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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 정서와 이미지로 치장한 제국주의 고전발레: 볼쇼이발레단 <파라오의 딸>

일반 대중들에게 좋아하거나 알고 있는 발레 작품을 묻는다면 십중팔구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이라 답할 것이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돈키호테>의 비중도 상당할 것이고 발레에 조금 더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라 바야데르>, <라이몬다>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클래식 튀튀를 입고 일정한 형식을 가진 장면들이 등장하는 고전발레라는 것이다. 게다가 19세기-20세기 초까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황실발레에서 무용수 겸 발레마스터이자 안무가로 활약하며 고전발레의 전성기를 만들어낸 마리우스 프티파의 작품들이다. 빛나는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아름다운 동선을 만들어내며 그림과 같은 무대를 연출하고, 주역 무용수들의 테크닉의 향연을 볼 수 있는 고전발레는 인기가 많다. <파라오의 딸>은 프티파가 1862년 안무하여 큰 성공을 거둔 첫 작품이었다. 이로 인해 황실발레와 두 번째 계약을 맺으며 위와 같은 위대한 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44세였던 프티파가 실제 무용수로도 참여했던 <파라오의 딸>은, 총 4시간에 걸쳐 400여 명의 무용수가 출연한 대작이었다(당시 조지 발란신은 원숭이역을 했었다 한다).



 Photo by Damir Yusupov/ Bolshoi Theatre.



소비에트 혁명 이후 맥이 끊겼던 <파라오의 딸>은 2000년 5월, 안무가이자 발레 역사학자인 피에르 라코트와 볼쇼이발레단의 복원으로 되살아났다. 복원이라 하지만 라코트는 기본 뼈대를 제외하고는 거의 재구성을 하였다. 길고 장대한 작품을 축약하였고 라코트 자신이 러시아 발레선생들에게 배웠던 춤 언어들로 작품을 되살려냈다. 세자르 푸니의 음악 역시 여기저기 파편적으로 남아있었는데, 지휘자 알렉산드르 소트니코프가 이를 모아 재구성했다. 따라서 현재 볼쇼이발레단의 레퍼토리 <파라오의 딸>은 ‘테오필 고티에의 작품 『미이라의 사랑』에 착안하여 생-조르쥬와 프티파가 대본을 쓴 1862년 작품을 피에르 라코트가 재안무한 2000년도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그 이후 잠시 중단되었다가 2018년부터 다시 무대에 올리고 있다). 무대 세트와 의상 역시 초연 당시의 사진을 바탕으로 모두 새로 디자인을 하였다.



총 3막으로 구성된 <파라오의 딸>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고 상투적이다. 19세기, 영국의 윌슨 경과 그의 하인 존 불이 이집트를 탐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사막폭풍이 몰아치자 이들은 피라미드로 피신을 하고 그곳에서 아랍 상인들과 함께 아편을 피우며 몽롱해진다. 꿈(환영)속에서 윌슨은 이집트인 타오르로, 하인은 파시폰테로 변신한다. 파라오의 딸 아스피시아가 누비아 하녀인 람제와 사냥을 나왔다가 사자에 물릴 뻔한 것을 타오르가 구해주며 그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파라오는 자신의 딸을 누비아의 왕과 혼인시키려 하고, 연회를 준비하는 사이에 타오르와 아스피시아는 몰래 도망친다. 누비아의 왕이 타오르와 아스피시아가 도피하고 있는 어부의 오두막까지 찾아와 결혼을 강요하자 아스피시아는 이를 피해 나일강에 몸을 던진다. 나일강의 용왕을 만난 아스피시아는 진실한 사랑을 호소하고 이에 감복한 용왕은 그녀를 육지로 올려준다. 그사이 타오르는 파라오에게 잡혀 처형당할 위기에 처한다. 되살아난 아스피시아가 파라오에게 그간의 일을 모두 이야기하며 타오르와 결혼하지 못하면 독사에 물려 죽겠다고 한다. 이들의 사랑에 감동한 파라오는 누비아 왕과의 약속을 깨고 결혼을 허락하며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꿈에서 깨어난 윌슨 경은 사랑에 빠졌던 찰나의 순간을 생각하며 황홀해 한다.

 

 Photo by Damir Yusupov/ Bolshoi Theatre.

 

시공간이 고대 이집트로 옮겨갔지만 이야기는 한 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구멍이 숭숭 뚫린 플롯을 채워주는 것은 무용수의 연기와 테크닉, 음악과 각종 볼거리들이다. <파라오의 딸>은 실제 동물 말이 등장하는 등 엄청난 스케일의 무대와 일사분란하고 아름답게 움직이는 군무 등 액자에 걸린 사진과 같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집트 풍의 기하학 무늬를 넣은 의상들도 한몫한다. 복잡한 발동작과 테크닉이 춤에 재미를 더해준다. 라코트가 복원하면서 창작 당시 발레의 흐름을 고려한 모양으로 부르농빌 스타일을 차용한 듯 보인다. 고전발레 애호가들에게는 충분히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할 만한 무대이다.



