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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과 감각적인 이미지로 완성해낸 디스토피아: 이루다 〈디스토피아 2-SIDE EFFECT〉

이루다는 기존의 발레리나 이미지를 탈피해 MZ세대 느낌을 확연히 풍긴다. 검은 발레슈즈를 뜻하는 ‘black Toe’를 통해 발레블랑으로 대표되는 발레의 환상을 깨며 그녀만의 강렬한 개성을 드러냈다. 또한 댄스경연프로그램 <댄싱9> 방송에서 대중들에게 각인되면서 마니아층을 형성하기도 했다. 자신만의 색깔을 선명하게 만들면서 현대무용가인 어머니 이정희 선생의 그늘에 머물지 않고 영역의 확장을 이뤄왔다. 온라인 콘텐츠 개발,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은 장르를 초월해 이루다라는 무용가를 널리 알리며 동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신작 〈디스토피아 2-SIDE EFFECT〉는 제목 ‘side effect’에서 드러나듯 ‘부작용’에 대한 경고를 강하게 담았다. 전작 <디스토피아>에서 환경문제를 다루며 디스토피아 속 유토피아를 꿈꿨다면 이번에는 미래의 세계를 보여주며 새로운 질서와 변화로 재편되는 그 속에서 인류가 발전과 진화를 위해 선택한 것들의 부작용을 다룬 것이다. 특히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위기와 되돌아올 부작용을 예측해 보며 올바른 가치판단과 선택은 무엇인지 질문하려 했던 이루다의 주제의식은 또렷하게 표현되었다. 디스토피아를 만들어 인류가 지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간을 다룬 전작과 동일하게 〈디스토피아 2〉도 무대 위의 시간은 흐르며 줄어든다. 이루다는 무대에 혹은 관객석에 비닐로 만든 더미(dummy)를 위치시켰다. 이어 등장한 방역복 차림의 인물들도 더미와 마찬가지로 오염된 미래 환경, 미래의 로봇과 연관됨을 암시했다. 방역복 차림의 무용수들은 체온계를 가지고 나와 관객들의 열 체크를 하는 등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백조의 호수> 음악이 흐르며 바닥면에 물방울 혹은 세포를 연상시키는 영상이 투영된다. 이밖에도 무대 전면을 감싸 흐르는 영상은 감각적이며 뒤이은 강렬한 음악에 검은 가죽옷을 입고 방역마스크를 쓴 무용수들은 패션쇼를 하듯 워킹하며 등장했다. 이들 각기 다르게 검은 의상을 입은 12명의 무용수들은 마치 마블 영화의 히어로들 같으며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설정이기도 했다. 분절적으로 춤추며 움직임을 해체한 이들은 나름의 색깔을 드러냈고, 원형으로 돌기도하면서 마치 클럽에서 한명씩 자신을 뽐내듯 등장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들은 관객 옆을 지나 무대 위 높게 마련된 장소로 올라가 군집을 이루며 유동적인 움직임을 계속 이어간다. 그 순간 아래쪽 무대에서는 얼굴을 비닐봉지로 감싸 숨쉬기가 불편한 남성이 괴로움을 표현하고 여성은 비웃듯 한다.




뽁뽁이로 만든 방역복을 입고 괴로워하는 인물, 고장난 인형 같이 움직이는 여성 무용수와 이를 막 다루는 남성무용수는 미래의 인류가 발전과 진화를 위해 조성한 환경의 부작용을 담아냈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무자비한 움직임의 듀엣은 기계의 오류를 연상시켰고 검은 타이즈에 얼굴에 검은 망을 쓴 7명의 여성들의 군무는 기하학적 영상과 암울하면서도 특이한 음악과 더불어 해체적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발레의 고전적 움직임보다는 현대무용의 역동적이고 강인한 특성이 강화된 군무와 긴 머리의 남성의 카리스마가 눈길을 끌었다. 폭력적이거나 가학적인 행위, 특별한 서사를 담기보다는 감각적인 진행과 연출, 패션쇼를 방불케 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세련된 의상 등이 작품에 주력된 이미지였다. 


이밖에도 더미에서 마구 비닐을 뽑아내기도 하고, 자연 풍경을 담은 영상으로 대비되는 인상을 제시하기도 하면서 후반부 자신의 더미를 들고 나와 춤추다 던지고 쓰러지는 등의 전개가 이어진다. 엔딩 장면에서 엄청난 포그(fog)는 불투명하면서도 불안한 미래를 그렸고, 숫자는 0을 가리키며 시간의 경과를 마무리했다. 방역복 입은 남성은 위층에서, 다른 주연 남성은 아래층에서 천천히 걷는 마지막 모습에서 이번에도 역시 현재와 미래의 대비,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부작용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았다.




〈디스토피아 2-SIDE EFFECT〉는 우리가 낙관적으로만 조망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염려와 경고를 파격적인 연출과 세련된 이미지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다. 특히 앞서도 언급했지만 패션쇼 같은 무대는 젊은 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감성이 농후했다. 다만 기승전결의 전개에 있어서 반복되는 인물이나 움직임의 유형들이 밀도를 감소시키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따라서 선택과 집중의 묘미를 좀 더 살린다면 그녀가 평소 보여주었듯이 발레의 패러다임을 벗어나 강렬한 메시지의 전달과 원초적이지만 자유롭고 시대를 담은 움직임으로 발레계의 이단아가 아니라 컨템포러리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더욱 확고하게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제공_ 이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