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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한국의 전통춤, 이제 투트랙(two track)으로 확장해가야 한다: 영남춤축제의 <한국전통춤판> 중 살풀이춤을 중심으로

국립부산국악원의 <영남춤축제>에서 '한국전통춤판’을 만났다. 5회로 나눠서 펼친 무대로, 한 공연에서 6개의 다른 춤이 펼쳐졌다. 30명의 춤꾼은 저마다 내공을 쌓아가면서 춤의 길에 정진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연륜이나 실력을 두루 살필 수 있는 한국전통춤판은 매우 유용한 기획이었다. 특정 종목이나 특정 유파의 호불호를 떠나서, 다양한 춤꾼의 개성적인 모습을 통해서 전통춤에 대한 안목을 넓히고 위상을 높이는 자리였다.


2022 한국전통춤판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춤은 살풀이춤이다. 무대에서 모두 6명의 춤꾼이 추었는데, 큰 계보로 보면 이매방류와 한영숙류이다. 이번 춤판에서 6인의 개성이 잘 드러났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들 각자의 살풀이춤을 한 글자의 한자(漢字)를 통해서, 그 가치와 매력을 설명하겠다.


장민하의 ‘짙을 농濃’


장민하는 농염(濃艶)했다. 농염은 매우 긍정적인 표현으로, 담백(淡白)과 대조를 이룬다. 살풀이춤은 담백하게 출 수 있고, 농염하게 출 수 있다. 전자는 한영숙류, 후자는 이매방류로 인식되고 있다. 장민하는 이매방류 특유의 짙은 매력을 잘 살려내고 있다.


살풀이춤을 추는 장민하는 마치 이 땅의 역사에 등장하는 어떤 여걸(女傑)같았다. 어떤 동작에도 주저함이 없이, 시원스럽게 사위를 이끌어가는 노련미가 돋보였다. 일반적인 남성에 못지 않은 권위를 통해서, 여성적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느낌이었다.

 

 

이윤혜의 ‘바로잡을 격格’


이윤혜는 격조(格調)가 있다. 품격(品格)이라는 표현보다는 더욱더 엄격(嚴格)한 분위기를 살려내고 있다. 잘 추는 살풀이춤을 보면, 부침(浮沈)이 넘나듦이 참 좋다. 하늘의 기운을 느끼는 들뜨는[浮] 흥도 좋지만, 땅의 기운을 의지하면서 펼쳐지는 가라앉는[沈] 멋도 좋다. 나의 취향을 말한다면, 땅의 기운이 느껴지는 살풀이춤이 더 좋다. 이윤혜가 그랬다.


이윤혜라는 춤꾼이 정재(학연화대합설무)를 오래 연마한 덕분일까. 춤을 이끌어가는 진중한 모습에서, 마치 뼈대 있는 집안 종부(宗婦)를 보는 것 같았다. 늘 자신의 행실을 돌아보면서, 그를 통해서 주변에 영향을 끼치는 모습이랄까? 이은혜의 살풀이춤은 마치 오래도록 한 방향으로 길을 들이면서 닦고 또 닦아낸 명문가의 대청마루처럼 격조있는 윤기가 흐르고 있다.


 

 

허경미의 ‘아리따울 교嬌’


교태(嬌態)는 부정적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엄연한 잘못이다. 교만한 뜻의 교태(驕態)와 교태(嬌態)는 구분해야 한다. 교태(嬌態)는 여성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아양이라는 말로 대체할 수 없는, 더 높은 단계의 태도다. 아리따울 교(嬌)라는 글자는 여자 女에 높을 喬가 합쳐진 글자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오직 여성만이 표현할 수 있고, 남성이 그런 걸 흉내를 낸다면 매우 우스운 꼴이 되어 버린다.


허경미는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춤꾼 중에서 교(嬌)를 가장 충족하고 있는, 한국춤에 가장 최적화된 장점을 두루 갖춘 춤꾼이었다. 그가 전통춤을 추었지만, 그 안에는 전통과 창작이 두루 녹아있는 인상이 강했다. 그렇다고 전통춤을 창작춤처럼 추었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무대라는 극장을 잘 알고 추는 춤꾼이란 의미가 더 적당하다.