형식적으로도 이 발레는 철저히 고전발레이다. 발레 닥시옹으로 풀어가는 동작들과 그랑 파 드 되는 고전발레 애호가라면 어느 정도 순서와 동작까지 예상 가능할 만큼 전형적이다. 구성이 조금 심심해질 때 쯤 나일강 용궁에서 디베르티스망이 등장하여 캐릭터댄스를 선보이기도 한다. 간간히 이집트 부조나 벽화에서 착안한 듯한 자세를 춤에 섞은 부분에서 작품의 배경이 이집트라는 것을 상기해야 할 정도로 극 중 배경은 사실상 부차적이다.

 

<파라오의 딸>에 등장하는 이집트는 아프리카 북부에 위치한 구체적 지역이 아니다.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이국적 정서’를 풍기는 미지의 어느 곳을 이집트라는 제3세계 국가로 설정했을 뿐이다. 이 작품에서 이집트가 드러나는 방식은 파라오, 피라미드, 스핑크스, 미이라, 기하학적 문양, 독사에 물려 죽었다는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뱀 등으로, 일차원적이고 피상적이며 전형적인 ‘이미지’로 드러난다. 프티파가 <파라오의 딸>을 창작한 19세기는 제국주의 시대였고, 서구 열강에게 제3지역은 이처럼 막연하고 환상적이며 이국적 정서를 풍기면서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이미지로 인식되곤 했다. 작품의 배경이 이집트가 아니라 아라비아나 중국, 일본, 남태평양의 어느 곳으로 치환되어도 무방할 만큼 배경이 갖는 존재감이 가볍기 그지없다는 것이 <파라오의 딸>이라는 제목과 충돌하여 역설적이다.



Photo by Damir Yusupov/ Bolshoi Theatre.

 

19세기 오리엔탈리즘과 엑조티시즘은 당시 회화나 음악, 문학 등 서구 창작물 도처에 깔린 정서였다. 발레만 보아도 <호두까기 인형>에 등장하는 무어인의 춤, 아라비아춤, 중국춤 등의 캐릭터댄스, 인도의 무희가 주인공인 <라 바야데르>, <해적>에서의 아라비아 상인과 노예, 집시가 등장하는 <에스메랄다>와 <돈키호테> 등을 꼽을 수 있다. 나아가 테오필 고티에의 몽환적 낭만주의는 중세적 판타지와 연결되어 <라이몬다>나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배경을 만들어냈다.  

 

<파라오의 딸>을 지배하는 제국주의적 시각은 블랙페이스 분장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누비아는 아프리카 수단의 북동부를 일컫는 지명인데, 옛날 이집트인이 이 지역의 흑인들을 “노예”라는 뜻의 “놉”이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작품에는 누비아의 왕, 그의 신하들, 아스피시아의 하녀 람제와 흑인 노예 등 누비아인이 등장하는데, 하녀와 노예만 블랙페이스 분장을 한다. 람제는 얼굴과 온몸에 갈색 칠을 하고 갈색 슈즈를 신고 춤을 춘다. 심지어 흑인 노예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의상을 입고서(그 위에 다른 의상을 걸침) 양 팔을 구부려 옆으로 벌려 올리고 손가락을 쫙 편 상태로 우스꽝스럽게 움직인다. 모두 똑같은 검은색 분장을 하고 있으니 각자의 개성을 볼 수 없다. 두 주인공이 탈출할 때 문지기 노예는 어리석고 단순하며 겁쟁이로 묘사되며, 끝내 겁에 질려 독사에 처형되는 비극을 맞이한다. 미미하기 그지없는 이 대목이 공연을 통틀어(작품과는 상관없이) 나의 감정을 가장 자극했다니 아이러니하다.

 

Photo by Mikhail Logvinov/ Bolshoi Theatre.

 

블랙페이스는 몇 년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어 많은 발레단에서 시대적 정서에 맞추고 있다. 유독 볼쇼이발레단은 이러한 부분에서 무척 고루하다. 창작 당시에는 관습적 표현이거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요소였겠으나, 작품의 내용과 형식 모두에 하등의 영향을 주지 않는 이 블랙페이스 분장이 오히려 불쾌감을 주고 작품 자체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을 2022년의 관객으로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00년이 넘도록 꾸준히 사랑받는 고전발레 작품에는 시대와 공간을 관통하고 아우르는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파라오의 딸>은 기대만큼의 감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프티파가 최초로 성공한 작품, 볼쇼이발레단의 특별한 레퍼토리, 복원을 거쳐 재탄생한 고전발레의 한 유산으로서의 가치에 작품의 의미를 두고 싶다.

 

 

글_ 이희나(댄스포스트코리아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