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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공연비평

술 한 잔에 시름을 잊고, 굽이굽이 인생길을 걷는다: 국립무용단 ‘더블빌’ <신선> & <몽유도원무>

 

국립무용단이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달오름극장에서 ‘더블빌’이라는 타이틀로 두 편의 신작 <신선>과 <몽유도원무>를 선보였다. 두 편 모두 현대무용가와의 협업으로 만들어낸 공연물이라는 점에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국립무용단은 2018년에도 현대무용가 신창호와 김설진을 초청해 <맨 메이드>와 <더 룸>을 각각 공연한 바 있다. 당시의 공연들이 국립무용단의 무용수들이 ‘신창호 스타일’을, ‘김설진 스타일’을 얼마나 잘 소화해내느냐에 좀 더 무게중심이 치우쳐 있었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그 무게중심이 협업 안무가들인 고블린파티와 차진엽의 색깔이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의 몸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로 한 발짝 이동했다. 

 


<신선>

 

신선이되, 신선놀음은 아닌

 

<신선>의 안무 아이디어는 고블린파티의 세 안무가 임진호, 지경민, 이경구가 국립무용단 소품실에서 찾아낸 호리병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한국무용 무대에서 술이 보기 드문 소재라는 데 착안해 술을 작품의 중심에 놓고 움직임을 만들어나갔다. 

 

그동안 무용 무대에서 보기 어려웠다곤 하나 술과 움직임의 결합은 관객들에게 그리 상상하기 어려운 그림은 아니다. 이제는 사라진 풍경이 되었지만 취권을 앞세운 성룡의 액션 영화는 한 시대를 풍미하며 명절마다 안방을 찾아와 우리를 즐겁게 해주지 않았었나. 그러나 고블린파티는 ‘술’이라는 소재와 ‘신선’이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움직임을 통쾌하게 배신하며 현실의 술자리로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신선>

 

공연은 무용수들이 스탠드 마이크 앞에 서서 앞으로의 무대가 어떻게 전개될지 육성으로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흰색 혹은 검정색 통 넓은 바지에 셔츠 차림인 무용수들의 모습은 어떻게 봐도 우리가 익숙하게 상상해 온 신선의 그것은 아니다. 제목의 ‘신선’에는 ‘神仙’만이 아닌 ‘新線’이라는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더니 후자의 ‘신선’에 좀 더 가까운 모양새다. 

 

스탠드 마이크는 이 무대가 ‘쇼(show)’라는 것, 이것이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상황이 아니라 공연임을 강조하는 듯하다. 무대 위에서 약속된 연기를 하면서도 이것이 현실인 양 진정성을 불어넣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인데, 정작 이들이 펼치는 퍼포먼스는 공연을 마친 무용수들이 무대에서 보여준 연기를 뒤로 하고 그날의 피로를 술 한 잔으로 잊고자 하는 현실의 뒤풀이 같다. 

 

개다리소반과 술잔이 등장하고, 한 잔 두 잔 들이키던 술이 몇 잔이 되었는지 헤아리는 것을 잊어버리고 나자 소반이 장구나 북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드리고, 바닥에 나열한 소반을 징검다리 삼아 겅중겅중 건너기도 하고, 취기가 도는지 비틀거리고 휘청거리다 쓰러지기도 한다. 

 

이 혼란스러운 술자리가 파하는 건 달이 휘영청 밝은 한밤이다. 마침내 무용수들의 춤이 멈추고 무대의 막이 내려진 다음, 무대에는 장윤나가 홀로 남아 달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과음을 했는지 토기가 올라와 괴로워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장윤나는 채를 든 손으로 무대를 가린 막에 도도하게 떠 있는 달을 내려친다. 현실인 줄 알았던 술자리가 공연이었음을, 이제 공연이 끝났음을 알리는 손짓이다. 고블린파티 특유의 위트가 살아 있는 유쾌한 마무리다.

 


<신선>

굽이진 인생길을 지나 도원으로

 

차진엽 안무의 <몽유도원무>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조선시대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그러나 2차원 그림 속에 현실 세계와 이상향의 세계가 동시에 존재하는 ‘몽유도원도’와 달리 <몽유도원무>에서는 무용수들이 현실의 고된 여정을 거쳐 도원에 이르렀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적 흐름을 따르고 있다. 

 

공연이 시작되면 관객들이 무대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무대 앞에 설치된 1미터 남짓한 높이의 샤막이다. 무용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샤막에 검은 그림자들만 어른거리는데, 이는 차진엽의 전작인 <원형하는 몸>에서 본 벌레나 물 입자의 움직임 같기도 하고, ‘몽유도원도’에서 볼 수 있는 화가의 힘찬 붓놀림 같기도 하다. 이윽고 샤막이 걷히고 나면 방금까지 본 검은 그림자가 무용수들의 움직임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몽유도원무>

 

차진엽은 ‘몽유도원도’에서 표현된 것처럼 산지가 많은 한국의 지형을 묘사할 때 흔히 사용하는 부사인 ‘굽이굽이’에서 안무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그런 ‘굽이굽이’의 형상이 자연으로 바라볼 때는 아름답지만 인간의 삶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굉장히 굴곡지고 힘든 여정이라는 것이다. 그가 설명한 것처럼 무용수들은 굽이진 인생의 고갯길을 쉼 없이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괴나리봇짐을 진 어깨는 구부정하고 내딛는 발걸음은 무겁다. 도원으로 가는 길이 쉬울 리가 있나. 흔히 자유롭고 거친 붓터치로 생동감을 표현한 그림을 두고 ‘살아 있는 듯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한 문규철과 황선정의 미디어아트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듯 힘찬 붓질로 무대를 종횡무진한다.

 

굽이굽이 고갯길을 걷던 무용수들은 드디어 도원에 다다른다. 구부정하던 몸이 펴지고 무채색이던 의상에는 색이 더해진다. 분홍빛, 연둣빛 등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화사한 색조의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은 이제 움직임마저 가볍고 사뿐한데, 거문고 연주가 이러한 움직임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몽유도원무>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그림에 현실과 이상세계를 나란히 표현하면서도 현실을 벗어나서 다다르는 이상세계를 제목으로 삼고 있는 것과 달리, 차진엽의 <몽유도원무>는 도원을 경험한 이들이 현실로 돌아오는 것으로 무대를 마무리 짓는다. 안견이 현실과 이상세계가 공존할 수 없는 불가능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아냄으로써 가능케 했다면 차진엽은 현실과 이상세계를 차례로 경험한 몸을 통해 그러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현실로 돌아온 이들의 몸에는 이상세계가 깊게 각인되어 살아가는 내내 기억으로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고블린파티와 차진엽의 색깔을 덧입은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의 몸에도 이 색깔은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다.

 


 

글_ 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국립무용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