앞의 두 명의 여성 춤에서 ‘역사’가 느껴졌다면, 허경미의 춤에서는 ‘근대’가 느껴졌다. 1930년대의 신여성과 1950년대의 아프레걸로 존재했던 근대여성 속에도 엄연히 살아있던 ‘한국적인 여성성’이 느껴졌다. 1930년대와 1950년대의 어느 여성 춤꾼이 그러했듯이, 그녀의 살풀이춤은 2020년 극장에 찾아 온 관객의 눈높이에 맞는 만족감을 주는 살풀이춤이었다. 젠더라는 잣대를 가져와서 뭔가 구분을 짓는 상황에서도, 허경미의 살풀이춤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나’ 공감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매력적인 춤이었다. 이를 누가 어떤 이유를 들면서 흠집을 낼 수 있을까.



우한웅의 ‘다스릴 섭攝’


우한웅의 춤은 모호(模糊)하다. 2017년 전국국악대전에서 종합대상인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의 춤을 일찍이 인정해 준 것이다. 우한웅의 스승은 정명숙이다. 정명숙의 스승은 이매방이다. 이매방의 춤의 계보가 정명숙에게 이어지고 있지만, 때론 춤사위의 동작이나 분위기에서 다른 부분도 있다. 이건 너무 당연하다. 사람이 다르고, 시대가 다른데, 어떻게 춤이 같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매우 다른 것 같으면서, 그 안에서 ‘공약수’와 ‘교집합’이 되는 것이 있다. 이러한 ‘정서적 공유’는 매우 높이 평가할 지점이다.


이매방 – 정명숙의 계보를 잇는 우한웅은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모(模)라는 말은 본보기와 법식을 뜻한다. 여기에 합쳐진 ‘풀칠하다’는 뜻의 호(糊)는 끈끈하다는 뜻이다. 원래의 본보기와 매우 끈끈하게 엮었어도, 그게 다 분명한 것은 아니다. 또한 분명한 것이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다고 부정적으로 바라봐도 잘못인데, 나는 우한웅의 춤에서 왜 모호한 느낌이 받는 것일까?

 

 

우한웅의 살풀이춤은 양가적이다. 우한웅은 ‘과거완료형’의 춤꾼일까? ‘현재진행형’의 춤꾼일까? 그의 춤을 바라보는 시각이 계속 둘로 분리된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취향을 이미 공고히 확립한 ‘일찍 성공한 승자(勝子)’처럼 보인다. 또 한편 그렇지 않다. 춤추는 자신도 스스로 아쉽다고 느끼는 부분이 분명 있겠는데, 우한웅이 이제부터 계속 늘 연구하면서 ‘노력하는 현자(賢者)’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 자신은 어떻게 생각할까? 춤의 길이 멀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더욱 후자와 같은 반성적 시각이 있어야 대가(大家)가 될 것이다.


그의 춤에서 긍정적으로 평한다면, 여러 춤을 잘 섞을 줄 아는 통섭(統攝)적인 자세다. 다스릴 섭(攝)에는 귀 이(耳)가 셋 붙어있다. 지금 우한웅에겐 그의 춤에 대해서 매우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는 주변인이 필요하다. 그 얘기를 귀담아서 듣고 자신의 춤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될 때, 우한웅의 춤은 더 높은 곳을 향할 수 있겠다.


유은미의 ‘답답할 울鬱’ ‘울창할 울鬱’


살풀이춤을 추는 춤꾼을 크게 이렇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살풀이춤 안에 내가 있다’라는 자세로 추는 춤꾼이요, 또 하나는 ‘내 안에 살풀이춤이 있다’라는 의식으로 추는 춤꾼이다. 전자는 계보와 맥락, 동작 등을 중시한다. 후자는 자율과 즉흥, 느낌을 중시한다. 유은미는 확실하게 후자다. 이매방류를 이어받는 살풀이춤을 추고 있지만, 유은미의 개인적 느낌이 더욱 살아있었다.


그녀가 살풀이춤을 추는 자세는 비애와 슬픔이 자체였다. 이건 특징일까? 한계일까? 유은미는 절절했다. 그녀의 살풀이춤을 보면서, 누군가는 먹먹함을 느끼게 될 것도 같다. 이게 살풀이춤을 추는 일반적인 자세이긴 하나, 이것을 어떻게 요령껏 펼쳐 보이는 것은 춤꾼마다의 능력이다. 유은미는 마치 굴곡 많은 삶을 살고 있는 예기(藝妓)가 되어서, 자신의 한스러움을 숨김없이 갈피갈피 드러내면서 토로(吐露)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녀의 춤에서 ‘서슬’을 바랄 수 있을까? 힘[力]으로서 강인함이 아닌, 기[氣]로서 강인함이 더욱더 살아나길 바란다. 매우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 있겠으나, 이런 기(氣)를 살려내기 위해선 유은미는 지금보다는 좀 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 낫겠다. 


