부터는 정통 수련과정에서 나오는 클래식한 동작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으며 힘겹기도 했다. 인내하던 이 과정에서 현재 연작 4까지 나온 <달팽이>가 시작되었고 다른 솔로작 <침전>이 나왔다. 무용가로서 그의 잠재력을 알아본 이는 일리노이 주립대학 무용과 석사과정에 전액장학생 자리를 제안해준 미국 교수였다. 유학을 위한 도미 이후 LA 포드 씨어터, 블로멘털 퍼포밍 아트센터 등에서 공연했고, 2010년 댄스매거진 주최 전미 학생 베스트 안무/공연상의 파이널리스트에 선정되는 등 무용가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해왔다. 2010년 석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했다. 이번 공연 후에도 미국 서부 데라시 레지던스 어워드 프로그램에 안무가로 한 달간 참여하는 일정이 잡혀있다.

 

 3월 10일과 11일 양일간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 올린 이영선의 은 4개의 솔로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이 공연에서 이영선은 <달팽이III-섹시한 달팽이> <혼자 있는 방이 말을 걸다> <이영선> <작은 연못 안에 있는 나무 위의 물고기>를 보여줬다. “그의 춤은 겹겹이 의미가 쌓여 응축된 단단한 시와 같(공연 프로그램-기획의도에서)”아 관객의 적극적인 사고와 집중력 있는 감상을 요한다고 되어 있다.

 

 공연을 보는 내내 그가 준비했을 몇 마디 암호가 적힌 프로그램으로 자주 손이 갔다. 손아귀에 쥐어진 이영선의 작품노트, 기획의도, 그의 춤 이력은 막간마다 펼쳐졌다 급하게 접혀지며 시간이 갈수록 구겨졌다. 하지만 이는 그의 무대를 따라가려는 자의 최소한의 성의였다. 물론 얼마 되지 않는 관객은 적어도 노골적으로 지루해하거나 자세를 자주 고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힘겨워 보였다. 부진한 과목에 집중해야 하는 이들처럼.

 

 몸과 움직임에 관심이 깊고, 여기에 추상적 연상을 연결하는 재미가 훈련된 이들에게 이영선은 성찬의 식탁을 제공한다. 그래서 춤의 실험실에서, 대학에서, 학술적 성격의 춤 경연에서 그의 춤은 높이 평가받고 빛난다. 실험실의 연구과정과 성과는 관계자에게 역동적이고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연장의 춤은 실험실 관계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소극장을 절반도 채우지 못한 그의 객석을 바라보며 무대 위에 그가 차린 몸 움직임 어휘의 성찬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이영선의 춤과 춤꾼 이영선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하고 있었다.

 

 실험실이 아닌 극장 무대에 상을 차리고 관객을 초대한 이영선이 객석과 나누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과연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래도록 우리는 그를 볼 수 있을까. 이영선의 지속가능성을 묻고 있다.

 

 

글_ Inter_ D

경계에서 춤의 탈경계를 관찰하는 일꾼
관심영역은 문화혼종, 기술융합, 다원예술, 비보잉, 예술아카이브
사진_ 한국공연예술센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