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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이제 특정 지역의 이름이 아니다! 〈Water Castle - 토끼탈출기〉: 인천시립무용단 군무의 위력

약육강식, 살벌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 그런 측면이 있지 않은가. 인천시립무용단의〈Water Castle – 토끼탈출기〉가 약육강식을 ‘유쾌하게’ 풀어냈다면 이상하게 들릴까? 냉혹한 현실을 ‘심각하게’ 그려내는 것 보다, 이런 방식이 오히려 더 현명한 건 아닐까? 육지건, 수궁이건, 강자의 먹이가 되는 토끼를 통해서도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전달되었다면 얼마큼 믿을까? 인천시립무용단의 작품이 실제 그랬다.  

 

〈Water Castle - 토끼탈출기〉는 판소리 ‘수궁가’를 소재로 한다. 판소리는 앞과 뒤, 그리고 중간에 세 번 압축적이고 효과적으로 등장하고, 김태근의 음악이 변화무쌍하게 펼쳐진다. 김태근의 음악은 때론 무용보다 기운이 세다. 그래서 무용이 묻히기도 하는데, 이번 윤성주의 안무에선 그렇진 않았다. 음악의 사운드를 능가하며, 군무의 에너지가 작품을 살려냈다.  

 

5월 13일은 장지영(토끼)과 박재원(자라), 14일은 유나외(토끼)와 김철진(자라)이 무대에 올랐다. 두 토끼가 각각 개성이 잘 살았다. 장지영은 노련하고 의뭉스러운 토끼였고, 유나외는 발랄하고 재기가 빛났다. 토끼라는 캐릭터 자체로 본다면, 딴지를 걸 수 없을 만큼 수준급이다. 그러나 약육강식이란 주제와 연결해보면, 평자(評者)로선 흠을 잡을 수밖에 없다. 토끼가 둘 다 너무 가볍다. 

 

 



 

이 작품이 ‘어른을 위한 우화’를 지향했다면, 천방지축 무대를 헤집고 다녀서 부담스럽다. 육지건, 수궁이건, 그 장소를 하나의 회사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더 그렇다. 

토끼는 회사의 적응력이 달리면서도, 신분 상승을 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직장을 못 견디면서 저 직장에 가고픈 일탈을 꿈꾸는 토끼라면, 어느 정도 고뇌의 모습이 그려져야 했다. 

 

반면, 작품에서 자라가 주는 무게감은 컸다. 두 자라 모두 ‘현실의 버거움’을 객석에 잘 전달한다. 그런데 방식이 달라서, 더 흥미로웠다. 박재원의 자라는 화이트칼라, 김철진의 자라는 블루칼라의 느낌이다. 각각 ‘마임적’ 무용과 ‘연극적’ 무용으로 자라를 살려내는 느낌이다. 

 

박재원은 마르셀 마르소 같았다.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적을 때, 진한 페이소스(pathos)가 전달된다. 뒷모습에서 더 했다. 발달한 등 근육이 연민을 자극했다면, 너무 감상주의에 빠진 관람태도였을까? 

 

 



 

김철진에게선, 두 모습이 겹쳐졌다. 추송웅 같았고, 콰지모토 같았다. 지난 세기의 한국연극을 지켜본 관객이라면, <빨간 피터의 고백>의 추송웅 배우를 기억한다. 추송웅이 그렇듯, 김철진도 소극장에 더욱 어울리는 연기였다. 요즘의 뮤지컬 관객이라면, 김철진의 움직임에서 <노트르담 드 파리>의 콰지모토를 연상할 것 같다. 

 

박재원은 절제를 알았고, 김철진은 표현을 즐겼다. 박재원이란 무용수는 태생적으로 감정을 아끼면서 품격을 살려낸다. 반면 김철진은 본능적으로 감정에 예민하고 움직임을 많이 하고 싶은 태도가 전달된다. 

 

박재원의 공간이 <미생>에 나올법한 여의도라고 한다면, 김철진의 공간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나올법한 청계피복노조와 같다고도 말할 수 있다. 대사가 없는 무용 작품에서 이렇게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낸다는 건, 두 무용수가 그간 쌓은 수련의 시간이 얼마만큼 고되고 길었다는 것도 짐작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배우와 비교해서 말한다면, 박재원에게선 이병헌을 보았고, 김철진에게선 황정민을 보았다. 내겐 이런 비교가 결코 과하지 않다. 