유은미의 살풀이춤에서, 조선의 명기(名妓)가 떠올랐다. 살풀이춤을 매우 잘 추는 예인을 만나서 기쁘기는 했으나, ‘우울(憂鬱)의 충만’을 경험했다. 유은미의 춤이 지금의 단계를 잘 다진 후에, 우리에게 울창(鬱蒼)을 경험하게 해 주었으면 한다. 유은미의 살풀이춤이 마치 피톤치드가 충만한 숲에서 삼림욕을 하는 것과 같았으면 좋겠다. 거기서 이젠 답답함과 먹먹함을 모두 떨쳐버리길 희망하다. 나무가 풍성하게 자란 울창한 숲에서, 싱그러운 느낌이 충만한 유은미의 살풀이춤도 기대한다.


김완수의 ‘펼 터攄’


평론가는 호불호가 더 정확할 필요가 있다. 그런 평론가의 의견을 따르자는 얘기가 아니다. 어느 특정 평론가의 호라고 해도, 또 다른 평론가는 불호일 수 있다. 당연히 그 반대도 존재한다. 대한민국의 무용평론이 더 솔직하길 바란다. 호불호와 우열을 기탄없이 밝힐 때, 이런 평론문화에 힘입어 춤문화가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영남춤축제의 한국전통춤판에서의 살풀이춤은 개성있고 모두 우수했다. 그러함에도 단 한 사람을 꼽는다면, 나라는 평론가는 김완수를 뽑겠다. 또 다른 평론가가 다 지켜봤다면, 또 다른 인물을 선정했을 거다.


김완수는 통(統)을 아는 춤꾼이다. 큰 줄기를 알고, 본 가락을 알았다. 김완수는 일찍이 순리를 터특(攄得)한 춤꾼이었다. 지엽적인 동작을 넘어서서 전체적인 움직임이 조화롭게 흘러간다. 그는 누구보다도 ‘춤을 잘 펼쳐 낼 줄’ 알았다. ‘펼 터(攄)’라는 한자 안에는 ‘생각할 려(慮)’가 포함되어 있다.

 


김완수의 살풀이춤을 더욱 인정하는 이유 


그의 살풀이춤이 잘 흘러가는 이유는, 그가 오래도록 살풀이춤에 대해서 넓고 깊이 생각한 결과로 보인다. 한국의 살풀이춤의 계보로 따질 때, 김완수는 정재만 명무의 계보로 보인다. 그는 여기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또한 자신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그게 또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김완수의 살풀이춤은 인위가 없고 자연스러웠다. 자연(自然)이란 말이 ‘스스로 그리 되다’란 뜻인데, 김완수의 살풀이춤이 그랬다. 한국춤(살풀이춤)을 깊이 생각하면 이치를 알아냈고, 그런 깨달음을 그의 춤에 적용하고 있었다. 김완수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일반적으로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다. 20대부터 크게 주목을 받았던 김완수의 살풀이춤은 30대를 거치면서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까? 유지되는 것은 무엇이고, 변화되는 것은 무얼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1930년대의 살풀이춤은 어떠했는가?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둘이다. 앞에서와 같이 ‘한국전통춤판’에서 살풀이춤만을 대상으로 리뷰를 하는 게 첫 번째 목적이다. 또 다른 목적은 살풀이춤에 대한 ‘현재적인’ 고정관념을 없애고, 이 춤의 외연을 보다 확장하는데 있다. 지금 무용계가 크게 관심이 없는 듯 보이는 1930년대의 춤판을 알면, 살풀이춤을 이렇게 홀춤의 영역에만 머무르게 할 순 없으며, 살풀이춤에 담아내는 정서의 스펙트럼도 더 넓어지게 된다.


지금의 살풀이춤은 거의 홀춤이다. 살풀이춤은 원래 홀춤인가? 그렇지 않다. 굿판에서 출발해서 교방으로 이어지고, 예기의 주요 레파토리의 하나인 수건춤은 한성준(1874 ~ 1941)에 의해 무대화되었다.


