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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꾸는 꿈: 이가영 <빨래방>

모두가 ‘컨템포러리’를 말하고 논하고 만드는 시대다. ‘현대무용’은 현대무용‘이었던’ 것을 가리키는 무언가가 되었고, 이에 따라 ‘현대무용’의 사어화가 가속화되며 그 자리를 ‘컨템포러리’가 대체하고 있는 모양새다. 

컨템포러리 공연을 볼 때 개인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단어가 몇 가지 있다. ‘현대사회’, ‘동시대’, ‘소외’ 등이 그러하다. 컨템포러리 작업을 하는 안무가들의 창작노트 어딘가에서 필연적으로 발견되기 마련인 이 키워드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무대에서는 구조만 남기고 주체를 감추어 해당 단어 내에서 또 다른 소외를 만들어내며 작품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류진욱


지난 6월 30일과 7월 1일 양일간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 이가영의 <빨래방>은 포스터나 브로슈어 등 홍보물 어디에서도 이러한 키워드를 찾아볼 수 없지만, 작품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이 키워드들을 소환할 수밖에 없다. 안무가가 굳이 말하거나 강조하지 않았음에도 이 작품은 한동안 ‘현대인’의 ‘소외’를 ‘동시대’적으로 풀어낸 작품들의 상단에 위치하게 될 것인데, 그 이유는 그동안 창작자들이 숨기기 바빴던 당사자성을 전면에 드러내고 있는 매우 드문 작품이기 때문이다.

ⓒ류진욱


공연이 시작되기 전, 객석에 입장한 관객들을 맞이하는 것은 무대 한쪽에 마련된 드럼세탁기와 세제류가 놓인 선반 등 빨래방의 풍경이다. 그러나 함께 세팅된 핑크색 벽이나 크리스탈 샹들리에는 일반적인 빨래방 풍경과는 거리가 먼, 케이팝 뮤직비디오의 주요 배경 중 하나인 개념화된(conceptual) 공간으로서의 빨래방을 떠올리게 한다(한국관광공사에서 마련한 한류 콘텐츠 체험관 ‘하이커 그라운드’에서는 방문자들이 다양한 콘셉트로 꾸며진 케이팝 뮤직비디오 공간 케이팝 그라운드를 XR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 여기서 코인빨래방은 지하철, 우주선 등과 함께 케이팝 뮤직비디오의 대표적인 콘셉트로 소개되고 있다).


그렇기에 이가영이 춤추는 무대이기도 한 이 ‘빨래방’은 단순히 빨래를 하는 공간만은 아니다. 빨래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가영은 간식을 먹으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데, 이때 꽃이 심겨 있던 화분은 그릇이 되고 세제통에는 시리얼과 우유가, 샹들리에 사이에는 막대사탕이 꽂혀 있다. 마치 이상한 나라에 간 앨리스가 케이크나 버섯을 먹고 일상을 벗어난 모험에 나서게 되는 것처럼, 간식을 먹은 이가영은 곧 빨래방을 떠나 남국의 바다로 이동한다. 현지인처럼 보이는 이들이 화관을 쓰고 등장해 그를 환영하는 춤을 춘다.


ⓒ류진욱


이렇듯 개연성이 무시된 연출은 흡사 가수 효린의 뮤직비디오 ‘세이 마이 네임’과 ‘바다 보러 갈래’를 교차 편집해놓은 듯 비약적이다. 그러나 야자수가 있는 바다는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잠시 잠이 든 이가영의 꿈에서 펼쳐진 풍경이었고, 그 꿈에서조차 그는 실제 바다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수영모와 선글라스를 쓰고 선베드에 앉아 바다에 온 것처럼 연기를 하고 있다. 이가영을 환영하며 춤을 추던 이들은 현지인이 아니라 그의 연기를 도와주는 동료들로, 그에게 파라솔을 씌워주고, 바람 부는 연출을 위해 선풍기를 틀어주고, 이국적인 분위기의 음악을 들려준다. 자신의 일상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어 SNS에 올리는 것에서 SNS에 올리기 위한 사진이나 영상을 위해 그럴듯한 일상을 꾸며내는 것으로 바뀐, 소위 ‘인스타 세계관’을 엿보는 듯하다.

ⓒ류진욱


관객들이 실제로 지켜보고 있는 무대와 무대 뒤에서 이가영이 뮤직비디오처럼 연출된 빨래방 풍경을 보여주는 동안 그의 실제 일상은 영상을 통해 제시된다. 영상 속에는 모므로살롱 영업을 마치고 퇴근하는 이가영이, 아무도 없는 컴컴한 집에 들어서는 이가영이, 며칠 동안 밀린 빨랫감을 가방에 챙겨 넣고 빨래방으로 향하는 이가영이 있다. 관객들은 무대 위에 있는 이가영을 볼 수 있지만 정작 현실을 살아가는 이가영은 영상 속에 있다. 두 이가영 중 어떤 이가영이 진짜인지 관객들은 구분할 수 없다.

마침내 빨래가 끝나고 다 마른 빨랫감을 챙긴 이가영이 무대에서 퇴장하고 나면 서보권이 등장해 자신의 빨래를 시작한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서보권은 차를 마시며 빨래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이들은 비슷한 일상을 영위하지만 서로 만나거나 교류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일상을 각자의 시간대로 각자의 장소에서 이어갈 뿐이다.

남정호가 30여 년 전 <빨래>를 통해 젠더화된 노동과 여성 간 연대를 보여주었다면 이가영은 ‘빨래터’라는 공통의 장소가 사라진 현대의 빨래방을 통해 스스로 세상과 단절되어 혼자만의 비일상 속으로 침잠하는 개인들의 내면에 집중한다. ‘우리’에서 ‘나’로 향하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면, 그러한 ‘나’들을 예민하게 읽어내는 것은 창작자에게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류진욱

 


글_ 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모므로움직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