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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한국 고전무용의 새로운 부활 무대: 2022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한국의 춤 유파전(김백봉류) 공연

20세기 들어 식민지를 경험했던 아시아 국가에서는 국민주의 춤 혹은 민족주의 춤이라는 독특한 춤양식이 존재한다. 창작자가 불명확하고 공동체 전승으로 내려온 전통춤과는 달리 국민주의/민족주의 춤은 안무자가 있는 창작춤이지만 고전무용으로 간주한다. ‘한국무용’은 식민 지배로부터의 해방과 동족 간의 이데올로기 전쟁을 경험했던 신생국가 대한민국이 낳은 국민주의 춤이자 민족주의 춤이며, 한국의 고전무용이다. 한국무용은 전쟁, 기아, 독재로 그늘진 신생국가를 아름답고 전통 깊은 나라로 알리는데 제격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국제문화교류는 한국무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당시에 국가를 대표하여 해외무대로 진출했던 무용가들은 전통문화의 전승지식을 바탕으로 국제 공연양식의 표준에 맞는 여러 춤을 창안했는데, <부채춤>, <화관무>, <장구춤>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한국의 고전무용으로 알려진 주옥같은 레퍼토리를 창안했던 주역이 바로 김백봉 선생이다.


 

<김백봉부채춤>  ⓒ 김주빈

 


지난 9월 29일(목)에 서울남산국악당은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와 공동사업으로 ‘한국의 춤 유파전(김백봉류)’을 올렸다. 이 공연은 김백봉-안병주 모녀로 전승된 한국무용 레퍼토리가 총망라된 화려한 무대였다. 이 공연을 주관했던 김백봉부채춤보존회(회장: 임성옥)는 총 아홉 작품을 선보였는데, 그중 한국무용의 원조 격인 김백봉 선생의 <김백봉화관무>, <광란의 제단>, <선의 유동>, <김백봉부채춤>은 음악, 의상과 소도구, 무대구성, 동작과 표정, 조명에 이르기까지 원작의 색감과 질감을 살리는데 충실하였다. 특히 이들 춤에서 <화관무>와 <부채춤>의 제목에 ‘김백봉’을 접두어로 표기한 것이 눈에 띄었다. 비록 두 춤이 한국무용계의 공통 레퍼토리로 정착되었지만 ‘김백봉’의 원작임을 강조하고 김백봉부채춤보존회는 ‘김백봉’의 춤정신을 계승하는 단체임을 표방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보존회는 프로그램 북에서 <김백봉부채춤>은 1954년 김백봉에 의해 창작된 작품이라고 명시하며,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등재되면서부터 ‘김백봉부채춤’으로 명칭이 지정되었다고 밝혔다.


 

<향기>  ⓒ 김주빈

 


<세 가지 전통리듬>, <웅비>, <향기>는 김백봉 선생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창작한 작품으로 한국무용이 창작무용으로 새롭게 도약하는 시기의 창작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웅비>는 남성 무용수의 활기찬 동작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한국무용이라면 화려한 여성 군무라는 도식을 깨뜨려준 작품이었다. <세 가지 전통리듬>과 <향기>는 최승희 원작을 오마주한 작품으로 1996년 서울예술단의 <최승희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무대를 통해 재탄생된 작품이다. 전형적인 장구춤 여성 군무 <타의 예 II>에 이어진 장구춤 독무 <향기>는 한국 고전무용의 3세대 춤의 현재가 보이는 작품이었다. 원래 <타의 예>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개막식에서 웅장한 장구 군무로 눈길을 끌었던 작품이다. <향기>는 기존의 장구춤과 설장구 춤놀이가 해체되어 새롭게 접목된 독무 작품으로 고전무용의 새로운 좌표를 제시해주었다. 이번 공연에서 특히 눈길을 끌었던 작품은 김백봉 선생의 산조인 <청명심수>를 안병주가 오마주한 <시 산조를 노래하다>였다. 김백봉 선생의 장녀인 안병주는 김백봉춤보존회의 예술감독이자 <김백봉부채춤>의 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다. 공연의 사회를 맡았던 한덕택은 김백봉 선생의 불굴의 예인정신을 시로 찬송하였고, 안병주는 우주와도 같은 어머니의 춤의 세계를 짊어진 전승자의 마음을 잔잔한 춤사위로 표현하여 관객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시 산조를 노래하다>  ⓒ 김주빈

 


김백봉부채춤보존회가 이번 무대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은 10여 명으로 이루어진 반주단을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기존의 한국무용 공연이 MR반주에 맞추어 진행되는 것에 반해 보존회는 전통춤 반주단과 호흡을 맞추었다. <살풀이춤>, <승무>, <태평무>와 같은 독무로 진행되는 전통춤판에서는 무용수 개인이 반주단의 음악에 춤을 맞추어 조율해 갈 수 있지만 <부채춤>과 같은 군무에서는 그런 유동성이나 즉흥성이 허용되지 않는다. 반주단은 무용단의 춤에 맞추어 적절한 톤, 템포, 선율을 제공해주어야 고전무용이 강조하는 흐트러짐이 없고 일사불란한 춤을 구경할 수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반주음악이 소리로든 박자로든 삐끗대어 춤의 완결성을 방해하는 순간을 더러 발생시켰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무용가들과 무용애호가들은 몸으로 주고받는 기운생동의 전이를 체험할 수 없어서 맥이 빠져있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무용의 고전적인 정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간의 몸으로 창조되는 예술”이다. 따라서 무용공연의 진수는 관객들이 특정 공간에 실재하면서 시간(리듬)의 흐름을 따라 펼쳐지는 몸의 생생함과 춤의 생경함을 체험하고 전율(메타키네시스)을 느끼는 데 있다. <부채춤>, <화관무>, <장구춤>, <무당춤> 등은 국가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등장한 춤이라서 무용관객들에게 감동과 전이가 쉬운 고전 레퍼토리들이다. 3년 만에 살아난 무용공연의 열기 속에서 관객들은 고전무용의 익숙한 선율과 동작에 몸을 간들거리며 (국악에 ‘귀명창’이 있듯) 오랜만에 ‘눈명인’이 되는 경험을 하였을 것이다.




                                                      글_ 최해리(무용인류학자, 발행인)

                                                 사진제공_ 김백봉부채춤보존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