 

‘변신의 귀재’는 박성식이다. 그간 임금(담청), 무당(만찬) 역할을 잘 해냈는데, 이번 작품에는 

늙고도 교활한 용왕에 딱 어울렸다. 노회(老獪)한 용왕에 약간의 코믹을 입히면서, 무대의 윤활유가 되어주었다. 때론 토끼가 너무 돌아다녀 어수선하고, 때론 자라가 너무 느슨해서 나른할 때, 박성식이란 용왕은 적재적소에서 무대를 살려내는 ‘여우같은 여유’를 보였다. 

 

무용에도 ‘씬 스틸러’가 있다면, 홍수연이다. 새의 무리 중 하나인데, 위치와 조명의 수혜 속에서, 홍수연은 매우 빛났다. 그녀를 ‘흰죽지수리’라고 부르고 싶다. 팔과 어깨가 이어진 부분에, 새처럼 죽지가 있는 것 같다. 그녀의 움직임을 카메라에 담아낸다면 A컷이 될만한 동작들이 참 많다. 이 무용수의 이 동작을 조합해서, 하나의 소품을 만들어도 매력적일 듯 싶다. 

 

 



 

안무가 윤성주의 특징은 역동성이다. 앞 장면은 마치 뒤 장면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밀고 가는 추진력이 있다. 궁금증을 증폭시키면서 거침없이 차고 나간다. 두 가지 면에서 특징을 말할 수 있다. 하나는 무용수 마다의 개성을 유연하게 수용하면서 작품을 잘 흘러가게 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주제를 확실히 드러내기 위해서, 구구절절한 느낌의 군더더기를 배제한다는 점이다. 윤성주의 안무는 이렇기에 때론 불친절할 순 있어도, 불필요한 사족은 없어서 주제와 동작을 확실하게 살려낸다는 강점이 있다. 

 

이번 작품에선 안무는 특히 군무에서 빛났다. ‘인천시립무용단=군무’라는 등식이 가능하다. 인천시립무용단은 인원수로 승부를 걸지 않았다. ‘어전회의’ 장면의 군무가 흥미의 불을 지폈다. ‘약육강식’의 주제를 확실하게 부각한 ‘상좌다툼’에선 무용수들이 날짐승과 들짐승으로 분해서, 고난도의 테크닉을 보여주었다. 

 

인천시립무용단의 우수한 단원의 얘기는 훗날에 할 기회가 있을 거다. 여기선 두 명의 남성 남성무용수를 등장시키겠다. 선승훈과 손무경은 이 작품을 살린 ‘숨은 실력자’였다. 이번 작품에선 무대에 커다란 테이블이 등장한다. 테이블을 밀면서도 움직임과 호흡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테이블을 돌리면서도 물구나무를 서는 등, 스스로 즐기는 모습에서 20대의 열정과 패기가 전달되었다. 수차례 무대에 등장하고 빠지면서 날짐승과 들짐승으로 변신을 했는데, 이렇게 무대에서 ‘힘있게’ 에너지를 준 후에, ‘슬며시’ 치고빠지는 술수도 있었다. 

 

 

 

 

특히 손무경이 맨 앞의 선두에서 토끼를 위협하는 장면에선, 발레 <스파르타쿠스>에서 선봉에 선 전사와 비교해도 뒤질 게 없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토끼를 추격하는 날짐승의 군무에서, 가장 낮은 자세를 취하면서 리듬을 즐기는 손의 움직임을 보았다면, 손무경에 대한 이 찬사에 공감할 것이다. 

 

인천시립무용단에는 많은 인재가 있다. 를 보면서, 이제 인천시립무용단의 ‘인천’이 특정 지역의 이름만이 아님을 확인한다. 대한민국 국시립무용단에서 인천시립무용단의 위상을 생각한다. 

 

예전 임헌정이 이끄는 ‘부천’ 시향이 떠올랐다. 그 시절 ‘부천’이 그랬다. 부천필의 ‘부천’은 단지 지역명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오케스트라에서 선두의 역할을 해냈었다. 현재 윤성주가 이끄는 인천시립무용단도 그래질 가능성이 크다. 훗날 그런 평가를 꼭 받게 되길 기대한다.

 

 

 

 

 글_ 윤중강(공연평론가)

 사진제공_ 인천시립무용단