1938년 5월 2일, 한성준이 이끄는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고전무용대회에서 ‘살푸리춤’이 부민관 극장무대에 올랐다. 이 때의 살풀이춤은 한영숙, 이강선, 장홍심의 3인무였다. 이 공연은 대히트를 쳤다. 조광회 주최로 앵콜 공연이 6월 23일 같은 장소인 부민관 (현, 서울시의회)에서 열렸다. 이 무대의 살풀이춤은 4인으로 한영숙, 이선(이강선), 이춘경, 장홍심이다.


살풀이춤의 근원적 정서는 웃음과 해학


이 시절의 살푸리춤은 지금의 살풀이춤과 정서적으로도 차이가 있다. ‘조선의 민간에 뿌리를 둔’ 이 춤은 ‘웃음과 해학과 통속미가 있는 춤’이라고 설명한다. 지금의 살풀이춤에서 웃음과 해학을 느낄 수 있는가?


우리가 살풀이춤을 지나치게 여인의 한(恨)과 연결하고 있는 것은, 언제부터일까? 적어도 해방이전의 살풀이춤은 그런 춤은 아닌 걸로 보인다. 살풀이춤을 또한 ‘처녀가 수건을 쓰고 흥에 겨워서 추는 춤’이라고 설명한다. 한(恨)과 대비되는 흥(興)으로 살풀이춤을 얘기한 것도 흥미롭지만, 더욱 더 흥미로운 건 ‘수건을 쓰고’ 추는 춤이라는 점이다.


지금처럼 수건을 들고 추는 동작뿐 아니라, 수건을 쓰고 추는 것도 살풀이춤의 중요한 동작임을 환기하게 된다. 살풀이는 지금처럼 ‘여인’의 춤이라기보다는, ‘처녀’에게 더욱 방점이 찍힌 춤은 아니었을까? 다소 어리거나 또는 젊은 여성의 발랄하고 산뜻한 정서를 바탕으로 해서 즐겁게 노는 듯 추는 춤이란, 한성준이 무대화한 살풀이춤의 근본적 정서가 아니었을까?


한국의 전통춤은 이제 투트랙적인 사고가 절실하다. 무형문화재 제도하에서 독무로 전승된 춤도 잘 보존해야겠지만, 그동안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춤을 복원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지나치게 독무(홀춤) 형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는 무형문화재의 지정과도 연관이 깊어 보인다. 그러나 실제 한국 근대춤에서의 발전과정을 자세히 살피면, 그 안에 이인무, 삼인무, 군무가 참 많다.


이번 ‘한국전통춤판’에서 복원된 전통춤도 만날 수 있었다. 비록 그 춤사위는 실제 남아있지 않지만, 과거의 문헌 자료를 근거해서 만든 춤이다. 그 춤은 이제 또 다른 ‘전통’으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영남춤축제가 한국춤의 복원에도 보다 치중하길 바란다. 살풀이춤을 비롯한 전통춤의 복원을 위해서 ‘근거있는 상상력’을 발휘할 때가 왔다. 우리 근대춤은 잘 살피면서, 춤의 공백을 잘 메꾸어 가야한다.


감춰버린 배경, 잃어버린 서사


오래전 일본의 한 무용가와 대화를 할 때, 그녀는 한국무용에 대한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한국춤은 사위가 무척 아름답고 흥이 많지만, 춤에서 전달되는 이야기가 없어서, 한국춤에 더 깊게 파고 들어가지지 않는다는 발언이다. 일본무용가의 얘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분통이 터졌으나, 실제 무대의 전통춤이 그러하니 뭐라 대꾸하기 어려웠다.


한국춤에는 이야기가 없을까? 이건 한국의 전통춤이 그런 게 아니다. 무형문화재 제도 하에서 독무 위주로 전승되면서 춤 속의 동작에만 치중하게 된 것은 아닐까? 이런 과정에 치중하면서 한국춤에 내재한 이야기와 배경이 점차 지워진 것은 아닐까?


“한성준의 춤에는 배경이 있고, 서사가 있다!” 자료를 통해서, 확실하게 믿게 된다. 우리는 이제 춤 속에 내재된 배경과 이야기를 춤 밖으로 끄집어내야 한다. ‘영남춤축제’를 통해서 한국 근대춤의 다양한 모습이 조금씩 쌓아지길 희망한다.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어려움들 속에서 사라지거나 묻혀버린 춤의 발자취를 국립부산국악원이 앞장서서 복원하는 데 힘을 기울여주길 바란다.

                                

                                                   글_ 윤중강(공연평론가)

                                                     사진제공_ 국립부산국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