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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로 재탄생한 소비에트 스탈린 시대의 풍자 문학: 볼쇼이발레단 <거장과 마르가리타>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2021년 12월 볼쇼이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루마니아 출신으로 슬로베니아에서 활동하는 안무가 에드워드 클류그의 안무로, 러시아의 현대 작곡가 알프레드 슈니트케와 슬로베니아 작곡가 밀코 라자르의 음악에 맞춘 현대 발레이다. 클류그는 본래 취리히발레단에서 2015년에 이 작품을 초연하고자 했다. 괴테의 <파우스트>와 유사점이 많기에 이 작품이 유럽인들에게 통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결국 취리히에서는 계획을 선회하여 <파우스트>를 제작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에 등장하는 악마 볼란드는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를 닮았다. 볼란드가 모스크바 아파트를 구매한 뒤 소유자인 자신의 이름을 표기하며 메피스토펠레스의 이니셜인 M을 뒤집어 볼란드의 이니셜 W(독일어로 발음)로 만드는 장면은 그 둘의 유사성을 드러내는 의도적 장면이다.


스토리 원작이 있는 작품을 발레화 할 때 어느 부분을 중점적으로 무대화할 것인지가 가장 큰 과제일 것이다. 특히 <거장과 마르가리타>처럼 복잡한 플롯에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작품의 경우, 선택과 집중, 구체와 추상 사이 어느 지점에서 균형을 찾는가가 관건이다. 스토리에 천착하다 보면 유치한 드라마 발레가 될 위험이 있고, 추상성과 상징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뜬구름을 잡는 작품이 될 수도 있다.


Photo by Damir Yusupov/ Bolshoi Theatre.

안무가는 2막의 발레에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했다. 1막은 연극적 요소와 구체적 장면을 가미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친절한 상황 설명을 하고 서사를 이어나가는 데 치중했다. 예를 들어, 베를리오즈가 전차에 치여 목이 잘리는 장면에서, 전차 사고를 유발하게 되는 해바라기 기름을 쏟는 여자가 굳이 등장을 하며, ‘문자 그대로’ 베를리오즈의 잘린 머리가 뎅그러니 무대에 놓이기까지 한다. 분수대, 벤치, 식당, 정신병원, 모스크바 아파트 등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장소에서 인물들은 대사를 말했다. 움직임이 가미된 연극이라 해도 될 만큼 드라마적 요소가 충만하다.


1막의 가장 매혹적인 춤은 단연코 흑마술을 하는 볼란드의 탱고 장면이다. 목과 발목 아래에 의자 두 개만을 놓고 공중부양 하듯 편안히 떠 있는 자세로 시작하는 솔로 탱고는 슈니트케의 매력적 음악을 타고 우아하고 유연하게 흐른다. 극 중 모스크바 시민들을 홀리기 위한 탱고지만 실제 관객들조차 볼란드의 탱고에 홀려 그의 흑마술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Photo by Damir Yusupov/ Bolshoi Theatre.

설명적인 1막과 달리 2막은 오로지 악마의 연회 장면으로만 구성하여 집중도를 높였다. 살색 레오타드를 입은 마르가리타를 중심으로 20명의 마르가리타들이 슬립을 벗어 걸어놓고 모두 살색 레오타드 차림이 되어 연회를 준비한다. 마침내 등장하는 32명의 악마의 연회 참가자들 역시 한결같은 살색 레오타드 차림에 팔꿈치까지 오는 붉은 장갑을 끼고 있다. 마르가리타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늘어선 이들은 순차적으로 팔과 몸을 움직이며 초현실적 환영을 만들어냈는데, 마르가리타의 등에서 피어난 듯한 날개가 되기도, 팔의 연장이, 살덩어리와 혈관의 움직임이 되기도 했다. 살덩어리에 붙은 새빨간 팔은 거대 벌레의 수십 개의 발처럼 그로테스크하게 보였다. 무대의 구도와 움직임 구성으로 악마의 연회라는 장치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낸 장면이다.


슈니트케와 라자르의 음악은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이끄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슈니트케가 영화 <거장과 마르가리타> 사운드트랙으로 1993년 작곡한 곡을 베이스로, 라자르의 새로운 음악이 더해졌다. 특히 2막에서 연주되는 첼로와 바이올린이 리드하는 현악기의 웅장하면서도 음침한 선율은 예상치 못한 전개로 진행되며 불편한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마녀가 된 마르가리타가 연회를 준비할 때 울려 퍼지는 반복적 음악은 공연 자체를 악마로 만들어버리려는 듯 위압적으로 공연장을 휘감았다.


Photo by Damir Yusupov/ Bolshoi Theatre.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무대는 거대한 수영장이다. 가운데가 사각 모양으로 파여 있고 타일이 있으며 계단이 달려있다. 세 벽면에는 13 개의 문이 달려 있는데, 모스크바의 아파트나 화장실, 욕실로 변신하는 문이 된다. 이 거대 수영장은 다양한 소품과 장면 연출로 갖가지 장소로 둔갑한다. 벤치가 있는 뜰, 볼란드 일당의 흑마술 무대, 식당, 사우나, 정신병원, 악마의 연회장과 예루살라임이 되는 상징적 장소이다.


클류그는 소비에트 스타일의 거대 수영장에서 장소에 대한 메타포를 가져왔다. 모스크바의 명소이자 러시아정교 교회인 구세주대성당은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주의 사상과 스탈린의 도시 계획에 의해 1931년 폭파되었다. 스탈린 고유의 건축 양식으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짓고자 했으나 계획이 무산되었고 결국 스탈린 사후에 거대한 공공 수영장이 되었다. 신성한 종교적 장소가 집단적 유흥과 스포츠의 장소가 되었던 아이러니함은 스탈린의 소련을 나타내는 상징이며 시대의 정체성이다.


빌라도에게 탄압 받았던 예슈아, 그리고 작가이자 예술가이지만 정신병자 취급을 당하고 정신병원에 갇힌 거장의 모습은 스탈린 시대의 작가와 예술가, 불가코프 자신을 투영한다. 과거 스탈린에게 탄압받았던 불가코프는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죽을 때까지 출판하지 못했다. 한때 시대와 타협하여 볼쇼이극장의 리브레토 작가가 되었으나 그의 작품이 공연에 오른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한 그의 작품이 사후에 소비에트 시대의 대표적 풍자 소설이 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마침내 볼쇼이발레단 무대에 오르다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원고는 불타지 않았다”는 소설 속 대사처럼, 문학은 죽지 않고 부활했으며 발레로 다시금 태어났다.


Photo by Damir Yusupov/ Bolshoi Theatre. 

 

 

글_ 이희나(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